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150
48 벨츠머츠로 사는 법 (5)
능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구속하는 구속 기구를 낀 채로, 제미니는 이를 갈았다.
“그 자식이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여기에 갇혔을 일은 없어!”
제미니는 자신들이 여기에 갇힌 이유는 박춘태, 그 개자식이 도망쳤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야, 그렇지.”
벽 뒤에서 조립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빌어먹을 감옥에 우리를 가둔 대가는 치르게 해 줘야지.”
각방을 쓰고 있었지만, 그들이 대화하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탑의 빌런 셋은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되었지만, 각범부는 이들의 처우를 두고 우왕좌왕했다. 다른 빌런과는 달리 위험 등급이 S급에 달하는 그들을 어떻게 제대로 가둬 둘지부터가 문제였다.
위험성을 생각할 때는 셋 모두 따로 격리해 두는 것이 옳으나, 문제는 탑의 빌런을 안전하게 가둬 둘 수 있는 감옥의 수가 많지 않다는 거였다.
그리하여 세 사람은 여전히 서로 소통하며 배신자를 찢어 죽일 구상을 할 수 있었다.
화장실을 핑계로 이곳에 하나뿐이던 감시자마저 내뺀 지금이 최적의 시기였다.
“다시 그놈을 보게 되면, 얼굴부터 지져 놓을 거야.”
“다리도 부숴야지. 다시는 감히 도망치지 못하게.”
“살려 두긴 할 건가 봐?”
“그래, 그런 능력을 지닌 놈이니까. 써먹어야지.”
조립가와 제미니의 말을 듣던 트릭스터는 사나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일단은 여기에서 나갈 방법이나 생각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아티팩트를 빼앗긴 그의 기분은 무척이나 저조했다.
흉터로 가득한 그의 얼굴을 확인한 제미니는 ‘생각했던 것보단 예쁜 얼굴’이라며 농담을 던졌으나 트릭스터의 분노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트릭스터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멎었다. 늘 빙글거리던 트릭스터가 이렇게까지 몰린 모습은 처음이다. 평상시라면 트릭스터를 죽도록 놀렸던 두 사람이지만, 지금은 곤란했다.
제미니가 툭툭 벽을 건드리며 말했다.
“우리끼리는 못 나가. 이 빌어먹을 목걸이가 목에 걸려 있는 한 아무것도 못 하잖아, 안 그래?”
8성급 이상이었더라면, 이런 장난은 통하지 않았을 텐데. 제미니는 이를 갈았다.
이 망할 놈의 목걸이는 온몸에 있는 마력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는데도 온몸의 힘이 빠졌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영감님이 우리를 구하러 올 거야.”
제미니의 눈동자가 타올랐다.
“우리가 여기에서 나가게 되면…….”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세게 벽을 긁은 제미니가 비죽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시리우스, 그 개 같은 놈들과 이 빌어먹을 각범부 놈들부터 몽땅 죽여 버릴 거야.”
* * *
시리우스의 부속 병원.
화려한 1인실 가운데에 앉아 있는 남자는 괴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끔찍한 화상 흉터로 온몸이 뒤덮인 남자의 이름은 한지무.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선제와 함께 시리우스를 이끌어 나갈 1군에 속할 거라고 점쳐지던 염동 능력자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지독한 절망에 빠져 있었다.
“끄, 으으.”
거울을 손에 쥔 한지무는 차마 자신의 얼굴을 마저 살피지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제미니의 마력이 태워 버린 얼굴은 최상급 포션으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화상 흉터로 엉망이 된 얼굴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씨X, 괴물이 따로 없잖아.”
얼굴뿐만이 문제가 아니다. 모근조차 전부 타 버려 대머리나 다름없게 됐다.
“하하! 하하하!”
광소를 터트린 남자, 한지무는 거울을 집어 던졌다. 조금 전 자신의 눈앞에 보인 끔찍한 괴물을 자신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한지무는 그동안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십분 활용했다. 시리우스라는 길드에, 잘생긴 얼굴. 잠재력이 높은 재능까지. 하늘은 자신을 축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지무 얼굴 봤어? 이야, 그거 어떡하냐?’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면 진짜…….’
‘솔직히 좀 고소하기도 하고? 그 자식 자기 얼굴 믿고 너무 나댔잖아. 내 여자 친구한테도 집적거렸다고?’
