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1
제1화
1 나는 멸망이 싫다
세상이 멸망하고 있다.
바깥을 내려다본 나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와 그런 몬스터를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과 차량이 얽혀 도로는 마비가 되었다.
뒤늦게 게이트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 소속 각성자들이 나타나긴 했지만, 그들이 처리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하급 몬스터들뿐이었다.
정부 소속 각성자들은 문자 그대로 몬스터들에게 갈려 나갔다. 무의미한 죽음이었다.
시민들을 지켜야 할 각성자들이 죽어 나가는 판에, 도시가 제대로 굴러갈 리 만무했다.
도로를 덮친 몬스터를 피해 바깥으로 뛰쳐나온 사람이 그대로 몬스터의 손아귀에 잡혀 두 동강 나는 장면을 보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살기 위해 도로로, 건물 바깥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이 고층까지는 들릴 리가 없는 사람들의 비명이 귓가를 맴돌았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자랑스러운 성공의 상징이었던 내 사무실의 뷰는 지금 멸망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특등석이 되어 있었다.
나는 창가에서 떨어져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 보아도 이 세상이 멸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현재 서울 시내 지역에 다발성 게이트 브레이크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긴급히 방공호로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인력을 파견하고 있으며…….」
벌써 서른 번째 반복되고 있는 방송이었지만, 나는 쉽사리 TV를 끄지 못했다. 이 소음이 사라지면 정말로 ‘멸망’이라는 것이 실감이 날 것 같아서.
젠장, 젠장, 젠장.
왜 일이 이렇게 되었지?
머릿속에서 떠오른 질문에 대한 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설록진이, 그리고 내가 이 세계를 구원할 구원자들을 짓밟아 버렸으니까.
지금 이 게이트 브레이크를 해결할 사람들이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치워 버렸으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설록진이 목줄을 채울 수 없는 개는 차라리 없애 버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왜 그랬냐고?
‘게이트가 이렇게 열릴 줄 몰랐으니까.’
몰랐으니까! 이 세상이 이렇게 멸망하게 될 줄!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불안전 게이트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게 보름 전. 안정적으로 게이트를 관리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래서 게이트 정복의 시대가 왔다고 떠들어 대던 세상이 무너지는 데에는 불과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망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이렇게 죽기 위해서 그동안 그렇게 개같이 구른 게 아니라고.
나는 휴대폰을 꼭 쥐고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직 나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의원님.”
설록진.
내가 모시고 있는 주인이자 세상이 이렇게 망가지게 된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남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도 설록진뿐이다.
[지금 어디지?]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 와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착한 목소리였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저 지금 여의도 사무실입니다.”
설마하니 나를 버리는 건 아니겠지? 신경 줄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잘됐군. 금고에 있는 상자 꺼내서 평창동으로 와.]
“금고에 있는 상자요?”
[응, 이집트에서 우리가 낙찰받은 그거.]
그 말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집트에서 낙찰받은 상자라면 하나뿐이다.
그곳에 걸려 있는 저주를 풀어내는 데만도 몇 명이 희생해야만 했지.
그렇게 힘들여 해주를 해 놓고도 설록진은 그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는 대신 자신의 금고에 처박아 두기만 했다. 그 일 이후에 내가 그 안에 든 것은 뭐냐고 물어도 도통 대답해 주지 않았지.
그런데 그 상자를 왜 갑자기?
“그 상자 안에 든 게 뭐기에…….”
[글쎄, 잘 풀리면 지금 이 상황을 뒤집을 완벽한 히든카드가 될 수도 있는 물건?]
그렇게 중요한 거면 평생 자기가 끼고 있지 무엇 하러 여의도 사무실에 둬서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에 나를 시켜 먹는 건가.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꾹 삼켰다.
[그걸 가지고 와.]
“평창동 저택으로 가면 되겠습니까?”
지금 이 상황에 한강을 건너 거기까지 가야 한다니.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내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설록진이 나를 달래는 말투로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헬기라도 보내 주고 싶은데 지금 서울의 상공은 이미 몬스터들의 차지가 되었다고 하니 내 차를 타고 오는 게 더 안전할 거야.]
설록진의 말대로 지금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에선 공중 몬스터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도로라고 해서 안전할까?
차라리 이곳에 있는 안전한 방공호에 틀어박혀 있는 편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많은 게 아닐까?
하지만 설록진이 명령했고, 나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평상시처럼 그에게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설록진의 명령은 나에게 그만큼이나 절대적이었다. 이곳에서 버티고 버텨 봤자, 설록진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겠지.
내게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설록진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금고 앞에 섰다. 지문 인식에 복잡한 비밀번호를 치고 나서야 두꺼운 금속 문이 열렸다.
사람 몇 명이 들어가도 될 만큼 널찍한 금고 안은 이미 여러 가지 물건들로 꽉 차 있었다.
그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는 삼지창이었다. ‘포세이돈의 트리아이나’라는 별명이 있는 이 창은 무려 서리 거인의 심장을 핵으로 삼은 신물이었다. 중국에서 관우의 환생으로 유명한 장웨런이 이걸 얻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무엇도 내줄 수 있다고 공언했던 건데.
이 창은 시작일 뿐이었다. 설록진의 무기 컬렉션은 금고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그 수가 많았다.
실제 헌터들의 손에 들어가 전선에서 쓰여야 할 S급 몬스터의 유해로 만들어진 무기들은 이곳에서 빛 하나 보지 못한 채로 썩고 있었다.
나는 그 무기들의 무덤을 지나 설록진이 말한 상자를 꺼내 들었다.
7성급의 해주술사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저주를 풀어낸 속칭 파라오의 유물. 고작해야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올 이 상자 안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중요한 건 설록진이 이걸 원한다는 거지.
