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66
93 작전 C (3)
설록진은 그 짧은 시간, 정확히 김명철의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상황에서 설록진이 김명철을 이용해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려나. 만약 김명철을 세뇌해 테러를 일으켰다거나 한다면, 정말이지…… 인명 피해가 어마어마했을 테니까.
설록진은 이걸로 김명철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고 생각할 거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주요 인물을 무력화시켰던 적이 여러 번이기도 하고…….
그 말인즉슨, 당분간은 김명철을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거지.
우리가 김명철을 빼돌리기엔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없었다.
현재 김명철을 보호하고 있는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시리우스의 진연화가?”
“예.”
“어째서 그쪽이?”
내 질문에 한서현이 답했다.
“모르겠어요. 아마도 같이 현장에 있었으니까, 도의적인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붉은개 측에서는 가만히 있어?”
“무슨 얘기가 내부에서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진연화 측에 신변을 맡겨두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일단 ‘시리우스’니까요.”
붉은개 길드가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길드긴 해도, 사실상 가지고 있는 제반 시설은 다른 중소 길드와 별다를 게 없었다.
왜냐, 붉은개 길드 자체의 모토가 ‘주변에 베풀자’였으니까. 실력이 있는 헌터들은 많아도 제대로 된 시설은 없었다. 실제로 헌터들이 부상을 입거나 하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게 시리우스의 부설 병원이기도 했으니.
그렇다고 해도 한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인물을 아예 다른 쪽에서 돌보고 있는 게 영 수상쩍긴 했다. 심지어 그냥 병원에 박아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계속 왕래하며 김명철을 돌보고 있다고 하니, 더더욱 수상쩍었다.
“이번 기회에 점수를 좀 따보자는 건가? 김명철이 그렇게 됐으니, 붉은개 길드가 흔들리는 건 시간문제일 거고. 그 뒤에 붉은개 길드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이득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으음, 확실히.”
“어쨌든, 조금 골치 아프게 됐네.”
설록진은 이것으로 김명철을 아예 아웃시켰다고 생각했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정말 그 사람을 게이트 안으로 데리고 가면 멀쩡하게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아마도.”
실제로 나는 세뇌 때문에 정신을 놓았던 이혜원을 멀쩡하게 만든 적이 있지 않은가.
━네가 아니라 내가.
‘음, 맞아요. 레이가요.’
그래, 이 나서기 좋아하는 아티팩트가 그걸 고쳐냈단 말이지.
“물론 그때에는 세뇌고 지금은 그냥 머릿속을 망쳐놓은 거니까 안될 수도 있지만 말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확인은 해보려고.”
“왜 하필 게이트 안인데?”
“설록진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기니까. 혹시 몰라, 아직도 김명철의 머릿속에 뭔가가 남아 있을지. 그냥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만약 설록진이 남긴 흔적이 있다면 게이트 안으로 가야 해결이 될 거야.”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일단 시도는 해봄직하다는 거다.
“우리의 작전 A, 작전 B는 모두 망했지만 포기하기에는 아직 일러. 어떻게든 김명철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우리가 이기는 셈이야.”
“만약 되돌릴 수 없다면요.”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그것참, 힘이 나는 말이네요.”
한서현의 말에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아직 우리가 할 게 남았다는 게 얼마나 좋으냐! 게다가 말이지.
“생각해보면 아주 나쁜 것도 아니야. 만약 김명철이 우리의 뜻대로 정신을 되찾는다면, 우리가 생명의 은인이 되는 셈이잖아? 전보다는 우리 말을 잘 들어주지 않겠어?”
“예예, 일단 그쪽을 다시 멀쩡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요.”
“그런 의미에서 그쪽 병원, 보안은 어때?”
내 말에 한서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말해 뭐해요. 최고 수준이지. 가뜩이나 최근에 그 꼴이 되었는데, 오죽하겠어요?”
“끄응.”
시리우스의 진연화까지 그곳에 붙어 있다시피 하느라, 보안은 그야말로 최강이라나.
“아니, 진짜 도대체 왜 그렇게 붙어 있는 거야. 보여주기식이라면, 이제 빠질 때가 되지 않았나?”
가족도 아닌데 무려 사흘 내내 붙어 있을 만한 이유가 있냔 말이다.
“서, 설마!”
그때 갑자기 차송진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동안 기, 김명철을 짝, 짝사랑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짝사랑은 무슨! 세상 모든 걸 로맨스로만 보지 말라고.”
“하지만 말이 되잖아! 그게 아니고서야 왜 그렇게 옆에 붙어 있겠어?”
“그거야…….”
확실히 설명이 되지 않긴 하지만. 정말 그 진연화가 그 김명철을 짝사랑하고 있었다고? 아니, 도대체 왜? 전혀 상성이 개뿔도 맞아 보이지 않는 조합인데.
“네가 너무 세상을 팍팍하게만 보는 거라니까. 사랑인 게 분명해.”
“그, 그래…….”
확실히 그럴지도. 어쨌거나 저쪽의 러브 스토리야 알 바가 아니다.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은 김명철을 어떻게 빼돌릴지나 생각해보자고.”
이번에는 정말로 제대로 된 작전이 필요했다. 한서현이 있으니, 그쪽의 동선을 미리 파악하는 것도 가능했다. 병실 안쪽까지는 침입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좋은 병실답게 바깥쪽으로 난 창이 있었거든.
그 창을 통해 우리는 병실 안의 상황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작전을 짜는 도중, 한서현이 한숨과 함께 한탄했다.
“그 짓을 벌여놓고 길드장까지 납치하다니, 정말이지 악명이 하늘을 찌르겠는데요.”
