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04
81 한 명만을 위한 쇼 (1)
“와아악!”
어디선가 들려온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오승우는 깜짝 놀라 태블릿을 떨어트렸다. 재빨리 태블릿을 주워 쓱쓱 문지른 오승우가 태블릿 구석에 간 금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쉬며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오승우가 자신의 방과 바로 붙어 있는 옆방의 문을 열었다.
조금 전 깜짝 비명을 내지른 범인이 침대에서 몸을 구르는 모습을 본 오승우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일이에요?”
재빨리 휴대폰을 뒤로 감춘 테이카는 두 눈을 굴리며 오승우에게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퍽이나. 저도 모르게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오승우는 그대로 팔짱을 꼈다.
“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게 비명을 지른 건데요.”
“……내가? 비명을?”
테이카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그렇게 되물었지만, 오승우는 그 깜찍한 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들으라고 소리를 지른 줄 알았는데요.”
오승우의 단호한 대답에 테이카는 슬쩍 자신을 가리켰던 손가락을 내렸다.
“미스터 오는 참 사람을 민망하게 만든다니까.”
“진짜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게 누구인데요. 저번에 열 살짜리 꼬맹이랑 인터넷에서 싸우다가 법무팀을 불렀던 건 까먹었어요?”
“걔는 자기가 서른세 살이라고 했거든요?”
“예, 한 문장에 스펠링을 다섯 개는 틀리는 서른세 살이었죠.”
오승우의 말에 테이카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인터넷에서 맞춤법을 죄다 맞게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래요? 다들 엉망진창이거든요?”
“그러니까 왜 그렇게 엉망진창인 사람들이랑 굳이 말을 섞는 거예요?”
“심심해서?”
그 말에 오승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원래도 툭하면 지루하다는 말을 내뱉곤 했지만, 이제는 쉴 새 없이 S급 게이트를 물어다 줘도 저놈의 심심하다는 말이 사라지질 않으니 문제였다.
역시 저번에 만난 그놈들이 테이카의 버릇을 다 버려 놓은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사고를 친 건데요?”
“엄밀히 말하자면 사고를 친 건 내가 아니에요. 음, 그렇지. 오히려 나는 누군가 쳐 놓은 사고를 수습하는 역할이랄까.”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 그 대답에 오승우는 테이카를 가만히 째려보았다. 그 숨 막히는 시선에 침대에서 슬쩍 자세를 고쳐 앉은 테이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냥, 중국 범죄자한테 두 번째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떨까 하고.”
“중국? 범죄자?”
그 자극적인 키워드에 오승우의 눈이 흔들렸다. 테이카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뭐, 아주 글러 먹은 사람들은 아니에요. 듣기로는 IMS한테서 애들도 구출하고 그랬다던데. 아, 그리고 아주 능력이 출중하대요. 음, 대충 미국에서 와서 용병대를 운영할 정도만 도와주면 나중에 사례하겠다던데…….”
“누구예요, 당신한테 그런 부탁을 한 사람은?”
오승우의 말에 테이카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오승우는 제 눈치를 살살 보는 테이카의 얼굴을 보며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솔직하게 말해요.”
“그게 말입니다…….”
테이카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승우는 몇 번이나 몸을 휘청거렸다. 자신이 애지중지 길러 온 초 SS급 헌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벨츠머츠!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오승우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놈들이랑은 또 언제 연락을 나눈 건지.
“도대체! 언제 그런 짓을 저지른 거예요?”
“저번에 미스터 오가 영입 제안을 했던 사람 기억나요? 골든데이 용병대의 리더요. 그 사람이에요.”
그 말에 오승우는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그토록 경계하던 벨츠머츠를 눈앞에서 놓친 걸로도 모자라 그들을 영입하려고까지 했다니.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웃음기가 가득한 테이카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오승우는 깨달았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는 것을.
“세상에.”
오승우가 충격을 받거나 말거나, 테이카는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설마하니 그쪽에서 나한테 다른 사람을 부탁할 줄은 몰랐어요.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는데, 듣다 보니 설득이 되어서는. 그러니까 아직은 나를 완벽하게 믿을 수 없다는 거잖아요. 일단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 준 다음에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거겠죠.”
“……그래서 그쪽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요?”
‘중국인 범죄자’로 퉁칠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상대방은 무려 중국 갱단! 중국 갱단을 통째로 들여오겠다는 테이카의 계획에 오승우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테이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뭐, 전직 갱단이긴 한데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대부분이 애들이라는데. 앞길이 창창한 꼬맹이들한테 은혜를 입혀 놓으면 우리도 좋은 거 아닌가?”
“그 꼬맹이들을 어느 세월에 키워서 쓸모 있는 전력으로 만드는데요.”
“음, 삼 년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그 철딱서니 없는 말에 오승우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여간, 애를 키워 보지도 않은 놈들이 꼭 저렇게 말하지.]
“지금 뭐라고 했어요?”
오승우는 시치미를 뚝 뗐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엄청 길게 뭐라고 했는데요?”
“아무 말도 안 했다니까요.”
오승우의 말에 테이카는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세계 최강의 헌터가 자신을 노려보는 데에도 오승우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애초에 지금 사고를 친 사람은 오승우가 아니라 테이카였으니, 새삼 저렇게 눈을 뜬다고 오승우가 찔릴 리가 없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건데요. 정말 그 중국인들을 데리고 올 겁니까?”
“정착만 도와주면 되니까, 그다지 어려울 건 없지 않을까요?”
“그쪽이 사고를 치면, 모두 이쪽 책임이 된다는 건 알고 있는 말이죠?”
“별일이야 있겠어요?”