묵직한 상자를 손에 든 나는 한숨을 쉬었다.
* * *
게이트 부산물로 쌓아 올린 이 여의도 사무실은 온 건물이 무너지는 난리 속에서도 버텨 주고 있었다.
나는 그 안전한 공간을 빠져나와 지옥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미친 짓이고말고.”
초조함에 나는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몸은 착실히 설록진의 명에 따라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자동차로 향했다.
이래서야. 입으로는 싫다더니 몸은 솔직하군, 하는 식의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평소와 달리 텅텅 비어 버린 지하 주차장을 바라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의 차를 몰아 바깥으로 나오는 도중에도 여전히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바깥으로 열리는 지하 주차장 입구에 다다른 순간 내 눈앞에 현실이라는 지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체를 본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중하급 몬스터로 분류된 땅사냥개들이 일제히 새로운 먹잇감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X이팔.”
나는 이를 악물고 액셀을 밟았다. 부아아앙, 최고급 마나석을 연료로 사용하는 마나 엔진이 불을 뿜고 내 몸을 태운 차는 날아가듯 가속했다.
━텅, 터엉. 텅.
유연하고도 단단한 차체는 땅사냥개의 몸을 간단히 튕겨 냈다. 나는 황급히 핸들을 꺾었다. 가까스로 벽에 처박는 것을 면한 자동차는 긴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반 바퀴를 돌았다.
“허억, 헉.”
내가 숨을 가다듬는 사이 땅사냥개들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는 땅사냥개들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나간다. 여기에서 썩 꺼져 줄게.
나는 눈을 꽉 감고 액셀을 밟았다.
━깨개갱!
차에 치인 땅사냥개들이 구슬프게 낑낑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재빠르게 여의도 사무실을 벗어났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차는 설록진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특별히 장인에게 의뢰해 제작한 커스텀 차량이었다. 이런 상황까지 예상한 건 아니지만, 몬스터들의 공격도 웬만큼은 막아 낼 정도로 튼튼했다.
그러니 믿어 봐야지. 어떻게든 평창동까지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내 사무실에서 바라봤던 것처럼 도로는 거의 마비 상황이었다. 여기저기 멈춰 선 자동차들과 그 차에서 나와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몸부림치다 목숨을 잃은 시체들이 엉켜 있어 도저히 차를 몰 수 있는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나와 마주쳤던 땅사냥개는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덩치가 커다란 몬스터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젠장, 젠장.
여기까지 나온 이상 조금도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나는 다른 차를 밀어 가면서 억지로 길을 냈다. 어찌나 액셀을 세게 밟았는지 다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내 난폭한 운전에 다른 자동차들은 마치 휴지가 구겨지듯이 구겨졌다. 운전자가 없었겠지? 없었을 거야. 나는 여기저기에 널린 시체들을 애써 무시하며 속도를 냈다.
쿠웅, 눈앞에 몬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핸들을 꽉 잡았다. 자주포 탄환도 버텨 낼 만큼 단단하게 제작된 자동차 앞 유리는 그 모든 충격을 꿋꿋하게 버텨 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칠 때마다 자동차 앞 유리에 핏자국이 번져 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나의 가슴은 미친 것처럼 두근거렸다.
내 등 뒤는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미친 짓.
「전방 200미터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없는 침착한 내비게이션의 목소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까지 오며 과속방지턱이나 다름없는 무언가들을 수십 번 짓밟으면서 왔으니까.
중간에 자신들도 구해 달라고 손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중에 어린애들과 함께인 가족들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먹히는 건 나다.’
내 손은 미친 듯이 떨렸다. 눈앞에서 이렇게 많은 죽음을 보고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내 정신은 단단하지 못했다.
‘S급 정신계 패시브를 달고 있으면 뭐 하나. 그게 붙어 있는 멘탈 자체가 이렇게 두부 같은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액셀을 밟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는 마포대교 앞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빌어먹을.”
마포대교 옆쪽에 생긴 거대한 게이트에서 나온 거대한 몬스터가 마포대교를 부숴 버린 거다. 중간에서 뚝 끊긴 마포대교를 본 순간 나는 죽음을 예감했다.
중간에 끊겨 버린 다리와 자동차로 꽉 막혀 버린 도로.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본 순간 ‘멸망’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쿡 하고 박혔다.
그래, 이런 게 멸망이다.
도망칠 길 하나 없이 숨통을 꽉 조이는 거.
꽈앙!
내 뒤에서 누군가 내가 탄 차를 받는 충격에 내 몸 또한 앞으로 쏠렸다.
“큭.”
나는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려 보았다. 내 차를 받은 자동차는 앞부분이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뒤차 앞 유리에 번진 핏자국을 바라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뒷사람의 명복을 빌기도 전에, 내 목숨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지금 났던 교통사고로 인해 주변의 몬스터들이 나를 인식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며 나는 기어를 뒤로 놓고 자동차를 뒤로 빼려고 해 봤지만, 끼어 버린 자동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
그리고 마포대교를 수수깡처럼 부숴 버린 ‘그놈’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용을 닮은 그 녀석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죽음을 예감했다. 쿵, 쿵.
그 녀석의 발에 짓밟힌 자동차들과 사람들이 푹 익은 과일처럼 뭉개져 나갔다. 나는 황급히 떨리는 손으로 옆 좌석에 두었던 상자를 열었다. 설록진이 말했던 상자. 이 안에 무언가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렇게 겨우 떨리는 손으로 연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은 앙크 모양의 거대한 금속 조각이었다.
그 금속 조각을 집어 든 나는 욕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뭔데, X발…….”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동차 위로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
그리고 온몸이 짓이겨지는 끔찍한 고통뿐이었다.
제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