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95
79 해성회 (2)
연결이 거칠게 끊기는 감각에 유마는 비명을 내지르며 피를 토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매개체에 자신을 투영하는 그녀의 능력은 대단했지만, 그만큼 부담이 상당했다. 이런 식으로 연결이 간파되어 공격이라도 당하는 순간에는, 실제로 본체까지 대미지가 그대로 돌아왔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유마는 그 어떤 거리낌도 없이 능력을 썼다.
왜냐, 여태까지는 그녀의 감시를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누구도 ‘물’ 따위를 의심하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자신이 조금 전까지 입을 대고 마셨던 물이라면 더더욱.
거기에 유마의 재능은 완벽했다. 물에 녹아드는 그녀의 재능은, 그 어떤 각성자조차 쉬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 강해 보이지도 않는 남자였다. 외국어를 사용했기에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어도, 그들의 능력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다. 가장 위험한 건 모래와 죽은 생명체를 조종할 수 있는 남자애였다.
치앤츠리앤 또한 강자였다.
저우린에게서 무술을 사사한 그녀는 검을 쥔 상태에서는 이 중국 내에서도 상대할 사람이 몇 없는 진짜 강자 중 강자였다. 당장 은월회에서 저우샤오첸을 납치할 때 가장 신경 쓴 것도 치앤츠리앤이 완벽히 자리를 비울 때를 노리자는 거였으니.
그 밖에도 불타는 빌딩 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구한 붉은 영웅이라든가, 그림자에 녹아드는 능력을 지닌 또 다른 각성자까지.
그 어딘가 야비하게 생긴 남자는 사방에 참견만 할 뿐, 자신의 능력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걸까.
‘역시 숨겨 둔 게 하나쯤은 있었다는 걸까.’
유마는 손등으로 피를 닦았다. 여전히 속이 따끔따끔 아팠지만, 고통을 참아내는 건 익숙했다.
다만, 이대로라면 그쪽을 기민하게 마크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멀리에서 지켜보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전처럼 그들의 옆에 딱 달라붙어 정보를 빼 오는 건 불가능했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미 계획이 틀어진 상황이다. 거기에 적들은 전에 없이 강력해 보였고, 심지어 자신들을 쫓으며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유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위험해.’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첸륜은 수도 없이 많은 위험을 스스로 헤쳐 나왔다. 이번 일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첸륜에게는 언제나 답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도 어쩌면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초조하게 굴지 않아도 될 거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몰린 적은 없지 않나?
게다가 이번에는 올레크도, 조앤도, 야푸도 없었다. 그 세 사람은 지닝시에서 죽어 버렸으니까.
‘첸륜은 얼마든지 오라고 말했지만…….’
그렇지만, 이런 녀석들이 오는 건 역시 곤란하지 않을까. 유마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첸륜은 언제나 그녀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그녀 또한 첸륜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이고 싶었다.
이번 작전이 실패한 건 모두 그녀의 탓이었다.
‘쓸모없어지면 안 돼, 쓸모없어지면…….’
유마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 * *
“으어어.”
“그래, 이거나 먹고.”
정신을 잃었던 에드워드는 그 다음 날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온몸이 쑤신다고 아주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무리하래?]
내 말에도 에드워드는 그날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누군가를 구했어.]
에드워드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누굴 구한 건 그때가 처음이거든. 어, 그러니까 나는 비각성자하고 거의 엮이질 않았으니까.]
미국은 땅이 넓다. 그 넓은 땅에서 용병으로 산다는 건 제대로 된 거주지도 없이 매번 떠돌아다닌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철새라고 불렸던 이놈이 어떻게 살아왔을지는 뻔하다.
누구한테 정을 붙일 새도 없이 팍팍한 삶이었겠지.
그런 놈에게 참으로 강렬한 경험이었겠군.
[나는 중국어를 못하니까 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그래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더라.]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영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건 알지?]
[나한테 고마워하는 것 같았어.]
그야, 그 불구덩이에서 자신들을 건져 주었으니 당연히 고마워하겠지.
[내가 사람을 살렸어!]
[그래…….]
에드워드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 옆에서 김재호가 말했다.
“쟤 저거 안 먹는대?”
