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x-Level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99)
만렙 회귀자입니다만-99화(98/300)
제 99화
아공간에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인’이라는 절차가 필요하다.
물론 복잡하게 뭔가를 새기는 절차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보관자의 접촉이 필요하다.
즉, 접촉이 이뤄지지 않아 접점이 ‘아예’ 없는 물건은 보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제일건에게 반격을 가하면서 녀석의 마력탄총에 손을 갖다 대어 각인을 완료했다.
그리고 아공간에 바로 보관 명령을 넣어 각인된 마력탄총을 빨려 들어가게 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넌 분명 내 저격에 머리를 맞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는데…….”
“아, 이거 얘기하는 거야?”
제일건의 반응에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공간에서 피 칠갑을 한 몬스터 한 마리가 빠져나왔다.
쓰러진 직후,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꺼냈다가 다시 안에 집어넣은 녀석이었다.
만약을 위한 위장용으로 상처를 꿰매 놓고, 안에 다량의 혈액을 채워 세팅해 둔 제물이었다.
언제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활용하게 됐다.
“위장이었나……?”
“어지간히 기분 좋았나 봐? 사람 피와 몬스터의 피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줄은.”
“시야가 좁은 것을 노린 건가.”
“그래. 딱 봐도 거기서는 여기가 잘 안 보일 것 같더라고.”
“개수작이나 부리는 버러지 같은 XX.”
“어, 그래. 칭찬 고마워.”
웃으며 제일건의 마력탄총을 아공간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녀석은 월광의 2인자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랭크는 S+랭크.
그간 수많은 희생자의 고혈을 빨아먹어 채운 배 속을 생각하면, 이런 무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마 무기 자체의 가치만 봐도 최소 수백억 원은 할 것이다.
한눈에 봐도 장인의 손길이 닿은 수제 무기였기 때문이다. 장동식이 만들었을 가능성도 크다.
‘시작부터 벌이가 짭짤한데?’
여차하면 마력탄총은 내가 응용해서 쓸 수도 있다. 마력을 응축하는 재능은 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정밀하게 조준하고 집중하는 것이 내 성격과 맞지 않는지라 자주 쓸 일은 없을 듯하다.
“이게 현상금이 얼마야? 제일건 너, 잡아가면 KSA에서 500억 넘게 주는 건 알아?”
“잡지도 못할 사람에게 거는 포상금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잡으러 왔잖아. 여기.”
“X만 한 새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일건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품속에서 바로 권총 두 자루를 꺼냈다.
제일건은 모든 공격을 총격의 형태로 다루는 각성자다.
때문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됐다.
타앙! 타앙! 탕!
들리는 소리는 분명히 일반적인 총성과 같았지만.
퍼엉! 파앙! 콰앙!
평범한 권총이었다면 충분히 장애물이 됐을 수 있던 여러 구조물이 줄줄이 터져 나갔다.
‘명불허전이군.’
전생에도 그랬지만, 녀석은 총을 활용한 근접전에 능한 각성자였다.
내가 가속 상태를 유지하며 회피하려 애썼지만, 녀석의 추적도 생각보다 빨랐다.
그런 이유로 두어 번의 총성이 더 들린 뒤에는 적극적으로 강철 강화 재능을 쓸 수밖에 없었다.
팅! 티팅! 팅!
“그 능력, 상당히 흥미롭군.”
타앙! 타앙! 타앙!
제일건이 계속해서 마력탄을 쏘아 내며, 나를 향해 접근해 왔다.
마력을 제법 끌어올려 강화를 했음에도, 전신에 울림이 느껴질 만큼 화력은 상당했다.
나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꿋꿋하게 제일건을 향해 걸어갔다.
강화 상태에서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느리긴 하지만, 느긋하게 걷는 정도의 속도는 됐다.
녀석에게 물었다.
“그렇게 마력 낭비를 해도 돼?”
“뭐라고?”
“내가 네 공격을 얼마 못 버틸 거라고 판단하고 너무 화력을 퍼붓는 것 같아서.”
제일건의 강점은 고화력의 집중이 가능하다는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큰 단점이기도 했다.
