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69
72 죽어야 산다 (2)
“최준희 조장님, 그, 콜, 콜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각범부 2팀 최준희는 요란하게 울리는 호출기에 인상을 썼다. 은근슬쩍 모르는 척을 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놈의 이 호출기에는 음 소거 기능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보고서가 끝나지도 않았다고.”
오전 출동 건에 대한 보고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출동이라.
3, 4팀이 사라진 뒤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각범부였지만 정말이지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준희는 인상을 쓰며 호출기의 버튼을 꾹 눌렀다.
“뭔 일입니까?”
[아, 안녕하세요. 마약 수사 전담팀 이명익 경사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지금 현장 급습이 필요해서요.]
“마약팀 현장 급습이요?”
[현장에 각성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최준희는 눈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각범부 일로 바빠 죽겠는데, 마약팀의 수사까지 도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준희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호출기를 내려놓은 최준희는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 젠장. 조금만 더 쓰면 끝인데.”
그때 마침 수면실에서 나온 붉은 머리의 남자가 하품하며 말했다.
“내가 갈게.”
“네가 가겠다고?”
최준희의 말에 효창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졸음이 묻어 있는 효창립의 얼굴을 살핀 정호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직 더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괜찮아.”
효창립은 제 뺨을 내리쳤다.
“잠 다 깼어.”
최준희는 눈을 빛냈다. 가기 싫은 출동건을 떠맡아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마약 사범이라니, 기껏해야 잡범일 게 분명했다. 효창립에 정호산, 둘이라면 충분할 거다.
“그럼 이번 일은 둘한테 맡겨 놓을게.”
최준희는 효창립에게 제 호출기를 던지며 말했다.
“일단 그쪽으로 콜 오는 건 다 받고. 아, 정보는 문자로 넣어 줄게.”
한 손으로 호출기를 잡아챈 효창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빠르게 출동 준비를 마친 효창립은 정호산을 끌고 바깥으로 나왔다. 차의 운전대를 잡은 건 효창립이었다. 여전히 졸음이 내려앉은 얼굴이었지만, 효창립은 자신이 운전대를 잡을 것을 고집했다.
“이쪽 지리는 내가 제일 잘 알아.”
하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출동에 나가고 하는 그였으니 그거야 당연한 일이려나. 조수석에 앉은 정호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어제도 3시간도 못 주무신 것 같은데.”
육체 강화계인 정호산이야, 최근의 강행군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만 효창립의 경우는 달랐다. 그의 얼굴에서는 어렵지 않게 피로를 읽을 수 있었다. 효창립의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생겨 있었고, 입술은 부르터 있었으니까.
정호산의 말에 효창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아아, 응. 어차피 자 봤자 악몽밖에 안 꾸거든.”
효창립의 말에 정호산의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힐끗 시선을 돌려 정호산의 얼굴을 살핀 효창립은 낄낄 웃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팀원들이 전부 사라졌다는 거야. 으응, 아직도 끔찍한 꿈을 꾸는 것 같아.”
효창립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킨 정호산이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 아무래도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최준희 조장님을 모시고 오는 게 맞을 것 같은데요.”
“그냥 잠을 못 잔 것뿐이야, 충분히 내 할 일은 해낼 수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걱정 안 해도 돼.”
“그게 걱정되는 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유난히 안절부절못하는 정호산을 바라보며 효창립이 짧게 혀를 찼다.
“말했잖아, 괜찮을 거라고.”
“네.”
눈을 질끈 감은 정호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한 반응에 효창립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나저나 우리 동갑인 걸로 아는데 편하게 말 놔도 돼.”
“예? 하지만 저보다 몇 년이나 선배시고…….”
“기껏해야 몇 개월밖에 차이 안 날걸. 나도 꽤 늦게 들어온 편이라.”
효창립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거기에서는 내가 막내였거든.”
“아.”
“어쨌거나 말 안 놓을 거야?”
“아,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깐깐하긴.”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그들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마약 전담 수사팀의 사람이 다가왔다.
