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52
19 일단은 보호자 (2)
벨츠머츠.
도채희는 종이에 적힌 이름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현장에 남은 족적과 시체들에 남은 흔적으로 보육원에 침입했던 사람들의 수를 추릴 수 있었다.
그동안의 조사로 밝혀진 녀석들의 수는 최소 둘. 그곳에 있던 사람이 벨츠머츠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혹은…….
“벨츠머츠라는 게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어떤 조직의 이름이라면?”
그 깨달음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각성자 범죄부의 모든 시선은 벨츠머츠를 향해 있었다. 벨츠머츠가 저지른 사건의 수는 공식적으로 단 두 건에 불과했지만, 그 두 건 모두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옥션, 그리고 이번의 실험실 습격 사건.
도채희는 벨츠머츠라는 글자 아래에 가면을 그려 넣었다.
“가면을 쓴 남자.”
이놈이 벨츠머츠의 리더, 혹은 브레인. 어쨌거나 얼굴마담. 재능은 아마도 물과 관련된 계통. 정확한 등급은 알 수 없지만, 현장에서 몇 톤이나 되는 물을 순간적으로 소환해 다뤘다는 걸 생각하면 최소 B급에서 A급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이번 실험실 습격 사건에서는 물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 정도 물 능력자라면 습격에서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 버릴 수 있었음에도,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 자체도 없었다.
가면을 쓴 남자 아래에 도채희는 A라는 인물을 적어 넣었다.
이번 실험실 습격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 이놈은 무려 단순한 물리력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깨부숴 살해했다. 현장에 남은 족적과 보폭을 통해 추정해 본 녀석의 신장은 185cm 이상.
가면을 쓴 남자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이놈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그나마 도채희가 목격이라도 했던 리더와는 달리 이쪽은 아예 본 적도 없으니.
현장에서는 놈의 혈흔이 발견되었지만, 오염이 심해 DNA 추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니면 아예 애초부터 시료 자체가 오염되어 있었다든가, 일반적인 인간의 것과 다르다든가.
‘개조 인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이곳을 습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개조 인간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어쨌거나 이 A라는 인물과 또 다른 B라는 인물이 있었다.
B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은 단검으로 깔끔하게 목이 잘렸다. 주저흔이 전혀 없었고, 단면이 매끄럽다는 걸 봐서는 단검술에 상당히 능한 인물이라고 추정된다는 말이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사람의 수는 총 둘. 가면을 쓴 남자와 B라는 인물이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 두 명에서 세 명이 현재 확인된 이 벨츠머츠의 구성원이었다.
그리고 바닥에 찍힌 핏자국으로 현장에 있던 아이들이 벨츠머츠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에 젖은 자그마한 발자국을 보며 도채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실험실 내에 존재하던 아이들의 수는 추정 열.
그 밖에 피해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곳에서 발견된 자료를 해석할수록 도채희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곳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된 연구원들은 모두가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개자식들이었다. 그 아이들 열 명은 이 지옥에서 겨우 살아남은 불쌍한 피해자들이었다. 벨츠머츠는 그 불쌍한 피해자들을 납치한 쓰레기들이었고.
“어떻게든 찾아낸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딱 기다려, 이 벨츠머츠 놈들아.
도채희가 그렇게 말하며 이를 갈 때였다.
박철완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도착했다.
[보육원에 있었던 아이 중 한 명을 찾았단다!]
“거기로 갈게요.”
겨우 얻은 단서였다. 도채희는 곧바로 현장으로 떠났다. 보육원에서 발견된 아이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도채희를 마주 봤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자신들이 자는 사이에 모든 게 다 끝나 있었다고 했다.
다만.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에 어떤 애가 왔어요. 덩치도 엄청 크고 그랬는데 열두 살이랬어요.”
“열두 살이라고?”
“네, 근데 꼭 어른 같았어요.”
그 말에 도채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애는 어떻게 됐는데?”
“몰라요.”
보육원에 기록이 남아 있었던 건, 네 명뿐이었다. 다섯 번째 아이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말했다. 분명히 다섯 번째 아이가 있었다고.
