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27
61 버림받은 사냥개 (3)
설록진의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진짜로 개를 키우는 거라면 열 마리라도 환영이었지만, 내 눈앞에 있는 건 귀엽고 토실토실한 강아지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이었으니까.
그것도 이런 끔찍한 장면을 만들어 낸, 심지어 자신을 맡았던 조련사까지 저 꼴로 만든 놈. 그런 놈을 나더러 맡으라고?
설록진이 사람을 개 취급하는 것이야,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만 저런 놈을 나에게 떠넘기려고 하다니.
“왜 나한테…….”
“그야, 너만큼 내가 믿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애초에 아무나 잡아다가 세뇌할 수 있는 인간에게 신뢰란 아무런 가치도 없다. 말 한마디라면 누구에게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킬 수 있는 인간에게 ‘믿음’이라는 게 의미가 있겠냐고.
설록진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나일 텐데, 저런 말이나 하다니.
그냥 순전히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저놈을 떠넘기는 거라면 차라리 이해했을 거다. 저런 식으로 말을 꼬니, 괜히 열이 받았다.
“저는 개라면서요, 그런데 개한테 개를 어떻게 맡깁니까?”
내가 이런 반항을 해 봤자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걸 알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기는 싫었다.
설록진은 나를 달래듯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버릇 나쁜 개를 교육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예의 바른 개 옆에 붙여 두는 거라고 누가 그러던걸.”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합니까?”
내 말에 설록진이 말했다.
“저 녀석이 널 물어뜯을까 봐 겁이라도 난 거야?”
아니, 내가 두려워하는 건 저 녀석을 나에게 맡기는 네 놈의 속셈인데.
“정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는 설록진에게 나는 황급히 말했다.
“누가 싫대요? 그냥, 궁금해져서 물어본 겁니다.”
설록진이 저런 식으로 말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뻔했으니까.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이 이 조련사가 없어진 개를 죽일 수밖에.’
분명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서 저 녀석을 죽여 버렸을 거다.
여태까지 수없이 많은 이의 죽음을 본 나지만, 여전히 누군가가 눈앞에서 죽는 광경은 끔찍하기만 했다.
누군가에게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부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는 해도, 더 살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죽임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문제는…….
“근데 저놈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데요?”
그래서 저놈을 어떻게 기르라는 거냐는 거다.
“간단해.”
설록진의 동공이 다시 노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놈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록진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인 녀석은 무릎을 꿇고 자신이 죽여 버린 조련사의 시체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비위가 상하는 장면에 나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 안에서 피에 젖은 무언가를 꺼낸 놈이 그것을 든 채로 나에게로 다가왔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금속 재질의 무언가가 살점과 피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놈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며 나는 설록진에게 물었다.
“이, 이건 뭔데요.”
“받아 봐.”
설록진의 명령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손바닥을 위로 올렸다. 놈은 내 손 위에 피에 젖은 무언가를 떨어트렸다.
“으윽.”
손에 닿는 축축한 감촉에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그래서 이게 뭔데요?”
“보면 알겠지만, 호루라기야.”
봐도 하나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호루라기? 이렇게 피에 젖은 걸 닦아서 다시 쓰라고? 그냥 피에 젖은 거면 몰라, 남의 살점까지 붙어 있던 걸 쓰라고?
죽어도 입에 물기 싫은데.
“나도 웬만하면 다른 걸 주고 싶은데, 특수 제작된 거라 그거 하나뿐이네.”
“특수 제작이라니, 이딴 게 아티팩트라고요?”
“아니, 하지만 특이한 소리가 나는 제작품이긴 해. 트리거로 그걸 설정해 놔서 말이지. 트리거를 바꾸는 건 꽤 어려운 일이라서…….”
설록진에게 어려운 일이라고?
“저 녀석의 뇌가 뻐엉 하고 터져 버릴지도 몰라.”
