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60
91 어서 오세요, 환장의 나라로 (4)
“기다려!”
휴대폰을 손에 든 쑤어하오주가 김재호에게 말했다. 푸딩을 앞에 둔 김재호의 어깨가 이리저리 들썩거렸다. 참지 못한 김재호가 손을 뻗으려는 그때, 쑤어하오주가 김재호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쓰읍! 기다리라고 했어!”
“으으!”
손등을 움켜쥔 김재호가 고통스러운 숨을 내뱉었다. 쑤어하오주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체하며 김재호의 얼굴을 살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푸딩을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고통에 김재호는 괴로운 듯 몸을 뒤틀었다.
“기다려.”
찰칵, 찰칵. 입으로 사진 찍는 소리를 낸 쑤어하오주가 잠시 뒤 김재호를 향해 말했다.
“자, 됐어. 먹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재호는 그대로 푸딩으로 달려들었다.
“좋아, 좋아. 잊지 마. 내가 사진 찍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는 거야.”
쑤어하오주가 김재호의 귓가에 살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면 죽어.”
그동안 내 말은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김재호였지만, 쑤어하오주의 말만큼은 제법 잘 들었다.
“자, 그럼 다시 해보자.”
품 안에 감춰뒀던 빵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은 쑤어하오주가 다시 한번 김재호를 향해 말했다.
“기다려, 하는 거다. 알겠지?”
푸딩을 꿀꺽 삼킨 김재호가 쑤어하오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쑤어하오주가 김재호를 훈련시키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한서현이 내 옆에 다가와 속삭였다.
“저렇게 둬도 되는 거예요? 사람이 아니라 꼭 개 취급 같은데.”
“너도 네가 먹을 새도 없이 재호가 반찬을 싹쓸이하는 건 싫다고 했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저렇게 훈련하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
그렇게 말을 잇던 한서현이 나를 보며 흠칫 놀라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약속도 없는데 왜 이렇게 차려입은 거예요?”
한서현이 말한 대로 나는 지금 깔끔하게 각이 잡힌 양복을 입고 있었다. 후후, 갈 곳도 없는 내가 이렇게 보기만 해도 답답한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아, 하오주가 내 옷을 다 찢어서 버렸더라고…….”
“예에?”
한서현에게 했던 말대로다.
내 방 옷장을 채우려고 캐리어를 연 나는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왜냐. 그동안 내가 아껴 입은 옷들이 죄다 찢겨 있었거든.
목이 늘어나고, 색이 좀 바랜 데다가 구멍이 좀 뚫려 있어서 그렇지 한참은 더 입을 수 있는 옷들이었는데!
처음 캐리어를 열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이게 신종 괴롭힘인 줄 알았다. 워낙 쌓인 게 많으니, 이런 식으로 해소하는구나, 그렇게 이해했다. 하지만 캐리어를 정리하며 나는 깨달았다. 그냥 나에게 화가 나서 옷을 찢은 게 아니라 무슨 의도가 있는 게 분명했다고.
왜냐, 이렇게 보기만 해도 답답한 수트들은 또 기가 막히게 남겨 놨거든.
나는 벌거벗은 채로 살기 vs 몸에 쫙 붙는 고급 수트 입고 살기라는 말도 안 되는 양자택일에 내던져졌다.
여기에 있는 게 남자애들뿐이라면 집에서 이런 옷을 입느니 차라리 홀딱 벗는 걸 선택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준과 쑤어하오주가 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집에서만큼은 편하게 늘어져 있으면 안 되는 거냐고. 덕분에 오랜만에 설록진의 밑에 있을 때나 느끼던 긴장감을 집에서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의외네요. 보스 성격에 그런 옷을 입건 말건, 그냥 아무렇게나 드러누울 줄 알았는데.”
“그랬을 거야. 버리고 또 살 여유가 있었다면…….”
열악한 여관에서 머물며 돈을 아껴야 했을 정도로 우리 사정은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 한 벌에 수백만 원이나 하는 양복을 망칠 수는 없잖냐! 또 언제 이 양복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그렇게 로봇처럼 딱딱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있던 거구나. 난 또 집이 너무 뻔쩍해져서 그런 줄.”
“윽!”
