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10)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10화(10/101)
제10화
아, 오늘도 과장은 개XX였다.
업무 처리하랴, 개 같은 상사 비위 맞추랴 진이 다 빠져 퇴근한 직장인, 정수지는 침대에 널브러져 힘없는 손을 들어 TV를 켰다.
요즘엔 왜 이렇게 재미있는 일도 없고 삶이 무미건조한지. 매일 각종 사건사고로 피곤하게 만드는 뉴스나 거기서 거기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은 더 이상 그녀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어? 새로 시작한 방송인가.’
무의미하게 채널 버튼만 꾹꾹 누르고 있던 그녀의 시야에 새로 런칭한 프로그램인 듯한 방송이 들어왔다.
‘오, 잘생겼는데.’
그래, 짧은 인생 눈호강이라도 해야지. 얼핏 스쳐 지나간 상큼한 얼굴들에 그녀는 채널을 옮기던 손을 멈추고 그대로 화면에 집중했다.
“아, 안녕하세요, 김해월입니다. 취미는 작곡입니다. 오늘도 제가 작곡한 자작곡을 가지고 왔습니다.”
귀여워. 침대에 누워서 고개만 돌린 자세로 정수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말티즈 같이 하얗고 똘망똘망하게 생긴 연습생 하나가 다소곳하게 자기소개와 곡 소개를 하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자작곡이라더니 꽤 괜찮았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듯한 부드러운 멜로디에 그녀는 마음속으로 합격 버튼을 눌렀다. 그래, 귀염둥이야, 너는 합격이다.
뒤이어 나온 상큼하고 풋풋한 얼굴의 연습생들이 필사적으로 춤추며 자기소개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후하게 얘도 합격, 쟤도 합격, 속으로 합격을 남발했다.
그러다 어느새 그녀가 퇴근 후 집에 들어와서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1시간 가까이 침대에 누워 있었단 것을 깨달았다.
“헉 내 피부. 씻기라도 해야 하는데.”
“안녕하세요, 주지호라고 합니다. 얼굴만큼이나 멋진 실력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앗, 너무 잘생겼다. 정수지는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씻으러 가기엔 압도적인 잘생김이었다. 그녀의 취향을 무시하고 눈에 들어올 정도이니, 앉아서 봐주는 것이 예의였다.
본인 입으로 잘생겼다고 말한 주지호는 준비해온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수지는 처음엔 하하 웃다가 점점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 지호야. 잘생겼는데 너무 뚝딱대는 거 아냐? 그래서 아이돌 어떻게 하겠어?”
사람 눈은 다 비슷비슷한 듯, 심사위원단에 앉은 수석 멘토 태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이돌이 꿈인 게 맞아요?”
안타까운 마음에 TV 밖에 있는 정수지가 대신 대답했다.
“아이돌 좀 하다가 연기하면 되잖아요. 저런 얼굴을 떨어뜨리는 건 국가의 크나큰 손실이라고요.”
가차 없이 최저등급을 받은 주지호를 속으로 격려하며 정수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씻기는 글렀으니, 본격적으로 볼 생각으로 캔 맥주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그사이 몇몇 연습생들이 지나간 모양, 벌써 93번 연습생 차례였다.
“오, 얼굴 괜찮은데? 귀여운 느낌도 있고?”
그녀가 칭찬한 귀여운 연습생은 갑자기 얼굴을 굳히더니 우렁차게 인사했다.
“천세, 천세, 천천세. 93번 이청우, 세공사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마도일세, 천하앙복(天魔仰伏!)”
“마, 마도? 그리고 뭐, 천하아앙복?”
화면에 비친 연습생들도 그녀와 같이 얼빠진 모습이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운 인사에 그녀의 뒤통수가 다 얼얼했다. 저런 얼굴로, 저런 인사는 아니지!
그리고 93번 연습생이 반주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정수지는 입덕하게 되었다. 천마한테 올리는 인사를 시청자에게 해버린 이청우 연습생에게.