아, 저쪽이 버티기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었군. 나는 책상 위에 놓인 휴지를 꺼내 호루라기를 감쌌다. 마음 같아서는 대뜸 던져 버리고 싶지만, 설록진이 저 시체에서 굳이 이 호루라기를 꺼내 내게 건넨 데에는 다 그 이유가 있을 거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쓰면 되는데요?”
“간단해. 그걸 불고, 저 녀석에게 명령을 해. 명령은 간결하고 확실해야 해. 너도 봐서 알겠지만, 저 녀석은 아주 멍청하거든.”
저놈의 머리를 휘저어 멍청이로 만들어 놨을 사람이 저런 말을 하는 건 기만이 아닌가. 저 녀석이 저렇게 된 건 전부 댁 때문일 거 아니야!
게다가…….
“이 호루라기로 이놈을 조종할 수 있다면 조련사는 왜 저 꼴이 된 건데요.”
“내가 말했잖아. 명령은 간결하고 확실해야 한다고. 그건 충고가 아니야. 예를 들어 호루라기를 분 다음에 이 방에 있는 ‘모두’를 죽이라고 한다면…….”
“젠장.”
그 모두에 명령을 내린 자기 자신까지 포함이 되어서 저 꼴이 됐단 말인가? 설록진이 내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 저 녀석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우습게도 이 말이 거짓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설록진은 저 녀석에게 내가 살해당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다. 겨우 저런 녀석에게 죽으라고 나를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게 아닐 테니.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싫으나 좋으나 저 녀석을 맡게 됐으니 잘해 볼 수밖에.
“저놈, 이름이 뭡니까?”
내 질문에 설록진이 말했다.
“쟤한테는 이름이 필요 없어.”
“예?”
그 말에 나는 바보처럼 되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도구에 이름을 붙일 정도로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잖아, 우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내 얼굴에 설록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코를 훔치고 버리는 휴지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은 없잖아.”
설록진의 말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개보다도 훨씬 취급이 나쁘잖아, 이거.’
설록진을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정은 주지 마. 사냥개니까 버릇이 나빠지면 곤란하거든.”
* * *
나는 그놈을 데리고 내 집으로 갔다.
차가 지저분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놈의 능력은 무려 그림자에 녹아드는 거였으니까.
설록진의 명령이 끝나자마자 녀석은 내 그림자로 숨어들었고,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호루라기부터 깨끗하게 닦았다.
정말로 쓰고 싶지 않지만, 일단 받아든 거긴 하니까 잘 간직해야지.
나는 내 그림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직접 눈으로 이 그림자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는 걸 봤지만, 이 안에 그 덩치가 큰 녀석이 들어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어이, 바깥으로 나와 봐.”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하겠군.
내 명령에도 안에 있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 호루라기가 아닌 그냥 명령에는 나오지 않는 건가.
나는 그림자를 향해 속삭였다.
“좀 씻고 자자고. 너도 편하게 쉬고 싶을 거 아니야?”
내 말에 그림자 안에서 쑥 머리가 튀어나왔다.
“아, 아씨! 깜, 깜짝이야!”
뒤로 반쯤 넘어진 나는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놈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문제는 그 녀석이 지금, 피에 푹 젖은 상태라는 거였고 그 녀석이 나오자마자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미친…….”
반쯤 굳어 찐득해진 피가 내 거실 바닥을 더럽히고 있는 꼴을 본 나는 입을 벌렸다.
물론 여길 청소해 주시는 이모님이 계시긴 하지만, 저걸 닦게 할 수는 없잖아.
“들어가! 들어가!”
나는 재빨리 외쳤다. 나를 멍청한 얼굴로 바라보는 놈을 향해 손짓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간만에 바깥 공기를 맡는 게 좋다는 건지, 뭔지.
“이, 일단 들어가라고!”
내 명령에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호루라기를 만지작거렸다. 젠장, 이걸 써먹어야 하나?
“내 말 좀 들어. 이걸 쓰긴 싫으니까.”
설록진은 이 호루라기 소리를 녀석의 트리거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세뇌했을 당시의 상황을 계속해서 맴돌게 하는 거지.
