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11
6 건방진 아티팩트 (1)
나는 각성자 중에서도 제법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신체 능력이 좋은 편이었다. 재능을 사용하지 않고 잰 신체 능력 평가에서 언제나 톱 텐 안에 들 정도였으니까.
내가 게이트에서 마나 필터 없이도 잘 버텼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헌터 시험을 볼 수 없었다.
왜냐고?
개 같게도 내게는 몬스터에게 유효한 대미지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방법을 찾아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재능이 안 되면 템빨!
하지만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들에게는 웬만한 템빨도 통하지 않는다.
일단 몬스터들에게는 현대의 전략 무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중세 시대에서나 쓸 법한 냉병기뿐.
그나마도 몬스터의 등급이 높아지면 단단한 외피 때문에 거의 타격이 없는 수준이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인류는 게이트 안에서 핵을 터트리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게이트를 정리했을 거다.
재능을 각성한 각성자가 없다면 몬스터를 사냥할 길은 없다.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누구라도 알 만한 진리다.
고로 거짓말이라는 허접한 재능을 가진 내가 공략할 수 있는 게이트는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게이트는 특별했다.
최초의 게이트 사건 이후 삼십 년. 전 세계는 온 힘을 다해 게이트를 막을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게이트가 생성되기 전에 미리 게이트를 감지하는 감지기 또한 그 기술 중 하나였다. 게이트 감지기의 성능은 날이 갈수록 좋아져 내가 죽었던 2040년대에는 무려 85%의 감지율을 보일 정도였다.
무려 85%의 게이트가 이 세상에 등장하기도 전 위치가 알려졌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도 공략되지 않은 게이트는 브레이크 현상을 일으키며 몬스터를 내뱉어 냈기에, 게이트가 묻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이 게이트가 특별한 거다.
우연히 어떤 등산객의 눈에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여기에 게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거든.
그리고 이 게이트가 알려진 직후,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는 발칵 뒤집히게 된다.
그 게이트 안에서 발견된 엄청난 아티팩트 때문이다.
“훅, 훅.”
비 오듯 흐른 땀을 훔치며 나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대체 여긴 어떻게 발견한 거야.”
이런 험지까지 오르는 대한민국 등산객들이란.
사실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각성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이제 거의 다 왔다.
나는 눈을 빛냈다.
게이트의 공략 이후 성지가 되어 버린 이곳에 몇 번이나 들렀던 만큼, 이 주변의 지리는 훤하다.
그때처럼 내가 잡고 내려갈 밧줄이나 계단 따위는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미리 가지고 온 말뚝을 바위와 바위 사이에 깊숙하게 박아 넣었다.
그곳에 밧줄을 걸고 나는 밑으로 내려갔다. 밧줄을 감아쥔 팔에 내 무게가 걸리며 팔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무협지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그 아래에 존재하는 동굴.
그렇다.
내가 가려는 게이트는 이 동굴의 안에 있었다.
어째서 등장 이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게이트가 발견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밑으로 내려간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동굴 아래로 디뎠다. 동굴 안은 깜깜했다.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손전등으로 앞을 비췄다.
그곳엔 과거에 들었던 대로 빛을 잃은 게이트가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빛을 뿌리며 ‘나 위험해요’ 하고 빛나고 있었을 공간의 틈은 지금 완전히 빛을 잃은 채로 굳어 있었다.
나는 손전등을 든 채로 그 게이트의 앞에 다가갔다. 오늘 여기에 온 건 저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서니까.
나는 게이트에 손을 뻗었다.
“허.”
닿는 순간 나를 다른 차원으로 보내 버리는 다른 게이트와는 달리, 이 게이트는 분명히 촉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만져진다는 뜻이다.
확실히 특이해.
그 굳어 있는 게이트에 내 마나를 불어넣자마자 게이트가 내 몸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찐득한 진흙 속에 몸을 담그는 기분이랄까.
나는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이윽고 내 몸은 게이트 안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게이트 안의 세상은 미노타우로스가 있었다던 미궁 라비린토스처럼 복잡한 구조의 미궁이었다.
사방이 꽉 막힌 미궁에는 제대로 된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손전등을 켜 앞을 확인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벽과 천장, 대리석에는 모두 섬세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이끼가 잔뜩 끼어 어떤 조각인지 한눈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제법 뛰어난 자가 새긴 조각인 듯 생동감이 대단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끝이 보이지 않게 길게 이어진 터널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저 어둠 끝에 존재하는 게 무엇이든 여기에서 제대로 살아 나갈 수 없을 것처럼 불길해 보인달까.
하지만 겁을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이런 무시무시한 분위기와는 달리 여기에는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거든.
몬스터가 있다면 나도 여기로 올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거다.
돈이 아주 조금 모자라서 김재호를 사지는 못했지만, 암시장에서 나는 유용한 것들을 많이 구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은 미리 위험을 감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술사의 힘을 담은 목걸이였다.
비록 유지 시간이 2시간밖에 되지 않는 일회용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이 미궁은 반쯤 파훼한 거나 다름없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등산객은 ‘행운’ 재능을 타고난 각성자였다. 말도 안 되는 행운의 연속으로 이곳을 발견하고 이곳의 함정을 모두 돌파했단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운이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울 수밖에.
나는 목걸이를 확인하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걸이에서 빛이 반짝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딸깍, 무언가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바로 내 머리가 있었던 곳으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흐.”
순간 식은땀이 주르륵 등골을 타고 흘렀다.
