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42
65 죄의 무게 (4)
한서현에게 들은 얘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도채희와 홍난희, 정호산이 만났다고?
“뭐야, 일이 왜 이렇게 된 건데?”
원래 내가 도채희를 홍난희 변호사에 보낸 건, 남주현과 홍난희 변호사, 그리고 도채희 세 사람에게 따로 맡길 일이 있어서였다.
홍난희와 남주현, 도채희는 꽤나 좋은 팀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연을 쌓은 다음에 홍난희를 정호산에게 토스해 준다…… 까지가 내가 계획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세운 계획이 어디 제대로 굴러간 적이 있었는가. 세상은 또 한 번 내 계획을 깔아뭉갰다.
그렇다고 해도 도채희가 홍난희 변호사의 일을 돕겠다고 자원하다니.
그것도 정호산 사건의 변호를 맡기기 위해서라니 말이다.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냐?
‘예전의 도채희였다면 절대로 변호사와 협력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범죄자를 잡는 경찰인 도채희와 그 범죄자의 사정을 대변해 낮은 형량을 받게 해 주는 변호사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사이였다. 차라리 검사와 행동을 같이하라면 몰라, 변호사는 절대로 싫다고 했을 터.
하지만 스스로 그 범죄자의 변호를 위해 변호사와 협력하려고 한다?
‘솔직히 조금 놀랍네요.’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지.
도채희에게는 따로 마크를 부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듣기는 어려울 테지만, 무언가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흠, 그나저나 왜 도채희가 홍난희 변호사에게 제가 준비해 둔 정보를 말하지 않은 건지 모르겠는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남주현이 왜 그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휴대폰으로 남주현에게 사정을 물었지만, 남주현의 대답은 없었다. 혹시 휴대폰이 망가지기라도 한 건가?
어쩔 수 없이 나는 익명 채팅방을 열어 남주현을 초대했다.
N : 누구세요?
S : 접니다.
N : 저가 누구세요?
나는 간단한 대화 끝에 내 정체를 납득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간단히 상황을 전달하고 계획이 틀어진 이유를 묻는 내게 남주현이 대뜸 하소연했다.
N : 미안해요, 문자를 보내다 말아서. 아니, 근데! 나도 진짜 할 말 많거든요!?]
N : 이게 다 그쪽이 맡긴 아가씨가 내 휴대폰을 뺏어 가서 일어난 일이라고요!
N : 그쪽이랑 연락하는 것 같다며 휴대폰을 뺏어 가선 주지도 않는데 제가 어떡합니까? 이희원 씨도 못 이긴다고요, 그 여자애는!
N :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서 그 여자애는 대체 언제 데리고 갈 겁니까? 진짜 이쪽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거든요?
채팅방에는 내가 답장을 할 새도 없이 남주현의 채팅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도대체 타자가 얼마나 빠른 거야?
어쨌거나 덕분에 정보는 충분히 얻었다.
‘……그냥 정보를 제때 못 준 거네요.’
━휴대폰을 뺏겨서 말이지.
‘예에.’
남주현을 탓하기도 뭐 했다. 휴대폰을 노리고 달려드는 쑤어하오주를 무슨 수로 막냔 말이다. 다음부터는 주변에 쑤어하오주가 있는지 확인하고 휴대폰을 쓰라고 말할 수밖에.
S : 그럼 아직도 핸드폰은 돌려받지 못한 겁니까?
N : 그쪽 아가씨가 안 준다고요! 안 그래도 지금 출석 이벤트 출석 못 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S : 출석 이벤트?
N : 아차차!
S : 도대체 그 핸드폰으로 뭘 하는 겁니까?
N : 그냥 게임을 좀. 아니, 그게 말이죠. 그 폰으로 인 앱 결제가 되길래……. 아, 아니, 그쪽도 별말 없길래! 나는 써도 되는 줄 알았죠?
세상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니, 인 앱 결제라니. 그런 것도 되는 거였냐. 아니, 추적만 불가능할 뿐 휴대폰에서 되는 기능은 다 가능할 테지만……. 잠깐, 그럼 우리 휴대폰 요금은 그동안 누가 내고 있었지? 남주현이 썼다는 저 요금은? 이성의 저편에서 든든한 물주의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누구긴 누구야. 금박사겠지.
나는 이마를 짚었다.