설록진이 아닌 다른 사람도, 설록진처럼 다른 이에게 명령을 할 수 있도록 일종의 리모컨을 만들어 준 거다.
그러니까 웬만해서는 나는 이걸 쓰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모르겠지만 겨우 다시 그림자에 들어가는 걸 부탁하는 것 때문에 쓰긴 싫었다.
“너도 이 소리를 듣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니야.”
내 말에 녀석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내 손에 들린 호루라기를 바라보는 듯이.
머리카락에 얼굴이 모두 가려져 있으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나도 덮치려는 건 아니겠지?
내 손끝이 덜덜 떨렸다. 설록진이 저 녀석이 나를 공격할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해 두긴 했지만, 그래도 저 녀석이 저지른 일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놈은 다행히 내 말을 듣고 그림자로 다시 스며들었다.
‘후.’
욕실로 향한 나는 다시 놈에게 말했다.
“이제 나와도 돼.”
슬쩍 녀석이 다시 그림자에서 나왔다. 이젠 욕실이니까 더러워져도 상관없지!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깨끗하게 씻으라고. 갈아입을 옷은 곧 갖다 줄 테니까.”
그나저나 저 녀석에게 맞는 옷이 있으려나. 나도 작은 키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녀석을 보니 기가 팍 죽었다. 그냥 키만 큰 게 아니라 덩치도 대단하고…….
설록진이 같이 다니기 쪽팔리다고 사 준 옷들은 죄다 내 몸에 딱 맞는 핏이라, 저 녀석에게 입힐 게 마땅찮았다.
그래도 잘 뒤져 보면 하나쯤은 있겠지.
“샴푸랑 바디 워시는 다 거기에 있고 수건은 이쪽 찬장에 있으니까 씻고 나서 물 닦고 나와.”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으려 했던 나지만, 내 말에도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설마 씻기 싫다고 반항하는 거야?”
아무리 씻기가 싫어도 그렇지! 지금 저 꼴로 우리 집을 돌아다니고 싶다는 건가.
“절대 안 돼. 깨끗하게 씻고 나와.”
내 말에도 녀석은 가만히 있었다.
“하아…….”
나는 그제야 녀석이 단순히 반항하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설마 씻는 방법도 모르는 거냐.”
이제 보니 단순히 피에 절어 더러운 게 아니라 오랫동안 씻지 않아 때가 켜켜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이 지독한 냄새가 설명이 안 된다.
“으…….”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질색했다. 특히 피와 기름때가 엉겨 붙어 있는 떡 진 머리카락이 최악이었다.
전에 있던 조련사가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을 씻기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내 집에 이놈을 들였고, 내 집에 저런 오염 물질을 그냥 두고 방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젠장.”
요양원 봉사 왔다고 생각하자. 저번에 설록진을 따라서 한 번 가 봤잖아. 그래, 그때처럼 하는 거다.
나는 샤워 호스를 잡고 비장하게 말했다.
“벗어.”
내 말에 녀석의 몸이 움찔 떨렸다.
“나, 나도 네 놈의 벗은 몸 같은 건 보기 싫거든! 그래도 옷은 벗어야 씻을 거 아니야!”
하지만 내 말에도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아…….”
어쩔 수 없나. 일단은 피라도 닦아 내야지. 나는 샤워기의 호스를 잡고 물을 틀어 물 온도를 확인했다. 적당히 물이 따뜻해진 뒤 나는 녀석에게 물을 뿌렸다.
녀석은 가만히 서서 내가 뿌리는 물을 그대로 맞았다.
“물고문하는 기분인데.”
녀석은 묵묵히 내 물을 다 맞았다. 나는 물에 젖어 축 늘어진 녀석에게 다가갔다. 더러운 옷을 벗기기 위해 손을 댈 때였다. 녀석은 내 손길을 피해 그대로 그림자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나와! 마저 씻어야 할 거 아니야!”
그날 나는 목이 쉬도록 외쳤지만, 결국 그 녀석을 끄집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제22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