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13
59 잘하거든요, 이런 거 (1)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서현이 말했다.
“그 사람을 찾지는 못했지만, 카지노 지하에 수상쩍은 공간이 있더라고요.”
“수상쩍은 공간이라니?”
보통 호텔 건물의 지하에는 건물의 운영에 필요한 시설이 있기 마련이었다. 식당이라든가, 비품실이라든가. 직원 휴게실을 지하에 두는 경우도 많았다. 일단 고객의 눈에 띄어 좋을 게 없는 시설들은 죄다 지하에 박아 둔다는 전략인 거지.
하지만 우리가 머물던 호텔의 지하는 다르다고 했다. 지하 1층까지는 일반적인 호텔의 지하와 같았지만, 지하 2층부터는 평범한 호텔의 지하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잔뜩 있었다고.
“일단 보안이 엄청나게 삼엄하고요,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평범한 호텔 직원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했어요. 일단, 유니폼을 안 입은 사람들의 수도 꽤 됐고…….”
한서현의 설명에 따르면 그쪽 지하에는 수상쩍은 사람들이 잔뜩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했다. 아티팩트로 보이는 무언가도 제법 보였고.
안타깝게도 한서현이 살펴본 것은 그 지하 중에서도 일부뿐이었다.
“밀폐된 곳도 있고 아티팩트로 보호받고 있는 공간도 있어서, 멀리에서 살펴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네요.”
“어쩌면 그 지하에 니키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내 말에 한서현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런 지하라면 무슨 짓을 하든 바깥에 새어 나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음, 그렇게 산뜻하게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카지노 지하가 가장 수상하다는 뜻인가. 니키가 그곳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수상쩍은 곳부터 확실히 조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럼 일단 거기로 가 보자.”
내 말에 한서현이 조종하는 독수리는 순식간에 호텔 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훅 기울어지는 독수리에 차송진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악!”
“안 떨어지니까 난리 좀 피우지 마요.”
요란을 떤 대가로 차송진은 곧바로 한서현에게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었다.
“미, 미안해.”
확실히 담이 참 작단 말이지. 잠시 머리를 굴린 나는 차송진을 향해 말했다.
“그쪽이랑 에드워드는 호텔 방에 남도록 해.”
내 말에 차송진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잔뜩 불만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킨 차송진이 내게 물었다.
“나, 나를 빼놓고 갈 생각이야?”
“그래.”
“왜, 왜?”
“가 봐야 그쪽이 할 일도 없고…….”
“할 일이 없긴 왜, 왜 없어! 내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고…….”
“가서 우리가 뭘 할 줄 알고 같이 가자는 건데?”
“그거야…….”
내 질문에 차송진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예 생각나는 게 없어서라기보다는, 머릿속에 생각난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내기 껄끄러워 입을 닫은 거다. 우리가 지하로 가서 할 일이 영 그렇고 그런 짓일 거라는 걸 모를 리 없었으니까.
“그래, 그쪽이 딱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일 할 거야. 그리고 그렇고 그런 일하고 당신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지.”
애초에 제대로 된 전투 훈련도 받지 않은 주제에 어딜 같이 가겠다는 건지. 혹시 그것 때문인가. 자존심이 상해서?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야. 아직 준비도 제대로 안 됐잖아. 그런 상황에 현장에 가 봤자…….”
“폐가 된다는 뜻이야?”
차송진의 풀 죽은 얼굴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쪽이 다칠 수 있으니까.”
“그게 폐가 된다는 뜻 아닌가.”
“다르지. 걱정이 되니까 안전한 곳에 있으라는 거랑, 방해가 되니까 따라오지 말라는 말이 어떻게 같아?”
나는 여전히 무언가 할 말이 많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차송진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우리와 어떻게든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가짐 자체는 기특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아직 그쪽은 제대로 싸우는 방법도 모르잖아. 만약 밑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우리를 따라오고 싶다면 사실 그냥 같이 가도 돼. 우리 애들이 그쪽 하나 보호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진 않거든.”
