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98)
만렙 회귀자입니다만-98화(97/300)
제 98화
얼마 후.
맑고 청명한 외곽 지대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블랙 존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발신 제한 구역’이라는 스마트폰의 경고 표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났다.
시계도 급격히 좁고 짧아졌다.
그나마 개변된 눈을 활용하고 있는 덕분에 남들보다는 압도적으로 먼 거리를 살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제반 준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실제의 시야는 20m 남짓일 듯했다.
처억!
즉시 아공간에서 윌슨을 소환해 꺼내서는 손에 움켜쥐었다.
황량한 아스팔트 길 위를 한 블록 정도 지나가자, 우측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함께 안전 구역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저 이정표에 어떤 바보가 속느냐고 말했었지만, 실제로 속은 사람들이 많았지.’
표지판은 옳다, 라고 무의식중에 학습된 것이 영향을 미치는 일이 꽤 많았다.
특히 내부에서 전투가 벌어지거나 상황이 급변하여 도주 혹은 이동이 필요해질 경우.
그 어떤 이정표도 믿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많은 각성자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따랐다.
결과는 죽음.
한번의 잘못된 믿음에 대한 대가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뼈저린 결과인 셈이었다.
‘어디 보자…….’
나는 윌슨을 꽉 움켜쥔 뒤.
이정표가 꾸준히 가리키고 있는 건물 옆의 사각지대를 향해 힘껏, 윌슨을 내던졌다.
홰앵!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윌슨이 우측에 보이는 벽면에 부딪혀 사각지대인 왼쪽으로 들어갔다.
다음 순간.
탁!
나는 손가락을 튕겨 사각지대 안쪽의 어딘가를 강타했을 윌슨을 소환했다.
퍼퍼펑! 펑! 펑!
그러자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트랩이었다.
그것도 특정 구역 안으로 들어서면 센서에 반응하여 터지도록 만든 살인 트랩.
‘역시.’
예상했던 함정이었다.
이런 함정이 블랙 존에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 이것들을 설치했을 조직들도 모든 위치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정도였다.
‘KSA도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진입 단계에서부터 엄청 많은 요원을 잃을 거다.’
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물론 범죄자와는 일체의 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이하성의 의지에는 십분 공감했다.
한번 그들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면, 그것이 선례가 되어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흣차!”
얼마간 길을 따라 조용히 이동하던 나는 제자리에서 도약하며, 가까운 건물의 꼭대기로 향했다.
전략적인 고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주변 시야 확보에 좋아서다.
“…….”
숨을 죽이고.
투명화 반지로 외형까지 확실하게 숨긴 뒤 마력으로 투명화 상태를 계속 유지했다.
그리고 묵묵히 주변을 살폈다.
월광의 1인자인 박형산이나 흑십자단의 4인자인 정만춘이 여기에 있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녀석의 부하들이 어딘가를 전략적으로 더 까다롭게 수비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면.
방향성은 확실히 잡을 수 있다.
허술할수록 당연히 우두머리와의 거리가 멀고, 촘촘할수록 거리는 가까워지게 되니까.
바로 그때.
차박. 차박차박.
최대한 숨긴답시고 노력한 듯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리는 발소리의 향연이 있었다.
시선을 향하자, KSA의 견장을 착용한 요원 한 무리가 내부로 접근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들어온다고?’
소리가 난 것도 모자라 그들은 대로를 따라 보란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주변에 엄폐, 은폐할 만한 장애물이 없어 그런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생각해도 느슨하기 짝이 없는 침투였다. 아니면 자신의 실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걸까?
스윽-.
그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바로 앞 건물에서 옥상 구조물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어둠을 틈타 조심스럽게 총구를 드러내는 저격수의 정체를.
‘나라서 보이는 거다, 이건.’
개변한 내 눈의 능력에 다시금 감탄하게 될 정도로 나는 완벽히 가려진 적의 정체를 파악했다.
