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81
76 아름다운 꿈 (4)
오두막에서는 아쉽게도 유용한 정보를 찾아낼 수 없었다. 놈들은 부주의했지만, 이곳에 머문 기간이 극도로 짧았기 때문이다.
“공중을 통해 이동했으니, 이동 중에 흔적이 남지도 않았을 테고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공중을 날아 이동한 사람들을 찾을 길은 마땅찮다.
“그래도 대충 인상착의를 알았으니, 추적해 볼게요.”
결국 또 한 번 한서현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쟤가 없었다면 너희 조직은 망해도 진작 망하지 않았을까.
‘으음, 동의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고로 적을 알지 못하면 백전백패. 한서현을 벨츠머츠에 영입한 게 내 최고의 업적이 아닐까.
어쨌거나 한서현이 정보를 수습하는 동안 우리는 시내의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여자가 납치되어 무슨 꼴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무턱대고 바깥으로 나가서 사람을 찾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은 없었으니까.
고로…….
“어디 우리 재호, 한글을 얼마나 잘 배웠는지 중간 점검해 볼까?”
몇 달간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중간 점검을 해 볼 때다.
내 말에 김재호는 마치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그래? 공부 많이 했잖아.”
내 말에 김재호는 떨리는 눈동자로 차송진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을 위한 변호라도 해 달라는 듯이.
“아직 우리 애가 그, 챕터 하나를 막 뗐을 뿐 엄청나게 공부를 한 게 아니어서요.”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차송진의 말에 내가 그렇게 되묻자, 차송진이 조심스레 말했다.
“모르겠네, 왠지 나도 모르게 변명이 나오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데?”
“그냥 얼마나 배웠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거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말고.”
내 말에도 김재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나저나 걱정도 하고.
“내가 못 하면 송진이 때려?”
“으응? 송진이를 왜 때려.”
“나를 잘 가르치지 못했으니까.”
와중에 자기를 때리는 게 아니라 차송진을 때릴 걸 걱정하고 있다니.
━차송진을 걱정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네가 당연하게 차송진을 때릴 거라고 생각하는 걸 혼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받아쓰기 대회를 개최했다. 받아쓰기 대회에는 에드워드도 참가했다.
[내가 이긴다.]
에드워드의 도발에 얼굴을 찌푸린 김재호가 말했다.
“뭐래.”
“나도 배웠다, 한국어.”
“이상해, 말하는 거.”
“너나 나나.”
“뭐래!”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걸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자, 내가 말하는 걸 받아 적으면 돼.”
나는 천천히 문장을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추우니 꼭 이불을 덮고 자.”
━어려운데.
‘어차피 다 맞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알고 싶어서요.’
내가 부른 문장은 총 열 개. 나는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뒤에서 차송진과 한서현이 긴장한 얼굴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힘내! 저놈한테 지지 마! 형은 벨츠머츠의 희망이야!”
한서현은 그렇게 김재호를 응원했고 차송진은 에드워드에게 파이팅을 날렸다.
“지금 누굴 응원하는 거야! 형은 우리 벨츠머츠를 응원해야지.”
“그, 그렇지만 나까지 재호를 응원하면 에디는 혼자잖아. 혼자는 외롭다구.”
“알 게 뭐야!”
두 사람의 말에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시험에 방해가 되니까 사담은 나가서 해!”
그제야 두 사람은 조용해졌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두 사람의 답안지를 확인했다.
첫 번째 문장은 ‘오늘은 날씨가 추우니 꼭 이불을 덮고 자’. 두 사람의 답안지에 적힌 문장은 차례로 이랬다.
김재호 : 오늘은 날쌔가 추우니 꼬 이불을 덧고 자.
에드워드 : 오느른 날씨가 추우니 꼭 이불을 덥고 자.
“둘 다 틀렸다.”
“왜!”
“어째서!”
와중에 아무도 ‘덮’고 잔다는 걸 맞추지 못했군.
두 번째는 ‘어제는 외숙모가 우리 집에 놀러 왔어요.’였다.
김재호 : 어제는 애숙모가 우리 집에 널러 와써요.