이게 바로 덕통사고란 것이구나. 최애가 뒤통수를 때리면서 내가 바로 네 최애다!를 외친다더니.
표정도 새초롬했다가 천년 묵은 여우처럼 능글맞았다가 초 단위로 사람 미치게 만든다. 이청우 연습생, 어색하게 자기소개하길래 기대를 하나도 안 했는데. 인제 보니 쑥스러움이 많나 보네. 저 성격으로 무대에서는 날아다니는 게, 그 갭에서 오는 귀여움도 장난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어려워 보이는 안무를 소화하며 노래를 안정적으로 불러 앞의 연습생들 무대를 죄다 재롱잔치로 만들어 버렸다.
“아무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실력이 제일이지.”
박력 있는 인사와 함께 시작된 퍼포먼스는 어느덧 그녀의 마음에 내리꽂혔다. 마지막에는 체력이 다했는지 숨이 거칠어지는 것까지 모든 장면이 그녀의 취향을 부수고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다.
이거다, 이 순간을 위해 오늘 김 과장의 개꼰대짓을 모두 버텨온 것이었다. 정수지는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여운을 품에 안고 컴퓨터를 켰다.
정말 오랜만에 최애가 나타났다. 이건 하늘이 점지해 준 것이다. 덕분에 십 년 동안 잠들어있던 그녀의 덕질세포가 깨어났다.
정수지는 포털 사이트에 ‘이청우’를 검색했다.
일단 최애의 모든 것을 알아야겠다. 정수지는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며 올라온 정보와 다른 시청자의 반응을 확인했다.
***
본격적인 프로그램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청우는 정이원을 따라 진주 등급에 지정된 연습실로 향했다. 오늘부터는 등급에 따라 모여서 수업을 듣고 연습을 한다고 들었다.
“메인 테마곡 레슨 이외에도 수업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아. 아, 댄스 수업만 듣고 싶다.”
이원은 자신이 관심 있는 댄스 부분에만 시간을 쏟고 싶은 것 같았지만 청우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청우’는 연습생을 오래 하여 웬만한 내용을 다 알고 있겠지만 청우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처음이기에 기본기부터 다질 필요가 있었다. 이론을 몰라도 할 수 있는 부분이야 많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처음 보는 장르의 춤이나 노래 기법 등은 배워보고 싶은 부분이었다.
“어서 오세요, 우리 블링돌에서는 연습생 여러분들의 수준 향상을 위해 기초 아이돌 수업을 2주간 진행합니다. 오늘부터는 시간표에 따라 춤, 가창, 랩, 퍼포먼스, 도덕 과목으로 나누어 수업을 들으면서 개별 성적 및 메인 테마곡 등급평가를 통해 다듬어지고 성장한 여러분들의 모습을 세공사님들께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멘토님들 외에도 각 분야에 이름이 높으신 강사님들을 모셔보았습니다.”
연습실 가운데 티브이에서 메인 MC가 나와 앞으로의 진행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수업 강사진들을 소개했다.
“여기, 진주 팀 2주간 시간표입니다.”
그리고 스태프가 나와 시간표를 나눠주고 사라졌다.
“와, 학교 같다. 무슨 수업이 이렇게 빡빡해? 그리고 도덕은 뭐야.”
일주일간의 시간표는 학교에서 주는 것처럼 일과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낮에는 3과목씩 수업 듣고 저녁 시간에는 메인 테마곡의 연습과 방송에 내보낼 미니 게임 및 개인 PR 영상 촬영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댄스가 있네.”
시간표를 살펴본 청우의 말에 이원이 그나마 마음에 든다는 듯 조금 찌푸렸던 미간을 폈다.
“설마 도덕 시험 같은 것도 보는 건 아니겠지? 다시 학교로 돌아온 느낌이야.”
