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101)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101화(101/101)
제101화
박제인은 저도 모르게 감동에 휩싸였다. 그때는 정말 개구리가 춤추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사람처럼 춤을 추고 있네! 그것도 동작도 제법 정확히 따라 하고 있네! 세상에, 세상에. 근데 박자는 조금씩 늦는구나.
‘어머, 쟤는 좀 괜찮네.’
그리고 그녀의 최애에 부합하는 조건을 다 가진 이덕진도 제법 그럭저럭 안무를 소화했다. 신인인데 단시간에 이 정도만 소화해도 실력이 꽤 괜찮은 편이다.
그녀는 나름 안무 시안을 작업할 때 철학이 있었다. 테마를 정하고 그를 연상하는 동작을 만든 다음 작은 동작들로 구체화하는 편이었다. 때문에 잔동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추는 사람이 없어 어느 정도 큰 동작을 위주로 숙지시킨 다음 디테일을 잡는 방식으로 안무를 가르쳐 왔다.
그런데 이덕진은 성공하진 못했으나 잔동작을 따라오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저 정도라면 다른 그룹에 가도 춤 못 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이지.
어디에 내놔도 잘할 놈이 셋이다.
그녀는 나머지 춤을 잘 춘다고 들은 멤버들을 한 명, 한 명 뜯어보았다.
먼저 정이원. 정이원은 댄스 중심의 정통파 아이돌 코스를 밟았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기본기가 단단하고 동작에 깊이가 있었다. 특히 리듬감은 신인 아이돌 수준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런데 그 옆에 미카엘도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쉽게 한다. 본 것을 바로 몸으로 표현하는 미친 소화력이었다. 안무를 이성적으로 외운 게 아니라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저만의 리듬으로 추는 그야말로 재능. 아직 거칠긴 하지만 정제된다면 아이돌 메인댄서 중에서도 탑을 찍을 재능이었다.
그리고 이청우.
이청우는 춤을 잘 추는 수준이 아니었다. 저 애는 자신이 이 안무에 넣고 싶었던 철학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았을 때 화려해 보이는 것은 정이원이나 미카엘이지만 이청우는 그녀의 의도에 맞는 동작의 느낌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보고 있으면 그가 추는 안무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마치 제가 바라던 것을 그대로 실현해주는 춤사위였다. 네가 보고 싶었던 게 이거지? 보여줄게, 라고 하는 느낌이다.
이건 음악에 대한 이해도뿐 아니라 경험이 꽤나 깊이 쌓여야 가능한 단계인데 어떻게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이 저런 느낌을 낼 수 있지?
“다시 한번 가볼까요? 지호는 박자가 계속 느리니까 조금 더 빠르게, 팔을 더 확 당기는 느낌으로 움직여. 덕진이는 뻗을 때 자신감이 부족해! 해월이는 더 크게 몸을 움직이고, 미카엘이랑 이원이는 동작 느낌 맞추자. 너무 너네 느낌으로 춰. 청우는 따단, 여기 부분이랑 팔을 이렇게 할 때 좀 더 절도있는 느낌으로 따닥, 하고 움직여 줘. 근데 청우 몇 살이라고?”
“저요? 아… 21살이요.”
“응, 그치? 나도 그렇게 들었어. 혹시 연습생을 한 9살 때부터 했나?”
“아니요, 중학교 졸업할 때부터 했습니다.”
“그, 그치?”
저 매끈매끈 모공 하나 없어 보이는 피부에 생기있는 눈동자까지. 어딜 봐도 새파랗게 어린 신인이 맞는데. 저 경험 있는 것 같은 바이브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박제인의 개인적인 아리송함과는 별개로 연습은 착착 진행되었다. 멤버들의 안무 이해도가 높은 데다 숙지하는 속도가 빨라 진행이 막힘없이 이어졌다. 다음에는 댄서와 함께 전체적인 곡 연습도 해볼 수 있겠다며 박제인이 만족감을 나타내고는 사라졌다.
“어휴, 죽겠다.”
