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162
51 미국, 기회의 땅 (1)
게이트가 열리고 세상이 급변했지만, 여전히 세계의 패권을 잡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에게는 일반적인 병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게 상식이었지만, 몬스터를 가공해 만든 병기는 통했다.
그리고 그 병기를 가장 많이 생산하며,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거기에 미국은 세계 제일의 헌터 길드를 보유하고 있었고, 가장 많은 각성자를 보유한 나라 중 하나였으며, 세계 제일의 각성자 테이카 쿠퍼의 나라였다.
이렇게만 말하면, 우리 같은 외부인이 낄 자리가 없어 보이지만…….
어제도 말했듯, 미국의 영토는 무척이나 넓다. 그리고 게이트는 그 넓은 영토에 흩뿌려지듯 생기지.
“그래서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거야.”
미국은 여러 개의 주로 되어 있는 만큼 주마다 상황이 천차만별이었다.
뉴욕이나 워싱턴이 위치한 동부 쪽은 제법 게이트의 등장 자체도 적었던 데다가 인구가 많이 몰려 있어 금세 상황이 진정되었지만, 중부와 서부의 상황은 달랐다.
북태평양과 마주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서부 도시들은 해양 몬스터들의 습격과 쓰나미로 엉망이 되었고, 가장 많은 게이트가 열렸던 중부 지역은 연쇄된 브레이크 현상으로 인해 마치 호주처럼 몬스터들의 땅이 돼 버렸다.
하지만 그 후 대처는 달랐다.
아웃백이라고 부를 만큼 사막화된 땅이 많은 호주와는 달리 미국의 중부 지역은 워낙 비옥한지라, 되찾을 가치가 충분했다.
미국은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여 중부 지역을 수복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입국 절차는 제법 까다로운 편이었으나, 용병대 한정으로 열리는 전형을 이용하면 손쉽게 입국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미국이 되찾지 못한 땅은 유타주, 콜로라도주, 뉴멕시코주.
“우리의 목적지는 그중 유타주야.”
설명하는데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힐끔대는 차송진에게 내가 물었다.
“왜?”
“거기에 나를 버리고 올 생각입, 입니까?”
“버리고 오기는.”
그 생각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말했잖아. 괜찮은 곳을 찾기 전까지는 함부로 안 보낸다고. 게다가 뭘 할 줄 알아야 보내지. 아직 플랭크 1분도 못하지 않아?”
내 말에 차송진은 잠자코 입을 닫았다. 레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일단 저 몸뚱이만큼은 너보다 3살인가 연상 아니냐?
‘정신적인 나이는 제가 훨씬 많잖습니까. 그리고 쟤 하는 꼴을 봐요. 절대로 연상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요.’
어쨌거나 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몬스터를 상대하고, 게이트를 몇 개 클리어하고 올 거야.”
“몇 개요?”
“등급이 낮은 걸로 들어갈 생각이거든.”
이번에 나는 뭐 대단한 게이트를 처리하려는 게 아니다. 애초에 적당히 꾸며 낸 헌터 신분증으로는 고위급 게이트에 들어갈 수 없기도 하고, 대충 경험을 쌓는다는 게 이번의 목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일의 포인트는 게이트 공략이 아니거든.
“일찍 일을 끝내고 라스베이거스에도 들를 생각이라.”
“라스베이거스요? 도박이라도 할 생각이에요?”
“뭐, 비슷해.”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 * *
우리 넷은 모두 가면을 뒤집어쓰고 위조 신분증을 이용해 비행기를 탔다. 차송진은 다리를 달달 떨어 댔지만, 우리 셋은 아주 차분했다.
가면을 처음 쓴 김재호는 영 불편하다는 듯이 몸을 꿈틀거렸지만, 다행히 얌전히 있었다.
우리는 차례대로 자리에 앉았다. 돈을 아낀다고 이코노미석으로 샀더니, 미어터질 것 같았다. 레이는 돈도 많이 벌었으면서 왜 좀생이처럼 돈을 아끼냐고 했지만, 그건 이 이코노미석의 가격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이 좁아터진 좌석도 인당 3천만 원이라고요!’
