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16
59 잘하거든요, 이런 거 (4)
나는 주머니에 슬롯머신에서 빼낸 아티팩트를 주섬주섬 챙겼다.
“그건 어디에 쓰려고요?”
“이걸 만든 사람을 한 번 찾아보려고.”
“그걸 만든 사람이요?”
“용도가 영 그래서 그렇지, 퀄리티만 놓고 보면 대단하잖아. 일반적인 물건과 결합해서 아티팩트로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키다니. 겨우 손바닥 반밖에 안 되는 작은 크기인데, 혼동 마법을 상시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마정석도 엄청 조그만 걸 썼다니까? 이 작은 걸로도 몇 년은 버틸 수 있게 설계가 돼 있어.”
게다가 놀라운 건 이 수많은 아티팩트를 만든 사람이 딱 한 명이라는 거지.
━맞아, 적어도 눈앞에 보이는 건 다 한 사람이 만든 거다.
아티팩트 감정사 레이가 확인해 주었으니 확실하다.
이 정도 퀄리티의 아티팩트를 양산해 낼 수 있다니.
“이 정도 솜씨면…….”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충분히 납치, 아니, 영입할 가치가…….”
영입이라고 말했지만, 굳이 벨츠머츠로 데리고 올 필요가 없다. 우리 쪽 의뢰를 받아 주기만 하면 되니까. 선을 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정도의 아티팩트를 공창처럼 찍어 내는 것만 봐도 엄청나게 유능한 사람이지 않은가. 이런 사람이 슬롯머신이나 만들고 있다니…….
‘혹시 모르죠. 이걸 만든 장인이 어딘가에서 혹사당하는 채일지도? 간절히 자신을 구출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아직도 그 희망을 버리지 못한 거냐.
‘이번에는 제법 그럴싸한 추측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수십 개, 카지노에 설치되어 있던 것까지 다 합치면 수백 개에 달하는 슬롯머신에 아티팩트가 설치돼 있다면?
‘게다가 이런 카지노가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고요.’
이걸 만드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이런 카지노가 두 개만 더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은 골수까지 빨아 먹히고 있을 거다.
이런 재능을 가진 인간을 이런 일에나 쓰다니. 아까워 미칠 것 같았다! 나였으면 최고급 재료를 턱턱 갖다 바치면서 부려 먹을 텐데!
━뭐야, 부려 먹는 건 똑같지 않냐?
‘똑같다뇨. 제 쪽이 훨씬 보람 있는 일일 텐데요. 게다가 보수도 잘 챙겨 줄 거라고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제가 구출하는 것으로…….’
━참나!
금박사가 내 든든한 물주 겸 이런저런 물품을 대주고 있긴 하지만,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장인의 도움이 간절하다.
김재호의 단검만 해도 그 단검을 사용하는 동안 다른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었고, 한서현의 스태프도 사기적인 마정석을 껴 놔서 그렇지 내가 만들어서 어딘가 허접한 건 사실이고.
유사시를 대비한 정신계 방어 아티팩트도 있어야 하고, 어, 차송진을 위해서 방어구도 마련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일단은 이 녀석을 찾는 게 중요하겠지.
‘어디에 사는 줄 알고요?’
━뭐, 카지노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지 않겠냐.
물건을 공급받고 있을 테니, 그쪽에 물으면 답이 나오겠지.
그렇게 챙겨야 할 물건을 모두 챙긴 나는 계단 쪽으로 향했다. 이제 불을 지를 차례다.
“일단 사람들부터 다 대피시키고.”
마약을 태워 버리려는 거지, 죄 없는 피해자를 늘리고 싶진 않으니까.
“정말 불을 붙여 버리려고요? 엄청 큰일이 날 것 같은데 막, 유독한 가스도 나올 거고.”
“그래, 그러니까 다 대피를 시켜야지. 난 여길 완전히 파괴하고 싶거든.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그러니까 지하를 완전히 날려 버리려는 계획이라고?
‘겸사겸사 증거도 지우고요.’
나중에 이곳을 파내 조사하면 내가 한 짓이 다 나오긴 하겠지만, 그래도 시간을 버는 건 할 수 있겠지.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고 싶거든요, 전.’
거기에 화재만큼 확실하게 이들의 기반을 파괴하는 방법도 없고.
다시는 이 안에서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모든 걸 부숴 놓는 거지.
‘우두머리를 쳐 봤자 그 밑에 있던 놈들이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걸 몇 번이나 봐서 말이죠.’
그러니, 다 태워 버리겠다. 재조차 남지 않게. 적어도 이 지하만큼은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나는 화재를 감지하는 기계에 불꽃을 쏘아 보냈다.
눈을 몇 번 깜빡일 만한 시간이 지나자 곧 건물 전체에 화재 경보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스프링클러가 칙칙 돌아가며 물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윽!”