문제는 다른 쪽에 있었다.
차송진은 겁이 많았다. 의연한 척 굴어도 언제나 뒷짐을 진 손을 달달 떨고 있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큰 소리가 나면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고, 폭력적인 일이 일어나면 눈부터 질끈 감고 보는 인간이다.
그런 사람을 데리고 굳이 폭력적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장소에 가야 한다? 도대체 뭘 위해서?
“싸우는 거 안 좋아하잖아.”
“하지만 필요한 일이잖아. 다들 가고…….”
“응, 필요한 일이지. 그래도 굳이 그런 일을 싫어하는 사람까지 데리고 갈 이유가 없어, 왜냐! 그런 일을 싫어하지 않고, 어쩌면 좋아할지도 모르는 사람이 여기에 있으니까.”
내 말에 한서현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엄청나게 폭력적인 사람처럼 느껴지잖아요.”
“내가 말한 건 네가 아니긴 하다만, 뭐. 정 그렇게 신경 쓰이면 폭력적이라기보다는, 전투의 스릴감을 느끼는 쪽이라고 해 두자.”
그 말에 한서현이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나쁜 놈에게 나쁜 짓을 하는 건 기분이 좋긴 하죠.”
한서현의 말에 차송진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한서현은 그 반응에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백 퍼센트 저 반응을 노리고 일부러 저런 거다, 저거.
“각자 타고 태어난 성격이나, 재능이 다르듯이 잘하는 일도 다를 뿐이야. 나를 봐, 내가 언제 우리 방 청소에 손을 얹는 거 봤어?”
내 당당한 말에 한서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와, 이 일에 그 일을 갖고 온다고?”
“풉.”
한서현의 투덜거림을 들은 차송진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적어도 우리한테 폐가 된다느니 하는 쓸데없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쓸어 낸 모양이군.
나는 차송진을 향해 말했다.
“무슨 걱정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그쪽이 우리 팀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일은 없을 거야. 그게 폐가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내가…….”
짓궂은 미소를 지은 차송진이 슬쩍 내 말을 이었다.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 그런 거지. 뭐냐, 우리 조직은 각 조직원의 취향과 특성을 파악해서 가장 적합한 곳에 사람을 배치한다고. 이 얼마나 옳은 인원 배치냐.”
“옳은 인원 배치요?”
내 말에 벨츠머츠에서 살림을 전담하고 있는 한서현이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뜨끔, 양심이 찔렸다. 레이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에 레이의 호통이 들리는 것 같달까.
“그, 그래. 재호도 요리 같은 거 안 하잖아.”
나는 억울함에 그렇게 외쳐 보았지만, 나를 향한 경멸이 짙어질 뿐이었다.
“재호 형이랑 보스가 같아요?”
“다를 게 뭐야!”
“재호 형은, 그러니까 재호 형이잖아요!”
한서현이 김재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막상 당사자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한서현은 김재호의 인권을 지켜 주려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나, 벨츠머츠의 리더 강이신은 때때로 세상에는 가혹한 진실을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남자지.
“따지자면 재호는 요리를 해 본 적도 없잖으냐.”
“해 본 적 있어!”
“그냥 재료를 내놓은 게 어떻게 요리야.”
“그편이 빠르게 배부를 수 있잖아.”
“그러니까 재료를 접시에 담아 두는 건, 요리가 아니래도?”
김재호는 내 말에 입술만 삐죽거렸다. 여전히 재료를 그냥 주워 먹는 게 가장 빠르게 배가 부른 방법이라고 우기는 얼굴이었다.
“봐! 나는 적어도 재료를 가공할 수는 있다고.”
“죄다 볶아 버리잖아요!”
“볶는 게 뭐가 나빠!”
결국 우리의 대화는 다시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텄다, 텄어.
“어쨌거나 결론은 잘 못 하고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애초에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어, 다 맡기는 것도 그렇게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정말 뻔뻔하다, 뻔뻔해.”
한서현의 말에 나는 마지못해 슬쩍 말을 던졌다.
