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92
78 악몽이 지나간 뒤 (2)
저우샤오첸이 뿌려 두었던 마력이 흩어지며, 잠이 들었던 사람도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나 중독 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쉽사리 깨어나지 못하겠지만, 그보다 증상이 덜했던 사람들은 벌써 눈을 뜨고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기에서 비비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이 모든 일을 저지른 범인이라고 몰리겠죠.’
내가 나쁜 놈인 거야 부정하지 않겠지만,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욕을 먹는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란 말이지.
음, 인구 오천만 명의 나라에서 나쁜 놈으로 찍히는 것과 인구 십사억 명의 나라에서 나쁜 놈으로 찍히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기도 하고.
‘음, 절대로 안 돼.’
그러니까 빨리 튀자.
물론 튀기 전에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었다.
“에드워드는?”
내 말에 한서현이 정신을 집중하듯 눈을 찌푸렸다.
“찾았어요.”
다행히 저우샤오첸의 마력이 모두 걷힌 상황이라 그런지, 한서현의 능력은 무사히 발휘되었다.
우리는 모두 한서현이 부른 검은 독수리에 차근차근 올라탔다. 치앤츠리앤은 저우샤오첸의 시체를 챙겼다. 도움은 거절했다. 다른 이의 손이 저우샤오첸에 닿는 게 싫다는 거겠지.
그런 치앤츠리앤에게 말을 건 것은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그렇게 그 친구를 들고 다닐 순 없어요. 봐요, 피범벅이 되었잖아요.”
차송진의 말대로 치앤츠리앤의 품은 이미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시체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에 인상이 다 찌푸려질 정도니.
우리야, 비위가 강하니 괜찮다지만 차송진은 아무래도 힘들겠지.
하지만 차송진이 치앤츠리앤에게 말을 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 친구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에 데리고 갈 생각이죠? 그럼, 그렇게는 안 돼요.”
차송진은 진심으로 치앤츠리앤을 걱정하고 있었다! 피만 보면 덜덜 떨 정도로 피를 무서워하는 주제에.
“그 친구 생각도 해 줘야죠, 그렇게 불편하게 안겨 있는데 편하겠어요?”
시체는 점차 차가워진다. 점점 차가워지는 몸을 안고 있으면, 제아무리 대단한 정신력을 가졌어도 곧 빠질 이빨처럼 멘탈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차송진이 그걸 생각하고 저렇게 말한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러니까 고집부리지 말고 도움을 받아요.”
차송진의 말에 치앤츠리앤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 차송진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서현이라면 안전하게, 정말로 안전하게 그 친구를 데리고 가 줄 수 있으니까요!”
“형?”
갑작스러운 부름에 한서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지만, 결국 차송진의 눈빛 공격에 넘어갔다. 하긴, 차송진이 ‘정말로?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안 해 줄 거야?’ 하는 눈을 하면, 좀 거절하기가 그렇달까.
치앤츠리앤은 저우샤오첸의 몸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저우샤오첸의 몸을 검은 모래가 감싸들었다. 검은 모래에 둘러싸인 저우샤오첸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치앤츠리앤의 눈동자가 제게 향하자 한서현은 퉁명스레 말했다.
“나도 저대로 두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치앤츠리앤은 그 까칠한 반응에도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뭐, 이제 다 됐나. 치앤츠리앤을 검은 독수리에 태운 뒤,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어디에 있는데?”
내 말에 한서현이 한 곳을 조용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그야말로 ‘슈퍼히어로’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 있었다. 불타는 건물 안쪽으로 거침없이 몸을 던지고, 사람들을 구해 내는 그의 근처에는 어렴풋이 깨어난 시민들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길을 따라 번지는 불길을 따라 이동한 모양인지, 이미 에드워드는 나와 헤어졌을 때보다 한참이나 동쪽에 있었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멀쩡해 보이네요.’
에드워드의 가장 큰 단점은 오래된 핸드폰 배터리처럼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방전돼 버리는 몸뚱어리였다.
에드워드가 완전히 지치는 데 걸리던 시간은 보통 3시간 내외. 하지만 지금 에드워드는 그 한계를 넘어서 활동하고 있었다. 단순히 숨이 붙은 채로 까닥이는 게 아니라 아주 사방팔방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제가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에너지 자체를 받아들이라고 할 때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니 말이에요.’
━이런 걸 실전에 강한 타입이라고 하지 않던가?
‘뭐, 실전에 약한 타입보다는 백 배는 낫지만요.’
━그래도 네 녀석에게 착실히 배워 두지 않았더라면, 저 녀석 저렇게는 움직이지 못했을 거다.
애초에 ‘눈으로 보고 반응해야’만 능력이 발동된다고 믿었으니까. 확실히 저렇게 자연스럽게 주변에 있는 에너지를 모두 빨아들여 자신이 이용한다는 생각 같은 건 못했겠지.
저우샤오첸의 마력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있는 이 환경은 에드워드에게 무한한 배터리를 달아 주었다.
부서지는 빌딩의 위치에너지를 흡수해서, 깃털처럼 가볍게 빌딩의 구조물을 바닥에 내려놓질 않나, 불을 흡수해 한 번에 화재를 진압해 버리질 않나.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슈퍼히어로 뺨치는 활약상을 보이며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안 데리러 가냐?
‘나름 범죄 조직의 리더로서, 뭐랄까, 저런 녀석하고는 가까이 갈 수 없는 기분이 든달까요. 너무 반짝여서 눈이 멀어 버리는 것 같달까.’