김재호는 곧바로 내 그림자에 숨어 물을 피했다. 그러나 민첩하지 못한 한 사람은 그 물벼락에 그대로 당해 버리고 말았으니.
한서현은 살벌한 표정으로 물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물이 나오네요?”
“그야, 그게 스프링클러의 역할이니까?”
한서현의 눈이 물 한 방울 묻지 않은 뽀송뽀송한 내 얼굴로 향했다.
“나한테도 미리 말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미안합니다…….”
나는 빠르게 사과했다. 나는 재빨리 능력을 이용해 한서현의 몸에 묻은 물을 말려 주었으나,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은 한서현의 기분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 대피하면 말해 줘.”
“예.”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아직 멀었냐?”
사람들이 다 대피하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한서현은 말이 없었다. 내 질문에 얼굴을 구긴 한서현이 말했다.
“보스, 슬롯머신에 있는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요?”
“이 난리가 났는데도?”
“네. 입고 있던 셔츠를 슬롯머신 위에 얹어 놓고는 게임을 계속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직원들은 뭘 하고?”
“끌어내려는 사람한테 주먹질을 하던데요.”
“……젠장.”
이래서 도박이 위험, 아니, 이 경우에는 슬롯머신에 설치되어 있는 망할 놈의 인식 저하 장치 탓도 있겠지.
“어떡하죠?”
“뭘 어떡해. 지금 여기에 불을 지르면 위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해지잖아.”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박을 하는 놈들의 인생 따위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던 나지만, 아티팩트에 당한 피해자라면 말이 달라진다.
‘아주 무죄는 아니어도, 유독가스에 죽을 만큼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죠.’
그렇다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슬롯머신에 달라붙어 있는 인간들을 끌어낼 수도 없으니…….
‘불을 지른다는 계획은 폐기해야겠네요. 어쩔 수 없이 다음에 이 지하에 올 사람들에게 깜짝 선물을 남기는 것으로…….’
━쌓여 있는 시체가 퍽이나 깜짝 선물이겠다!
‘적어도 깜짝 쪽은 맞지 않습니까?’
그렇게 레이와 말을 나눌 때였다.
“그럼 그건 제가 처리할게요.”
한서현이 옆에서 치고 나왔다. 갑자기 뭘 처리한다는 건지 물으려는 내게 한서현이 대뜸 말했다.
“저 안에 있는 거요. 그게 걱정돼서 여길 다 태우려던 거잖아요?”
“……어떻게 알았냐.”
“모를 수가 있나요.”
“맞아, 아까부터 피 냄새가 잔뜩 났어.”
김재호도 끼어들었다. 윽, 나름 몰래 슬쩍 처리하려고 한 건데 부하들이 너무 잘나도 이런 문제가 생기는구나.
“그래, 부탁한다.”
역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더니, 네크로맨서로서 이런 상황을 그냥 넘기는 것도 그렇긴 하지.
━그래, 괜한 걱정이었다. 애초에 저 녀석이라면 그냥 재료가 생겼다고 좋아할 놈 아니냐고.
‘우리 서현이 그 정도로 인간성이 메마르지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봐라.
레이의 말에 내 머릿속에는 수줍은 표정으로 ‘그 시체 제가 가져도 돼요?’, ‘사람들의 뼈로 폭탄을 만들어 봤어요.’, ‘영혼을 고문할 수도 있더라고요.’라고 말하는 한서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게. 내가 도대체 누굴 걱정한 거냐.
“진작 나한테 부탁하면 되는 걸 가지고, 무슨 갑자기 불을 지르겠다고…….”
스태프를 손에 쥔 한서현은 그렇게 말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네크로맨서한테 시체를 숨길 순 없지. 응, 그렇지. 그건 이상하지, 아무래도.
한서현이 시체를 수습하는 게 끝난 뒤, 나는 계단을 무너트렸다.
“일단, 다른 놈들이 오지 못하게 이쪽은 막아 두도록 하자.”
우리가 빠진 사이 마약을 옮겨 두면 곤란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이걸로, 뒷수습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되었다.
‘잔해를 치우고, 마약을 처리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역시, 미국 최강의 인맥을 써야만 하나. 그쪽도 공사다망할 텐데 이런 일까지 맡겨야 하나 싶지만. 미국을 위한 일이라고 말하면 대충 도움을 주지 않을까.
혼란스러운 틈을 타 카지노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곧바로 범생이 범죄자 씨가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여기에서 그리 멀진 않네요.”
우리를 태운 새는 곧바로 목적지에 닿았다.
게이트 사건 이후 버려진 듯 황폐화된 마을이었다. 이미 버려진 지 몇 년은 지난 듯 멀쩡한 건물이 거의 없이 버려진 마을의 한가운데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있었다.
