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80
76 아름다운 꿈 (3)
우리는 해성회와 배신자가 마지막으로 접촉했다는 산속으로 향했다. 접선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속 깊은 곳에는 저우샤오첸을 납치한 범인들이 머문 것으로 추정되는 오두막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버려진 지 오래돼 보이는 오두막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창문은 깨져 있었고 문짝은 너덜너덜했다. 당장 허물어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 오두막의 모습에 차송진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이런 곳에서 머물렀다고?”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요, 이건.”
한서현이 그 말을 받았다.
성큼성큼, 오두막 안으로 걸음을 옮긴 김재호는 그들이 먹고 버리고 간 쓰레기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이렇게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면 안 돼!”
그 말을 들은 차송진이 뿌듯한 표정으로 코밑을 쓸었다.
━교육 효과가 아주 좋은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에드워드 또한 오두막 안을 살펴보았다.
[그 나쁜 놈들이 여기에서 지냈단 말이야? 더럽게 추웠겠는데.]
에드워드의 말대로 아직 3월, 날이 많이 풀리긴 했어도 제대로 난방도 되지 않을 이런 오두막에서 버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무로 된 오두막 안에서 불을 피울 수도 없었을 텐데, 여기에서 어떻게 밤을 버틴 건지.
버려진 옷가지와 더러운 천 조각이 한군데에 뭉쳐 있었다. 아마 그곳에서 잠을 잤던 것 같았다.
“으으.”
불결해 보이는 환경에 에드워드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일단 여기에서 머문 건 최소 세 명이네요.”
한서현이 옷더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옷더미가 뭉쳐진 곳은 총 세 군데였다.
“배신자가 말했던 것도 세 명이기는 했어. 일단 직접적으로 납치를 저지른 건 그 세 명일 가능성이 커.”
물그릇으로 외부에 있는 다른 인원과 소통을 했다고 하니, 이번 일에 얽힌 사람은 그보다 많겠지만 일단 이 오두막에서 머문 것으로 보이는 건 세 명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땅에 손을 댔다. 사이코메트리처럼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읽어 낼 수는 없지만, 마력의 흔적을 읽어 내는 건 나에게도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이 꽤 지나 확실하게 그들의 흔적을 읽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 시도는 해 봐야지.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마력의 흔적은 아주 희미했다. 웬만큼 마력에 예민한 사람도 쉬이 놓쳤을 만큼, 아주 일부분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마력의 흔적을 따라 눈을 돌렸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물그릇을 확인한 나는 버려진 그릇을 집어 들었다.
물그릇으로 소통을 했다는 말에 아티팩트로 소통한 건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그릇은 평범했다.
‘이곳에 담겨 있던 물도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그렇다면 답은 하나겠군.
‘물로 소통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던 거겠죠.’
나 또한 물을 다룰 수는 있었지만, 물을 소환하거나 움직일 수만 있을 뿐, 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할 순 없었다.
‘스마트폰이 있는 현대에서는 그리 좋은 재능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적의 추적을 피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 아니겠느냐. 게다가 소통하는 것 외에 다른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고.
레이의 추정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릇에서 느껴진 희미한 마력 외에도 숙소에서 느껴진 마력은 더 있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그 마력이 느껴진 곳으로 조심스레 움직였다.
옷더미에 남은 흔적을 더듬고 있을 때, 뒤에서 한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서 뭐 하는 거예요? 서, 설마 냄새라도 맡고 있는 건 아니죠?”
“아니, 마력의 흔적을 찾고 있었던 건데.”
“난 또……. 냄새라도 맡는 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불 더미에 코를 박고 있는 게 뭐가 어때서!
‘……심히 이상해 보이긴 하네요.’
성질을 부릴 수도 없었다. 나는 큼큼 헛기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냄새를 맡을 이유가 없잖아.”
“냄새로 그 사람들을 추적하려고 할 줄 알았어요.”