아, 이번 일로 벨츠머츠의 이미지는 또 한 번 나락을 갔다. 지난번 미리내당 테러 때야, 미리내당이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양비론이 흥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양비론도 나오지 않았다.
한낮에 잠자코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컨벤션 센터를 습격해 건물 하나를 터트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건물 바깥에 우리의 이름까지 멋지게 써댔으니까 말이지.
테러를 위한 테러.
벨츠머츠가 원하는 것은, 혼란뿐.
지닝시에서 벌인 살육으로는 충분치 않았나?
이번 일을 설명하는 헤드라인으로도 이번 일로 우리의 이미지가 얼마나 박살이 났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우리를 응원하던 소수의 샤이 벨츠머츠 팬들도 이제는 다들 자취를 감췄다. 모두가 우리를 한마음 한뜻으로 까고 있었다.
국가에 혼란을 몰고 오는 빨갱이 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정도다.
음, 금 박사가 알면 좋아하겠군. 레드가 어쩌고, 저쩌고 했으니 말이지.
우리가 저지른 테러 소식은 온갖 매체를 뒤덮고 있었지만, 김명철의 소식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아직은 수습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만약 그쪽에서 우리를 막으면요?”
한서현이 날카롭게 물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몰라요.”
한서현의 말대로 진연화는 김명철의 주변을 최고의 헌터들로 가득 채워놓았다. 그 헌터들에게서 김명철을 확보하는 건 확실히 고된 일일 거다. 음, 하지만 말이다.
“진연화를 인질로 잡는다면?”
“인질?”
“어차피 그곳에 계속 붙어 있다며. 진연화를 붙잡으면 시리우스의 헌터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야. 혹시나 비각성자인 진연화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일 테니까 말이지.”
“오히려 구하기 위해 난리를 피우지 않을까요?”
지킬 게 김명철밖에 없다면, 적들은 우리를 끝까지 따라올 거다. 하지만 둘이라면?
“중간에 진연화를 내려놓는다면, 시선이 진연화에게 끌릴 수밖에 없을 거야. 아무래도 그 둘 중에서는 진연화가 더 소중할 테니 말이지. 그 틈을 노려서 탈출하면 될 거야.”
내 말에 한서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흐음, 이제야 좀 ‘작전’ 같네요.”
* * *
진연화는 잠든 남자를 노려보았다.
‘아빠…… 같았어.’
그날 이후 김명철은 그녀가 기억하는 진강훈처럼 순진한 사람이 돼버렸다. 물론 진강훈과는 달랐다. 진연화를 보기만 하면 헤헤 웃던 진강훈과 달리 김명철은 진연화를 알아보는 기색이되, 그다지 반가워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연화는 김명철을 그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분명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김명철은 멀쩡했다. 꿈에 젖은 이상적인 소리를 나불거리기는 했어도, 이렇게 정신이 나가 있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김명철을 이렇게 만든 건, 벨츠머츠인가.
그동안 진연화는 자신의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범인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진용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방법은 모르겠으나, 분명히 그 작자가 벌인 일일 거라고.
허나,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진용석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혼수상태가 되어버렸고 진연화는 진실을 알아낼 기회를 영영 놓쳐버렸다.
아니, 영영 놓친 줄 알았다.
만약 김명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진강훈을 그렇게 만든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면?
‘벨츠머츠를 잡아야 해.’
이번 일의 범인은 벨츠머츠다. 그들인 게 너무나 확실해서,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에 대해서는 모두가 말이 많다. 어째서 벨츠머츠는 그곳을 습격해야만 했나.
‘미리내당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그래.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김명철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
김명철은 미리내당의 아군이 아니니까.
머리를 암만 굴려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들을 잡아 진실을 묻지 않는다면 말이지.
애초에 왜 그곳을 습격했는지, 왜 김명철을 노린 건지, 아니, 김명철을 왜 이렇게 만든 건지. 누가 이렇게 만든 건지. 혹시 예전에 진강훈을 그렇게 만든 것도 벨츠머츠, 너희들인지.
묻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
“정말 그놈들이 당신을 이렇게 만든 거라면, 복수는 해줄게요.”
진연화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지, 나도 그 복수가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거든요.”
그 말에 누군가 답했다.
“이거 안 됐네, 나는 그쪽을 꽤나 좋게 생각하고 있거든.”
어딘가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진연화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을 때였다.
텅, 유리창이 날아가며 누군가 진연화를 끌어안았다. 검은 그림자가 달려들어 진연화를 꽁꽁 묶었다.
그와 동시에 이상을 눈치 챈 시리우스의 헌터들이 병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순간, 진연화의 목덜미에 칼이 들어왔다.
“다들 조심해. 내가 실수로 이 분의 목을 그어버릴지도 모르잖아?”
그 말에 진연화를 지키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던 헌터들이 모두 멈춰 섰다.
“하, 하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진연화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자신을 붙잡은 검은 그림자가 두렵고 무서워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진연화는 입술을 꾹 깨물고 숨을 골랐다.
이대로 무력하게 당할 생각은 없었다.
“무, 뭘 할 생각이야?”
그 질문에 대답한 건, 창문 밖에서 들려온 아까의 목소리.
“간단해. 우리랑 같이 가줘야겠어.”
“뭐?”
그림자는 김명철에게도 다가갔다. 잠이 든 그를 옭아맨 그림자가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으읏!”
진연화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기절할 뻔했다. 자신의 발밑에 있는 건물들을 차마 믿을 수가 없어서. 한순간에 그녀는 몇십 미터 상공에 떠 있었다.
검은 가면을 뒤집어쓴 남자가 그녀에게 손을 건네며 말했다.
“잠시만 협조 부탁합니다.”
그녀가 그토록 만나길 바랐던 벨츠머츠였다.
제36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