“그, 그럼 내일부터라도 내가 다시 집안일 할까?”
내 말에 한서현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거든요.”
휴, 다행이다. 사실 다시 집안일을 할 생각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었거든.
━정말 쓰레기구나…….
레이의 감탄에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쓰레기지만, 집안일에서 해방된 쓰레기죠!’
━뭘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거냐!
왠지 결론이 강이신=쓰레기로 끝난 것 같다만, 중요한 메시지는 이거다.
차송진이 벨츠머츠로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싫어하는 일을 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는 거.
애초에 차송진은 비전투 인원이다. 재능부터가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녀석을, 굳이 전투 인원으로 끌고 다닐 마음은 없다. 자신의 몸을 지킬 정도의 호신술 정도만 가르친 뒤에는 싫다는 전투 훈련에서도 빼 줄 생각이었고…….
내 간절한 마음이 통한 것일까. 차송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순순히 말했다.
“알겠어, 마음 편하게 호텔에 있도록 할게.”
차송진이 내 마음을 알았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음, 그렇고말고. 그렇게 내가 마음을 놓았을 때다.
“그나저나 아직도 나를 그쪽이라고 부르는 거야?”
차송진의 말에 내 어깨가 떨렸다.
으음, 그래. 이번에도 그렇게 부르긴 했는데.
“뭐,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말이지.”
정말 형이라고 불러야 하나. 형밖에 없겠지, 형밖엔…….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냐? 연상 취향이라며?
‘……놀리는 겁니까?’
내 말에 레이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 번 빈틈을 보였다고 사람을 이렇게 놀려대는 게 어디에 있나. 하여간에, 이렇게나 주인을 놀리기 좋아하는 아티팩트라니.
“나를 그렇게 형이라고 부르기 싫은 건, 내가 형답지 않아서? 하긴 나 같은 걸 형이라고 부르긴 좀 그렇겠지.”
겨우 땅을 파는 걸 건져 놨더니 또 땅을 파는 거냐! 차송진의 말에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아니, 꼭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어…….”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한서현을 바라보았으나 한서현은 어깨만 으쓱했다.
“나는 형이라고 부르는걸요.”
“그, 그야!”
너는 진짜로 열여덟이잖아! 나는 엉? 나이도 더 많고 그렇다고. 하지만 트랜스올더 이론을 들이밀기엔 상황이 나빴다.
“아무래도 계속 그쪽이라고 부르는 건 좀 그렇지?”
내 말에 한서현이 고개를 푹 숙인 차송진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예, 차씨보다는 낫긴 한데……. 그것도 좀 그렇긴 해요.”
끄응, 역시 차송진을 형이라고 부르는 게 제일 낫겠지? 그래, 눈을 딱 감고 형이라고 불러보는 거다.
그렇게 내가 질끈 눈을 감았을 때였다.
“하하! 농담이야. 그냥 편한 대로 불러. 나중에, 어, 뭐가 됐든 제대로 불러 주고.”
나는 어이가 없어져 고개를 위로 돌렸다. 차송진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냐, 방금은.
나를 놀린 거야?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하여간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까.”
그렇게 떠드는 사이, 어느새 검은 독수리는 호텔 근처에 도착했다. 독수리는 가볍게 바닥으로 내려섰다.
“위로 올라가서 쉬고 있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차송진은 에드워드의 손목을 붙잡았다.
[우리는 호텔 가서 쉰다.]
[뭐? 왜? 다들 어디로 가는 건데?]
[알 바 없다.]
뚝딱거리는 영어로 에드워드에게 할 말을 전하는 차송진을 보며 나는 따봉을 날렸다.
“잘한다, 멋지다!”
내 칭찬에 얼굴을 붉힌 차송진은 그대로 에드워드를 질질 끌고 호텔로 올라갔다.
자, 그럼 우리는 우리대로 할 일을 할 때다.
“이쪽이에요.”
한서현의 말에 나와 김재호는 걸음을 옮겼다.
저 지하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한 번에 쓸어 담기 좋게, 몽땅 저기에 모여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제2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