왜냐. 예전과는 달리, 호위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여객기 옆으로 두 대의 전투기가 떴다. 저 두 대의 전투기에는 수억 원어치의 대몬스터용 미사일이 실려 있다. 오래 날 수 있게 개조된 전투기는 우리가 예전에 보던 것보다 훨씬 둔탁하게 생겼다.
차송진이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정말 비행 몬스터가 뜨면 저걸로 막을 수 있어요?”
“뭐, 아마도? 사실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아. 미사일은 겁을 줘서 쫓아내는 역할밖에 못 하거든.”
“예에? 그럼 큰,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당신을 데리고 온 거야.”
차송진의 얼굴이 파래졌다.
“이렇게 높은 데서는 능력을 써 본 적이 없는걸요.”
“아, 미리 훈련 좀 해 둘 걸 그랬다.”
언제 어디서든, 무슨 상황에서든 능력을 쓸 수 있게. 내 말을 들은 차송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걱정하지 마. 비행 몬스터가 나타날 확률은 무척이나 낮으니까.”
“그, 그래도 제로는 아니잖아요.”
“기내식 먹을 때 깨워 줘요.”
한서현은 그 말을 남긴 채 귀마개를 귀에 끼웠다. 안대까지 야무지게 눈에 꼈다. 그 태연한 모습을 본 차송진은 말을 잃어버렸다.
“당신도 좀 편하게 쉬어.”
“모,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른다면서요! 어떻게 자요!”
“뭐, 몬스터가 나오면 자고 있어도 알게 될걸?”
“전혀 위로가 안 돼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눈을 감았다. 차송진이 무어라 꿍얼거리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미국에 도착하려면 아직 10시간도 넘게 남았고,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었으니까.
* * *
우리의 목적지는 유타주였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로스앤젤레스 공항이었다. 일반적인 여객기로 갈 수 있는 공항은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두 군데뿐이니까.
오늘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대충 머물고 내일 유타주로 가는 차편을 구해 갈 생각이다.
사람들은 모두 피곤한 얼굴로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으러 내려갔다.
차송진은 결국 한숨도 자지 못했다.
“으으, 죽을 것 같아요.”
“그러게 쉬어 두라니까.”
미련하기는. 나는 차송진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입국 심사나 제대로 통과할지 모르겠다.
나는 짐을 찾으러 가며 간단히 우리 용병대의 정보를 다시 한번 알려 주었다.
“우리 용병대의 이름은 골든데이다.”
“진심이에요?”
“대충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만들었다.”
내 말에 한서현이 곧바로 중얼거렸다.
“구려.”
“어차피 일회용으로 쓸 건데 멋진 이름을 지어 봤자 쓸모가 없잖냐.”
사실 저번 호주에서 쓴 ‘아크’라는 이름을 또 쓰고 싶었지만, 이미 수배를 당해 버려서 어쩔 수 없었다.
크윽, 그 이름이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을 구하는 방주가 되겠다는, 아주 멋진 소망을 담은 이름이었는데.
그때 난 깨달았다. 우리 용병대에 멋진 이름 같은 건 필요 없다! 왜냐? 언제 어디에서 신분이 탄로 날지 모르니까!
이번에도 우리 용병대의 평균 등급은 5성급으로 등록했다.
저번처럼 C급 게이트나, 운이 좋다면 B급까지 신청할 수 있는 등급이었다.
B급 게이트에 들어가려면 다른 용병대와 협업해야 할 테니까, 웬만하면 C급 게이트나 처리할 생각이지만.
다행히 입국 심사는 간단하게 끝났다.
왜냐면, 이건 1차 거름망이거든. 미국에서 활동하려면 용병대라고 하더라도 에이전시를 끼어야만 했다.
사실상 미국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에 대한 감시를 맡은 건 에이전시 쪽이었다.
서류 몇 장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하는 입국 심사보다는 가까이에서 헌터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에이전시의 눈을 믿는다는 의미다.
미리 한국에서 에이전시와 계약하지 않고 온 우리는 공항에서 국가가 지정해 주는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어야만 했다.