에드워드 : 어제는 외숭모가 우리 집에 놀러 왔어요.
그래도 여기까지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대답은 기상천외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들의 답변을 바라보며 뒷목을 잡았다.
“율무차에 아기를 왜 태워! 사생활 치매? 치매가 왜 걸리는데. 소 잃고 뇌 약간 고치기? 아니, 이 뇌를 고쳐야겠는데.”
사태는 심각했다. 차송진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국어 선생님, 애들 꼴이 왜 이렇죠?”
“죄송합니다.”
“기본적인 맞춤법이 이상한데요.”
“아, 그게 말입니다.”
“제가 좀 어려운 단어를 일부러 고른 게 있긴 하지만 유모차가 율무차가 된 것은 용서할 수 없는데요.”
내 말에 차송진은 꾸벅꾸벅 숙였다.
“다음부터는 바른 지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렇게 제2회 받아쓰기 대회에서 김재호와 에드워드는 0점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었다.
[부분 점수라도 줘! 말도 안 돼, 내가 얼마나 끝내주는 학생이었는데. 그렇지, 차씨?]
[미안하다, 내 잘못이야.]
[아니, 넌 잘못하지 않았어. 오! 이런, 그렇게 우울한 얼굴 하지 마! 난 네가 얼마나 나를 위해 노력했는지 아니까!]
에드워드와 차송진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괴상한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김재호는 0점이라고 쓰인 시험지를 바라보며 우울한 얼굴을 했다. 그 옆에 앉은 한서현이 말했다.
“보스가 너무 어렵게 냈어. 봐, 저놈도 0점이지?”
“응.”
“그럼 됐어. 저놈한테 지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응? 형은 저놈한테 안 졌어! 다음에 더 잘하면 돼.”
참 좋은 걸 가르치고 있었다.
그나저나 차송진과 한서현도 저렇게 방심하고 있을 때는 아닌데.
“두 사람도 여기로 와 봐.”
“으응?”
“영어 시험 봐야지.”
“뭐어?”
“그럼 두 사람은 시험 안 볼 줄 알았어?”
내 말에 한서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여, 영어 시험이요?”
“그래, 그동안 얼마나 잘 배웠는지 봐야 할 거 아니야.”
그동안 에드워드와 짧게라도 계속 이야기를 나눈 차송진과는 달리 한서현은 영어 공부를 하는 꼴을 못 봤다. 그러니 더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이왕 원어민 교사를 데리고 왔는데, 잘 배웠는지는 테스트를 해 봐야지.”
“어, 어떻게 할 건데요. 바, 받아쓰기?”
“외국에서 계속 살 것도 아닌데 영어 단어의 스펠링까지 다 외울 필요는 없지.”
━너도 몰라서 테스트를 못 하는 건 아니고?
레이는 역시 눈치가 너무 빠르다니까! 내가 아는 영어 단어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쪽으로만 발달되어 있었다. ‘계약 의무’니, ‘조건’이니, ‘을’이니, ‘갑’이니 하는 단어는 영어로 쓸 수 있어도 ‘주상복합아파트’ 같은 단어의 스펠링은 모르는 게 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내 영어가 반쪽짜리라는 것을 잘 모르니 괜찮다.
“고로 영어는 얼마나 나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지로 테스트를 보겠다.”
나는 두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물었다.
[그럼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까?]
여기서부터가 내 테스트의 시작이었다.
[나는 잘 지내요. 당신은요?]
그리고 한서현은 바로 탈락이었다.
[서현아…….]
[오늘 점심은 뭐죠?]
[정말이지. 진심이야?]
[오, 그럼요. 나는 무척이나 진심이에요.]
AI와 대화를 해도 이보다는 부드럽지 않을까. 교과서에 적힌 영어만을 내뱉는 한서현은 곧 울먹거리며 나에게서 도망갔다. ‘보스, 미워어엉’하는 말과 함께.
역시 영어 수업계의 희망은 차송진뿐인가.
