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67
93 작전 C (4)
‘협조를 부탁한다고?’
진연화는 그 어이없는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당장 수십 미터 상공에서 날아가는 중인데 말이 제대로 나올 리가! 겨우 눈을 돌린 진연화는 자신을 움켜쥐고 있는 것의 정체를 확인하곤 기절하고 싶어졌다.
저번 현장에서도 본 검은 모래가 김명철과 자신의 몸을 고정하고 있었다. 겨우 모래 따위에 몸을 의지해야 한다니!
“으읏.”
진연화는 자신의 발밑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두 눈을 꾹 감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기절한 김명철이 너무나도 부러워졌다.
‘나, 나 고소 공포증 있을지도…….’
자신에게 고소 공포증이 있다는 걸 깨닫기엔 그야말로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언젠가 벨츠머츠를 만나서 진실을 캐물어야지’ 하고 생각한 건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그 기회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부길드장님!”
깨진 유리창 너머에선 길드원들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벨츠머츠, 이 녀석들은 빨랐다. 벌써 건물과 거리를 상당히 벌렸다. 게다가 하늘을 날 수 없는 길드원들과 달리 검은 모래 새의 위에 올라탄 벨츠머츠 멤버들은 여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경호원들이 옥상에서 나름대로 용을 쓰며 진연화를 쫓고 있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그녀를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저 사람을 납치할 필요도 없었던 거 아니에요?”
한참이나 뒤처진 시리우스의 길드원을 확인한 해골 가면의 말에 웃는 가면이 말했다.
“어,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혹시 모르니까?’
자신을 스페어 취급하는 그 말에 진연화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력하게 끌려만 갈 순 없다. 명색이 시리우스의 부길드장으로서, 진연화는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진연화가 물었다.
“너희들의 목적이 뭐지.”
진연화의 목소리에 웃는 가면이 고개를 돌렸다.
“무엇 때문에 우리를 납치하고 있는 거냐고!”
“그쪽은 알 필요 없어요.”
“나를 이, 이렇게 묶어서 납치하고 있는데 몰라도 된다니?”
“잘 협조하면, 이따가 내려 줄 테니까요.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쪽은 뭐냐, 스페어 같은 거라서.”
이들의 목적이 확실해졌다. 김명철을 납치하는 거였다.
“도대체 왜?”
이미 김명철의 머리는 엉망이 되었다. 어린애나 다름없는 그를 굳이 이런 식으로 납치하는 건 무언가 이상하다. 바보로 만든 걸로도 모자라서 확실하게 죽여 놓고 싶기라도 한 걸까?
어째서?
김명철이 방해가 됐던 거라면, 그냥 바보로 만든 걸로 충분하잖아. 굳이 이렇게 납치해서 죽이기까지 해야 해?
그녀의 머릿속에 커다란 그림자가 스윽 그네를 타는 듯 스윙했다.
공중에 매달려 있다는 두려움도 잊고 진연화가 소리쳤다.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든 것만으로는 만족이 안 돼? 굳이 저 불쌍한 사람을 죽여야만, 그래야만 만족하겠어?”
진연화의 말에 가면을 쓴 세 사람의 어깨가 동시에 떨렸다. 웃는 가면의 남자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김명철 씨를 죽이려고 한다고요?”
“그게 아니라면 왜 우리를 납치한 건데! 애초에 바보로 만들었으면 충분하잖아, 불쌍한 사람, 그냥 내버려 두라고!”
“어, 음. 불쌍하니까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겁니다만…….”
“도움? 죽이는 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 건데!”
혹시나 진용석도 그렇게 생각한 걸까. 그래서 아빠가 스스로 목을 맨 걸까. 그 생각을 하니, 순식간에 목이 메었다.
“우, 우리 아빠도…….”
너희가 그렇게 만든 거야?
진연호가 입을 열어 그렇게 물으려 했을 때였다.
“큿!”
검은 새가 크게 몸을 비틀었다. 공중에 갑자기 나타난 무언가 때문이었다. 공중에서 튀어 오른 푸른색 번개를 본 순간, 진연화는 반색했다.
그래도 믿을 만한 놈이 하나는 있었다.
공중에서 나타난 유선제를 본 진연화의 눈동자에 희망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 * *
공중에 나타난 유선제의 머리는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맑았던 하늘은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사방에 퍼져나간 유선제의 마력이 이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정전기가 다 일어날 정도였다.
저번에도 느낀 건데, 확실히 파워업 했다.
가만히 틀어박혀 훈련에 힘쓰고 있다더니. 확실히 그 훈련의 성과가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이걸 어쩐다라.
이 공중에서 번개를 다룰 수 있는 유선제와 맞서는 건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래로 내려가자니, 저 멀리에서부터 우리를 쫓고 있을 시리우스의 길드원들이 거슬렸다.
‘생각보다 빨리 저 사람을 던져 버려야 할지도요.’
나는 진연화를 눈으로 훑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여기에서 대뜸 던져 버리고 도망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우리를 당장에라도 공격할 것 같았던 유선제는 공중에서 우리를 가만히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고개를 기울인 채로 나를 바라보는 유선제를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둘 사이에는 긴장감 넘치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진연화가 외쳤다.
“뭐, 뭐 해요! 당장 나를 구해야죠!”
진연화의 채근에도 유선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삐딱하게 공중에 멈춰 선 유선제는 팔짱을 낀 채로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한서현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왜, 왜 저러고 우리를 보는 거죠?”
“그, 글쎄다? 일단은 상황을 파악해 보려는 거려나?”
“저러고요?”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유선제의 태도에 한서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냥 구경 나온 사람 같은데…….”