뭐, 더 대단하게 멋진 건물이어서가 아니라 그 앞에 자동차가 잔뜩 서 있는 건물이어서 그렇다. 살아 있는 사람의 징후가 조금도 없는 곳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니까.
우리는 그 건물에서 거리가 떨어진 곳에 내려섰다. 우리를 태우고 왔던 모래 새는 공중에서 흩어져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람을 타고 들어간 입자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의 정보를 읽어 냈고, 그 정보는 곧 한서현의 입을 타고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저 안에 있는 건 대충 마흔 명 정도예요.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는데, 아티팩트로 막아 둬서 자세한 건 확인할 수가 없어요.”
“또 지하냐?”
이놈들 진짜 지하를 좋아하는구나. 또 지하에 뭔가를 지어 놨다니. 카지노 지하에 마약 제조 시설을 만들어 둔 것처럼, 이곳의 지하에도 뭔가 뒤가 구린 시설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팍팍 들었다.
“니키는?”
“일단 건물에는 안 보여요.”
“지하에 있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잘못된 정보를 준 거거나요.”
“지하에 있길 빌자고.”
그렇게 말한 나는 건물을 보며 대충 머릿속으로 작전을 짰다.
문이 닫혀 있는 데다가, 몸을 가릴 수 있는 엄폐물이 많았던 카지노 지하와는 달리 이곳은 뻥 뚫려 있었다.
지금 우리가 몸을 기대고 있는 나무 담벼락도, 시야만 겨우 차단할 뿐 엄폐물의 기능은 없었다.
‘화력으로 몰아붙여야 한다는 뜻이죠.’
모두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데다가 노출된 공간이라 하나씩 각개 격파를 하기에도 좋지 않다.
하지만 뭐…….
‘서현이를 겪고 났더니, 무슨 상황이어도 긴장이 안 되네요.’
너희가 강해 봤자 A급 대마도사 한서현만큼 강하겠냐.
━그거야, 그렇겠지.
그렇게 강한 녀석이 왜 이런 곳에서 갱단 짓이나 하고 있겠냐.
이제 문제는 어떻게 저길 공격할까, 하는 거다.
포인트는 최대한 짧은 사이에 많은 걸 해야 한다는 거다.
“서현이는 일단 보조하고…….”
“보조라고요?”
진심이냐고 되묻는 듯한 얼굴이다.
“내가 처리하는 게 제일 낫지 않겠어요?”
그 말대로 지금 가장 효과적으로 적들을 상대할 수 있는 건 한서현이다. 사실상 우리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을 꼽는다면, 한서현이기도 하고…….
사실 한서현이 나선다면, 우리는 저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아까와는 다르다. 적들은 이미 중무장 상태였고 수도 많았다. 어설프게 제압이나, 기절시키려고 했다간 우리가 역공으로 털릴 수도 있단 뜻이다.
나는 언제나 한서현을 보조로 돌렸다. 그동안은 ‘아직 능력을 다루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라는 말로 한서현을 설득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 깨닫지 않았는가.
한서현은 정말로 강해졌다고.
“널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럼 왜 못 하게 하는데요.”
‘너희 형 볼 낯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하면 절 죽이려고 들겠죠?’
━응, 그럴 것 같다.
끄응. 한서현이 강해진 거야,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본 내가 제일 잘 안다. 실제로 당장 전투에 투입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아니, 사실 상당히 도움이 될 정도로 강해졌다는 걸 왜 모르겠나.
하지만 상대하는 게 사람이니, 머뭇거리게 되는 거다. 아무리 나쁜 놈들이라고 해도 말이지. 따지고 보면 개인적인 원한도 없는 데다가, 어떻게 보면 또 교화의 여지도 있고…….
━그런 놈을 너는 아까 잘도 죽였잖느냐.
‘저야, 그런 일에 제법 익숙하니까요. 하지만 서현이는 아니잖습니까. 아직 어른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려는데 김재호가 눈에 걸렸다. 그러고 보니 김재호도 어렸지…….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간다고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아니, 내가 됐다잖아! 내가!”
한서현은 내 말에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하지만 말이야. 이 보스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우리가 말하는 걸 빤히 보던 김재호가 말했다.
“언제까지 서로 싸울 거야?”
“조금만 기다려. 아직 어?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아니, 저기.”
김재호가 툭툭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아니, 좀만 기다리라니까!”
김재호는 가만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는 기다려도 쟤는 안 기다릴걸?”
창문 너머에서 우리를 가리키며 무어라 손짓을 하고 있는 놈이 보였다.
아.
“들켰냐, 우리!”
“응.”
“응이라고 할 때가 아니잖냐!”
나는 곧바로 몸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곧바로 우리를 향해 총탄 세례가 쏟아졌다.
제21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