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168
52 잘못된 정류장 (2)
에드워드 ‘알바트로스’ 시헬리스, 줄여서 ‘에디’ 혹은, 철새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남자는 열일곱의 나이에 용병 일을 시작해 벌써 칠 년 동안 용병계에서 구르고 구른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겨우 스물셋인 그가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용병이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에드워드 본인의 능력.
에디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에너지를 분해, 흡수, 방출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는데, 이 재능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에 특히 유용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몬스터의 마법은 물론이고, 물리적인 에너지까지. 모두 분해해서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아니,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상이다. 에디는 자신이 분해한 에너지를 마력으로 바꿀 수 있었고, 그렇게 흡수한 마력을 자신의 힘으로 방출해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었으니까.
조합을 가리지도 않고, 아니, 모든 공격에 있어 우위를 가지는 엄청난 능력이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공방이 완벽한 그는 혼자서도 만능 해결사로 활동할 수 있었다.
적은 인원으로 언제 어떤 일을 맞이해야 할지 모르는 용병대에게 이보다 더 좋은 능력자는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에디는 뜨는 해와 저무는 해를 기가 막히게 골라낼 수 있는 좋은 눈을 가졌다.
에디가 머무는 용병대는 미약하게 시작할지라도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에디가 떠난 용병대는 어떠한 이유로든 몰락했다. 에디를 원망하는 사람도 생겼지만, 에디는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용병대는 가족도 뭣도 아니다. 서로 간 이득을 위해 계약을 맺은 집단일 뿐. 곧 망할 용병대에게 보일 충성심 같은 건 없었다.
용병대를 몇 번이나 갈아타는 에디를 보며, 사람들은 그에게 철새라는 멸칭을 붙여 주었다.
그 별명을 들은 에디는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자신은 철새가 아니라 알바트로스라고. 철새처럼 무언가를 피해 도망친 것이 아니라, 이 넓은 공간을 모두 제 무대로 두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를 알바트로스라고 부르는 사람은 몇 없었다. 에디의 앞에서는 그를 알바트로스라고 불러 주는 사람들도, 그의 뒤에서는 늘 철새라는 멸칭으로 그를 불러 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 ‘알바트로스’ 시헬리스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용병대에서 활약하는 에이전시에게 에디는 경계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누구보다 영입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한다는 건, 적어도 그가 떠나기 전까지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을 거란 보증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수많은 악명을 달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에디는, 에디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에디가 이 구석진 곳에 있는 C급 용병대의 컨테이너에 찾아온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전혀 그런 걸 모르는 기색이었지만.
[무슨 일입니까?]
남자의 질문에 답할 생각을 하지 않고 에디는 천천히 남자를 훑어보았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동양인이었다. 특색이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남자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니까.]
[도대체 이게 뭐람.]
[뭐, 이 새끼야?]
에디의 말에 남자는 곧바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반응에도 에디는 꿋꿋하게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에디에게는 사람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눈이 있었고 그 눈에 비친 남자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그 잘난 에디 알바트로스 시헬리스가 순간 할 말을 완벽히 잃어버렸을 정도로.
* * *
“퉤.”
나는 재수 없는 놈의 뒷모습을 보며 침을 내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주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는 가래까지 싹싹 모아서 내뱉고 싶었는데, 우리 트레일러 앞이라서 겨우 참았다.
“서현아, 소금 있냐?”
“소금은 없고 쌈장은 좀 남았는데…….”
“쌈장은 좀 그래.”
그건 뿌리면 안 될 것 같아. 응, 비주얼이 좀. 내 중얼거림을 들은 한서현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웬 재수 없는 놈이 와서 소독용으로 좀 뿌릴까 했지.”
처음 문을 열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사실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녀석 생긴 게 꽤나 괜찮았거든.
잘 구워진 빵 껍질 같은 갈색 피부에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가 순간 시선을 빼앗는 미남이었다.
아무렇게나 염색한 듯 얼룩덜룩한 붉은색 머리카락도 그 얼굴에는 해가 되지 않았다. 그 잘생긴 얼굴로 내뱉는 소리가 그딴 것만 아니었더라도 조금은 친절하게 대해 줬을 텐데 말이야.