범죄자인 나 때문에 곤란한 일이 생길까 봐 추적이 불가능한 휴대폰을 만들어 줬더니, 그걸로 모바일 게임을 해? 그것도 현질까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N : 죄, 죄송합니다! 아니, 그게요. 나도 이게 잘못됐다는 건 알았는데, 아니, 그래도 진짜 조금만 했어요. 진짜 픽업 뜰 때만 조금씩…….
N : 아니! 댁 때문에 내 신분을 더는 쓸 수 없게 돼서 그런 거잖아요.
N : 아니, 나도 취미 하나 정돈 가질 수 있는 거잖아!
미친 듯이 올라오는 변명문에 나는 질려 버렸다. 그나저나 ‘아니’라는 말을 몇 번이나 쓰는 거야? 저 도입부가 없으면 말을 하지 못하는 병에라도 걸린 건가.
어쨌거나 게임에 돈을 질렀든, 말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금박사는 다르게 생각할 것 같은데.
‘정말로 싫었다면 어떻게든 연락했겠죠.’
━못하지, 네가 일방통행으로 연락을 막아 뒀잖냐.
‘아, 그랬나?’
마침 차송진 장비 건으로 들러야 하니, 그때 제대로 말을 해 보지, 뭐.
어쨌거나 중요한 건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다.
‘생각해 보면 디테일이 좀 바뀌긴 했어도 결과만 놓고 보면 제가 하려던 일인 것 같기도 하고요.’
김현기 사건을 도채희가 맡게 된 건 내 예상 밖의 일이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결과였다.
어차피 내가 맡기려던 일도 비슷하지 않았는가.
나는 원래 홍난희와 도채희를 붙여 도채희의 생각을 조금 틔워 줄 생각이었다. 이왕 정호산이 저쪽으로 넘어갔다면, 도채희를 든든한 아군으로 둬야 했으니까.
그리고 도채희는 지금은 그다지 도움이 되는 아군이 아니었고.
하지만…….
내 예상보다 도채희는 한 발자국을 먼저 움직였고, 내 안배는 다 필요 없는 일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다행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스스로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 거니까요. 저번 생에서 도채희가 이 교훈을 배우는 건 모든 게 너무 늦었을 때거든요.’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 박철완은 도채희를 진심으로 아꼈다. 진심으로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려고 한 거다. 그녀를 위한 팀을 만들고, 그녀를 각범부의 아이돌로 만든 건 다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주 조금씩 권력에 적실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진창에 발을 깊게 담그게.’
하지만 과거에도 그 작전은 먹히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도채희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어쨌거나 앞으로 저쪽이 어떻게 될지는 쭉 지켜봐야겠습니다.’
━왜 저쪽에 관심을 가지는 거냐? 정호산 쪽이면 몰라도…….
‘그야, 제가 하는 일로는 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에는 충분할지 몰라도, 세상을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왜냐,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야, 법의 심판을 빠져나갈 악인들을 처단하는 일뿐이니까.
누군가에게 정당한 복수요, 삶을 바꾸는 일이 될지는 몰라도 크게 보자면 내 움직임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음지에 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파괴뿐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정보를 빼돌리고, 악인들이 쌓아 올린 탑을 무너트릴 수는 있어도 그뿐이다. 그걸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못된 놈을 아무리 죽여 봤자 소용없습니다.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 또 다른 못된 놈이 그 자리를 채울 테니까요.’
지금 당장에야 김성득 의원의 자리를 아무도 넘보지 못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러할까?
아니, 제2의 김성득이 나타날 거다. 제3의, 제4의 김성득도 있겠지.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게 바뀌지 않으면 결국 운명은 반복될 거다.
‘이 세상이 그대론데, 나쁜 놈 몇을 치운다고 바뀌길 기대하는 쪽이 어리석은 거잖습니까. 물론 나쁜 놈을 일시에 싹 다 죽여 버리면 뭔가가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하다.
정의는 나약하고, 선 또한 그렇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는 쪽은 그쪽이잖아.
그래서 난 남주현을 구했고, 홍난희를 구할 거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찾아오는 못돼먹은 놈들을 죽여 없애는 일뿐이지요. 또 제가 그런 건 엄청나게 잘하거든요. 좋아하기도 하고요.’
나는 좋은 놈이 아니다. 멋진 놈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내 사적 복수에 어린애들을 끌어들여 이용하는, 그런 쓰레기다.
