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67
24 게이트 치워 드리러 왔습니다 (1)
“그래, 게이트.”
우리의 일차 목표는 이 나라에 있는 나쁜 놈들을 때려잡고 세상을 구할 재원들을 많이 확보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리의 실력을 늘려야 했고, 실력을 늘리는 데에는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보다 빠른 건 없다.
실제로 게이트를 공략할수록 마력이 늘어난다든가 하는 식의 ‘공략 보상’을 시스템이 줄 때도 있으니까.
문제라면…….
“하지만 게이트는 보통 다 공략 팀이 정해져 있잖아요.”
한서현의 말대로 국내의 게이트에는 다 주인이 있다는 거였다.
“그래, 확실히 우리처럼 뭣도 없는 놈들이 게이트를 공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게이트 탐지 장치가 있는 한 85% 이상의 게이트는 등장도 전에 위치가 파악되고, 각 계약에 따라 길드나 사설 공략 팀에 분배된다.
혹여 게이트 탐지 장치에 걸리지 않은 게이트라고 하더라도, 등장과 동시에 경매로 나와 판매가 되기 마련이니 일단 공식적인 자리에 떳떳하게 나가지 못하는 우리 같은 빌런은 공략할 게이트를 찾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아니면 설마 게이트 탈취라도 생각 중인 거예요?”
한서현이 말하는 게이트 탈취라는 건, 빌런들이 주로 저지르는 범죄였다.
평범한 공략조인 척 공개 판매로 나온 게이트에 섞여 들어가거나, 아니면 게이트를 지키는 외부 인원들을 모두 죽이고 게이트에 들어가 공략 팀이 게이트 공략을 하기 직전 그들을 몰살시키고 게이트를 빼앗는.
물론 둘 다 불법이다.
“아니, 죄 없는 공략 팀을 죽일 순 없지.”
“휴우.”
비록 우리가 사람을 죽이고, 옥션을 도둑질하는 못된 놈들이기는 해도 아무나 해치지는 않는다.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생각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할 작정인데요?”
“흠, 확실히 국내에 있는 게이트는 네 말대로 거의 공략이 불가능하지. 하지만 해외는 어떨까?”
탐지 장치도 잘 설치되어 있는 데다가 인구밀도가 높아 관리가 잘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외에는 방치된 게이트가 많았다.
“또 해외로 가자고요?”
내 말에 한서현은 기겁했다. 저번에 배를 탔다가 호되게 당한 일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번에는 네 신분증을 제대로 구해 놨잖냐. 비행기를 타고 갈 거다.”
내 말에 한서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진짜 어지간히 배가 싫은 모양이다.
“어디로 갈 생각인데요?”
“호주.”
호주는 불행히도 인구밀도가 엄청나게 낮은 곳 중 하나였다.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살기 좋았을지 모르는 그 조건도, 게이트 세상에서는 살기 불행한 조건이 되고 말았다.
인구밀도가 낮다는 건, 그만큼 게이트가 나타나도 그걸 찾아 줄 사람이 적다는 말하고도 같았으니까. 자연히 호주에 있는 게이트들은 모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중심가에 나타난 게이트나, 사람들이 발견한 게이트는 재빨리 처리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외곽 지역에 생긴 것들은 브레이크가 될 때까지 방치되는 경우가 흔했다.
원래부터도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던 호주는 전 국토에서 쏟아지듯 생성되는 게이트와 그 게이트가 브레이크되어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호주 영토의 70%가 게이트에서 나온 쏟아져 나온 몬스터에 의해 지배된 상황이다.
“헌터가 입국하는 건 아무런 제약도 없을 정도야.”
“허, 그렇단 말이에요?”
“응, 범죄자든 뭐든 게이트 공략을 위해 하는 입국에 한해서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라. 6성급 이상의 헌터는 미리 신청만 하면 전용기까지 보내 줄 기세일걸.”
그래서 우리의 행선지로 호주를 택했다.