‘헉, 진짜냐?’
자신의 뒤에서 오고 가던 이야기를 들은 날, 한지무는 비참함에 몸을 떨었다. 자신을 감히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던 인간들이, 이제는 자신을 가십거리로 씹어 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은 끝이 나 버렸으니까.
재능은 온전하니 시리우스에게서 내쳐지지는 않겠지만, 여태까지 누려 왔던 화려한 삶은 전부 내버려야 했다.
유선제와는 달리, 말이다.
유선제.
그 이름을 떠올린 한지무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여태까지는 그놈이 자신을 무시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젠가 그놈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고고하신 유선제께서는 그 어떤 방송에도, 인터뷰에도 응하질 않았으니. 자신이 그의 인기를 따라잡을 날도 머지않을 거라고.
실제로 대중들은 자신을 더 좋아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날, 유선제와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제미니가 손에 쥔 마정석을 터트린 순간, 한지무는 그대로 불꽃을 뒤집어써 버렸다. 형편없이 바닥을 나뒹굴며 도움을 요청하는 자신의 눈에 들어온 건 고고하게 빛나고 있는 유선제였다.
파랗게 튀는 전기 사이에서 푸른 동공을 빛내고 있는 유선제를 본 순간, 한지무는 느꼈다.
다시는 저놈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고.
자신의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빌런도 원망스러웠으나, 그 상황에서도 그을음 하나 묻지 않았던 유선제의 고고한 얼굴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망가진 만큼, 네 녀석도 조금은 망가져 버리면 좋을 텐데.”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
한지무의 가슴에는 그날 묻은 검은 그을음이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기지로 돌아온 나는 금 박사가 준 아티팩트를 한서현과 김재호에게 나눠 주었다. 차송진은 슬쩍 우리의 눈치를 보더니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긴, 여기에 차송진의 것은 없으니까. 나는 애써 신경을 껐다.
새로운 유니폼은 반응이 좋았지만, 문제는 가면이었다.
차례대로 꺼낸 세 개의 가면에 한서현이 외쳤다.
“왜, 왜 가면이 세 개나 되죠?”
“그야, 너랑 나랑 재호가 세 명이니까?”
“절대 싫어!”
“아이, 그러지 말고.”
나는 한서현을 열심히 꼬셨다.
이게 기능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 나는 금 박사가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던 기능을 전부 알려 주었다. 무려 맥가이버 칼도 있다! 가면 옆에서 튀어나오는 맥가이버 칼을 본 한서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맥가이버 칼이 달려서 어쩌라고요!”
━내가 봤을 때, 그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셀링 포인트였다.
‘그러네요.’
거기에 문제는 또 있었다.
“게다가 해골이라니.”
한서현은 해골 무늬가 그려진 가면을 보며 치를 떨었다.
“해골 좋아하잖아, 너.”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그야, 예쁜 해골을 보면 ‘저걸 스켈레톤으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제 얼굴에 뒤집어쓰고 싶은 거랑은 다르다고요!”
해골을 볼 때마다 스켈레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냐.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스켈레톤 계약 중독 증상이로군.
“어차피 얼굴도 팔렸는데 굳이 이런 걸 쓸 필요는 없잖아요.”
“반대로 얼굴이 팔렸으니까 쓰고 다녀야지. 그동안 내가 준 걸 많이 쓰고 다녔잖냐. 새삼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젠장, 이성적으로는 설득할 수 없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추한 방법으로 갈 수밖에.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너랑 가면을 같이 쓰고 활동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았는데. 됐다, 나랑 어울려 달라고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
━추하구나…….
추하지만, 확실한 방법 아닌가. 죄책감을 자극한 효과는 굉장했다!
“알겠어요! 쓰면 될 거 아니에요?”
나는 잠자코 가면을 받아 가는 한서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진작 쓰면 좀 좋나!
모양이 좀 그렇긴 해도 기능이 확실히 좋긴 하니까 말이지. 아무리 이미 털린 신원이라도 맨얼굴로 돌아다니는 건 좀 그렇기도 하고.
가면을 건넨 나는 상자 밑에 있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서현아, 이것 좀…….”
“그 사람한테 전해 주면 되는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표정을 읽은 한서현은 푹 한숨을 쉬었다.