다른 연습생들도 투덜거리긴 했지만 학교와 회사에서 해왔던 스케줄과 비슷한 시간표라 빠르게 적응했다. 청우도 빠르게 내용을 흡수하며 기본 실력을 쑥쑥 쌓아나갔다.
〈블링블링 유어 아이돌〉은 기존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다른 시스템을 내세웠는데 바로 학교와 같은 시스템이었다. 메인 테마곡에 대한 수업뿐 아니라 마치 학교처럼 댄스, 가창, 랩 등 아이돌이 해야 하는 요소에 대해 배우는 수업들이 진행되어 K-POP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한 청우에게는 매우 유용한 시스템이었다.
게다가 굳이 이런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를 청우는 알고 있었다.
논란이 많은 프로그램인 만큼 대형 기획사의 실력 있는 연습생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
즉, 하위 반의 대다수 연습생은 데뷔시키기에 실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뜻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니 만큼 누가 뽑힐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여기서라도 실력을 강제로 키워서 데뷔시켜야 욕이라도 덜 먹는다는 거겠지.
오늘 댄스 수업에서는 청우가 처음 보는 스트릿 댄스의 장르에 관해 배웠다.
“이제 스트릿 댄스 중에서 팝핑(popping)에 대해서 배워봅시다. 그리고 메인 테마곡의 안무 중 팝핑이 베이스인 부분이 많아 연습해두면 도움이 될 겁니다. 게다가 여기서 실력을 쌓아서 호박 등급이 되면 솔로 파트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지루한 얼굴이던 연습생들의 눈에 빛이 돌았다.
사실 대부분의 연습생은 메인 테마곡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어떤 수업이든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를 내세우고 자랑하기에 급급했다. 학교 수업 같지만 학교가 아니고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촬영장이었다. 수많은 연습생 중 세공사들의 눈에 띄려면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 원석인지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런데 아예 솔로 파트라니, 의욕이 솟아날 수밖에. 지루한 이론과 기초 내용은 한 귀로 흘리며 얼마나 자신이 팝핑을 잘하는지 보여줄 생각에 다들 열기가 솟아올랐다.
새로운 내용이라 눈을 빛내며 기초 수업에 충실한 것은 청우뿐이었다.
“너는 진짜 수업 열심히 듣는다. 꼭 처음 듣는 사람 같아. 이런 거 회사 들어가면 처음에 다 배우지 않았어?”
처음 배우는 사람 같다는 말에 청우가 뜨끔했지만 능청스럽게 말을 넘겼다. 과거에서 온 청우는 다른 연습생들은 시간 낭비라며 투덜대는 이 2주의 교육을 매우 알차게 써먹고 있었다.
“오래돼서 까먹은 게 많더라고. 이번 기회에 다시 기본기를 좀 다지면 좋을 것 같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항상 흥미로웠다. 그리고 더 잘하고 싶었다. 이 성취욕이 청우에게는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점이었다.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사용해서 이렇게 가슴 근육을 튕기면서 팔을…!”
너희가 다 알고 있는걸 나도 알고 있지.
열심히 하는 척하지만, 흥미를 잃은 눈동자들을 보며 꾸역꾸역 수업을 이어가던 강사가 말을 하다 말고 경악한 표정으로 동작을 멈췄다. 강사가 무엇을 보고 놀랐는지 궁금해진 연습생들도 강사의 시선 끝을 쳐다보았다.
“헉, 청우야, 너 팔 빠진 거 아니야?”
그 시선 끝에는 팔을 덜렁거리며 스윙 동작을 추는 이청우가 있었다.
몸의 근육을 이용하여 관절을 꺾는 것처럼 보이는 팝핑에 이어 팔다리에 힘을 빼고 진자 운동처럼 움직이는 스윙 동작을 보며 청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몸의 관절을 분리하면 좀 더 부드러우면서도 임팩트 있게 춤출 수 있겠는걸? 팔을 반대로 접어보는 건 어떨까?
[이청우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다급하게 머릿속의 ‘이청우’가 말려 보았지만 청우가 이미 일을 저지른 뒤였다.