한서현의 말에 나는 반박하지 못하고 심장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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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티드 하우스(Haunted house) / A+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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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ㆍ다세대주택
강이신의 소유
진흙과 마나석 가루를 섞어 만든 벽돌과 고급 자재들을 아낌없이 써 최고의 장인이 빚어낸 완벽한 방어 기지
홍염의 마정석을 핵으로 삼아 은신, 은폐, 혼란을 상시 발동한다
마정석을 추가로 설치하여 추가적인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소유자의 동거인으로 등록되는 경우 해당 효과를 무시한다
일정량의 충격을 흡수, 방출할 수 있다
쉽사리 파괴되지 않으며, 홍염의 마정석이 살아있는 경우 손상을 스스로 수복한다
수도, 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유일한 흠은 이름으로, 형편없는 제작자의 악취가 아직도 남은 듯하다
침실 8개/공실 2개/화장실 4개/훈련장 1개/공방 1개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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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설명이지만, 마지막 줄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유일한 흠이 내가 지은 이름이라고? 아니, 애초에 말이야. 내 욕을 할 건덕지가 없는데 이렇게까지 내 욕을 하는 게 정상이냐! 게다가 혼티드 하우스라는 이름이 어디가 어때서!
━네가 지었던 그 움집이랑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는 거 자체가, 이 집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얄미운 말이지만, 레이의 말대로 준이 지은 혼티드 하우스는 확실히 예전 내 혼티드 하우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예전 혼티드 하우스는 구조적인 결함을 홍염의 마정석에서 끌어온 마력으로 해결했었다. 그 말은 뭐냐, 애초부터 마나의 누수가 존재했다는 뜻이다. 마치 유통 과정에서 돈을 빼먹는 나쁜 장사치처럼, 마력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줄줄 새고 있었다는 뜻이다.
준은 말했다. 만약 정말로 적이 이 기지를 습격하기라도 했다면, 혼티드 하우스는 단번에 무너져 내렸을 거라고.
음, 그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하더라.
다행히 지금은 구조부터 튼튼하다 보니, 그럴 일은 없을 거란다. 그런 식으로 새던 마력을 잡으니 자연히 혼티드 하우스의 출력 자체가 좋아졌다.
집의 출력 따위가 좋아져서 무슨 장점이 있겠냐 싶겠지만, 혼티드 하우스는 기본적으로 은신, 엄폐, 혼란 따위의 정신 지배계 스킬을 주변으로 흩뿌리는 놈이란 말이지. 기본적으로 주변에 적용되던 스킬의 범위가 넓어져 이제는 집 근처에서만 혼티드 하우스의 환영을 보는 게 아니라, 산 중턱부터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예 이곳에 닿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될 거란다.
거기에 침실이 8개에, 공실도 2개, 화장실은 4개나 됐다. 밖에 딸린 공방에 창고까지. 과연 자금을 쏟아부은 보람이 느껴진달까. 거기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워진 외관과 내부는 어떻고.
으윽, 내가 지었던 혼티드 하우스와는 정말로 차원이 달랐다.
역시 재능의 차이란 따라잡을 수 없는 걸까.
━보통은 여기서 아니라는 말을 하겠지만, 네 손재주는…….
‘알았다고요, 알았어요!’
나도 내가 뭔가를 만드는 데 재능이 없다는 건 이미 충분히 안다고. 참 다행이지. 이젠 내가 뭘 만들지 않아도 되는 게.
모든 곳이 끝내줬지만, 가장 내 마음에 든 곳은 집에서 바로 이어지는 거대한 훈련장이었다.
동굴 뒤쪽 비어 있던 공간을 활용해 지어진 이 훈련장을 발견한 순간 나는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거대한 지붕에, 환기 시설까지!
게다가 이 훈련장 또한 ‘혼티드 하우스’의 일부로 취급이 되었다. 아무리 때려 부숴도 홍염의 마정석에 의해 ‘스스로’ 고쳐진다는 말이지.
벽을 부수고, 바닥이 죄 쥐어 뜯겨도 다음 날이면 멀쩡!
이보다 더 멋진 훈련장이 어디에 있나!
그동안 훈련을 할 때마다 자연훼손을 저질렀던 우리에게 이 훈련장의 등장은 그야말로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지붕이 덮여 있는 데다가 에어컨과 온풍기도 갖다 달아뒀으니, 이젠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좋지 않아?”