아마 일반 각성자였다면 백이면 백, 있는지도 모르고 저격을 당했을 포인트를 적이 잡고 있었다.
파앗!
망설일 것도 없이 나는 옥상의 지면을 박차며 용수철처럼 앞으로 솟구쳐 나갔다.
초월 가속까지 더했기에 순간 머리와 목 언저리에 엄청난 하중이 실렸지만.
뼈와 근육을 일거에 강화해 내는 것으로 그 압박을 견뎌 냈다.
“어림없다!”
외침과 함께 녀석을 향해 나는 지체 없이 마력을 방출했고.
탕!
티잉!
그 바람에 저격을 방해받은 녀석의 총구가 애먼 곳을 향하고 말았다.
“아앗!”
“저격수다!”
덕분에 지상에 있는 요원들에게는 좋은 경보가 된 듯싶었다.
“제길, 들켰나!”
정체가 발각된 녀석은 내게 황급히 두르고 있던 천 쪼가리를 던지고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초승달 모양의 견장, 월광 소속의 조직원이다.
게다가 도망치는 과정에서 드러낸 손가락을 보니, 무려 7개에 달하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저 반지는 KSA 요원에게만 지급되는 반지로 일종의 소속 인증용 반지이기도 했다.
그것을 일곱 개나 차고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관련자 일곱을 죽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보통 놈이 아닌 셈이다.
‘적당히 풀어 줄까.’
나는 도망치는 녀석의 뒤를 쫓으면서도 전력을 다하진 않았다.
타앙! 타앙!
그 와중에 녀석은 공중에서 몇 차례나 몸을 뒤로 돌리며, 목숨을 노린 저격을 이어 갔다.
제법 스타일리시한 저격이었지만, 정작 실속은 없었다. 조준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죽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녀석이 도망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아무도 없는 곳으로 피하는 것 같지 않았다.
또 다른 방어선.
그러니까 아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갈피를 잡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것이 홈그라운드의 강점이 아니던가? 언제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파팟! 팟! 팟!
그래도 저격수답게 녀석의 도약 능력은 제법이었다.
아슬아슬하게라도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으며 도망쳤다.
나는 전력의 2할 정도만 사용하며 놈을 쫓았고, 제법 먼 거리를 따라 들어갔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약 500m 정도. 충분히 적의 품 안으로 밀고 들어온 셈이었다.
바로 그때.
‘……!’
나는 도망치는 저격수의 어깨너머, 그리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매우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지나치게 마력이 한곳에 응집될 때 생기는 특유의 이질감이었다.
일반 각성자는 쉽게 느낄 수 없는 만큼 마력의 흐름에 민감해야만 캐치할 수 있는 변화이기도 했다.
꾸드드득.
뭔가를 생각할 새도 없이, 나는 공중에 도약한 상태에서 바로 강철 강화를 전개했다.
본능적인 대응이었다.
그리고 가볍게 몸을 감싸는 정도의 적당한 강화가 아니라, 마력 전량을 활용하는 최대치의 강화를 펼쳤다.
그 순간, 네 블록 정도 너머의 건물 어딘가에서 푸른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또 다른 저격이었다.
총성보다 빛이 먼저 보인 상황.
퍼석……!
이어서 열심히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던 저격수의 몸이 폭죽처럼 터지는 것이 보였다.
비명은커녕,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할 정도로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다.
터엉!
저격수를 터뜨리면서 관통한 총탄은 동시에 내 머리도 강타했다.
엄청난 충격이 이마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쿠웅!
허공에서 순간 중심을 잃은 내 몸이 그대로 차가운 옥상의 지면으로 추락했다.
* * *
고도로 응축된 마력을 단번에 방출한 탓에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마력탄총, MZ-20.
후우.
한 남자가 총구를 따라 흘러나오는 연기를 불어 내며 말했다.
“성공인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제법 설계가 완벽했다는 만족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그가 네 블록 너머에 있는 건물 옥상 쪽을 훑었다.