[그럼 무슨 주제로 얘기를 나눠 볼까?]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 맞아. 이번 일은…… 어때? 저번에 나에게 마약에 대해서 말하다가 방해를 받았잖아.]
조금 더듬거리고 발음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차송진의 영어는 몇 주 만에 상당히 그럴싸해져 있었다.
[마약이 왜 마약으로 불리는지 말해 주겠다고 했었지.]
[으응.]
[그야 간단해. 마약에 빠지면, 현실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야.]
[현실을 살아갈 수 없어?]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내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마약이 보여 준 세계가 현실보다 낫다고 생각하니까. 거기에서 느낀 쾌락을 현실에서는 다시는 느낄 수 없으니까.]
마약 중에는 쾌락을 느끼는 중추를 파괴시키는 놈들이 있었다. 현실에서 자잘하게 느꼈던 기쁨을 아예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다.
그런 식으로 마약에 빠지게 해서, 마약을 하지 않으면 현실을 너무나도 지루하고 재미없고 괴롭게 만들어 버리는 거지.
결국 순간의 쾌락 때문에 시작했던 마약으로 인해 자신이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오로지 마약 안의 세상에 갇혀 버린다.
[샤오첸이 만든 마약에 부작용이 없다고 말했을 때부터, 나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어. 왜냐, 완벽히 아름다운 꿈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완벽히 무너트릴 수 있을 테니까.]
내 말을 차송진은 천천히 곱씹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고 내가 한 말을 이해한 차송진의 눈가가 떨렸다.
[완벽한 꿈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한 세상에 남겠어?]
그런 의미에서 저우샤오첸이 만든 ‘메이멍’은 무척이나 위험했다. 결국 저우샤오첸 또한 그 약이 만들어 낸 자신의 환상 속에 갇히지 않았는가.
테스트는 통과다.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저우샤오첸이 위험한 건 그뿐만이 아니야. 곧 이제 그녀에게도 부작용이 찾아올 시간이 되었잖아?”
“부작용이라면…….”
치앤츠리앤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저우샤오첸이 만든 약의 효과가 모두 사라지는 건 대략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부작용이 없다는 환상마저 모두 사라지고 나서는, 극도의 우울감과 함께 약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고 했지.
자기 자신을 속일 만큼 약을 먹고 있었다면, 저우샤오첸이 자신에게 투여한 약의 양이 적지는 않을 터.
“납치당한 상황에서도 계속 약에 접근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접근할 수 없다면?”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물리적으로 추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각성자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약에 접근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
그리고 마력이 폭주한 각성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지.
* * *
긴 금발을 대충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있는 젊은 여자, 조앤이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그들이 납치해 온 여자가 파리한 안색으로 잠들어 있었다. 푸른 눈을 찌푸리며 조앤은 입술을 깨물었다.
“계속 저렇게 재워도 되는 거야?”
“응.”
그 말을 받은 것은 구석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던 나른한 인상의 남자, 올레크 신이었다.
올레크의 성의 없는 대답에 조앤은 열을 내며 말했다.
“며칠 전에도 그렇게 말했잖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그녀의 깐깐한 말에 검은 더벅머리를 긁적거린 올레크는 가만히 잠들어 있는 저우샤오첸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안 죽었어.”
“이렇게 오래 재워 본 적은 없다며.”
“전에 한 달도 재운 적이 있었는데…….”
“깨어나지 못한 건 세지 말지?”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여자가 끼어들었다. 탄탄한 체격에, 콧등에 일자로 된 흉터를 가진 여자는 그 둘에게 주변 가게에서 사 온 빵을 집어던졌다.
“빵이나 처먹고 입이나 닫아.”
두 사람은 허겁지겁 입에 빵부터 욱여넣었다. 어젯밤부터 먹은 것이 없는지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연락은 언제 오는 거야,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건데?”
조앤의 말에 빵을 집어던졌던 여자, 야푸는 눈을 찌푸리며 구석에 놓인 물그릇을 바라보았다.
“아직 연락이 없잖아.”
“빌어먹을!”
욕을 내뱉은 조앤이 말했다.
“빵에 건포도가 있잖아!”
제28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