“으악! 팔이 반대로 접혔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지?”
“와, 뼈가 없는 것 같아. 저렇게 추는 거 너튜브 말고 실전에서는 처음 봐.”
“지, 징그러워…!”
관절의 방향을 약간 바꿔보자 시선들이 미묘하게 변했다. 마치 요가의 고수가 다리를 머리 뒤로 넘겨 혓바닥으로 발바닥을 핥는 것을 보는 듯했다.
팔을 반대로 움직이면 징그러워하는군. 청우는 어느 정도로 몸을 다뤄야 할지 반응을 파악하며 동작을 이어나갔다.
징그러워하는 연습생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청우가 관절을 모두 뽑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청우의 유연성을 칭찬할 뿐이었다.
무리하게 관절을 뽑아 임팩트를 주었던 청우가 이번에는 다른 동작을 시도했다.
몸의 근육에 내공을 실어 남들보다 강한 박력으로 근육을 튀어 오르게 만들었다.
타타탓-
박자에 맞게 내공으로 움직이면 당신도 금세 팝핑 고수!
수업 초반에 얼 타고 있던 청우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서서 진기명기를 펼치고 카메라 샷을 다 가져가니 다른 연습생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청우가 다시 내공으로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한 뒤 섬세하게 손끝부터 몸의 모든 근육 하나하나를 튕겨보았다.
좀 더 동작을 정확하게 하고 강하게 보이기 위해 청우는 내공을 이용하여 온몸의 근육과 관절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동작은 연습생들에게는 충격과 공포를, 강사에게는 영감을 준 듯했다.
“93번? 이청우 연습생이네요. 방금 그 동작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게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나요?”
이미 첫인사 때 강렬한 인상으로 ‘천마 청우’라고 불리고 있던 청우는 이날의 기점으로 ‘무뼈팝핑청우’이라는 칭호도 새롭게 얻게 되었다. 그리고 둘 다 청우가 가장 싫어하는 호칭의 1, 2위를 다투었다.
팝핑 솔로에 도전할 수 있는 권리를 당당히 얻은 청우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 세계의 춤, 생각보다 재미있고 독창적이었다. 무공도 아닌데 근육과 관절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생각을 하다니.
물론 도전권이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같이 도전권을 얻은 이원도 청우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연습생 사이에서 어디까지 소문이 퍼진 건지, 청우가 식당으로 내려가자 다른 등급 반의 연습생들이 그를 보고 수군거렸다.
쟤가 그 무뼈천마……!
양쪽 팔 근육이 다 따로 움직인대!
진짜 무슨 외계인 아냐? 어떻게 몸에 근육이랑 뼈가 다 따로 움직이지?
“천마라는 별명, 마음에 안 들어.”
청우는 맛있는 음식에 마음이 풀리다가도 귓가에 걸리는 연습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불퉁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왜? 멋있지 않아? 천마! 엄청 세 보이잖아? 난 부러운데.”
세긴 하지.
청우는 잠시 천마의 무위를 떠올리다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여기가 중원이었으면 청우는 벌써 천마 추종자들인 마교 놈들에 의해서 끔찍하게 살해당했을 거다.
감히 하오문 주제에 천마를 사칭하다니. 여기는 천마가 없겠지만 그래도 천마라는 호칭을 함부로 쓰기에는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것 같다.
포권지례를 하면서 마교도 정도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는데 현대인들은 그냥 되는대로 별호를 막 지어주나 보다. 진짜 천마가 나처럼 이 세계에 오는 일은 없겠지.
결코, 없을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청우는 다른 사람 몸으로 들어오기까지 했다. 불가사의한 일을 직접 경험한 덕분에 누군가 천마라고 수군거릴 때마다 청우는 혼자 흠칫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했다.
