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34
86 인연이라고 하죠 (3)
“정말 데리고 올 거야?”
“책임지라며.”
막상 데리고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정말로 내가 쑤어하오주를 데리고 올 계획이라고 말하자 차송진은 크게 당황했다.
“걱정하지 마, 최선을 다해서 정나미가 떨어지게 행동할 테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차송진은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가까이에서 보면 자연히 그렇게 될 텐데.”
젠장, 전혀 위로가 안 되잖아! 어쨌거나 쑤어하오주는 내 책임이 맞았다. 애초에 남주현에게 그렇게 던져 놓은 게 잘못이긴 했지. 남주현이 화를 낸 것도 당연하다.
━이제야 그걸 깨닫다니.
‘이제부터 수습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그 순간의 선택을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그때 쑤어하오주를 거뒀다면, 내가 그때 말한 것처럼 나는 파파 대신이 되었을 게 뻔했으니까.
그래도 남주현 일행과 지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신이 원하는 게 이거라고 결정했다고 하니, 이제는 책임져야 할 때였다.
‘여전히 시야가 좁긴 하지만요. 이 세상에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기껏해야 고른 게 나라니.’
차송진의 말대로 눈에 콩깍지가 씌어 있는 게 분명했다. 뭐, 그 콩깍지도 오래가진 않겠지마는. 차송진의 말에 따르면 나는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이 떨어지는 재능이 있다고 하니까.
━삐쳤냐?
‘예? 삐치다니요? 고작 이런 일로 제가 마음이 상할 리가 없잖아요?’
━뭐, 일단은 아니라고 해 두마.
아니라고 해 두는 게 아니라 진짜로 안 삐쳤다니까. 속으로 그렇게 꿍얼거리는데 레이가 물었다.
━그나저나 네 그 정 떼기 작전에도 쑤어하오주가 여전히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십 년은 이르다고 해야죠.’
━시간 끌기 전략?
‘어린애한테 그런 마음을 가지는 건 범죄입니다, 범죄. 시간 끌기 전략이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요.’
사람의 마음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지금에야 내가 좋다고 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생각은 바뀔걸.
‘그동안 어떻게든 세상 사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 줘야죠. 그래도 차송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음, 우리 그룹의 외장형 양심.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차송진을 영입한 건 최고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나에게 보면 볼수록 정이 떨어진다고 말했지만…….
━완전 삐쳤구만.
‘젠장! 내가 그렇게나 비호감입니까?’
왜지! 눈이 찢어져서인가? 그래도 보면 볼수록 은근히 스며드는 매력이 있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정말로 마음이 상한 게 들킬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말해야지.
항구 앞에 도착한 나는 벗어 두었던 가면을 다시 들었다.
음, 준은 대충 에드워드가 중국으로 왔을 때 사용했던 신분을 쓰기로 했다.
━체형이 완전히 다른데?
‘그렇게 꼼꼼하게 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여권에는 체형을 따로 기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충 두꺼운 옷을 입혀서 위장하면 되겠지.
아직은 쌀쌀한 날씨여서 다행이었다. 180cm가 넘는 에드워드가 순식간에 160cm 정도로 줄어들긴 했지만, 뭐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정말 저대로도 괜찮은 거야?”
“괜찮을 거야.”
뭐하면, 거짓말이라도 하지 뭐. 준은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자꾸만 가면을 벗어 손에 드는 통에 그걸 말리는 것도 일이었다.
[잠깐만 볼게.]
확실히 아이템 쪽의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준에게는 보이는 모양이었다. 가면을 만지작거리던 준이 내게 물었다.
[이건 누가 만든 거야?]
[내가 아는 사람이.]
내 말을 들은 준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만날 수 있어?]
[물론.]
금 박사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지만, 뭐, 같은 장인 계열이니 통하는 게 많지 않을까?
━일단 말부터 안 통하지 않냐?
‘그거야, 금 박사가 번역기를 쓰든 어떻든 해결할 문제고요.’
그래도 보디랭귀지든 뭐든, 소통하려고만 하면 방법은 널려 있다. 나도 처음부터 중국어를 잘한 게 아니라고. 궁하면 다 통하게 되어 있다고. 의지가 중요하다, 의지가.
‘둘이 합작하면 무언가 대단한 걸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하면, 그냥 넘어올걸요.’
사람을 만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금 박사지만, 자신의 작업물에는 무척이나 자부심이 넘치는 타입이니까. 똑같이 사회성이 없어 보이는 준하고 묘하게 잘 어울리는 듀오가 되지 않을까…… 는 너무 희망찬 상상이려나.