그 태평한 말에 오승우는 생각했다.
별일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의 수습은 자신의 몫이 될 것이다.
“안 돼요?”
하지만 그걸 모두 알면서도, 결국 오승우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정착만 도와주고 손을 떼는 겁니다.”
오승우의 말에 테이카는 실실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 낸 테이카는 배부른 사자처럼 침대에서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본 오승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나저나 아까 소리는 왜 지른 건데요?”
“아니, 메시지를 보니까 어이가 없어서요. 갑자기 생면부지의 사람을 잔뜩 떠맡기다니, 정말이지 상식 이하의 짓 아니에요? 진짜 내가 마음이 넓어서 망정이지, 진짜 이 대가는 나중에 꼭 받아 낼 거예요.”
“…….”
테이카의 말에 오승우는 속으로 한숨을 푸욱 쉬었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헌터를 케어한다는 건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 * *
나와 첸륜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우리 일행은 해성회 본부에서 저마다 몸을 풀고 쉬고 있었다. 뒤늦게 거실로 들어온 내 눈에 바로 보인 것은 소파에 지친 얼굴로 널브러져 있는 차송진이었다. 한서현은 구석에서 살벌한 표정으로 중국어 회화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꺼 얼뫄에오?]
역시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더니. 한서현은 영 외국어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 일단 발음이 끔찍해도 너무 끔찍해. 음, 그래도 공부를 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
슬쩍 시선을 차송진에게로 돌린 내가 물었다.
“에드워드는?”
“재호랑 같이 작은 방에. 꼬맹이들이랑 놀아 준다고 갔어.”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꼬맹이들?”
“응, 그 꼬맹이들 말이야. 아무래도 영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야.”
확실히 김재호는 어린 애들에게 약했지. 과거의 사건 때문일 거다. 그나저나 에드워드도 같이 갔다니, 의외인걸. 김재호와 둘이 죽이 잘 맞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꼬맹이들을 챙기러 갔을 줄이야.
“걔는 왜 찾아요?”
“걔라니, 그래도 너보다 몇 살이나 나이가 많은데.”
차송진의 말에 한서현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외국 사람은 나이를 안 챙기지 않나?”
“그래도 예의는 챙겨야지.”
차송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의 외장형 양심! 내가 차송진의 편을 드는 걸 본 한서현은 슬그머니 말을 고쳤다.
“그 사람은 왜요?”
“물어볼 게 있거든.”
“뭔데요?”
“그건 비밀.”
내 말에 고개를 홱 돌린 한서현이 다시 중국어 회화책을 시선을 돌렸다.
“엿듣지 마라.”
“……엿들어도 모르거든요, 영어로 말할 거잖아요.”
“아.”
삐친 티가 팍팍 나는 한서현을 뒤로 하고 나는 작은 방으로 향했다. 김재호와 에드워드는 그곳에서 꼬맹이들과 함께 TV로 웬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음, 이래서야 놀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은 공간에 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 같은데. 김재호와 에드워드의 주변으로 한참이나 거리를 둔 꼬맹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볼을 긁적거렸다.
문을 열고 내가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김재호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재호야.”
“쉿.”
김재호는 내게 짜증을 냈다.
“중요한 장면.”
하여간, 까다롭다니까. 뭐, 애초에 내가 볼일이 있는 쪽은 저쪽이 아니긴 했다. 나는 에드워드를 향해 손짓을 날렸다.
[나?]
[그래,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내 말에 에드워드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쉬이이잇!”
우리를 향해 김재호가 입에 손가락을 들이댔다. 주변에 있는 어린애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이런, 무슨 얘기를 하든 여기에서는 무리군.
나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로 에드워드에게 눈짓했다. 애들의 등쌀에 우리는 작은 방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나를 부른 건데?]
[뭐…….]
나는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정이 들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말이다. 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내 생각은 똑같다.
역시 에드워드는…….
[저번에 내가 한 말 생각해 봤어? 중국의 영웅이 된 지금, 원한다면 이곳에 남을 수도 있다는 말 말이야.]
[중국이 좋은 선택지가 될지 모르겠다며.]
[아니면 미국으로 돌아가는 건 어때?]
내 말에 에드워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해성회를 보낼 때 나를 끼워서 보내겠다는 뜻이야?]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미국 국적이 존재하지 않는 그쪽과는 달리 너는 미국 국민이었잖아. 그런 수가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아. 다만, 너를 받아들이고 싶게 만들어야지.]
[그게 무슨…….]
[네가 원한다면 당당히 두 발로 미국 땅을 밟게 해 줄게.]
애초에 에드워드는 우리와 함께할 이유가 없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우리에게 몸을 의탁했을 뿐. 애초에 빌런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놈이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겠다며 몸을 던진 것만 봐도 그렇다.
본성이 착한 놈이라는 거다.
[우리와 함께한다면, 너는 쉽사리 양지로 나갈 수 없을 거야. 지금 쓴 누명을 벗기는커녕, 더욱 심한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겠지.]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우리가 벌인 일에 대한 욕이 한창 올라오고 있었다. 뭐, 사람들을 내쫓으려고 일부러 악당을 자처하긴 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려나. 심지어 지닝시에서 일어난 참사와 이번 사건을 엮는 이도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와 엮일수록 에드워드의 인생은, 그가 바랐던 성공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한테는 그런 단점을 감수할 메리트도 전혀 없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모종의 목적을 갖고 모인 모임이고, 그 목표는 사회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거든.]
사회적인 성공은 무슨, 일이 모두 끝나고 나서 사회적인 매장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니 묻는 거다.
[어떻게 하고 싶어?]
에드워드의 생각이 어떤지를.
제30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