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61
92 여기서 또 뵙네요 (1)
‘신’과 거래한 쑤어하오주는 정말로 강하다. 감히 내가 전력을 테스트한다고 덤벼들 수가 없었을 만큼. 그때는 전력을 테스트하는 의미가 없었지. 그녀의 주먹질 한방을 견딜 수 있는 상대 자체가 이 전 세계에 몇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쑤어하오주의 주먹질에 통나무가 움푹 파였다. 커다란 통나무를 박살 내는 데에는 다섯 번의 주먹질로 충분했다.
이 정도라면 4성급 육체 강화계 정도는 되려나. 일반인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될 정도의 근력이긴 하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턱없이 약했다.
나는 그밖에도 여러 가지를 테스트해보았다. 그 테스트 끝에 나온 결론은……. 이 정도라면 나하고 싸워도 지겠다는 거였다. 아니, 지는 정도가 아니지. 나는 아주 가볍게 쑤어하오주를 이길 자신이 있었다.
“더 보여줄 건 없는…… 아니, 됐어. 신경 쓰지 마. 흠, 이 정도란 말이지.”
내 중얼거림에 쑤어하오주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어라, 왜? 그제야 나는 쑤어하오주의 얼굴로 눈을 돌렸다.
“내가 너무 약, 약해서, 약해서 문제지? 하, 하지만 거래하지 말라고 했던 건 너, 너잖아……. 너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난…….”
서러움이 몰려오는지 쑤어하오주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아, 아니!”
약하다고 꼽을 주려던 게 아닌데! 내 표현 때문인지 오해를 사버렸다.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두자. 나랑 같이 있는 건 그래, 좋아. 하지만 나랑 같이 싸우고 싶다는 건 다른 문제라고.”
4성급 정도라고 해도 현장에 나가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다. 그냥 안전하게 준의 곁에 붙여놓는다든가 한다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다니고 싶다면……, 냉정하게 말해 이 상태로는 무리였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내 말에 눈물을 삼킨 쑤어하오주가 말했다.
“내가 약하기 때문이라면, 나 다시 거래할 수 있어.”
“아니, 그러지 마.”
“하지만 네가 말했잖아! 너와 함께하려면 거래해야 한다고…….”
그 말에 나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내가 쑤어하오주를 데리고 오지 않으려 한 거다. 나를 위해서 쑤어하오주는 다시 그 망할 놈의 거래에 자신을 기꺼이 던질 테니까.
“아니, 아니야. 말했잖아. 그 둘은 다른 문제라고.”
“왜 달라?”
“다르지! 네가 원하는 건 나와 함께 있는 거지, 나와 함께 싸우고 싶은 게 아니잖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쑤어하오주가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두 개, 똑같은 거 아니야?”
“똑같은 거 아니야. 잘 생각해봐. 정말로 나와 함께 싸우고 싶은 건지.”
내 말에 훈련장을 힐끗거린 쑤어하오주가 말했다.
“그럼 날 왜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
“그야, 일단 같은 팀으로서 각 팀원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둬야 했으니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만약’을 위해서라고.”
“만약이라고…….”
“그래, 그냥 말 그대로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어. 딱히 너를, 그러니까 네 생각대로 어떻게든 써먹으려던 게 아니라. 아니, 써먹다니, 그러니까 이용, 아니, 너한테서 도움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쑤어하오주의 눈물을 보니 말이 마구잡이로 나왔다. 정말이지, 난 눈물에 약하다고!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평생 거래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있는 재능을 아주 썩히는 것도 아깝긴 하지. 하지만 쑤어하오주의 재능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희생이 필요했다.
힘을 얻기 위해서는 또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전처럼 미래를, 과거를 포기하는 게 아니더라도 쑤어하오주는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함부로 그 힘을 꺼내쓰자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거다.
“네 재능은 널 위해, 네가 원할 때 사용했으면 좋겠어.”
“난…….”
“내가 너를 버릴까 봐 걱정돼서라든가,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다든가…… 그런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네가 네 판단으로 지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랬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쑤어하오주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히끅, 쑤어하오주가 숨을 삼켰다.
“진짜 네가 원해서. 많은 것을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을 때만. 알겠어?”
내 말에 쑤어하오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데? 난, 나는 몰라. 그런 거.”
쑤어하오주의 얼굴에는 혼란만이 가득했다. 하긴, 너무 어려운 말이려나.
“당장 그 질문이 어렵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일단 첫 번째. 싸우는 걸 좋아해?”
김재호의 경우 그동안 속에 쌓였던 답답한 걸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며 좋아하는 편이다. 또 김재호의 안에는 파괴적인 성향이 숨어있다. 평상시에는 순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 십수 년간 학대받고 억압받는 동안 쌓여온 울분이 김재호의 내면에는 존재한다.
김재호에게 싸움이란 그래서 해소나 다름없었다.
한서현? 한서현 또한 싸움을 피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음, 타고나길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기도 한 데다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쪽이지. 지금이야 나이가 어리니 티가 좀 덜 나지만, 음…… 미래에는 무시무시한 사디스트가 되어 있을지도? 어, 어쨌거나 이쪽도 전투를 즐기는 편이다.
차송진은 음, 이쪽은 전혀 전투에는 관심도, 재능도 없지.
난 우리 팀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쑤어하오주는 예외였다.
내 질문에 쑤어하오주는 울상인 채로 말을 이었다.
“모르겠어.”
쑤어하오주 자신조차 자신을 모르고 있다.
“기억이 안 나.”
왜냐. 그녀에게는 싸웠던 기억조차 없으니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살인을 즐겼는지, 괴로워했는지, 어땠는지.
남주현과 있으며 내면적인 성장을 이루긴 했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지금부터 알아보자.”
“응?”