과연 내가 예상한 대로 입국 심사는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오죽하면 입국 심사다운 심사도 없었다. 뭐가 됐든 좋으니 호주 땅을 좀먹고 있는 몬스터나, 게이트를 해결해 달라는 태도였다.
그렇게 내려선 호주의 공항은 조용했다.
“진짜 조용하네요.”
“호주는 지금 국제적으로도 평가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거든.”
국토의 절반이 게이트에 잠식당해 있는 만큼 호주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국토 대부분이 소실된 상태니까. 막말로 제대로 된 헌터라면 이곳에 오지 않는다.
우리처럼 ‘피치 못하는 사정’으로 꼼꼼한 입국 심사를 통과할 자신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아크라는 용병대의 대원들로 신고를 마쳤다. 당연히 용병대의 대장은 나다. 두 사람은 대원이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단 세 명의 용병대임에도 관계자는 우리를 환한 미소로 맞았다.
[이런 상황에 원조를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중에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좋지는 않습니다. 보니까 대부분 4성급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8구역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하니, 아마 그쪽으로 지원 가시면 될 겁니다. 언제든지 돌아가실 순 있지만, 게이트 배정이 완료된 다음에는 게이트를 공략하시기 전까지는 출국이 금지되니 주의해 주세요.]
[예, 게이트 배정에 관해서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요.]
[뭡니까?]
[되도록 저희 셋만 단독으로 들어갔으면 해서요. B급 게이트까지는 괜찮을 겁니다.]
내 말에 남자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B급 게이트는 4성급 헌터 15명 이상으로 공략하게 돼 있는데요. 게다가 단독 행동은…….]
[압니다. 하지만 저 친구가 성격이 더러운 편이라서요. 피를 보면 미쳐 날뛰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라.]
내 말에 남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나는 김재호에게 말했다.
“방긋 웃어, 이빨 보이면서.”
[히이익!]
김재호의 살인 미소를 본 남자는 덜덜 떨면서 우리에게 C급 게이트를 배정해 주겠다고 말했다.
[B급은 무리입니다! 그, 그래도 나중에 실적을 쌓으시면 가능할 겁니다.]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한서현이 내게 물었다.
“C급 게이트를 갈 거예요?”
“그래, 일단은.”
그렇게 C급 몇 개를 처리하고 등급을 올려 B등급의 게이트에 도전해 봐야지. 그동안 잘난 척을 해 왔지만, 나도 게이트를 공략해 보는 건 처음이라서 말이지.
셔틀을 타고 도착한 8구역은 좋은 말로도 괜찮은 분위기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어수선했다.
욕설이 날아들고, 먼 곳에서 비명도 들렸다.
“이게 무슨…….”
“원래 이래. 우리나라가 말도 안 되게 게이트 관리가 잘되는 편이라고 했잖아.”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런 거친 분위기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호주는 현재 국토의 대부분을 소실한 상태였다.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으로 엉망이 된 곳에서 몬스터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반대쪽에서 틀어막고 있는 형태다.
“저 방어선 바깥쪽에는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몬스터가 잔뜩 있을 거야.”
“허어.”
나는 손가락으로 벽 끝에 붙은 천막을 가리켰다.
“저기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장막을 공격하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전투조일걸.”
벽이 뚫리면,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몬스터의 타깃이 된다. 자연히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다.
이곳은 게이트 공략조가 마지막으로 머무는 숙소이자, 이 안으로 더는 몬스터가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어선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우리도 내일 저 바깥에서 우글거리고 있을 몬스터들을 뚫고 게이트로 향해야 돼.”
“진짜요?”
“그래.”
“상황이 이런데도 게이트 공략을 하는구나.”
“어쩔 수 없지.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다고 다른 게이트까지 방치했다간, 더더욱 방어선을 지키기 힘들게 될 테니까.”
“으음.”
생각했던 것보다 이곳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한서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우리는 미리 배정받은 천막으로 들어가 대충 짐을 풀었다. 안경을 쓴 자그마한 남자가 천막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크 용병대 맞나요?]