적당하게 화력을 조절하는 공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마력의 양을 줄이는 만큼 화력이 급락하기 때문에 요구하는 마력의 양이 많았다.
‘재충전이 필요할 때가 분명히 됐어. 처음에 날 저격할 때 필요 이상의 마력을 썼으니까.’
얼추 계산이 됐다.
하수는 남은 자신의 마력만 생각하고, 중수는 자신과 상대방이 가진 마력의 우열을 따진다.
그렇다면 고수는?
상대의 마력이 얼마나 소진됐을지를 역산해서, 지금의 마력 잔여량을 유추한다.
마력을 대량으로 올려 주는 아티팩트 같은 변수가 없는 한, S+랭크 제일건의 한계는 이쯤이다.
지금쯤 마력 포션을 마시든, 휴식을 취하든 해야 한다.
아니면 차원석이 별도로 장착된 특수한 총기를 사용하든가.
바로 그때.
파앙! 치이이익!
제일건이 품속에서 끄집어 낸 작은 유리병 하나를 내던졌다.
지면에 부딪힌 유리병은 순식간에 검은 연기를 뿜어내더니, 이내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수면 유도 혹은 마비를 유발하는 독가스겠지.’
레퍼토리야 뻔했다.
애초에 개변된 폐를 가지고 있는 내게 특수한 성분의 연기는 통하지 않는다.
독성이 진입 과정에서 원천 차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제일건은 나름 노림수로 유리병을 던진 듯했다.
“후!”
단숨에 녀석에게 도약하며, 검은 연기를 잔뜩 뒤집어썼다. 특유의 기분 나쁜 느낌이 목을 따라서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니……?”
“왜, 뭐가 잘못됐어?”
기습적으로 유리병을 던져 놓고 안전지대로 물러서려던 제일건은 내가 바로 따라붙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홱!
어찌 반응할 새도 없이 내게 그대로 멱살을 붙잡혔다.
그 바람에 내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서 마력 포션을 마시려 했던 녀석의 노림수가 무너졌다.
포션의 뚜껑을 열기도 전에.
내게 멱살을 잡힌 채로 공중에서 180도의 호선을 그리며,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기 때문이다.
까칭!
그 바람에 들고 있던 마력 포션의 유리병까지 산산조각이 났다.
색깔을 얼추 보아하니 좀처럼 구하기 힘든 상급 마력 포션, 그러니까 50% 회복이었나 보다.
다음 순간.
제일건의 위를 덮치듯이 엎어 버린 나는 그의 전신을 살폈다.
‘비싼 거 입고 있네.’
목에서부터 발목까지 빈틈없이 일체형으로 쭉 감싸고 있는 강화 슈트가 보였다.
확실히 각성자 대 각성자의 전투는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나만 고가의 장비를 갖추고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상대도 같은 조건이면 계산할 게 많아진다.
스윽-.
제일건이 손을 뒤로 쓱 돌리는 것을 보니, 아마도 그쯤에 비상용으로 쓸 단검이 있는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유일한 노출 부위인 얼굴을 내려치고 싶지만, 각도가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우적!
“끄아아아……!”
가장 빠르면서도 원초적인 방법을 썼다. 이를 이용해서 제일건의 코를 깨물어 버린 것이다.
보통 이가 아니다.
강철도 씹어 먹을 수 있는 개변된 ‘이’인 만큼, 코 전체가 이에 물려 송두리째 뽑혀 나왔다.
“으허어어! 으허어!”
“퉤!”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로 공격을 당한 탓인지 제일건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도 다른 부위가 아니라, 사람의 코를 깨물어 본 것은 회귀하고 이번이 처음이었다.
위에서 내려찍는 주먹 공격이라든가 다른 레퍼토리를 예상했던 것일까.
제일건은 뒤에서 꺼내려던 무기를 놓쳐 버렸고, 그것은 아주 치명적인 패착이 됐다.
“넌 이제 끝났어.”
나는 확신에 찬 사형 선고를 녀석에게 날렸다.
그리고.
퍼억! 퍼억! 퍼억! 퍼억!