반사 신경에는 제법 자신이 있었던 나지만 조금 전 화살은 내 눈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각성자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사되는 화살이라.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이 복도에는 이런 함정이 몇 개나 설치되어 있을까?
나는 숨을 흡 들이쉬었다.
손전등을 입에 문 나는 목걸이를 눈앞에 들어 올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목걸이의 성능은 확실했다.
목걸이가 빛을 낼 때마다 나는 몸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던 화살이었다면, 두 번째는 갑자기 꺼지는 바닥이었고 세 번째는 몸을 노리고 쏟아진 독침이었다.
모두 이 목걸이의 경고가 없었다면 그대로 내 몸으로 쏟아졌을 암기들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나는 내 눈앞에서 튀어나오는 창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
가까스로 몸을 굴렸지만, 종아리에 창이 스쳤다. 화끈하는 감각과 함께 고통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종아리를 붙잡으며 복도 옆으로 빠졌다.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 나가 있었다.
“X, X발.”
대체 그놈은 운이 얼마나 좋았던 거냐.
이 함정을 모두 피해 가게!
어느새 내 몸은 땀에 흠뻑 젖었다.
목걸이가 도움이 되었지만, 여기까지 걸음을 옮기며 나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특히 살점이 한 움큼은 뜯긴 종아리가 제일 큰 문제였다.
“큭.”
나는 배낭에서 구급 키트를 꺼냈다. 이런 일을 대비해서 포션을 넉넉하게 챙겨 오긴 했지만, 이걸 쓰고 싶진 않았는데. 포션을 뿌리자마자 연기가 피어올랐다. 살을 지져서 막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를 악물어 봤지만, 입술 사이로 신음이 줄줄 샜다.
내 살을 파먹어 가듯 상처 부위를 지진 포션은 상한 살점을 천천히 재생하기 시작했다. 마치 구더기가 기어가듯 살결이 꿈틀거리며 천천히 피부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재생된 피부는 며칠간 조심히 다뤄 줘야 한다. 충격에 특히 약해져 있는 상태라 툭하면 찢기기 마련이니까.
나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과 30m 정도를 움직이는 데에 1시간이 꼬박 걸렸다.
다행이라면 이제 곧 숏컷, 그러니까 지름길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운이 좋은 등산객. 그 남자에게 들은 대로 옆을 바라보자 벽 쪽에 구멍이 하나 있었다.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곳을 어떻게 발견한 건지.
나는 그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이 안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이 게이트의 미궁을 완전히 스킵할 수 있다.
과연 ‘운’을 재능으로 각성한 사람다운 운발이라고 해야 하나.
구멍의 끝으로 기어 나오자 복도가 눈앞에 보였다. 그 복도를 따라 걸으면, 이 게이트의 심장에 닿게 된다.
거대한 공동의 가운데에는 천장에서부터 떨어지는 빛을 그대로 받는 상자가 보였다.
“오, 좋아.”
막 그 방 안으로 들어서려던 나는 목에서 빛을 내뿜는 목걸이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아, 안 돼?”
이쪽 방향이 안 된다면?
다른 쪽 방향으로 발을 디뎌 봤으나 역시 목걸이는 여태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빛을 내뿜었다.
게다가 목걸이가 신호를 주고 어김없이 튀어나왔던 다른 함정들과는 달리 이곳의 함정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입구에서 어떤 방향으로 진입해도 목걸이의 위협 신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방 자체가 나에게 거대한 위협이라는 뜻이다.
“말 안 한 게 있는 거야.”
나는 깨달았다. 등산객, 훗날 대한민국 각성자 순위 8위에 오른 그 개자식이 이 방에 대해서 숨긴 게 있음을.
문제는 곧 이 목걸이의 효과가 끝난다는 거다.
시간이 없어.
나는 입을 악물고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왔던 물건을 꺼냈다. 혹시 이럴 때를 대비해서 챙겨 온 물건들이 많았다. 나는 방독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
어릴 때 본 영화들에서는 꼭 상자를 여는 순간 나오는 독가스에 당하더라고. 두꺼운 방어구도 덧대 입었다. 더럽게 무겁지만, 순간의 충격을 이겨 내기엔 이만한 놈이 없지.
그리고 숨 두 번 내쉬기.
그리고 전진.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이 닫혔다. 퇴로가 막혔다.
그와 동시에 발밑에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X발.”
X 됐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나는 재빨리 상자를 열었다. 다행히 상자를 열 때는 아무런 함정도 발동하지 않았다. 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트리거였던 모양이다.
상자 안에는 타조알만 한 하얀색 알이 있었다. 이건 변함이 없었다.
이 알을 깨고서 그놈은 능력을 얻었다고 했지.
가진 건 운밖에 없었던 등산객을 대한민국 8위의 각성자로 만들어 놓았던 재능.
천변만화(千變萬化).
하나로 속성으로 고정된 다른 이들의 재능과 달리 그의 마나는 쉴 새 없이 변했다.
빌어먹을 놈의 멸망을 막으려면 내겐 꼭 그 능력이 필요했다.
나는 주먹을 쥐고 그 알을 깨부쉈다.
깨진 알껍데기가 내 손에 박히기 시작했다.
“으아악.”
유리 조각에 찔린 것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불타는 쇳조각이 살갗을 태우는 고통이 이어졌다. 피부를 뚫고 들어온 알껍데기는 내 살과 피를 씹어 삼키며 내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엄청난 고통에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물은 내 무릎까지 차올랐다.
“허, 억, 허억.”
알에 들어 있던 기운은 내 몸으로 완전히 흡수되었다.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여전히 물은 차오르고 있었으니까.
제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