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100)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100화(100/101)
제100화
볼수록 더 대박이었다. 진짜 생목으로 저기까지 안정적으로 낸다면 어디서든 라이브가 생으로 가능할 텐데 왜 아이돌을 하고 있지? 저 음역대와 저 성량이면 차라리 록을 했어도 잘 나갔을 텐데.
아이돌은 아무리 장르가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보통 댄스 곡 위주라 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후보정이 필요 없다는 편리함이 아니라 그는 방금 이청우의 목소리에서 제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를 느꼈다. M스타는 그동안 없던 영감이 가슴 한구석에서 손을 흔드는 것을 느꼈다.
“아휴, 작곡가님이 이렇게 오래 봐주시고 우리 애들이 정말 복 받았네요.”
그때 잠시 들른 강 실장이 먹을거리를 가지고 왔다. 블레시스가 신인인 만큼 자신도 신인 매니저로 돌아간 기분으로 일정마다 인사하고 하다못해 음료수라도 주야장천 사서 나르며 우리 애들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먹거리값이 좀 나갔지만 뭐 이건 경비처리 될 테니 내 돈도 아니고. 말은 신인 매니저인 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지만 나름대로 이쪽에서 오래 일한 편인 그는 각 기획사의 최소 실장급 이상만을 상대하는 위치였다. 경비 사용 정도로 그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ST로 이력서를 냈을 때 그쪽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것이다.
“강 실장님! 쟤, 실장님네 소속사에서 데려온 애라고 했지요? 이청우? 뭐예요? 어디서 괴물을 데려왔어요? 해월이도 잘했지만 쟤는 차원이 다른 데?”
먹였던 음료수가 벌써 힘을 발휘하나? 하, 역시 사람은 잘 먹여놓고 봐야 한다. 요즘 어깨에 뽕이 가득 들어차서 거만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M스타도 배부르게 먹여놓으니 벌써 칭찬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좀 칭찬이 과한 기분이 들지만.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우리 청우가 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얼굴도 잘생기긴 했죠. 작곡가님이 좋게 봐주시니 좋네요.”
웃으며 겸양을 떠는 척하는 강 실장을 보고 M스타가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자세히 들어보면 내용은 좀 재수 없지만 저 수준은 단순히 노래를 잘한다, 가 아니다. 스킬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이청우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방금도 잠깐이지만 자신을 분명 곡의 분위기에 홀리게 만들었지 않았나.
M스타가 열변을 토해도 강 실장은 다음엔 술이나 한잔하자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휴, 그렇게 안 하셔도 저희는 항상 감사하고 있죠. M스타님 최고, 최고!”
나, 나만 느꼈나? 너무 잘하는데?
녹음실 안에 있던 아이들도 파트가 끝나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고 매니저도 생각보다 반응이 대단치 않자, 자신이 너무 오버한 기분이 든 M스타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칭찬을 눌러 삼켰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알겠지. 자신이 오버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재능을 혼자만 발견한 것인지 말이다.
***
“안녕하세요.”
ST엔터테이먼트에서 이번에는 정말 이를 갈고 내놓을 셈인지 아니면 블레시스의 반응이 좋았던 것인지 타이틀 곡의 안무가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박제인. 원래 스트릿 전문 댄스팀을 운영하고 있다가 위상이 높아지며 이름을 알리게 되고 이후 유명 아이돌 ‘솔져스’의 곡 중 〈Roop〉의 안무를 맡아 대성공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남자 아이돌의 안무를 맡게 되었다. 이후로도 몇 곡인가를 성공시키며 꽤 유명해졌다고 정이원이 설명해 주었다.
음, 그렇군.
정이원을 옆에 두니 백 명의 하오문가 부럽지 않다.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도 좀 더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는데 본업이 바쁘니 부업에 신경을 쓸 틈이 없다. 〈블링돌〉에서 만났던 스타일리스트 누나들, 촬영팀 형들은 잘 지내려나.
박제인은 매섭게 생긴 눈매를 가진 중년의 여성이었다. 평생 춤만 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탄탄한 몸매에 엄청난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에 대한 확신과 완고함이 가득 담긴 인상이었다.
첫인상부터 절대 봐주지 않겠다는 얼굴을 하고 들어오던 그녀는 블레시스의 눈을 보고 멈칫했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라고 들었는데 애들 눈엔 신인답지 않은 독기가 서려 있었다. 뭐지, 나 없을 때 다른 안무 선생이 와서 굴리고 간 걸까?
잠시 의아하던 그녀가 다시 표정을 관리하고는 깐깐한 태도로 타이틀 곡 안무의 테마와 주제, 주의할 점에 관한 설명을 이어 갔다. 의뢰받아서 하는 일이지만 그녀는 제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단 하나도 서투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안무 선생님들은 왜 다들 무서운 얼굴인 걸까요?”
몸은 구를 대로 굴러 어떤 연습을 시켜도 끄떡없지만 아직도 마음은 여린 이덕진이 겁먹은 얼굴로 속닥거렸다. 이미 청우에게 한참 굴려진 터라 선생님께도 욕을 먹으면 당분간 회복이 안 될 것 같다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잡담을 하느냐는 눈으로 박제인이 이덕진을 흘끗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소심쟁이 이덕진은 덩치 값도 못한 채 몸을 쪼그리고 잡담한 것을 모면하기 위해서인지 배시시하고 청우가 보기엔 빙구 같은 웃음을 지었다. 어휴, 이 모자란 녀석.