“맞아, 우리한테 계속 뭘 물어봤는데…….”
그 말에 도채희는 그동안 수첩에 늘 끼고 다녔던 사진을 하나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혹시 이 사람 알아보겠어?”
그 사진을 꺼내 물으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옥션장에서 본 게 헛것이 아니라면.
“맞아요, 이 사람!”
그 순간 도채희의 머릿속에는 벼락이 쳤다.
한서현이 벨츠머츠와 함께 있었다.
* * *
“나, 그거 줘어.”
사호의 손짓에 케첩 통이 두둥실 공중으로 날았다.
쿵.
나는 사호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능력 쓰면 안 된댔지.”
“그렇지만! 쟤가 안 줬단 말이에요.”
그렇게 말한 아이는 입을 삐죽였다.
“그래도 안 돼.”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재능을 쓰는 걸 꺼리지 않았다. 처음 눈치를 본 이틀이라는 시간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마음껏 능력을 써 댔다.
아직 능력을 한 번도 안 보여 준 건, 지금 나를 노려보고 있는 일호뿐이다.
━쟤는 언제나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구만.
며칠 만에 완전히 무장 해제를 해 버린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일호는 영 정을 붙이지 못했다. 지나치게 어른스럽다고 해야 하나.
주변 아이들을 잘 챙기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와는 벽이 아닌 벽을 쌓고 있었다.
한서현과 김재호는 완전히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모두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한서현의 스켈레톤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다구야, 다구.”
오히려 뼈다구라는 애칭까지 붙여서 부르며 쫓아다녔다.
김재호는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을 빼앗긴 질투인지 뭔지 뼈다귀를 두들겨 패다 걸린 적도 있으니.
━보기 좋기야 하다만, 엉망진창이군.
레이의 말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 기지는 엉망진창이 돼 가고 있었다. 장난감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기 일쑤였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라고 줬던 크레용으로는 툭하면 벽과 바닥을 칠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걸 보면서 어깨만 으쓱거렸다.
뭐, 평생 저렇게 편하게 있질 못했을 테니. 잠시 봐주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평상시처럼 난리를 치고 있는 아이들을 피해 빨래라도 돌리러 갈 참이었는데, 한서현은 이야기를 하자며 나를 불렀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서 나를 부르나 하고 갔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냈다.
“애들 방을 따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그 말에 나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그래도 언제까지 저 방에 애들을 둘 수도 없고…….”
“애들은 어차피 여기에 오래 안 있을 거야.”
“네에?”
“우리 그래도 나름 빌런이거든? 얘들을 끼고 살 수는 없다고.”
“그야 그렇지만…….”
“여기 말고 더 좋은 데로 보내 줄 생각이니 걱정은 하지 말고.”
아이들은 이 허술한 집에서도 행복해하고 있었지만, 여기는 아이들이 자라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다. 아이들을 보낼 장소도 대충 머릿속에 떠올렸다. 문제는 거기까지 아이들을 어떻게 옮기느냐지만, 어쨌거나 방법이야 찾으면 그만.
“우리랑 같이 있어 봐야 쟤네한테 좋을 것도 없어.”
나는 그렇게 말한 뒤 한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이제 빨래를 하러…… 가려는 나를 또 다른 꼬맹이가 잡아챘다.
“저기요.”
일호였다.
“어.”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동자는 제법 사나웠다.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으응?”
“계속 여기에 둘 생각은 없다고 말했잖아요.”
나와 한서현의 이야기를 엿들은 모양이다. 나는 볼을 긁적거렸다. 언젠가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둘러댈 생각도, 거짓말을 할 생각도 없다.
“그래. 맞아.”
내 확답에 아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워낙 작고 여린 모습이라 나도 양심에 찔렸지만,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게 낫겠지.
아이지만, 자신의 상황을 알고 판단을 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왜요?”
“여긴 너희한테 좋은 곳이 아니니까.”
“난 여기가 좋은데요.”
“음, 우리가 너희를 언제까지 이렇게 봐줄 순 없어.”