“개도 아니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잠깐, 개라면…….
“혹시 하운드를 부르면 그런 게 가능하려나?”
“오.”
내 말에 한서현은 곧장 하운드를 불러 그곳의 냄새를 맡게 했다. 하지만 한 번 죽으며 후각 기관이 모두 파괴된 모양인지 하운드는 그곳의 냄새를 전혀 맡지 못했다.
“쓸모가 없네요.”
자신의 소환물을 향해 거침없는 말을 내뱉은 한서현은 고개를 저으며 하운드를 역소환했다.
왠지 하운드가 안쓰러워졌다. 붉은 눈동자를 희번덕하게 뜨며 침이나 질질 흘려대는 몬스터인 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잠자리에 남은 마력은 꽤나 짙었다.
‘이곳에서 계속해서 능력을 썼다는 뜻이죠.’
아마도 납치당한 저우샤오첸을 구속하는 데에 능력을 쓰지 않았을까. 이쪽도 정신계? 아니면, 사람을 묶을 수 있는 속박계? 답은 확실하지 않았지만, 주변에 저항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뭐가 되었든 저우샤오첸을 완벽하게 구속하는 데에 성공한 것 같았다.
‘이 흔적으로 적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우리 일행 중에서 추적에 능한 능력을 가진 것은 나와 한서현뿐이었다. 나의 경우는 물리적인 증거를 토대로 적을 찾아내는 훈련을 받았을 뿐이니, 물리적인 증거가 없다면 쓸모가 없고 한서현은 무식하게 자원을 뿌려대는 식이라 정보를 물고 오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마법처럼 딱 이 마력을 가지고 적이 있는 위치를 바로 알아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흠, 확실히. 그런 능력이 있으면 사기적이기야 하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제 마나 회로 중에 그런 능력은 없습니까?’
━아주 온갖 곳에서 만능이 되고 싶어 하는구나.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단신의 무력으로는 한서현은커녕, 재호 수준에서 정리가 될 것 같은 내가 보스 자리를 유지하려면 이런저런 잡일의 마스터가 될 수밖에.
내 말에 잠시 침묵했던 레이가 곧 내 머릿속에 정보를 불어넣어 주었다.
━지금 라인을 따라가면 될 것 같은데, 역시 회로를 활성화시킬 재주가 부족하구나.
‘끄응.’
3획을 개방하고 나서는 내 스펙업에 확실히 시간을 덜 쏟긴 했지. 김재호나, 한서현이 급격하게 성장하기도 했거니와 차송진을 영입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에드워드를 굴려 먹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아무래도 이번 일을 끝내고 나서는 제 자신의 스펙업 수단도 강구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문제는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 3획을 열었을 때하고는 달리 4획은 전혀 감도 오지 않는다는 거지만 말이다.
━각자의 몸은 버틸 수 있는 한계라는 게 있다. 네 놈의 재능으로는 3획도 벅찼어.
나는 겨우 B급의 정신계 재능을 타고 태어났다. 하지만 나는 마나석 도핑까지 해 가며 내가 몸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마나를 끌어다 썼다. 그 부작용을 초회복으로 감당하고 있기야 했지만, 확실히. 초회복은 불사가 아니다.
━더 무리를 했다가 네 심장이 멎어 버린다면? 뇌가 터져 버린다면? 그건 초회복으로도 회복할 수 없을 거다.
적어도 뇌와 심장은 멀쩡해야 회복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거다.
‘흐음.’
하지만 4획까지만 개방해도 탐이 나는 재능들이 잔뜩 있는걸?
‘뇌와 심장을 강화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거 아닙니까?’
━내 말을 어떻게 그렇게 알아들을 수가 있지?
나는 내 머릿속에서 길길이 날뛰기 시작한 레이를 무시하고 일행을 향해 말을 건넸다.
“일단은 이 주변에서 쓸 만한 정보가 있는지 한번 찾아보자고.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좋으니까 뭐든 발견하면 나한테 들고 와.”