[한국으로 가면 만나러 갈래, 그 사람.]
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금 박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가 정해졌다.
그러려면 일단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야만 했다.
“꼬, 꼭 배를 타야 돼요?”
중국으로 오는 배를 탔을 때하고는 달리, 한서현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떼를 썼다. 배를 타야 한다는 걸 모르지도 않았을 텐데. 새삼 배를 보니 뱃멀미의 두려움이 올라오기라도 한 모양이다. 내 시선에 한서현은 차송진을 붙잡고 물었다.
“소, 송진이 형은 텔레포트 능력자잖아. 한국으로는 바로 날아갈 수 없는 거야?”
그 말에 차송진이 눈을 깜빡였다.
“아하, 그게, 음, 그동안 지내면서 우리가 머물렀던 곳을 ‘안전 구역’으로 지정해 버려서……. 너도 알잖아, 내가 이동할 수 있는 건 안전 구역뿐이라고. 그 조금 무리를 하면 우리 팀원이 있는 곳으로도 이동할 수 있긴 하지만, 어, 어쨌거나 지금은 모두 여기에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래도 무리지?”
“그게 뭐야! 세이브 포인트를 단 하나밖에 지정하지 못한다고? 그럴 거면 우리 집으로 계속 지정해 뒀어야지!”
차송진은 한서현의 격한 반응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나는 한서현의 어깨를 짚었다.
“서현아, 추하다.”
“으윽!”
“미, 미안…….”
차송진은 한서현에게 그렇게 사과했지만, 이건 차송진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쪽으로 차송진의 능력을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한 내 문제지.
음, 그래도 확실히 좋은 얘긴데.
집을 안전 구역으로 지정해 두면 돌아갈 때는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거잖아?
“다음에는 그렇게 해 봐야겠는데.”
음, 집으로 돌아가면 할 게 더 늘었다.
차송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왠지 오한이 느껴졌는데.”
그 말에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운동을 안 해서 그래, 운동을.”
일단은 운동부터.
내 말에 차송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 * *
다행히 우리는 무사히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누구도 160cm의 작은 키에 근엄한 얼굴을 가진 준을 의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준은 객실 바깥으로는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답답하지는 않냐는 내 말에 준은 이렇게 답했다.
[갇혀 있는 건 익숙하거든.]
[으윽, 그렇게 말하면 꼭 내가 너를 가둬 둔 것 같잖아. 얼마든지 밖에 나가도 좋다니까.]
[밖에 나가도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걸.]
이쪽도 사회성 교육이 시급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째 우리 조직에 들어오는 애들은 다 꼴이 이렇지? 여기에 쑤어하오주가 합류할 생각을 하니 숨이 턱하고 막히는데?
━그 리더에 그 조직인 것이지. 네가 그 모양 그 꼴이니까 애들도 다 이 모양 이 꼴인 게 아니냐.
‘우리 애들이 어디가 어떻다고요!’
━참나.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우리 멤버들 중에서도 준은 특히 사회화 교육이 시급해 보였다. 하긴, 몇 년 동안이나 갇혀만 지냈으니 사회성이 좋을 수가 없었겠다만.
문제는 누가 이 녀석을 사회화시키느냐 하는 거겠지.
한국말도 겨우 하는 김재호나, 툭하면 사람을 해골로 만들어 버리고 싶어 하는 한서현은 물론이고, 사실 우리 팀에서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차송진도 일반인 기준으로 보자면 영 사회성이 없는 수준이니까.
‘음…….’
정말이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군.
정말로 레이의 말대로 내가 리더여서? 아니, 나는 그래도 사회성이 꽤 좋은 편인데? 친구가 없어서 그렇지? 나 정도면 어? 충분히 사회성이 좋다고 할 수 있지 않나?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잘 마는 걸 사회성이 좋다고 하지는 않지 않나?
‘……그래도 회식 자리에서는 인기 짱이었다고요.’
하지만 이런 나도 금 박사에 비하면 사회성 만렙인 수준이지.
나는 금 박사의 집 대문 앞에 섰다. 내 뒤로는 피곤한 얼굴의 일행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집으로 가면 안 돼요?”
“나, 나는 불만은 딱히 없는데 그냥, 엄, 엄청 피곤해서…….”
“보스는 너무 새 멤버만 챙겨.”
차례대로 한서현, 차송진, 김재호의 말이다.