도대체 ‘이게’ 뭐람. 녀석은 내게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 ‘Who’도 아니고 ‘What’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사람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건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지.
‘인종차별이 분명하다고요, 그거.’
거기에 내 항의에도 녀석은 아랑곳없이 뻔히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대단한 구경거리라도 된다는 듯이.
결국 내 욕지거리에 질린 듯 사라지긴 했다만, 영 찜찜했다.
“확실하게 보복해야 했는데.”
이 벽 안에서는 모든 분쟁이 금지된다는 규칙 때문에 두들겨 패지 못한 게 한이었다.
우리가 무슨 서커스 동물인 줄 아나.
“뒤를 캐 볼까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다시 여기 근처를 어슬렁거리면 알려 줘.”
“제가 알아서 처리할까요?”
“아니! 꼭 알려 줘라, 꼭!”
한서현의 입에서 나온 알아서 처리한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건 없었다.
“꼭 내가 처리하게 해 줘!”
나는 몇 번이고 한서현에게 그렇게 간절히 빌었다.
* * *
‘이상한 남자.’
그런 기운은 생전 처음 봤다.
엮이지 않는 게 좋겠어.
에디는 그렇게 판단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자신을 향해 무어라 욕을 내뱉는 남자의 말을 들었지만, 애써 무시한 것도 그런 무시무시한 기운을 가진 이와 더는 엮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아깝게 됐네, 괜찮은 루키가 나타났나 했는데.’
그래도 그런 놈이랑 엮이는 건 사양이다. 되도록 빨리 여기서 사라지는 게 낫겠어. 혹시라도 그 불길한 기운이 옮으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에디가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을 때였다.
“거기, 잠시 기다려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에디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의 정체를 확인한 에디는 곧바로 얼굴을 구겼다.
“그쪽 제안에는 관심 없습니다.”
딱 잘라 말하는 에디의 말에 오승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흐음, 어떤 제안일지, 이야기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요.”
“뭐가 됐든, 관심 없어요.”
에디의 말에 오승우의 얼굴에는 황당함마저 감돌았다. 하긴 그를 이렇게 취급하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겠지. 그가 맡아 관리했던 헌터들은 늘 최고라는 이름을 달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니까.
그는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의 에이전시였다. 에디가 그에게 관심이 없을 뿐.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까?”
“예에.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
“내가 직접 당신의 에이전시가 돼 줄 거라고 해도?”
그 말에 에디의 발걸음이 멈췄다. 뒤를 돌아 오승우의 얼굴을 살핀 에디가 비죽 심통맞은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7년 전에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에디의 말에 오승우는 놀란 듯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잠시의 침묵 끝에 눈을 찌푸린 오승우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날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당신은 여러모로 잊기 힘든 사람이니까.”
“하하,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는걸. 이곳 사람들은 영 동양인을 구분하지 못하더라고.”
“나도 당신 얼굴밖에는 몰라.”
그렇게 말한 에디가 서슬 퍼런 얼굴로 덧붙였다.
“지난 7년 동안 당신을 볼 때마다, 나를 버릴 때의 당신을 곱씹고 또 곱씹었거든.”
“에디.”
“당신에게 기회를 줬던 ‘에디’는 이제 없어. 그러니 과거의 나를 데리고 와서 계약할 생각이 아니라면, 썩 꺼지지 그래.”
에디의 말에 오승우는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너무 어렸어. 그때, 우리 회사에서는 미성년자와 계약하는 걸 금지하고 있었고…….”
“당신이 테이카와 계약했을 때에 그 녀석은 몇 살이었더라. 열다섯? 당신이 나를 내버렸을 때 나는 열일곱 살이었어.”
“테이카는…….”
“알아, 테이카는 특별하다는 거지.”
절대로 바꿀 수 없다던 회사 규칙까지 바꿀 정도로.
“그래서 다른 에이전시를 소개해 줬잖아.”
“그 사람은 당신처럼 사람 보는 눈이 좋지 못했거든. 나더러 너 같은 무능력자를 받아 줄 수는 없다고 하더군.”
혼자서도 빛나는 테이카와는 달리 에디는 혼자 있을 때는 아무런 힘도 내지 못했다. 곧 자신의 재능도 제법 괜찮다는 걸 증명하긴 했지만, 그때엔 이미 늦었다.
