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17
83 흑야성성(黑夜星星) (5)
어두운 공방 안에 붉은 불꽃이 타올랐다. 그 불꽃을 바라보며 여자는 묵묵히 망치를 두드렸다. 그 망치 끝에서 불꽃이 녹아 재가 될 때까지. 재를 털어 내고 나자 그곳에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검이 놓여 있었다.
여자는 검을 들어 올려 그 위에 묻은 재를 향해 숨을 불었다.
후, 짧은 숨에 그녀의 손끝에서부터 검이 반짝 빛이 나기 시작했다.
검에 비친 여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검을 옆에 내려놓은 여자는 검은 철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풀무질과 망치질이 시작되었다. 재가 묻어 시꺼메진 손가락에 재가 튀고 얼굴이 엉망이 되는 데도 여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지저분한 공방이었지만, 그곳에는 여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빛나는 아티팩트들이 가득했다.
빛 한 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여자는 묵묵히 망치를 두드렸다. 자신만의 별을 새기면서.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말이지, 여기에 오면 숨이 막힌다니까?”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위로 올렸다. 철창 위에 덮여 있던 금속 문이 열리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튼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빛을 바라보며 여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얼기설기 금속을 엮어 만든 천장에는 여느 때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쌍둥이 언니가 있었다.
두 사람은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을 맞댔다. 누군가는 아래에서 위로, 누군가는 위에서 아래로. 교차하는 시선 끝에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쌍둥이다 싶을 정도로 꼭 닮은 얼굴이었지만, 서로가 서 있는 곳만큼이나 인상이 달랐다.
반짝이는 빛과 함께 빛나는 메이의 얼굴과 달리, 잿빛의 준에게는 그 어떤 빛도 들지 않았으므로. 평상시처럼 푹 꺼진 준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본 메이가 말했다.
“언제 봐도 참 기분 나쁜 얼굴이야. 이상하지, 나랑 똑같이 생긴 얼굴인데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쁠 수가 있는 건가.”
자신을 깎아내리는 그 말에도 여전히 준의 반응은 없었다.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준을 보며 메이는 허리를 숙였다.
“그동안 잘 지냈어? 일은 많이 했고? 많이 했겠지, 이 안에서는 할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그 말에 준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래도 맨날 똑같은 일을 하려니 좀 질리지? 오늘은 내가 재밌는 걸 가지고 왔어.”
그 말에도 준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메이는 그런 준이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나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한테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메이! 이거 해 줘, 저거 해 줘.”
“여기서 내보내 줘.”
그 말에 메이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준, 그건 안 된다고 말했잖아. 밖은 너무 위험하고…….”
“내가 나가면 곤란해지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잖아.”
그 말에 메이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글쎄, 곤란? 어디가 곤란?”
“내 걸 훔쳤으니까.”
그 말에 메이가 정색했다.
“훔친 게 아니야! 어차피 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사기만 당할 뿐이잖아. 기억나? 저번에 너 때문에 나도…….”
“난 너처럼 남 탓이나 하지 않아.”
그 말에 움찔거린 것도 잠시 메이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니까 그 꼴이지.”
조금 전 떠올랐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몸을 일으킨 메이는 벽에 있는 작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자신이 등에 메고 있던 스태프를 아래로 내려보냈다.
“이거라면 너도 좋아할 거야. 나는 잘 모르겠지만, 손에 들어오자마자 대단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준의 시선이 벽에 달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아래로 내려온 스태프를 본 준의 검은 눈동자에 슬쩍 빛이 들었다. 다시 철창에 앉은 메이가 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아, 그리고 말이야. 정신계 방어 아티팩트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는데…….”
세상에서 제일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깔깔 웃으며 철창 위를 구른 메이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하, 이건 아무래도 거절해야겠다. 으응? 안 그래?”
턱을 괸 채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메이를 보며 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제 발밑에 떨어진 스태프를 바라보는 눈도 여전히 탁했다.
“재미없네.”
그 말을 남긴 메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는 준과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그럼 내일까지 잘 부탁해.”
메이는 또다시 사라졌다. 메이가 철창에서 떨어지자마자 다시 금속판이 위를 덮었다. 준의 머리 위로 쏟아지던 밝은 빛은 다시 사라지고 구덩이는 검게 물들었다.
준의 뺨을 간질이는 건, 용광로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빛뿐이었다. 천천히 엘리베이터로 다가간 준은 스태프를 손에 쥐었다. 가만히 스태프를 돌려 본 준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편없어.”
그 뒤로도 저주와도 같은 말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끔찍해, 발로 빚은 것 같아, 어떻게 이따위로 만들 수가 있지? 짧은 평가 후 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잠시 뒤, 용광로 앞으로 다가간 준은 풀무를 힘껏 발로 밟으며 중얼거렸다.
“죽어, 죽어, 죽어…….”
우울한 목소리가 구덩이를 가득 메웠다.
* * *
한서현에게 자세한 내용을 전달받은 나는 두 손을 꽉 잡았다. 웬 구덩이 같은 곳에 사람이 갇혀 있단다.
“그러니까 있는 거지! 구덩이에! 장인이! 갇힌 채로!”
“저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차송진은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은 내 기쁨을 감출 때가 아니었다.
세상에, 첸륜에게 장인이 아주 멀쩡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나서부터 완전히 포기했던 꿈인데, 그 꿈이 이루어지다니.