[예.]
[오! C급 게이트 배정 건으로 왔습니다. 가장 빨리 출발하실 수 있는 건 내일이고요.]
벌써 배정이 끝났나. 생각보다는 빨랐다.
[셔틀 출발 시간은 내일 여섯 시입니다. 늦으면 타실 수 없으니 시간을 엄수해 주세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여섯 시에 출발한단다.”
“헉, 진짜요?”
“그래, 그러니까 다들 잘 수 있을 때 자 둬. 내일부터는 여유가 없을 테니까. 설명은 내일 해 줄게.”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김재호에게 말했다.
“잠이 필요 없어도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저기 바깥에 있는 인간들은 다들 한 성깔 하거든.”
감각이 예민한 김재호에게 멀리에서 들려오는 몬스터의 소리는 스트레스일 테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피곤했던 탓인지 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나는 눈을 떴다.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한서현을 깨워 세수를 시키고 장비들을 챙겼다.
장비를 모두 챙기고 여섯 시. 천막 바깥으로 나오자 어제 봤던 담당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셔틀에 탑승하시죠. 편한 대로 앉으시면 됩니다.]
[예.]
내 손짓에 아직 얼굴에 잠이 그대로 달라붙어 있는 한서현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김재호가 움직였다.
우리가 탈 셔틀은 버스라기보다는 탱크라고 부르는 게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몬스터들 사이를 지나가야 할 테니, 이런 모습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
셔틀의 바깥쪽에는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떨쳐 내기 위한 아티팩트도 장착되어 있었다.
“이야.”
나는 한서현과 김재호를 데리고 셔틀의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유리창 같은 건 없다. 내부는 답답할 정도로 좁았다. 오로지 몬스터의 공격을 견디기 위해 설계된 차체였다.
좁은 의자에 자리를 잡으며 한서현은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 내 옆에 자리를 잡은 한서현과 달리, 김재호는 가장 구석에 눈을 감고 앉았다. 한서현은 김재호가 신경 쓰인다는 듯 시선을 던졌지만, 김재호는 이미 잠이 든 듯 미동도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탑승하고 문이 닫혔다. 우리의 앞에도 영 거칠어 보이는 남자 셋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척 봐도 비리비리해 보이는군. 설마하니 우리랑 같이 가는 팀이 너희는 아니겠지?]
자신의 남성성을 쓸데없이 발휘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타깃이 된 건, 겉으로 보기에는 약해 보이는 동양인들이기 때문이겠지.
나는 남자에게 경고했다.
[게이트 전에 미리 힘을 빼고 싶은 거라면 다른 쪽에 가서 헛짓거리 하는 게 나을 거야.]
[하하, 겁이 나서 그런 건 아니고?]
나는 눈을 감았다.
우리와 싸우고 싶어도 이쪽에서 받아 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을 거다. 이 셔틀 안에서 싸울 수는 없을 테니.
[겁쟁이들.]
가만히 눈을 감은 나를 보며 남자들이 이런저런 더러운 말을 떠들어 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뭐 푸시 어쩌고저쩌고한 것 같은데요.”
영어는 잘 못해도 우리를 향한 욕이라는 걸 알아들은 한서현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저놈들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이 안에서 싸움은 금지되어 있으니까.”
[거기 원숭이들, 뭐라고 떠들어 대는 거야!]
우리 앞에 앉은 남자가 우리를 향해 무어라 외칠 때였다.
쿠웅! 셔틀이 거칠게 흔들렸다. 몸이 흔들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윽!”
나는 눈을 찌푸렸다. 창문 하나 없이 꽉 막혀 있어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일반적인 건가?
이번이 처음이니, 이게 평범한 건지, 아닌지를 모르겠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당황한 얼굴로 무기에 손을 올린 걸 보니 알겠다.
뭔가 큰일이 났다는 걸.
제6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