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08
81 한 명만을 위한 쇼 (5)
“이번에 나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으면 된다고 했잖아요.”
한서현의 투덜거림에 나는 녀석의 눈치를 보며 눈을 굴렸다.
이번에 한서현은 사방에 뿌려 둔 모래로 괜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만에 하나 사고가 터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겁을 주면 저번처럼 다들 틀어박힐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다들 이를 악물고 바깥으로 튀어나오더라.
━저번에 네 녀석이 안에 있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을 해 뒀으니까 그렇겠지.
‘끄응.’
덕분에 한서현만 고생 중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처리하느라 말을 내뱉을 여유도 없어 보였다. 압사당할 뻔한 사람을 구한 것을 시작으로 도로로 잘못 튀어나온 사람들을 구하고 너무 놀라 가스 불을 끄는 걸 잊고 튀어나온 사람의 집에 들어가 불을 끄는 것까지.
여기에서 대기 중이던 김재호와 치앤츠리앤도 곧바로 문제가 생긴 현장에 투입이 되었다.
우리들의 쇼를 위해서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일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웬만하면 내가 움직이고 싶었지만, 나는 첸륜과 할 일이 따로 있었다.
조용했던 저번과 달리 여기저기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건 사람들의 착각이 아니다.
나는 실제로 이 도시에 있는 나쁜 놈들을 조지고 있었다. 해성회가 해체된 뒤에 해성회의 빈자리를 노리고 달려들 범죄 조직을 미리 소탕해 둬야, 이곳이 조용할 테니 말이다.
멋진 무대를 만들 겸 겸사겸사 쓰레기도 치워 두자는 계획이었지.
[이쪽에 있는 놈들은 인신매매가 특기야. 갈 곳 없어진 여자애들을 데리고 와서 나쁜 짓들을 시켜 댔지.]
첸륜의 말에 나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웬만해서는 경찰들에게 뒷일을 맡기자고 생각한 나지만, 이런 녀석들은 살 가치가 없지. 한서현에게 물어 안쪽에 민간인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주먹에 마력을 실었다. 1획으로 주먹을 강화하고 나머지 2획으로 주먹 뒤에 힘을 실어 로켓펀치를 날려 볼 계획이다.
쑤어하오주의 화력만큼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겠지만, 대충 그 기술에서 영감을 얻었다 치자. 나는 그대로 주먹을 들어 벽을 내리쳤다.
내 주먹질에 벽에는 그대로 구멍이 뚫렸다.
음, 그리고 끝이다. 건물이 무너진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역시 3획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옆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한서현과 첸륜이 나에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눈으로 묻고 있었다.
“음, 그냥 손이 간지러워서.”
내 변명에 두 사람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냥 하던 대로 하지 왜 안 하던 짓을 해서는.
레이의 잔소리에 나는 얌전히 땅바닥에 손을 가져다 댔다. 건물을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역시 아래쪽부터 공략하는 게 답이다. 땅과 이어진 부분을 건드리자마자 건물이 옆으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서현과 첸륜에게 피하라고 눈짓을 했다.
한서현과 첸륜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내가 손을 떼자마자 건물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건물 사이로 개미처럼 튀어나오는 놈들은 첸륜과 내가 처리했다.
가볍게 전기를 불러 눈앞에 있던 남자를 지진 나는 뒤에서 들려온 비명에 고개를 돌렸다.
[으아아악!]
옆 건물 옥상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첸륜과 나를 구경하고 있던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는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이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굳이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앞으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건 글러 먹은 거 아니에요?”
한서현이 내 뒤에서 짧게 투덜거렸다.
“음, 가면 썼잖아.”
“그 가면이 ‘나는 벨츠머츠다’하고 외치고 있으니까 하는 말 아니에요!”
한서현의 말대로 나는 내 정체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는 벨츠머츠요’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름 없는 악당보다는 우리와 맞섰다는 게 더 도움이 될 테니까?”
벨츠머츠가 아니라 이름 없는 악당이 될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럼 에드워드에게로 의심이 번질 수가 있었다.
자작극이라는 루머도 돌 수 있단 말이다.
물론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소수겠지만, 내가 나서면 그 소수의 루머마저도 없어질 게 아닌가.
“게다가 벨츠머츠로 여기에서 일을 저질러 놓으면, 한국에 쏠린 눈길도 바깥으로 돌릴 수 있고 말이지.”
애초에 미국으로 갔던 것도 해외로 사람들의 눈을 돌려놓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으음, 그때엔 장렬히 실패했지만 말이지.
“그렇다고 전 중국인의 원수가 될 필요까지 있냐고요!”
한서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걱정하지 마. 다들 금방 잊을 거야.”
“잊긴! 내가 중국어 회화를 공부하면서 본 속담은 그렇지가 못 하던데요.”
“아니야, 여기 명언 중에 그런 말이 또 있어요. 원한을 직접 갚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강가에 앉아서 기다려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그렇게 여기 사람들이 속이 넓다니까?”
“그 뒤에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다른 놈들이 그놈 시체를 떠내려 보내 준다는 말도 있잖아요. 뭐가 속이 넓은 건데요, 그게!”
쳇, 생각보다 한서현이 유식했다.
━애초에 네가 말한 속담은 그 고사라는 놈을 몰라도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만.
한서현의 말대로 이런 원한을 쉬이 잊는 사람들은 없다.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잘 피해 다니면 되지.”
“하아.”
한서현은 나를 보며 한숨을 푸욱 쉬었다.