“직접 만나서 설득하는 것도 실패했는데, 전화기로 얘기하는 게 과연 소용이 있을까요?”
“끄응.”
그 말에는 할 말이 없다. 나도, 한서현도 예상하고 있듯 정호산은 쉽사리 고집을 꺾지 않을 거다.
놈의 고집을 꺾는 방법은 단 하나.
내가 벨츠머츠를 포기하고 지금 하는 일을 모두 때려치우는 것.
하지만 그랬다간 세상이 망한다고, 이 친구야.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일단 오해는 풀어야 할 거 아니냐. 그놈은 지금 내가 납치된 상태라고 알고 있다고.”
그 말에 한서현의 어깨가 떨렸다. 자기가 잘못한 줄은 아는 모양이다.
“알았어요, 일단은 전해 줄게요.”
“그래.”
“제발 그쪽이 보스 말을 들었으면 좋겠네요.”
“그래, 부디.”
* * *
“여기에도 이상은 없네요.”
지난 일주일간 도채희와 정호산은 수십 군데의 게이트 생성지를 찾았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다. 게이트는 보고된 대로 모두 소멸한 뒤였으니까.
“하긴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거였다면, 여태까지 불법 게이트 사건이 드러나지 않았을 리 없겠죠.”
“예.”
어딘가 시원찮은 정호산의 대답에 도채희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정호산을 본 도채희가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 하길래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요?”
“미안합니다.”
“미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요?”
제게 그렇게 묻는 도채희에게 정호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벨츠머츠 말입니다. 처음 도채희 경위님께서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쫓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요즘에는 아예 손을 떼신 것 같아서요.”
예상치 못한 그 말에 도채희는 눈을 깜빡거렸다. 벨츠머츠라. 하긴 최근에도 벨츠머츠에 대해서 물었지.
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캐묻는 대신, 도채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번 일을 겪으며 벨츠머츠의 사상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게 크겠죠. 당장은 내부의 적이 더 큰 적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렇게 말한 도채희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물론 제 눈앞에 있으면 무조건 잡을 테지만요! 그래도 그쪽은 일종의 자경단이니까요.”
“자경단이요.”
“예. 김성득 의원 살인 사건도 그렇고. 옥션 사건을 제외한 그들의 메시지는 늘 확실했어요. 나쁜 놈들을 잡는 나쁜 놈이 되겠다, 그런 거죠.”
그렇게 말한 도채희가 볼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물론 벨츠머츠의 방법을 옹호하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하지만…….”
조금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은 벨츠머츠, 그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에요. 어차피 제가 아니더라도 각범부에서 전력으로 찾을 테니까요.”
“그리 나쁜 놈들은 아니다, 인가요.”
“경찰로서 해서는 안 될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번에 그 일 아주 조금은 위안이 되더라구요. 물론, 다시 그놈들에게 의지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요. 제 목표가 벨츠머츠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세상을 만드는 거거든요.”
자경단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범죄자다. 그들에게 의지하는 마음은 위험하다는 걸 도채희는 알고 있었다.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으니, 왜 벨츠머츠에 관심이 생겼는지는 묻지 않을게요.”
도채희의 배려에 정호산은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던 도채희는 힘을 내서 외쳤다.
“그럼 이제 양양으로 가 볼까요. 오늘은 거기만 들르면 끝이에요.”
막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 내비게이션을 켜려고 할 때쯤. 도채희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 전 팀원한테서 온 전화네요.”
김용원은 그날 이후 도채희의 팀원이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각범부의 소식을 전해 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또 별거 아닌 말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뒷말을 들었을 때였다.
“예?”
이어지는 말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그, 그게 진짜예요? 설마요.”
창백해진 얼굴로 전화를 받은 도채희를 살피며 정호산은 안전벨트만 만지작거렸다.
‘뭔가 심각한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전화를 끊고 나서도 도채희는 여전히 얼이 빠져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공항에 벨츠머츠의 피해자가 입국했다네요.”
“예?”
“그리고 그 피해자라는 사람이요, 겨우 열네 살 먹은 소녀래요. 벨츠머츠가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고…….”
조금 전까지 ‘하하, 벨츠머츠요? 그리 나쁜 놈이 아닐지도요?’라고 말한 도채희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제15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