━그게 무슨 헛소리냐.
‘거리감이 느껴진달까나.’
━갑자기?
‘갑자기라기보다는 전부터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에드워드랑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야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99%의 사람과 본인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니까.
음, 레이가 저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내가 대단한 사회 부적응자처럼 느껴지는데. 다행히 더 서글픈 생각에 빠지기 전, 한서현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아무래도 지금 접근하는 건 무리인 것 같은데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격자를 남기지 않고 에드워드와 접촉하는 건 당장은 무리였다.
“……일단은 저대로 두자고.”
저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했다. 도와주지도 못할 바에야, 훼방을 놓을 순 없지.
외부에서 온 구조대가 도착하면, 그 혼란한 틈을 타 에드워드를 빼내면 된다.
그동안 우리는 도시를 벗어난 숲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주변 슈퍼에서 주워 온 음식들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랄까, 빌런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확실히 히어로가 어울리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빌런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것도 홧김에 한 말이니까.
기본적으로 에드워드는 좋은 놈이다. 철새니, 뭐니 하는 멸칭이 붙을 정도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개차반이었지만, 그래도 인성이 그릇된 놈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그 와중에도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지 않은가.
그리고 녀석에게 임시 교사를 맡기면서 깨달은 건데, 에드워드는 은근히…….
‘남을 가르치는 걸 좋아했죠.’
정신연령이 한참이나 어린 김재호와 어울리는 것도 그렇고, 은근히 마음 씀씀이가 넓다고 해야 하나. 은근히 남을 돕는 걸 좋아했다.
‘아마 이게 저 녀석의 진짜 성격일 겁니다.’
━진짜 성격이라니? 그럼 가짜 성격도 있나?
‘그전까지 에드워드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잖습니까? 테이카 쿠퍼보다 멋진 헌터가 되어서 자신을 차 버린 오승우에게 복수하겠다는 강박이요.’
음, 에드워드를 꽤나 좋아하게 된 나지만 에드워드의 그 꿈은 응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네가 복수 예찬론자인 줄 알았는데?
‘그거야, 목숨이 걸린 일에서나 그렇고요. 테이카 쿠퍼는 엄밀히 말해서 에드워드의 원수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에드워드가 오승우에게 하고 싶은 건 복수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서 인정받는 거였지.
그리고 그런 건, 매달릴수록 매달리는 쪽만 처참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의 눈에 차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건, 생각보다 무척이나 거지 같은 일이거든.
━그래서 뭐 어쩔 생각이냐. ‘너는 너무 밝고 좋은 녀석이니까 우리랑은 여기에서 이만 헤어지자’라는 비겁한 말로 안녕을 고할 생각은 아니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해 보긴 했는데요.’
그건 그래도 에드워드에게 너무한 일이지. 너를 위한다는 말로 그렇게 누군가를 버려 버리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에드워드가 우리랑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도 말이다.
‘언젠가 저 녀석도 스스로 깨닫게 될 겁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나는 기꺼이 내 품에 잘못 날아든 새를 다시 날려 보낼 생각이었다.
* * *
김명철은 게이트를 넘는 순간 활짝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드디어 다시 지구다.
이번 S급 게이트의 공략은 한 달이라는 시간을 잡아먹었다. 단단히 준비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승리한 건 김명철이었다.
“거지 같은 수속성 몬스터들 같으니.”
불과는 상극인 몬스터에 한참을 시달려서인가, 온몸이 노곤했다. 그나마 김명철은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그 뒤로 나오는 붉은개 길드의 길드원들은 직립보행을 버리고 네발로 기는 상태였으니.
“우리 길드 이름이 붉은개라고 해서 개처럼 기어서 쓰겠나! 다들 일어나지 못해?”
“정말로 죽을 것 같거든요.”
“한 번만 봐주세요오.”
“에휴.”
김명철은 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명철은 재빨리 주변에 카메라를 든 기자가 없는지 살폈다. S급 게이트가 공략된 순간을 포착하려는 기자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고, 역시나 기자 몇 명이 김명철의 눈에 띄었다.
“내일 독점 인터뷰해 줄 테니 이 추태는 우리끼리만의 비밀로 하자고, 으응?”
김명철의 능글맞은 말에 기자들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명철은 그 기자들 틈에 있는 낯익은 얼굴을 보며 미소를 씨익 지었다.
“오, 이게 누구야!”
늘 그를 들들 볶아대던 황 비서의 얼굴이 반갑게 느껴질 때가 있나. 하지만 곧 그 반가움은 휘발되고 말았다. 황 비서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뭔가!
“나 진짜 죽을 것 같으니까, 아무리 급한 서류라도 내일 처리하자고, 응? 길드장이라서 억지로 서 있는 거지, 나도 저 친구들처럼 네발로 기고 싶은 심정이라서 말이야.”
김명철의 농담에도 황 비서는 웃지 않았다. 아니, 웃기는커녕 당장에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처럼 눈가가 붉었다. 그 순간 김명철은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웃음기가 싹 사라진 얼굴로 김명철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길드장님, 그러니까요, 호산 씨가, 호산이가…….”
그 뒤로 이어진 소리에 김명철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말도 안 된다. 그 녀석이, 어째서. 그 반짝반짝 빛이 나던 녀석이 어째서.
김명철은 굳은 얼굴로 입을 벌렸다.
“그러니까…….”
차마 김명철은 그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그 녀석이, 정호산이 죽었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김명철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제29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