그런데 뜻밖에 선생님의 표정이 유해졌다. 청우는 미묘하게 너그러워지는 박제인의 표정을 보았다. 안무 선생님은 이런 빙구 같은 얼굴이 취향이신가 보네. 정이원은 이덕진을 가리켜 ‘멍뭉미’라고 칭했었다. 강아지 같은 매력으로 대중에게 수요가 있다나. 무릇 개는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동물이지 저렇게 아무 데서나 엉엉 울고 소심하게 굴지 않는데.
“안무 숙지가 다 되면 댄서들과 호흡을 맞출 건데 여러분의 실력이 모자라면 댄서들과 실력 차이가 날 테니 댄서를 투입하는 시기가 늦어지겠죠. 그럼 연습할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할 테고요.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딱딱한 말투로 겁을 주는 걸 들으며 멤버들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데뷔해도 쉬운 것이 하나 없었다. 하긴 이제 시작인데 벌써 쉬워질 리가 없지.
“원 앤 투 앤 오른쪽으로 턴! 시선 정면으로. 그리고 가슴부터 골반까지 웨이브 타면서 쓰리 앤 포! 손은 살짝 굽혀서!”
박제인의 추는 안무 동작에서는 별것 하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매력이 있었다. 기본 동작인데도 멋스럽게 보였고 서 있기만 해도 율동감이 느껴졌다.
“와, 개멋있다.”
누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음악 소리에 묻힌 칭찬이 박제인의 귀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박제인의 어깨가 조금 더 으쓱해졌다. 자신이 잘하는 거야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솔져스 이후로 남자 아이돌 안무 디렉팅 물밀 듯이 들어오는데, 직전에 작업했던 아이돌 그룹과 대판 싸우고 업계를 뜰 뻔했다.
나름 1군이라고 불리는 솔져스 때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어찌나 까탈을 부리고 태도가 거만한지 저를 가리키려고까지 들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소속사가 꽤나 힘이 있는 곳이라 어지간하면 좋게 해결하려고 했으나. 어지간해야지. 댄서들과의 불화는 물론이고 폭언까지. 제 밑에서 몇 년을 독하게 일했던 제자가 못 하겠다고 했을 때 다짐했다. 다시는 솔져스 외에 남자 아이돌 그룹은 3년 차 미만 안 받는다.
이미 들어온 일은 해야 하니, 마땅찮은 마음으로 블레시스 디렉팅을 하러 왔는데. 웬걸 신인인 애들이 제법이었다.
특히 덩치는 곰만 해서 얼굴은 강아지 같은 멤버가 눈길이 갔다.
그녀는 유구하게 덩치 큰 강아지상만 최애로 잡았던 사람으로서 한동안 비실비실한 애들만 보다가 취향에 부합하는 인물을 보니 자꾸만 얼굴이 흐물흐물해졌다.
‘아, 좀 귀여운 것 같은데.’
박제인이 돌아서서 다시 음악을 틀고 느린 박자로 동작을 보여주며 각 동작이 어떤 디테일이 있는지 어떻게 다음 동작과 연계되는지 설명했다.
“갇혔다가 밑에서 깨어나! 여기서 반동 주면서 파이브 앤 식스! 그리고 다운. 여기 동작은 현대 무용 느낌 살려서 우아하게. 세븐 앤! 올려! 에잇! 풀파워로!”
청우는 잠시 숨도 멈추고 박제인의 동작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동작 사이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느 동작을 강조하기 위해 강약을 조절했는지, 그리고 어떤 걸 연상하며 몸짓을 만들었을지 파악하려 했다.
곡에는 작곡가의 의도가 가사에는 작사가의 의도가 있다면 안무에는 안무가만의 해석이 들어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박제인은 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스승님은 늘 실력은 낭중지추처럼 어디서든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이름을 날린다는 것은 대부분 뒷받침하는 게 분명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늘 배우려는 자세로 접근하라는 말도 뼈에 새기고 있다.
이전의 작곡가는 순간순간의 번뜩이는 영감이 곡에서 강하게 빛을 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서는 영감이 발휘되도록 그의 상상력을 자극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 사람은 그 작곡가보다 훨씬 단단하게 여물어진 사람이다. 오랜 경험과 노력이 이 사람을 이 자리에 얹어놓았다. 실패도 성공도 모두 겪은 단단한 인간상이 느껴졌다.
안무는 난이도가 있으면서도 어딘가 철학적으로 느껴졌다. 동작과 동작 사이에 잔동작들이 전체 안무를 훨씬 유기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그러면서도 춤추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신인에 걸맞은 이른바 ‘폼’ 나는 안무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의뢰자의 상황과 입장까지 모두 배려한 것이다.
“이제 음악을 틀고 한 동작씩 이어서 해봅시다.”
한 동작씩 순서대로 알려주고 이제 처음부터 해볼 차례가 되었다. 과연 얼마나 따라올 수 있으려나, 이 병아리들은?
그리고 블레시스가 배운 대로 안무를 시작했다. 익히는 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서바이벌로 다져져 빠르게 동작을 익힐 수 있었다.
처음에 눈에 띄는 것은 주지호였다. 익히 들은 것이 있었던데다가 사실 박제인은 이전에 주지호가 연습생일 때 본 적이 있었다. 주지호의 소속사 대표가 그녀를 몰래 불러 저 애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번 봐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땐 정말 충격과 공포였는데.’
그때 자신이 뭐랬더라.
“대표님, 그냥 배우를 시키시죠? 저 얼굴에 저런 몸치한테 왜 춤을 굳이 시키시는 거예요?”
“쟤가 아이돌이 하고 싶대잖아.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
그랬지. 그런 알쏭달쏭한 소리를 하더니 혹시 연습하면 나아질까 묻는 질문에 자신은 못 한다며 도망치듯 나왔었지.
그랬던 주지호가 지금은 제법 사람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