“아, 이제야!”
남자는 화색이 된 얼굴로 그들을 반겼다. 그와 통화했던 최준희가 아닌 다른 이가 왔음에도 남자의 얼굴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을 이명익 경사라고 소개한 남자는 그들에게 짤막한 상황을 전했다.
믿을 만한 정보통에게서 이곳이 그들이 쫓던 마약 사범의 근거지라는 정보를 얻었다. 주변을 모두 통제해 용의자들이 빠져나갈 곳은 막았으니 저 안을 덮쳐 용의자만 잡아들이면 되는 상태였다. 문제는 저 안에 있는 용의자들 중에 각성자가 섞여 있다는 거다.
“불을 쓰는 것 같더라고요.”
그 말에 효창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연계 각성자라고요?”
자연계 각성자는 흔치 않다. 상위권에는 개나 소나 자연계 재능을 가지고 있어 잊기 쉽지만, 이런 범죄판에서 볼 만한 능력자는 아니라는 거였다.
“아티팩트를 썼을 수도 있지만, 마력이 움직였다고 하더라고요.”
이명익의 말에 효창립은 눈을 굴렸다.
“바깥에서 놈들을 살필 만한 곳은 없고요?”
“예, 창문을 그쪽에서 모두 막아 둬서요.”
확실히 건물의 창문은 모두 나무나, 철판 따위로 막혀 있었다. 유일한 출입구 쪽에는 총구가 삐쭉 나와 있었다.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총기 청정국이라고 불렸던 한국이지만, 게이트 이후 그건 옛말이 되었다.
불법으로 여기저기에서 끌어모은 무기들은 물론이고, 헌터들을 위해 만들어진 아티팩트도 불법으로 풀어댔으니까.
“저런 밀폐된 공간에서 자연계 각성자하고 맞붙는 건, 거의 자살 행위인데…….”
효창립은 입을 삐쭉거렸다. 차라리 자신들을 처음부터 불러 줬으면 모르되, 다 들켜 놓고 자신들을 부르다니.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물게 된다는 걸 모르는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대치할 수는 없습니다. 저쪽에서 증거를 인멸하면, 다 끝장이라고요.”
“그쪽 사정도 알겠는데, 저기에 들어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니까요.”
효창립은 한숨을 푹 쉬었다.
비각성자들은 각성자를 흔히 슈퍼 히어로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칼에 찔리면 똑같이 아프고, 불에 닿으면 타 버린다. 제아무리 몸이 튼튼한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죽음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이 남자는 전혀 고려조차 않았다.
사건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희생하는 건 딱 질색이었다.
‘이래서 비각성자들이란…….’
효창립은 짧게 혀를 찼다.
효창립의 능력은 눈에 보이는 것을 속박하는 거였다. 대인 전투에서는 완벽한 능력이었지만, 타인의 재능에게서 자신의 몸을 보호할 만한 능력은 아니었다. 때문에 효창립은 늘 기습을 선호했다.
반대로 효창립이 싫어하는 곳은 시야가 차단되는 곳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건물이라고 했으니, 저 안은 껌껌할 게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적이 갑자기 불을 내뿜는다면, 아마 그대로 숯덩어리가 되어 죽고 말겠지.
어떻게 하면 될까.
그때 정호산이 말했다.
“제가 진입하겠습니다.”
“저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함부로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게?”
효창립의 말에도 정호산은 단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빠져나올 자신이 있으니까요.”
정호산의 얼굴은 자신만만했다. 사실, 누군가는 오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정호산과 작전을 하러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다른 이의 평가로 전달받는 정호산은 이런 건방을 떨 인물이 아니었다.
‘뭐, 그래도 자신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겠지.’
정호산의 말에 이명익은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장에라도 안쪽으로 진입하려는 정호산을 효창립이 막았다.
“저 안쪽에 화염 능력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 못 들었어? 조금 기다렸다가 방염복이라도 입고 들어가.”