오승우가 이미 테이카 쿠퍼를 찾은 다음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을 찾았지.”
오승우가 소개해 준 에이전시로 향하는 대신, 에디는 용병대의 문을 두드렸다. 자신을 고기 방패로 삼을 생각으로 데리고 갔던 용병대 대장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였고 그다음부터는 모두가 알고 있는 ‘에디’의 시대였다.
“난 이미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어. 굳이 당신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거야.”
에디의 말에 오승우가 말했다.
“개인적인 감정은 덮어 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너도 언제까지 그렇게 용병대를 갈아 치우며 살 순 없다고.”
그 말에 에디는 코웃음을 쳤다. 누구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됐는데.
“아아, 그래서 그 대단하신 미스터 오하고 계약을 해라? 그래서 뭐, 테이카 쿠퍼 그 녀석 밑이라도 닦아 주라고? 그 녀석한테 그런 게 필요하기나 한가?”
계속해서 테이카 쿠퍼를 붙잡고 늘어지는 그 말에 오승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7년이나 지난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에디의 원망은 제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
“테이카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나는 여기에 널 위해서 온 거야.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너도 이제 슬슬 정착이라는 걸 해야 하지 않겠어? 언제까지 그렇게 떠돌아다닐 건데?”
“하! 누가 들으면 날 위해서 하는 소리처럼 들리겠어. 그렇게나 실적이 부족해?”
그렇게 쏘아붙인 에디였지만, 머리로는 오승우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확실히 요즘 내 평판이 예전만 못하긴 하지.’
용병대를 하도 갈아탔더니 이젠 에디를 받아 줄 용병대가 없다시피 했다. 철새, 아무리 잘해 줘도 곧 떠날 놈인 데다가 에디가 떠날 때마다 용병대가 박살이 났으니까.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C급 용병대를 구경하러 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게이트를 공략하는 중이기에, 무언가 있는 놈들이라는 감이 와서.
하지만 그 남자와 더는 엮이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그 남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받아 줄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길드의 목줄을 매느니, 자유로운 들개로 살다 죽겠어.”
자존심을 세우는 에디를 보며 오승우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좋아,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그럴 일 없어.”
제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에디를 보며 오승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 * *
짧은 휴식을 마치고, 나는 노먼에게 연락해 게이트 연결을 부탁했다.
노먼은 모르고 있지만, 이번이 우리가 유타주에서 공략할 마지막 게이트였다.
“다들 원하던 건 많이 얻었잖아?”
일곱 개의 게이트를 처리하면서 김재호와 한서현은 충분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확실히 나와 맞부딪치는 것보다는 수준이 떨어져도 실전이 나았다. 위험한 기술도 시험해 볼 수 있었으니까 말이지.
덕분에 차송진의 얼굴이 퍼렇게 된 적이 많았지만, 내 필사적인 시야 방해술로 인해 차송진도 꽤 견딜 만했다.
몬스터의 사체도 쏠쏠히 빼돌렸다.
흔적을 자세히 조사한다면 몬스터의 사체 수가 많이 빈다는 걸 알 수 있겠지만, 제아무리 대단한 조사관이라도 우리가 몬스터의 사체를 언데드화해서 빼돌렸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
혹여 이상한 점을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골든데이’는 사라진 다음일 테니 상관없다.
오늘 게이트를 마지막으로 라스베이거스에 들러 한탕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내 계획이었다.
평상시처럼 우리를 게이트 앞에 내려놓은 노먼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뒤, 우리는 초록색 게이트를 통과했다.
여느 때처럼, 게이트 안쪽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평범한 숲 지형에, 날씨는 맑음.
평상시처럼 한서현은 모래를 풀었고 나는 한서현이 정보를 알려 주길 기다렸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제일 먼저 깨달은 사람은 한서현이었다.
“여긴,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뭐가 어떻게 이상한데.”라고 되물었다.
“글쎄요,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뭔가가 아주 이상해요.”
그리고 그게 그날 내가 들었던 한서현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러니까 대체 뭐가.’
그렇게 물으려 내가 입을 열었을 때, 내 옆에서 무언가 번뜩이며 날아들었다.
제16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