“모르면, 배우면 돼. 간단한 거야.”
“간단해?”
“응. 간단해.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는 거야. 일단은 훈련부터 시작해보는 거지.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하다가 싫으면 여기서 관두면 돼. 근데 좋으면? 조금 더 해보는 거지. 그렇게 훈련해본 다음에는 실전에 나가보는 거야. 거기서 싫으면? 또 그만둬도 돼.”
“그만둬도 돼?”
“응.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돼.”
지금의 쑤어하오주에게는 필사적으로 강해져야 할 이유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할 필요 같은 거 없다는 거다.
“강하지 않아도 괜찮아?”
“응.”
지금 당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상관없다. 이렇게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예전 그녀의 세상에는 온통 ‘파파’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세상에는 ‘파파’가 없다. 그가 남긴 그림자만이 남아 그녀를 붙잡고 있을 뿐. 하지만 쑤어하오주는 그 그림자에서도 곧 벗어날 수 있을 거다.
언젠가 나의 존재 또한 그처럼 흐려지겠지.
쑤어하오주가 내 곁에 있고 싶어 하는 것도 잠시뿐일 거다.
차송진은 내게 ‘정나미를 떨어트리라’라고 말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쑤어하오주가 자라면, 그녀의 세상이 넓어진다면…….
그녀에게 더는 내가 필요하지 않아질 테니까.
* * *
한서현이 전해준 김명철에 대한 소식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정말이지, 그 아저씨. 쓸데없이 엄청나게 행동력이 좋다니까.”
조금쯤은 머뭇거리란 말이다! 그래도 길드장들에게 기가 죽어서 생각이 바꿔먹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미리내당 쪽 의원들한테 접근할 줄이야.”
거대 길드에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김명철은 방향을 바꿔 국회의원 쪽을 공략했다.
여태까지는 그쪽과 붙어먹느니 차라리 목을 매달고 말겠다고 떠들고 다녔을 정도로 정계와의 유착을 피했던 인간이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다니. 정말로 뭔 일을 낼 생각인가 보다.
“어차피 미리내당은 모두 설록진 편 아니에요?”
“예전이었더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최근에 그 인간이 죽었잖냐. 김석훈 전 대통령 말이야.”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설록진을 밀어주던 사람이 죽었잖아. 미리내당에서 설록진의 입지가 전만큼 굳건할 순 없을 거야. 그동안 억눌렀던 반감이 터져 나올 때도 됐고.”
김명철은 이 틈을 잘 파고들었다. 알고 한 짓은 아니고, 그냥 타이밍이 좋았던 것뿐이었겠지마는…….
“김명철이라면 아마도 정면 돌파를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만나려 한 것일 거야. 반 각성자 법안에 가장 힘을 쏟고 있는 게 미리내 당의 의원들이니까. 왜 그런 법안을 세웠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 건지, 혹시 다른 쪽으로 법안을 틀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었던 거겠지.”
“으음, 그렇게 들으니 이해가 되네요.”
“그,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그쪽을 너무 자극하는 거 아니야? 가뜩이나 꼴 보기 싫은 놈이, 내부에서부터 자기를 흔들려고 하면…….”
차송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 정도면 설록진한테 날 제발 죽여주세요라고 외치는 수준이지.”
“역시 우리 쪽에서 선수를 쳐서 납치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에도 말했지만, 그쪽은 7성급의 헌터야. 아무리 우리라도 함부로 납치할 수는 없다고.”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는 없는 거 아니야? 설록진이 그 사람을 노리는 거라면, 어, 엄청 위험한 거 아닌가.”
“하아…….”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김명철을 잃을 순 없다. 하지만 구할 방법도 마땅찮다. 지난 며칠간 고민하고 또 고민해봤지만, 정말이지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여태까지는 쓱 납치해서 적당히 다른 곳에 빼돌리는 방법을 썼지만, 대상이 김명철이어서야 절대로 써먹을 수 없는 방법이다. 어차피 납치해서 빼돌려도 연어나 부메랑처럼 다시 제가 위험해질 곳으로 돌아갈 거고.
사정을 설명한다? 어떻게? 내 말을 믿어줄지도 의문이고, 만약 거짓말을 써서 그를 설득한다고 해도 이미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몽땅 늦어버렸다. 설록진은 무슨 수를 써서든 김명철을 제거하려고 들 테니까.
그러니까 멀리 도망가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그 인간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끄응, 나는 그 아저씨 영 별론데……. 물론 그쪽도 내가 별로겠지만. 그래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아니, 근데 어떡하라고 나보고!
그때 한서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눈을 감고 집중하는 한서현의 얼굴에 나는 느꼈다. 뭔가 큰 게 왔다고. 나는 입가에 손을 얹었다. 내 손짓에 모두가 목소리를 줄였다.
잠시 뒤, 한서현이 말했다.
“어, 미리내당에서 곧 행사를 열 것 같은데요. 그 행사에 김명철 그 사람도 초대됐어요. 요즘 행보 때문은 아니고, 유력 길드장이면 전부 초대됐네요. 어, 그래도 이거 위험한데요.”
“……미리내당에서 여는 행사라면, 당연히 설록진도 있겠네.”
“예.”
“망할.”
설록진과 김명철이 만난단다.
다른 놈이었더라면, 걱정하지 않겠지만 설록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김명철의 눈동자를 잠시 바라보는 것으로 김명철을 끝내버릴 수도 있으니.
어쩌면 자신에게 거슬리는 놈들을 김명철을 이용해 불태워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다음 날 뉴스 헤드라인에는 이런 말이 걸리겠지.
‘붉은개 길드의 김명철 길드장, 미리내당의 의원들을 살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아니, 가능성이 너무 넘쳐서 문제다.
“고민할 시간도 안 주네, 그 양반.”
제3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