내 말에 차송진은 울상을 지었으나, 대부분은 기뻐했다.
“와아, 너무 좋다.”
“조금만 더 영혼을 담아줄래?”
“오, 영혼이라. 어떤 종류로 얼마나 담아드릴까요?”
그렇게 말하며 스태프를 쓰다듬는 한서현의 말에 나는 입을 쏙 닫았다. 네크로맨서에게 이, 이런 농담은 하지 말아야겠다. 정말로 누군가의 영혼을 쓱 뽑아올지도 몰라!
어쨌거나 이렇게 좋은 훈련장이 생겼으니, 간만에 모두의 전력을 테스트해볼 때가 됐다.
내가 제일 먼저 부른 사람은 쑤어하오주였다.
내 부름에 강아지처럼 신이 나서 달려온 쑤어하오주에게 나는 훈련장에 가자고 말했다.
“훈련이라니…….”
“말이 훈련이지, 그냥 간단한 전력 테스트야. 지금 네가 얼마나 강할지도 모르고…….”
나는 볼을 긁적거렸다.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한 번쯤은 제대로 테스트를 해보는 게 좋겠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왜 존댓말 해?”
그야, 전생의 기억 때문이랄까. 한국어로 말할 때는 몰라도, 왠지 중국어로는 존댓말이 절로 나온달까. 얼굴을 구긴 쑤어하오주가 말했다.
[그냥 반말해. ‘싸가지’ 없게 자꾸 존댓말 하지 말고.] [잠깐, 왜 존댓말 하는 게 ‘싸가지’ 없는 건데요?]애초에 싸가지는 한국어잖냐! 중국어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든 한국어 단어라니.
[몰라, 여튼 반말해.]쑤어하오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였지만, 쑤어하오주가 원하는 거라면. 뭐.
“훈련할 때만이라도 편한 옷으로 입으면 안 돼?”
내 말에 쑤어하오주는 냉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꾸며야 좀 볼만 해. 매일 그렇게 입고 있도록 해. 다른 놈들 옷을 빌리면, 다른 놈들 옷도 찢어놓을 거야. 어차피 시각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차에, 정말로 시각을 포기해서라도 몽땅 다 찢어놓을 테니까 그런 줄로 알아.]살벌한 말에 나는 본전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한국어도 아니고 중국어로 말하다니. 진심이다, 저거. 하지만 나도 간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이 옷 찢어지면 입을 게 없어서 그래! 예쁜 옷은 제발 예쁘게 두고, 엉? 찢어져도 괜찮은 옷으로 입자.”
내 간절한 부탁에 쑤어하오주는 마지못해 허락한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겨우 다른 사람의 옷을 빌리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한서현이 내게 빌려준 옷을 손에 들고 투덜거렸다.
“구멍이 너무 났는데…….”
“찢어져도 괜찮은 옷을 빌려달라면서요.”
스켈레톤(한조희 아님)에게 세탁을 맡겨서 구멍이 여럿 나 걸레짝인지 옷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지만, 당장은 이것뿐이다.
옷을 갈아입은 나는 쑤어하오주와 함께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으로 향하는 길, 나는 쑤어하오주에게 가볍게 물었다.
“지금도 ‘거래’하고 있어?”
쑤어하오주의 재능은 ‘거래’다. 자칭 ‘신’이라는 작자에게 자신의 무언가를 내걸고 그것의 가치만큼 힘을 얻는 것. 과거 쑤어하오주는 생존의 모든 것을 파파에게 의존한 채, 오로지 무기로서 움직였다.
자신의 미래, 그리고 과거를 모두 희생함으로써.
내 질문에 쑤어하오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무것도?”
“응.”
쑤어하오주는 그 날 이후, 모든 거래를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급하면 하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급한 일이 없어서. 감옥에 들어갔을 땐 네가 구해주기도 했고…….”
쑤어하오주의 뜨거운 시선에 나는 눈을 돌렸다. 크흠, 그렇게 말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우리는 훈련장에 도착했다.
나는 쑤어하오주를 바라보았다.
확인해 볼 차례였다.
쑤어하오주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말이다.
제36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