그래도 염치는 있는 쓰레기기에 책임지고 내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행복하게 해 줄 생각이지만, 그래 봤자 내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좋은 사람들의 힘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예전에 말한 적 있잖습니까. 세상은 나 혼자서 구할 수 없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나 같은 놈들만으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나는 최선을 다해서 구할 거다.
선하고 좋은 사람들을.
그리고 최대한 도울 거다. 이들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N : 근데, 그, 이번이 마지막 픽업이라. 딱 10연차만, 아니, 20연차만 하면 안 될까요? 아, 사실 천장이 80연차라, 그, 딱 거기까지만…….
‘……갑자기 막 자괴감이 들려고 하는데요.’
━으음.
나는 남주현에게 헛소리 그만하고 사건에 집중하라는 말이나 남겼다. 그리고 동시에 김현기 사건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도채희가 현장을 열심히 뛰겠지만,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좋아, 그럼 이쪽은 이제 앞으로 진행되는 일을 지켜보면 되겠고. 나는 슬쩍 방문을 열었다. 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내 옆에 따라붙은 불청객에 얼굴을 구겼다.
[어? 왔어? 아까 하던 말 이어서 할까?]
[무슨 말.]
[지금 집도 나쁘진 않지만, 조금만 손보면 진짜 멋져질 것 같다니까. 응? 조금만 바꾸자, 조금만.]
[조금만 바꾸자고 하면서 결국엔 다 바꿀 거잖아!]
[아, 아닌데?]
[맞잖아!]
내가 도채희와 정호산 사건을 실시간으로 감시하지 못한 데에는 다 그 이유가 있다. 바로 내게 끊임없이 사랑의 뻐꾸기, 아니, 인테리어 업자의 뻐꾸기를 날려 대는 이 망할 놈의 양키, 에드워드 때문이었다.
에케아를 다녀온 뒤 무슨 신내림이라도 받은 건지, 에드워드는 몇 번이나 나에게 같은 것을 물어댔다.
[벽지가 너무 어두우니까 아무리 조명을 좋은 걸 써도 집안 분위기가 살지 않잖아. 으응? 한 톤만 높여도 화사해질 거라고. 그리고 저쪽 가구랑, 이쪽 가구는 서로 분위기가 안 맞잖아. 중간에 응, 작은 탁자라도 하나 둬서 부드럽게 이어지게 하면 훨씬 예쁠 것 같은데.]
쓸데없이 미감이 좋아서는. 아주 척척 문제점에 대한 답을 꺼내는 모습이 얄밉기만 했다.
━그냥 저 녀석에게 인테리어를 맡기는 게…….
‘그렇다면 제 패배를 인정하는 셈이잖습니까!’
━패배라니, 넌 이걸 승부라고 생각하는 거냐? 대체 누구랑 싸우는 건데?
‘그야, 당연히 제 인테리어의 멋짐을 알아주지 않는 이 편협한 세상이죠!’
━너 빼고 다 이상하다고 하면은, 그건 세상이 편협한 게 아니라 그냥 네 눈이 구린 거 아니냐.
레이의 말에 나는 눈을 흘겼다. 이 망할 놈의 아티팩트. 단 한 번도 내 편을 순순히 들어 주질 않는다니까!
후…….
나는 정이 든 우리 거실을 바라보았다.
칙칙하고 우울하고 보기만 해도 눈이 침침해지는 게 빌런 기지의 표본 같은 멋진 거실인데.
━너도 사실은 구리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공산품에 불과한 에케아 가구를 들여놓으며, 이미 내 철학은 박살이 난 상황이긴 했다. 한 땀 한 땀 모두 내 손으로 만든 DIY 빌런 기지의 철학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니까 누가 빌런 기지 같은 걸 DIY 하겠다고 그러겠냐고.
역시, 이것도 잘하는 놈에게 맡기는 게 최고일까. 그래, 보스로서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너무 많이 바꾸지는 말고.]
[응! 맡겨만 둬!]
드디어 떨어진 내 허락에 에드워드는 싱글벙글 웃으며 차송진 쪽으로 향했다. 나는 이마를 쳤다.
‘집안 꼴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글쎄, 저 녀석이 맡으면 아주 잘 돌아가지 않을까?
‘한 번이라도 제 편을 들어줄 순 없는 겁니까?’
내 투덜거림에 레이가 낄낄 웃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2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