“맨몸으로도 충분합니다.”
자신만만하게 정호산을 바라보며 효창립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지만, 그게 오만이 되면 곤란해.”
“오만이 아닙니다. 정말로 자신이 있으니까요. 전 바벨 출신이고…….”
정호산의 말에 효창립은 손을 내저었다. 이 근육 바보의 자기 자랑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됐어, 네 마음대로 해.”
효창립의 허락에 정호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과 겨우 몇 분밖에 있지 않았는데도 벌써 질리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기 가서 죽기를 바라진 않았다.
“나는 분명히 말렸어.”
때로는 쓰라린 상처를 입어야만 무언가 배우는 놈도 있기 마련이다. 이놈도 어쩌면 그런 타입일지도 모르지.
효창립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이명익은 정호산의 몸에 이런저런 장치를 설치했다.
안쪽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카메라와 정호산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통 장치들. 하지만 정호산의 몸을 보호할 아티팩트는 없었다.
‘멍청이.’
효창립은 그런 정호산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불길함에 쉬이 숨이 내뱉어지지 않았다.
물론 정호산은 멀쩡할 거다. 저 정도로 자신이 넘치는 걸 보니 정말로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거겠지.
바벨 출신에, 붉은개 길드의 에이스로 꼽히던 녀석이니까. 겨우 저런 곳에서 죽지는 않을 거야.
효창립은 훅훅 숨을 내뱉었다.
이런저런 장비를 매단 정호산은 모두를 향해 인사를 한 뒤 안쪽으로 진입했다. 낮인데도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검은 계단으로 정호산의 몸이 사라졌다.
효창립은 초조한 얼굴로 카메라에서 나오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 잘 들립니까?”
[예.]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정호산의 대답이 들려왔다. 시간이 지나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빛에 안쪽의 구조물이 대충은 보였다. 정호산은 거침없이 그 안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겁도 없어.’
효창립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2층에는 아무것도 없네요.]
“3층으로 올라가세요.”
[예.]
건물은 4층으로 되어 있었다. 독 안에 든 쥐 신세인 이들은,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는 정호산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 걸까.
그 답은 정호산이 3층에 진입하자마자 알게 되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불꽃은, 순간적으로 화면을 하얀빛으로 가려 버렸다.
[크……윽!]
고통에 젖은 그 목소리에 효창립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3층 창문에서부터 거대한 불꽃이 튀어나왔다. 퍼어엉, 거대한 폭발과 함께 모든 것이 아비규환이 되기 시작했다.
“잠깐!”
효창립은 놀란 얼굴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3층에서부터 시작된 불꽃은 4층으로 순식간에 옮겨붙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야 돼요!”
효창립은 거칠게 말했다. 이명익은 겁에 질린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뭐해요, 당장 소방국에 연락하라고요!”
“아, 알겠습니다!”
효창립은 이를 악물고 보호 장구를 챙겨 입었다. 이런 거대한 화염에서 버틸 만한 아티팩트는 아니었지만, 저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캠 화면은 이미 ‘신호 없음’으로 바뀐 지 오래니까.
‘그래도 버티고 있을 거야.’
육체 강화계 헌터니까 아직 희망은 있었다.
‘젠장, 젠장.’
저기에 들여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효창립이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건물로 향할 때였다.
“거기! 멈춰요!”
효창립은 뒤에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이명익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열었다.
그 순간, 건물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뭐…….”
사방으로 튀는 파편에 효창립은 재빨리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그게 효창립이 기억하는 그날의 마지막이었다.
* * *
도채희는 초조하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이틀 전에 박철완을 만나러 간다고 말했던 정호산에게서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휴대폰 알림에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 뉴스가 떴다. 각범부 소속 경찰관 사망, 그 키워드에 홀린 듯이 도채희는 그 뉴스를 클릭했다.
「범인 검거 중 건물 폭발…… 각범부 소속 경찰관 사망…… 사망자는 정호산 순경으로 확인돼…….」
제27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