“아냐! 머거! 머거!”
김재호의 말을 알아들은 에드워드는 재빨리 주먹밥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야, 조금만 한눈을 팔면 자신이 먹을 걸 바로 빼앗겨 버리니까.
‘굶긴 기억은 없는데 말이죠.’
━좀만 한눈을 팔면 김재호가 자꾸 먹을 걸 뺏어 가니까 그렇지.
흠, 우리 애가 조금 식탐이 많은 걸 어떡합니까. 그리고 김재호 또한 에드워드에게 먹을 걸 많이 뺏겼다. 이름을 적어 둬도 한글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자꾸 뺏어 먹는다고. 둘 사이에 끼인 나만 불쌍하게 됐다.
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사람을 구한 건 잘했는데, 이건 뭐냐.]
나는 에드워드에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중국 포털 사이트에 에드워드의 얼굴이 바로 박혀 있었다. 기절한 어린아이를 안고서 뛰어가는 에드워드의 모습이 잘 찍혀 있었다.
[하하, 이것 참. 선행은 누구도 모르게 해야 하는 법인데.]
그 사진을 보며 에드워드는 쑥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내가 버럭 외쳤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얼굴이 다 팔렸잖냐!]
[아차차!]
[아차차, 는 무슨! 내가 뭣 때문에 가면을 줬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그야, 사람들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 눈빛에 지레 찔린 것인지 에드워드가 시뻘게진 얼굴로 말했다.
[그, 그래도 나쁜 일로 얼굴이 팔린 건 아니니까…….]
[확실히 나쁜 일로 얼굴이 팔린 건 아니다만, 그래서 더 나빠. 다들 너를 찾고 싶어 하거든.]
지금 에드워드는 중국의 영웅이 되었다.
지닝시에서 일어난 참사를 정부는 어떻게든 덮고자 했다. 참사를 덮는 데에 가장 좋은 소식은? 그곳에서 일어난 선행을 홍보하는 거다. 거기에 에드워드가 벌인 일은 정말로 말도 안 될 정도의 선행이다.
에드워드가 직접 구한 사람만 백 명이 넘을 정도니까.
온몸을 불살라 사람들을 구한 다음에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의인.
[사람들은 어떻게든 너를 찾아서 보상해 주고 싶어 한다고.]
[보상 같은 건 필요 없는데.]
[네 생각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니까. 어쨌거나 저 사람들은 너를 꼭 찾으려 들 거라는 거야.]
[하지만 난…….]
에드워드 시헬리스라는 이름은 미국에선 범죄자가 된 지 오래다. 테이카 쿠퍼를 공격한 죄로 수배되었고, 그 죄를 피해 도주한 범죄자.
[인터넷은 물론이고 뉴스에서까지 네 정체에 대해 추측을 쏟아 내고 있어. 단순히 네가 보상을 바라지 않아서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과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지.]
[사실이라면?]
[범죄를 저지르고 중국으로 숨어든 사람이 아니냐.]
그 말에 에드워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지금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네 신상이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야.]
결국 이번 일로 에드워드 시헬리스라는 존재가 양지로 끌려오게 됐다는 거다.
[하지만 아주 나쁜 일도 아니야. 왜냐, 이번의 일로 중국에서는 너를 정식 국민으로 귀화시키고 싶다는 말도 하고 있거든. 네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말이야.]
중국은 국내의 각성자가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동시에, 해외의 각성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귀화 정책을 펴고 있었다.
개중에는 미국처럼 범죄 기록을 지워 주는 것도 있었다.
[범죄 기록을 지워 준다고…….]
[그래, 게다가 넌 이 나라에서 이미 영웅이잖아.]
단순히 범죄 기록을 지워 주는 걸 넘어서서 에드워드를 진심으로 반기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중국은 그리 좋은 나라가 아니지. 공산 국가기도 하고, 국가의 힘이 너무 세서 영 별로기도 하고. 그래도 말이지, 이 정도로 ‘영웅’이 된 상태면 너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거야.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뜻이야. 게다가 더는 ‘에드워드 시헬리스’라는 신분을 버리지 않아도 돼.]