그 호화로운 슈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얼굴만 집요하게 노린 맹공격이 시작됐다.
한 놈.
그리고 하나의 타격점만 집요하게 두들겨 패는 것. 그것은 내 전매특허이자 장기였다.
* * *
10분 후.
“일건이 이 자식, 왜 이쪽으로 움직이지 않는 거지?”
제일건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던 월광의 마스터 박형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점의 서쪽 루트에 별다른 조짐이 없으면, 북동쪽 루트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제7 블랙 타워.
박형산은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제일건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가 마침 전방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부하에게 물었다.
“상황은?”
“KSA 요원 셋을 사살하고, 다섯을 생포했습니다.”
“우리 피해는?”
“일곱을 잃었습니다. E랭크 이하의 녀석들입니다.”
“클클, 적절하게 잘 교환했군.”
부하의 목숨을 장기의 졸(卒)처럼 하찮게 여기는 것은 제일건이나 박형산이나 똑같았다.
KSA 요원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다.
지금은 이하성이 매우 강경하게 나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포로로 붙잡힌 요원의 가족들은 일찌감치 다른 루트를 통해,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있었다.
자기 핏줄이 죽을 수도 있는 판국에 범죄자와 협상은 없다느니 하는 KSA의 외침은 너무나도 무책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쪽에 무슨 일이 있나?”
“방금 확인된 첩보에 따르면, 한 무리의 요원들이 진입하다가 반격을 당하고 도망친 모양입니다.”
“형편없는 놈들, 말해 입이 아플 정도로 한심하군.”
박형산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KSA의 요원들은 여기저기서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형산이 여유로운 것은 하나같이 위험 지역만 골라서 들어오고 있어서였다.
그나마 신경이 쓰이는 곳은 양화 길드원들이 진입한 루트였다.
내부에서 정보가 샌 것인지, 그들은 정밀하게 요충지부터 점거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사실 KSA 요원들에게 당한 것보다 양화 길드에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상태이기는 했다.
“까짓것, 거점이야 버리면 그만이다.”
세상은 넓고, 블랙 존은 많다.
월광이 자신들의 주무대로 삼고 있는 레드 존, 블랙 존만 해도 전국에 십여 곳이 넘을 정도였다.
북대전 블랙 존은 ‘한탕 장사’를 하기 위해서 잠시 갖다 쓰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리고 모든 진행은 매우 순조로웠다. 몸값 높은 귀하신 분들을 저격해 줘야 하는 제일건이 부재중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이 새X…….”
답답한 마음이 들어, 박형산이 먼저 움직였다.
그가 가진 ‘블링크 아티팩트’는 공간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는 희귀한 아티팩트였다.
원거리에서 다양한 마법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재능을 가진 그에게 안성맞춤인 능력이기도 했다.
공간 이동, 원거리 견제.
정말 신이 내린 완벽한 조합이었다. 그것이 월광의 1인자인 그를 만든 것이기도 했고.
“전방 경계를 충실히 하고, 계속 정탐을 보내라.”
“예, 알겠습니다.”
전자 기기가 통하지 않는 지역이라 구식 방법을 쓸 수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악조건은 쌍방이 같으니까.
팟-. 파팟-.
말을 끝내자마자 박형산의 인영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빠르게 뛰어넘었다.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박형산의 모습이 다른 건물 옥상에서 뿅, 하고 나타나는 식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1km에 가까운 거리를 단숨에 이동했다.
블링크 아티팩트 자체에 저장된 마력을 쓴 것이므로, 박형산의 마력에는 한 톨의 변화도 없었다.
한데 바로 그때.
“이게 어떻게 된……?”
마지막 도착점에 이르러 발견한 핏자국.
그 위에 널브러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제일건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완전 묵사발이 된 상태였다.
더 무서운 사실은 입고 있는 강화 슈트가 놀라울 정도로 그 상태가 깨끗하다는 점이었다.
“더 많은 현상금이 걸린 귀하신 분이 몸소 나타나셨네?”
그때, 싸늘하게 깔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박형산의 귓가를 차갑게 파고들었다. 신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