━엊그제 너를 보며 보스답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바보였어.
‘예?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까?’
━그 생각은 취소다, 취소.
레이의 말에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단번에 자를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렇게 범죄자들의 소굴 몇 개를 털고 나니, 이제 슬슬 본격적인 공연을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 질문에 한서현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전부 다 구출해서 안전한 데에 집어넣어 놨어요.”
“좋아.”
나는 첸륜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내가 부탁한 건?]
[전부 준비됐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에드워드에게 준비가 됐다고 무전을 날렸다.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에드워드의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바라보았다.
“서현아.”
“왜요.”
“이따 보자.”
이번 작전에 한서현은 멀리에서 지켜보는 감시역을 맡았다. 멀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난입하는 역할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우리는 더 이상 에드워드와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말은 이곳에 남아야 하는 한서현은 에드워드와 작별 인사를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 녀석에게 하고 싶은 말 있어?”
내 말에 한서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없어요. 그리고 어제 하도 난리라서 따로 얘기했잖아요. 잘 가라고.”
“그게 전부야?”
에드워드와 한서현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동안 정이 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한서현은 보기와는 다르게 꽤 정이 많은 스타일이니까. 그러니 한 번 더 기회를 줘야지.
“마음에 담아 두면 후회가 될지도 몰라.”
내 말에 한서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이런 것까지 묻느냐는 듯, 원망이 가득한 얼굴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숨을 내뱉은 한서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냥 여러모로 미안했다고.”
그렇게 말한 한서현이 대뜸 소리를 빼액 질렀다.
“그리고 어디 가서 지고 다니지 말라고 그래요! ‘벨츠머츠’를 이긴 주제에 동네북 이미지가 되면 우리 이미지도 똥통에 처박히는 거니까! 그건 진짜 용서 못한다고요. 그러니까 진짜 최고가 되라고 해 줘요.”
막상 어제 마련한 자리에서는 성의 없이 던진 ‘잘 지내라’는 말이 전부더니. 역시 속으로는 꽤나 많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한서현의 말을 차곡차곡 머릿속에 담은 뒤, 걸음을 옮겼다. 첸륜이 나를 붙잡았다. 첸륜의 마력이 내 몸을 뒤덮고, 얼마 뒤. 나는 거친 바람이 부는 건물의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옥상의 건너편, 에드워드가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서 있었다.
나는 에드워드를 본 순간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어이.]
무전기 너머로 들리는 에드워드의 목소리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전부야? 어이? 내 이름은 알고 있잖아.”
[보스?]
“션.”
나는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션이라고 불러줘.”
에드워드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천천히 신호를 기다렸다. 하늘을 가득 메웠던 모래가 천천히 걷히고 에드워드와 내가 서 있는 옥상에 눈이 부신 햇빛이 쏟아졌다.
그게 ‘신호’였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내가 에드워드에게 쏘아 보낸 건 불이었다. 에드워드는 두 손을 뻗어 그 불을 흡수했다. 에드워드가 불꽃에 시선을 끌린 사이 나는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이번 무대를 꾸미는 데에는 해성회의 꼬맹이들이 애를 써 주었다. 꼬맹이들은 에드워드 주변으로 마력으로 만든 불꽃과 번개를 쉴 새 없이 터트렸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 약하디 약한 불꽃이었다.
하지만 멀리에서 보기에는 퍽 위협적일 거다. 실제로 내가 에드워드에게 쏘아 보내고 있는 마력은 그리 적은 양이 아니었거든.
에드워드는 내가 쏘아 보낸 마력을 흡수해, 나에게 돌려보냈다.
우리가 부딪칠 때마다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콰아앙, 거대한 소음.
소리를 증폭해 다른 이를 공격할 수 있는 꼬맹이의 능력은, 오늘 이곳에서 우리의 실감 나는 전투를 위한 효과음으로 쓰였다.
에드워드는 공중에서 내리꽂히는 내 공격을 그리 어렵지 않게 피해 냈다. 콰아앙, 마력이 내리꽂힌 옥상 바닥에 금이 갔다. 어머나, 나도 모르게 힘을 너무 줬나 본데. 나는 눈을 깜빡였다. 에드워드 또한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진심이야?’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히죽 미소를 지으며 에드워드에게 번개를 쏘아 보냈다.
가까스로 내가 보낸 번개를 흡수하는 데에 성공한 에드워드는 내게 다시 번개를 쏘아 보냈다.
주변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검은 모래가 재빨리 우리 둘 사이로 끼어들어 번개를 흩어 냈다.
“서현아.”
[왜요, 중재. 그게 제가 할 일이잖아요.]
“연출을 망치면 곤란해.”
[그래도…….]
“연습한 대로 하자.”
에드워드와 나는 눈을 맞댔다.
그 후로도 우리는 몇 번이나 부딪쳤다. 그동안 에드워드와 했던 훈련과도 비슷했다. 다른 건, 그때와는 달리 에드워드가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다는 것이겠지.
‘확실히 많이 늘었네요.’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네 마력을 받아 낼 수 있냐고, 보고 ‘생각을 해야’ 마력을 받아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내게 따박따박 물었던 에드워드는 없다. 지금의 에드워드는 그저 즐길 뿐이다.
확실히 에드워드의 재능은 이번 일을 겪으며 개화했다.
조금 더 함께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나는 주변에 몰려든 시선을 의식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에드워드의 발밑에 있는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걸 본 나는 에드워드에게 신호를 보냈다.
아쉽게도, 이제 슬슬 이 공연을 끝낼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제30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