내 쪽에서 했던 제안과는 달리 본인의 신분을 그대로 지킬 수 있다는 거다. 후에 미국으로도 당당히 제 이름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고.
[어어…….]
[한번 잘 생각해 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에드워드의 어깨를 두들겼다.
“보스! 찾았어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드디어 그놈들의 근거지를 찾아낸 건가!
“고생했다!”
내 칭찬에 한서현은 퀭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그쪽에서 바보같이 반응해 주지 않았다면, 더 한참 걸렸을 거예요.”
하긴, 중국어도 모르는 한서현에게 얼굴도 모르는 놈들의 근거지를 찾아 달라는 건 참으로 무리인 부탁이었다.
그나저나 그쪽이 바보같이 반응했다니? 내 눈빛을 받은 한서현이 입을 열었다.
“그쪽에 가까워질 때마다 연결이 끊겼거든요.”
“아하, 너무 과민 반응했다는 건가?”
“예.”
한서현이 아예 어느 쪽으로 다가가기만 하면 기겁을 하며 신호를 차단했다는데, 덕분에 범위를 줄여 나갈 수 있었단다.
완벽하게 신호를 차단하려는 게 오히려 화가 된 셈이다.
“덕분에 대략 위치를 잡았어요.”
그리고 그 정도로 범위를 좁힌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차피 그쪽도 우리가 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을 거고.”
적은 이미 우리가 본인들에게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쉬운 싸움이 될 것 같지는 않네.”
여태까지는 정보의 우위로 상대방이 제대로 방비하기도 전에 쳐들어가서 한탕 해 먹는다는 전략을 고수했지만, 이번에는 그게 불가능했다.
적 또한 정보전에서는 우리에 뒤지지 않는다. 아니, 단순히 뒤지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적의 능력치는 분명 우리를 상회하고 있다.
지금도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지.
내가 자각할 수 있는 범위도 기껏해야 내 몸을 기준으로 사방으로 75㎡ 정도니까. 이 밖으로 넘어가면 나로서도 그쪽의 감시를 눈치챌 수가 없거든.
내 주변에 km 단위로 능력을 써 대는 괴물들이 잔뜩 있어서 그렇지 이 정도도 엄청난 거다. 웬만한 각성자들은 자기 주변 몇 m 정도만 겨우 지각 범위에 넣는다고!
보통의 경우에는 한서현에게 감시를 대비하라고 말해 두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물이 매개체라 육안으로 구분하는 게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막말로 구름이나, 안개, 수증기 따위로도 우리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원거리에서 상대방을 그렇게 스토킹할 수 있다니. 정말로 엄청난 능력이다.
게다가 단순히 감시에 끝나지 않고 한서현의 능력을 차단할 정도로 원거리에서도 능력을 다루는 데에 능숙하기도 하고.
그 과민 반응이 오히려 우리를 그쪽에 안내하는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능력에 비해서 아무래도 지능은 낮은 것 같은데…….’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고마운 일이지.
그들의 위치를 대략 파악했겠다, 이제는 직접 그곳으로 찾아갈 때다. 내 말에 한서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 바로 그렇게 갈 순 없어요. 말했잖아요. ‘대략’ 알아낸 거라고.”
“그러니까 그 대략이라는 게…….”
한서현은 도시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무 대략이었잖냐!”
못해도 몇 ㎢는 돼 보일 공간에 내가 비명을 내지르자 한서현이 소리를 바락 질렀다.
“중국 땅이 더럽게 넓은 걸 어떡해요!”
하긴, 이 넓은 땅에서 저 정도로 장소를 특정한 것도 대단하긴 하지.
“그렇다고 해도 저길 무턱대고 쳐들어갈 수는 없고…….”
차라리 아예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면 싹 쓸어버리면 그만이지만,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편의를 위해서인지. 하필이면 해성회의 근거지는 도시 한복판에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저곳에서 소란을 벌이는 순간 이 중국의 핫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가뜩이나 에드워드가 붉은 영웅이니, 뭐니 하는 별명으로 유명해진 와중에 우리의 신상이 털리는 일은 피하고 싶다.
“방법이 있어?”
내 말에 한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든든하구나, 서현에몽!
제29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