“음, 알았어. 여기에서 뭘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인 차송진을 비롯해 일행은 뿔뿔이 흩어져 오두막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유용한 무언가를 건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한서현의 추격조가 무언가 정보를 물어오기 전까지는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후유, 됐다. 잔소리는 그만할 테니 내 말을 무시하는 것 좀 그만해라.
레이의 말에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저 좋자고만 그런 말을 합니까? 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을 하고자 하는 거 아닙니까.’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니냐.
‘저도 그냥 들이박겠다는 게 아닙니다. 방법을 한번 찾아보자는 거죠.’
전이었다면 모르되 나도 이제는 책임질 게 많아진 상황 아닌가.
━어쩐지 네 놈이 그런 말을 하면 영 믿음이 안 간다니까. 여태까지의 네 행동을 돌이켜 봐라!
으음, 그런가? 하긴, 여태까지 진짜 무식하게 박아 본 적이 많기야 하지. 집을 만들 때도 그랬고, 3획을 개방했을 때도 그랬고. 어, 아티팩트를 만들었을 때라든가…….
━여태까지 네 놈이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니까.
그만 생각해 보자. 자괴감이 몰려올 것 같으니.
‘잔소리는 그만한다고 했잖습니까.’
내 투덜거림에 레이가 짧게 사과했다. 안 하려고 했는데, 내 말을 들으니 또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나. 이런 걸 사과라고 하다니. 속으로 투덜거리는 내게 레이가 물었다.
━그나저나 이 해성회 놈들은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냐?
‘흠, 저도 그게 고민입니다. 일단 이 녀석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으니까요.’
해성회라는 조직 자체가 이번 생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활동 자체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적사회에 밀려 사라졌거나, 아니면 아예 활동 영역을 다른 쪽으로 옮겼거나.
‘과거의 쑤어하오주는 그야말로 가차가 없었으니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쑤어하오주 쪽이 아니라 그 아버지 쪽이 가차가 없었죠. 중국의 다른 범죄 조직들을 모두 말려 죽였으니 말입니다.’
과거에는 은월회는 물론이고 다른 범죄 조직까지 싹 그 손에 쓸려 나갔다. 쑤어모시앤의 사전엔 공생 같은 단어는 없었거든. 중국에서 가장 강한 무기를 손에 쥔 그의 선택은 지나치게 이기적이었다.
쑤어하오주는 그때 거의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대비할 방법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귀여운 여자아이가, 주먹 한 방으로 모든 걸 날려 버리는 상황에 뭘 대비할 수 있었겠는가.
‘여러 가지 제약을 달아 두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긴 하지만, 각성 상태의 쑤어하오주보다 강한 각성자는 중국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과거의 그녀는 단신으로 중국을 통일할 만큼 강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테이카 쿠퍼 정도는 와야 그녀를 상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해성회가 얼마나 강했든, 쑤어하오주의 앞에서는 뭉개질 수밖에 없었을 터.
‘대비할 새도 없이 쓸려 나갔을 겁니다.’
그러니 내가 해성회를 모르는 거지.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다르다, 이건가.
‘예.’
살아남은 해성회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미국에 자원을 대 마약을 퍼트리고, 일반인을 현혹시키는 아티팩트를 만들어 평범한 이들의 인생을 망치고, 남의 조직에서 사람을 납치하고…….
적사회는 분명 중국을 안에서부터 갉아먹는 암 같은 조직이었지만, 다른 더러운 조직들을 싹 쓸어 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쑤어하오주를 무력하게 만든 사람은 나였고, 고로 나에게는 이 벌레들을 청소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쳐들어가겠다는 거 아니냐?
‘예, 뭐.’
그편이 깔끔할 테니까?
━깔끔하기는! 조금 전에 그냥 갖다 박는 건 이제 안 하겠다며?
또다시 레이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제28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