[솔트브레드 에이전시에서 나온 노먼 베이런입니다.]
자신을 노먼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180cm 정도 되는 큰 키에 밝은 금발을 가진 30대 남자였다.
사무직치고는 제법 좋은 몸을 가진 걸로 봐서 현장까지 동행하는 일을 겸하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은 누군데요.”
“에이전시. 친절하게 대해. 저 사람이 우리를 쫓아내야 한다고 말하면 언제라도 그대로 짐 싸서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네.”
그나저나 에이전시 이름이 소금빵이라니, 구리군.
━돈을 벌고 싶다고 골든데이라는 이름의 용병대를 만든 네가 할 말이냐?
‘크흠.’
어쨌거나 이름이 저렇게 평범한 걸로 봐서 그리 높은 급의 에이전시는 아닌 모양이었다.
눈앞에 있는 노먼의 양복은 깔끔하긴 했지만, 소매 끝이 닳아 있었고 손목에 찬 시계 또한 이미 유행이 지난 디자인이었다.
하긴, 겨우 C급 용병대인 우리에게 좋은 에이전시가 붙어도 이상하긴 하지.
노먼은 차분히 계약 조건을 말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의 자질구레한 일은 모두 에이전시가 맡는다. 자질구레한 일은 숙소를 구하는 것부터, 식사, 이동 등등의 잡일 제반을 일컫는다. 우리가 게이트 공략에만 집중할 수 있게 일종의 매니지먼트를 해 주겠다는 거다.
그 대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에이전시에서 제안하는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 애초에 에이전시를 끼지 않는 한 게이트 안에 들어가는 것도 어려우니 딱히 부당한 조건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게이트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에이전시에서 처리하게 해 주는 것. 참고로 이 모든 매니징에 대한 대가는 모든 수익의 40%였다.
중간에 후려치는 부분이 많아 정상적인 수수료로 계산하면 60% 정도 되려나. 폭리였지만, 귀찮은 일들을 다 처리해 준다고 하면 납득이 가는 정도였다.
다만 수정해야 할 계약 사항이 하나 있었다.
[몬스터 사체 일부는 저희가 챙기고 싶은데요.]
게이트에서 나오는 수익 대부분을 몬스터가 차지하는 만큼 몬스터의 사체는 전부 에이전시에 넘기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체가 필요했다.
[음, 그럼 수수료를 조금 조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뭐, 편한 대로 하시죠.]
돈은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후,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1년 전까지만 해도 통장에 30만 원도 없었던 것 같은데, 감개무량하다.
‘역시 호구를 잘 물어야…….’
금 박사 고마워요! 나는 이 자리에 없는 우리의 조력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에이전시 계약을 끝내고, 노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물었다.
[오늘 이곳에서 머물고 가실 생각이라면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바로 유타로 출발하실 겁니까?]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출발하죠.]
[예, 그럼 숙소로 가는 동안에 간단한 주의 사항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노먼이 말한 주의 사항은 문자 그대로 간단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우리의 행동 모두를 보고하라는 거다. 어딜 가든, 어디에 머물든, 모조리.
게이트 안이 아닌 곳에서는 계속 노먼과 동행해야 했다.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면 바로 연락하는 것도 필수였다.
그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규칙은 간단하지만, 어겼을 때의 대가는 혹독하다.
미국은 범죄를 저지른 각성자들을 가차 없이 처벌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알겠습니다. 명심하도록 하죠.]
“여, 영어를 잘하시네요.”
차송진의 말에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외국인이랑 단둘이 한 달 정도 방에 갇혀 있으면 엄청 빨리 늘어.”
“저, 저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요.”
“외국어가 늘려면 경험이 제일 중요하더라고. 여기 현지인도 있으니까 간단한 회화는 연습해 보는 게 어때?”
내 말에 차송진의 어깨가 떨렸다.
“저, 절대 말 안 걸 거예요!”
원어민이 돌아다니는 이런 기회가 흔한 줄 아나.
“싫으면 말아라.”
아쉽다. 외국어는 자신감인데.
제16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