과연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군.
━남의 고난을 이렇게나 기뻐해도 되는 거냐.
레이는 차송진과 똑같은 말로 나를 탓하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다.
‘단순히 남의 고통을 기뻐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 고통을 끝내 줄 기회가 제게 왔다는 게 기쁜 것이죠.’
이 정도면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 아닌가? 이렇게 남을 도울 기회가 내게 왔다는 것에 기뻐하는데!
흠, 말을 이으면 이을수록 내 안의 타차원 노땅 영혼 하나와 차송진의 눈빛이 더러워지는 것 같으니 이만 입을 닫아야겠다.
어쨌거나 장인이 갇혀 있는 것까지는 확실하다.
문제는 그 장인을 어떻게 ‘구출’할 거냐 하는 거겠지.
이쯤에서 나는 첸륜을 돌려보냈다.
우리에게서 메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걸 전해 들은 뒤 묘한 표정을 지었던 첸륜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메이와 꽤 친해 보였지만, 우리의 일에 끼어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찌나 다행인지!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며. 당장 가서 구하자.”
내 말에 차송진이 끼어들었다.
“잠깐, 어떤 사정인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그곳으로 쳐들어가겠다고?”
“구덩이를 파 놓고 그 위에 철창을 덮어 놨다잖아. 딱 봐도 견적이 나오지 않아?”
내 말에 차송진이 우물쭈물 말했다.
“그야, 그렇긴 해도. 혹시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해 둔 걸 수도 있잖아.”
“그 사정을 아는 가장 빠른 방법도 그 사람을 직접 만나는 거잖아. 만나서 거기가 계속 좋다고 하면 그냥 서로 안녕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내 말에 차송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갑자기 쳐들어가서 그렇게 말하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그러는 형은 정말 그 사람이 원해서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 말에 차송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서현이가 그랬잖아. 두 사람이 똑같이 생겼다고.”
놀랍게도 구덩이에 갇혀 있는 사람은 메이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고 했다. 둘이 쌍둥이인지, 자매인지, 아니면 남남인데 꼭 닮은 것인지, 아니면 우리처럼 가면으로 신분을 도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닮아 있다’는 게 중요하다.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까지 들었다면 둘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조금 더 확실해졌겠지만, 안타깝게도 한서현의 중국어 실력이 미천한 관계로 둘 사이에 오간 대화는 해석이 불가능했다.
그저 둘 사이가 좋지 않아 보였다는 추측 하나뿐이었다.
“형제인데 잠깐 싸워서 그렇게 된 걸 수도 있고…….”
“싸운다고 사람을 그런 데에 가둬?”
“그,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거지 내 말은.”
차송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애초에 두 사람이 쌍둥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오류라니까. 우리처럼 얼굴을 바꾼 걸 수도 있잖아.”
“흐으음.”
차송진은 여전히 걱정스럽다는 얼굴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곳에 쳐들어가고 싶지만, 차송진이 이렇게까지 나를 말리는데…….
“……알겠어, 그럼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하지만 그 사람이 그곳에 ‘갇혀 있는 것’ 같다면, 당장 구하러 갈 거야.”
그제야 차송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많은 얼굴이었다.
“확실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송진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한국이라면 모르되 이곳에서 나는 외부인일 뿐이다. 외부인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구한테 그 두 사람에 대해 물어보는데? 당장 두 사람에 대해 어디서부터 캐야 할지도 모르잖아.”
내 질문에 차송진이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첸륜한테 물어보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 그쪽도 메이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고, 잊었어? 아까 두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실드를 쳤는지.”
조금 전 일을 말하자 차송진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확실히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신의 행동이 퍽 이상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하지만 차송진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유마 씨는 다를지도 모르잖아. 애, 애초에 그 사람이 모르는 건 없어 보이던데, 그 사람한테 물어보면…….”
그렇게 말을 잇던 차송진은 옆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에 입을 닫았다. 한서현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 물론! 우리 서현이가 최고지. 최고지만…….”
“됐어요, 중국말도 못 하는 나는, 이 중국 땅에서 필요가 없으니까…….”
“아니야! 애초에 우리 편도 아닌 사람을 끌어들일 순 없지, 응!”
황급히 말을 정리한 차송진이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그, 그 남주현이라는 사람은 어때?”
“아, 그쪽은 다른 일을 시켜서 바빠.”
“다른 일?”
“응, 에드워드 쪽 여론을 좀 좋게 만들어 달라고 했거든.”
내 말에 차송진이 입을 벌렸다.
“중국 쪽 여론전을 맡겼단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의 트X터인 웨이X는 물론이고 각종 기사의 댓글까지. 모두 남주현이 도맡아 관리 중이었다.
“그 사람 중국어도 할 줄 알았어요?”
“마침 그쪽에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붙어 있어서 말이지.”
내 말에 한서현이 기겁한 얼굴로 외쳤다.
“쑤어하오주요?”
“아니, 이혜원 씨.”
“아아.”
“애초에 쑤어하오주한테는 우리 일을 맡길 수 없지.”
당장 나를 불구대천지원수로 아는데, 우리 일을 돕겠다고 나설 리가.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한국말도 아니고 중국어로 작업하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 ”
“난 남주현 씨가 잘 처리할 거라고 믿어.”
“믿긴 무슨, 생각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고?”
차송진의 말이 아프게 나를 찔렀다.
제3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