이쪽으로 도망쳐 오던 저격수 – 아군 – 는 죽은 게 확실했고, 따라오던 놈의 행방이 중요했다.
타앗.
공중으로 살짝 몸을 띄우며 해당 위치를 살펴보니,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누워 있는 사람의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방금까지는 아무것도 없던 옥상이니 저기 누워 있는 것은 저격수를 추격하던 그놈이리라.
“클클클, 생각지도 않게 대어를 낚았군. 강신화가 여기에 나타날 줄이야.”
남자는 그의 정체를 알았다.
최근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짐꾼 출신의 각성자 강신화.
사실 그쪽보다는 흑십자단의 서열 3위, 장성영을 엿 먹인 녀석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흑십자단의 단장인 주천호가 다크 포레스트에 그의 암살을 직접 의뢰한 적이 있다고 해서 더 유명하기도 했다.
어쨌든 주천호에게 눈엣가시로 불리던 녀석을 자신이 제거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제일건.
범죄 조직 ‘월광’의 서열 2인자로, 고강도 마력 응축이 재능인 각성자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살리기 위해서 스나이퍼형 각성자가 되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을 아주 작은 총탄의 크기로 압축해서 쏘기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방금 전, 강화 슈트까지 갖춰 입은 부하의 몸이 폭죽처럼 터진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들어간 미끼 값치고는 수지맞는 장사인걸?”
제일건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물 사이를 뛰어넘으며, 신화가 쓰러진 자리로 향했다.
그가 신화의 등장을 안 것은 저격수를 쫓던 신화가 마침 근방에 있던 CCTV에 찍혔을 때였다.
처음에는 KSA에서 파견하여 침투시킨 각성자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거물이 온 것이다.
“목을 잘라 가면 주천호가 두둑하게 값은 쳐주겠는데?”
실실 웃고 있는 제일건에게서 월광 소속의 부하를 죽였다는 아픔이나 자책감은 없어 보였다.
사방에 부하의 죽음이 남긴 살점과 피의 흔적들이 가득했지만, 제일건은 그저 희희낙락이었다.
우웅. 우웅.
제일건이 MZ-20에 다시금 마력을 응축시키며, 신화의 ‘시체’에 사격할 준비를 했다.
확인 사살의 목적도 있었고, 시체를 통째로 들고 갈 수는 없으니 목만 분리해 가져갈 요량이었다.
마력탄으로 흉곽 윗부분을 정확하게 타격하면, 적당히 목 윗부분은 건져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건물을 뛰어넘은 제일건이 사방에 피가 흥건한 신화의 시체 앞에 섰다.
폭사하며 흩날린 부하의 살점과 옷가지 일부를 뒤집어쓰고는 있었지만, 죽은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내가 이래서 원샷 원킬이지. 아무렴 강신화 같은 풋내기 따위가 내 저격을 버텨?”
제일건이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응축된 마력을 방아쇠를 당겨 방출해 내려는 바로 그 순간.
파앗!
“……?”
제일건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축 늘어진 채로 죽어 있던 신화의 몸이 갑자기 움직였기 때문이다.
단숨에 일어난 신화가 바로 지면을 박차고 나서자, 순식간에 제일건과 신화의 거리가 좁혀졌다.
“앗……!”
뻐억!
제일건의 탄성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신화의 주먹이 그의 왼쪽 눈을 그대로 강타했다.
순간 와드득, 하고 왼쪽 눈 뼈가 무너져 내릴 정도의 강력한 일격이었다.
“커헉!”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제일건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베테랑답게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마력탄총으로 신화에게 반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해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재치로 떠올린 노림수였다.
그런데.
“……?”
마력탄총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대신.
“이거 찾아?”
신화의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아공간 입구에 둥둥 떠 있는 물체가 제일건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제일건 자신이 아끼는 병기인 마력탄총이었다.
“망할.”
허를 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