청우도 나름 중원에서는 한 가닥 하긴 했지만 마교는 차원이 다르다. 천마는커녕 혈마만 와도 쉽게 쥐어패지는 무위라 초식 동물처럼 주위를 살피게 되었다.
“첫방 나갔을 텐데 휴대폰이 없어서 어떤지 모르겠네. 청우야, 오늘도 연습 같이 할거지?”
이원의 물음에 청우가 입에 음식을 가득 넣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햄스터처럼 양볼에 음식을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청우를 보며 이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먹는 거에 비해서는 살이 안 찐단 말야? 네가 여기서 제일 많이 먹는 건 아냐? 주방 이모들이 나한테 너 그렇게 먹어도 밤에 괜찮냐고 물어보던데.”
“괘아나”
“다음은 보컬 수업이니까 적당히 먹어. 나 먼저 간다.”
한 그릇 깔끔하게 끝낸 정이원이 먼저 자리를 떴다. 처음에는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지만, 청우도 부담스러운데다 정이원이 기다리면 마음껏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각자 먹고 볼일을 보기로 했다.
[중원에서는 많이 못 먹었었냐고 이청우가 묻습니다.]‘여기는 기가 희박해서 무공을 쓰거나 몸을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기력이 쭉쭉 빠진단 말이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모님들 음식 잘하시네. 중원이랑 비슷하면서도 훨씬 자극적이야. 무공 안 배웠으면 금방 살이 쪘을 거다.’
후식으로 나눠준 엄지손가락만 한 음료수를 마시면서 청우가 느긋하게 식당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식사를 마친 연습생들이 식당을 많이 빠져나가 한적해져 있었다.
“어이, 천마님. 지원이랑 같이 영상 찍었다며?”
그때 몇 명이 모인 무리가 청우에게 다가왔다.
“천마 아닌데.”
이름은 모르겠지만 반말을 했으니 나도 반말을 써도 되겠지. 어차피 정신연령으로는 저와 비교해 갓 태어난 핏덩이일 테니 상관없다.
“아, 감히 유명인에게 내가 함부로 말을 붙였구나? 나 계진성이야. 동훈이 알지? 한동훈. 내가 동훈이랑 친구거든.”
알지, 한동훈. 나한테 누명 씌워서 첫 번째 회사에서 쫓아냈었다지? 그리고 지원이라고 했으니 현지원이 보냈나 보군.
“여기 기훈이랑 성우가 너네 소속사에 있는 기현이랑 친해서 네 얘기 많이 들었어. 오늘은 인사나 좀 하려고 왔어.”
기현이라면 이번 소속사에서 이청우에게 실력도 없고 쓸모도 없는 새끼가 강 실장 빽으로 차고 들어와서 자리만 차지한다고 나가 죽으라고 했던 연습생 동기로군.
그러고 보니 저 뒤에 서 있는 녀석은 첫날 자신의 어깨를 치고 지나가며 오히려 성질냈던 녀석이다.
청우는 이들이 왜 왔는지 알아챘다. 현지원이란 녀석이 주동자라고 하길래 한 방 먹여줬더니 바로 반응이 오는 모양이다. 벼르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겠지.
‘이청우’는 이런 상황이 불편한지 정신 너머로 도망쳐 버렸다. 청우도 굳이 그를 이 상황에 대면시킬 생각은 없었다. 어떨 때는 피하는 것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카메라를 의식한 탓인지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지만, 이들이 정말 인사나 하자고 다가온 게 아닌 것은 아주 잘 알겠다.
왜냐하면.
“네가 아주 나댄다고 그러던데, 너 지금 소속사에서 짤리게 생긴 건 아냐? 뒷배도 없는 게 나대니까 다들 불편해하잖아.”
카메라에 들리지 않게 하려고 먼지를 털어주듯 가까이 와서 귓가에 속삭이는 말에 청우가 싱긋 웃었다.
뭘 할 수 있나 한번 볼까.
겨우 이 귓속말이 협박의 다는 아니겠지.
어디 이 평화로운 세계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한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