내 말에 일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뭐든 할 테니까 여기에 있으면 안 돼요?”
“응, 안 돼.”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왜요?”
나는 쓰게 웃었다. 애써 어른처럼 굴고 있어도 아이는 아이였으니까.
“우리는 나쁜 사람이야. 너도 봤잖아. 우린 어, 사람도 죽였고.”
“그래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제일 좋은 사람이에요.”
그 말에 또 한 번 가슴이 아팠다. 그래, 이놈들이 겪은 환경을 생각하면 ‘사람을 죽였다’는 건 그리 큰 죄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
“아니야. 큰 착각이야. 어쨌거나 이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런 나쁜 일을 하면서 살 거야. 그런 걸 너희 같은 어린애들한테 시킬 수는 없지.”
“나랑 서현이 형이랑 여섯 살밖에 차이 안 나요.”
열 살인 줄 알았는데, 열한 살이었나. 그래도 여전히 어린 건 마찬가지였다.
“너희 나이에 여섯 살 차이면 엄청나잖아. 너흰 너무 약하고, 배워야 할 게 많아. 난 누굴 가르쳐 줄 정도로 여유가 많지 않고. 그래, 아저씨한테는 어린 너희를 책임질 여유가 없어요.”
그렇게 말한 나는 일호에게 덧붙였다.
“하지만 너희가 갈 곳은 아니야. 거긴 좋은 곳이야. 너희를 잘 봐주고, 너희를 이끌어 줄 좋은 사람이 있는 곳이니까.”
내 말에도 아이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내가 자신들을 팔아넘길까 봐 걱정하는 건가.
“나를 못 믿는 건 이해하겠지만…….”
“믿어요.”
겨우 안 지 며칠이나 됐다고 믿는다는 건지.
“사람 그렇게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 이 아저씨도 못된 마음 먹고 너 데려왔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니까 언제나 의심해. 좋아 보이는 사람일수록.”
“우리 갖다 팔 거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리고 느껴져요.”
아이의 동공이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나는 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아저씨 생각을 읽는 건 이상하게 어렵지만.”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라 아이를 봤다.
“진짜예요. 아저씨만 빼고 다 읽을 수 있다고요.”
그야 나에게는 불굴의 신념이라는 패시브가 붙어 있으니까. 그나저나 생각을 읽는다니. 제법 위험한 능력이었다.
“잘은 안 보여도 아저씨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있어!”
━이런 조심하려무나! 네 천적이 나타났구나.
레이의 말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너무 능력을 믿진 말고. 게다가 함부로 쓰면 위험해. 네가 능력을 쓸 때마다 동공이 빛난다는 건 알고 있지?”
“네에.”
“그걸 본 다른 사람들이 너를 해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언제나 능력을 쓰는 건 신중하게 하도록 해.”
“그냥 앞으로도 이렇게 아저씨가 가르쳐 주면 되잖아요.”
“그건 안 돼, 미안.”
일호는 내 단호한 태도에 매달리는 걸 멈추고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힘없이 떠나는 그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한숨을 쉴 때였다.
━그러고 보니 네 동공이 빛나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그야, 능력을 쓸 때 내 동공은 검은색으로 물들거든요.’
내 능력을 쓸 때 나는 마치 한서현처럼 동공이 검게 물든다. 그나마 동공 주변이 일렁이는 한서현과 달리 내 ‘거짓말’은 그야말로 감쪽같다. 다른 능력을 쓸 때는 어땠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다음에 한번 봐야겠구만.
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중요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미리 알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후, 그나저나 정이 더 들기 전에 어서 이 녀석들을 이곳에서 옮겨야겠다. 정을 주지 않겠다고 말해 뒀으면서, 나도 사실 그동안 저 녀석들과 정이 들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더 지나면 보내기 어려워질지도.
하지만 아이를 옮기는 건 혼자만의 힘으로 불가능했다.
이번 일에 딱 적격인 사람이 있긴 있지.
마침 투자가 어떻게 됐는지도 알아봐야 했으니까. 설마 내 돈을 전부 날려 버린 건 아니겠지?
제5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