“설마, 자기 부길드장이 잡혀가는 중인데 그냥 구경만 하려고 온 거겠어?”
하지만 한서현의 말대로 유선제의 태도에는 묘하게 간절함이 빠져 있었다. 부길드장이 나쁜 놈에게 납치당해 끌려가는 상황이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긋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나.
“혹시 모르지, 이대로 시간을 끌어서 지원군을 기다리자는 작전일지도.”
유선제 입장에서는 굳이 힘들게 나설 필요 없이, 우리를 막아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일을 하는 셈이니까.
“그런 거라도 너무 태연해 보이지 않아?”
“태, 태연한 쪽이 누군데! 우리야말로 너무 태연한 거 아니냐고!”
차송진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외쳤다.
“여기에 이대로 있으면 안 되지. 적, 적들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잖아.”
“그야, 그렇긴 한데…….”
나는 유선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우리를 향해 번개를 날려도 이상하지 않은데, 가만히 있는 걸 보니 어째 수상해서 말이다.
“어, 어찌 되었든 빨리 뚫고 지나가야지! 아니면 작전대로 하든가!”
차송진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뭐, 그렇지. 여기에서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나는 한서현에게 눈짓했다. 진연화가 훅하고 우리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끄으읏!”
필사적으로 비명을 참고는 있지만, 두려움까지 모두 몰아내지는 못했는지 얼굴이 울긋불긋해진 진연화는 눈물 젖은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너희, 절대로 용서 못…….”
진연화의 협박 뒤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진연화의 뒤에서 유선제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나 사이를 빠르게 오가는 손짓에는 분명 무슨 뜻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뭐랄까…….
‘전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본 유선제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뜻으로 어깨를 들썩거렸다. 머리를 짚은 유선제가 고개를 내젓더니 내 뒤로 순간 이동했다.
“내 도움이 필요하냐고.”
“헉!”
갑작스러운 유선제의 등장에 검은 새 위에 앉아 있던 우리는 불빛을 맞닥뜨린 바퀴벌레처럼 순식간에 흩어졌다.
“흐아악!”
특히 새가슴을 가진 차송진은 유선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검은 새에서 거의 떨어질 뻔했다. 그림자에서 솟아난 김재호의 손이 차송진의 등을 붙잡지 않았다면, 분명 떨어졌을 거다.
이 난리 속에서도 나는 유선제가 내뱉은 말에 집중했다.
“도움이 필요하냐니.”
헛웃음이 나올 만큼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진심이냐. 지금 너희 부길드장이 나한테 잡혀가는 중인데?’
가면 속의 내 표정이 보였을 리도 없건만, 유선제가 태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야, 네가 하는 일이니까 나한테 손해는 아닐 거 같아서.”
“내가 누군데.”
“사람들에게는 각각 특이한 전기 신호가 흐르거든.”
그렇게 말하는 유선제의 손끝에 전기가 파사삭 튀었다. 동시에 내 머리카락과 사지 말단에 짜르르 전기 신호가 왔다. 그러니까 저 말에 따르자면…….
‘내 정체를 눈치챘다고?’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내 정체를 들킬 줄이야. 아니, 정체를 들켰는데도 저 반응은 뭔데!
여태까지 유선제를 좀 돕기는 했지만, 벨츠머츠로 우리가 저지른 일이 있는데도, 아니, 심지어 눈앞에서 자기 부길드장을 납치하는 중인데도 이런 말을 하다니.
미, 미친 걸까?
정신이 나갈 만큼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서, 선제 씨이?”
진연화의 넋 나간 얼굴에 유선제가 태연히 답했다.
“아, 이 녀석. 저한테 손해될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서요.”
“미쳤어? 지금 내가 납치당하는 중이잖아!”
자신의 콘셉트도 잊고 진연화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에도 유선제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사정이 있을 거예요.”
“사정? 무슨 사정! 김명철 씨를 지금 죽이려고 데리고 가는 거잖아!”
두 사람의 사이에 낀 나는 머리를 움켜잡았다.
정말이지, 환장하겠네.
“죽이는 거 아니고요! 도와주려고 하는 겁니다!”
내 외침에 유선제가 거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진연화는 콧김을 내뿜었다.
“그 말을 나한테 믿으라고!”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시죠. 죽일 생각이었으면 벌써 죽였겠지! 아무것도 못 하는 두 사람을 왜 여기까지 다치지 않게 끌고 왔겠습니까?”
그 말에 진연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거야 그렇지만…….”
“말했잖아요. 도와주려는 거라고.”
“왜?”
진연화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가 저렇게 만든 게 아니야? 일부러 바보로 만든 거잖아. 김명철을 노리고 그곳을 습격해서, 그렇게 만든 거잖아…….”
“우리가 한 짓이 아닙니다.”
이건 정말로 억울한 누명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밖에는 안 들겠지만 말이다. 내 말에 진연화의 눈빛이 변했다.
“누군데, 그럼.”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진연화가 물었다.
“너는 알고 있는 거지, 당신은 알고 있는 거야.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기백이 대단하다. 뒤에 호, 호랑이가 보였다고! 비각성자에게 이런 기백이 말이나 되는 거냐. 그런 생각을 할 때 진연화가 말했다.
“알려 줘.”
“이 일은 그쪽이 낄 일이 아닙니다. 그냥 적당한 곳에 내려드릴 테니…….”
내 말을 진연화가 끊었다.
“아니, 내 일이야. 왜냐? 그놈. 김명철 길드장을 이렇게 만든 놈. 아무래도 우리 아버지의 원수 같거든.”
그 말에 나는 진연화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나도 알아야겠어, 김명철 길드장을 저렇게 만든 인간이 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