“새 멤버만 챙기는 게 아니라, 그래도 어? 이왕 여기까지 와야 하는 거 오랜만에 다 같이 인사라도 하면 좋잖아. 으응? 그래도 우리가 쓰는 물건을 만들어 준 고마운 사람인데 말이야. 잘 쓰고 있다고 후기라도 전해 줘야 하지 않겠어?”
뻥이다. 사실은 집에 갈 길이 걱정돼서 끌고 온 거다.
배를 탄 지난 사흘간 나는 뼈저리게 실감했다. 준이랑 단둘이 있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그래, 솔직하게 인정하지. 준이랑 단둘이 집으로 갈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쟤 엄청나게 말수가 없단 말이다! 쟤랑 단둘이 있으면 엄청나게 적적하다고!
안타깝게도 내 말은 전혀 우리 멤버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리고 저기 가면 맛있는 케이크 줘.”
내 한마디에 김재호의 표정이 곧장 변했다.
“얼른 들어가자, 얼른.”
그 반응에 한서현이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재호 형! 폼 안 나게 먹을 거에 넘어갈 거예요?”
“케이크 못 먹은 지 꽤 됐단 말이야.”
“이따가 사서 가면 되잖아요.”
“밤인데?”
그래, 문제는 지금이 밤이라는 거다. 케이크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을 시간이지.
“세상에, 정말로 이런 거에 넘어가다니.”
“금 박사네 케이크가 진짜 맛있다고 하더라.”
물론 나는 제대로 먹은 적이 없지만, 이희원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엄청 폭신폭신한 시트지에 우유 맛이 풍부한 크림을 써서 한 입 먹자마자 혀끝에서 소가 음메, 하고 운다나.
영 이상한 음식평이었지만, 그만큼 좋다는 거겠지.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빼애애애액.
저번과는 다른 이상한 초인종 소리에 나는 얼굴을 구겼다. 이건 무슨 소리야?
그때, 초인종에서 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등록되지 않은 외부 방문객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돌아가십시오.]
마치 기계가 말하는 듯한 딱딱한 목소리에 나는 혀를 찼다.
“어이, 금 박사. 이런 식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어엉? 초인종을 눌러 주는 건 당신을 위한 배려야. 절대로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못 들어가서가 아니라고.”
겨우 이런 걸로 나를 쫓아내려고 하다니. 코웃음이 다 나올 정도였다.
빼애애애액.
나는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눌렀다.
“아앙? 금 박사! 좋은 말 할 때 당장 이 문을 열지 못해?”
내 모습을 본 차송진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까, 깡패 같아.”
한서현이 말했다.
“같은 게 아니라, 그냥 그거 아닐까요? 저희는 범죄 조직이고, 깡패는 흔히들 범죄 조직원을 말하는 단어니까…….”
“그, 그런가?”
“예, 그런 의미에서 우리 보스는 아주 훌륭한 깡패죠.”
“저기! 그런 말은 전혀 도움이 안 되거든!”
정말이지 듣기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정말 그렇게 깡패 같았나? 한 번 접근 방법을 바꿔 볼까? 나는 목소리를 바꿔 말했다.
“금 박사, 우리 좋았잖아. 왜 그래, 또 뭣 때문에 나를 들여보내 주지 않는 건데?”
“저 말은 너무…….”
“드라마다, 드라마.”
김재호가 말했다.
“송진이가 보던 드라마에서 나왔다, 저런 장면. 나쁜 남자가 저렇게 말했다!”
“오, 확실히 여자 주인공한테 까이고 밤새 울먹거리면서 매달리는 모브 같은 대사긴 하네.”
“다들 조용히 해! 집중이 안 되잖아!”
그렇게 떠들썩하게 외치고 있으려니, 벽에 매달려 있던 CCTV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곧 스피커에서 금 박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날 그냥 내버려 두라고! 왜 왔어! 이 웬수 같은 놈들아!]
“웬수 같은 놈들이라니 너무하네.”
[지금 새벽 한 시야! 미친놈들아!]
“야행성 아니었어?”
[야행성이든 말든, 새벽 한 시에 오는 게 말이 되냐?]
“열어.”
[이, 이 나쁜 놈들!]
그렇게 말하면서도 금 박사는 순순히 문을 열어 주었다.
“진작 열었으면 좋았잖아?”
그렇게 말하는 내 모습을 보며 차송진과 한서현이 무어라 쑥덕거리는 것을 나는 애써 무시했다.
제33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