막힘없는 진행이라고는 하지만 장장 몇 시간 동안 긴장한 상태로 춤만 추었더니 체력이 쭉쭉 빠졌다. 박제인이 연습실을 나가자마자 멤버들이 바닥에 곧바로 드러누웠다.
“뭐야, 잊어버리기 전에 마저 해야지.”
“아니, 제발. 형. 살려주세요.”
땀으로 옷이 젖다 못해 물이 떨어질 지경인데 수건으로 땀 한 번 닦아내고 물 한 모금 마시더니 쌩쌩해진 청우를 보며 바닥에 있던 김해월이 조금만 쉬자며 빌었다.
“넌 체력이 너무 약한 것 같아. 겨우 이 정도로 살려달라니, 아직 우리 연습은 시작도 안 했는걸. 선생님이 너무 유하신 것 같더라. 손동작도 하나도 안 맞았는데 다 통과시켜주시고. 게다가 중간에 넣으신 디테일 너희는 이해는 했니?”
“…보통은 첫날 연습부터 거기까지 맞추시지는 않으니까요?”
“어휴, 다른 일정이 많아서 연습 시간이 너무 부족하겠네. 〈블링돌〉처럼 미션이 계속 있는 것도 아닌데도 여전히 빡빡한걸. 빨리하자,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어휴, 정이원이 한숨을 쉬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청우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기에 벌떡 일어섰다. 데뷔를 한 것도 아닌데 계속 앓는 소리를 할 순 없지. 원래 데뷔조는 토할 때까지 타이틀 곡을 연습 또 연습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정이원도 사실 조금 더 연습하고 싶었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와 함께 멤버들이 몸을 일으켰다. 이청우와 한 팀이 되면 당연히 이게 일상이 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힘내서 조금만 더 해보자. 청우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기왕 하는 거 신입답지 않게 잘한다, 이런 거 말고 그냥 잘한다 소리 듣자고!”
정이원이 리더답게 멤버들을 다독였다. 채찍질은 청우가 하고 달래주는 건 정이원이 한다. 제법 쿵짝이 잘 맞는 짝꿍이었다.
멤버들이 모두 일어서자 청우가 리드하여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아마 지금이 그들이 가장 많이 주목받는 시기일 것이다. 이 중요한 시기를 처음이라 서툴렀다는 변명 아래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연습실에 음악과 함께 땀과 가쁜 숨소리만이 가득 찼다. 그래도 재촉하고 끌어당기면 열심히 따라오는 녀석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가능한 몸에 익으면 좋겠다며 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근육만 풀어주는 식으로 연습을 시킨 지 몇 시간째.
“어이구, 죽겠다.”
다시 곡소리가 나올 무렵이었다. 김해월이 다시 널브러졌다.
“형, 이제 팔이 안 올라가요.”
“청우야, 좀만 쉬었다 하자.”
아쉬운데. 하지만 이미 다른 멤버들도 정이원의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다 널브러졌다. 미카엘도 지친 듯 벽에 기대어 앉는 걸 보니 지금은 풀어주어야 할 때였다.
“그럼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이야호오오…….”
없는 힘을 쥐어짜서 환호성을 지르며 정이원도 바닥에 털썩 누워버렸다.
“어휴, 매일 이렇게 하면 죽고 말 거야. 우리 내일 뭐 촬영 있지 않았냐?”
“형, 놀라운 건 아직 저녁 8시밖에 안 되었다는 거예요. 더 놀라운 건 우리가 네 시간밖에 춤을 안 췄다는 거구요.”
“끔찍해. 지금까지의 패턴이라면 반밖에 연습하지 않았군.”
“형, 같이 힘내요.”
“너도 파이팅. 우리 꼭 살아남자.”
이청우 저 징그러운 놈이라며 정이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제 욕을 하고 있었지만 청우는 콧방귀만 뀔 뿐 반응도 하지 않았다.
원래 적이 나타나면 서로 뭉치며 연대감이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청우의 지옥훈련을 겪으면서 멤버끼리 서로 뭉치며 단단한 연대감이 생기는 것이 눈에 보였다. 처음엔 데면데면하던 미카엘과 주지호도 서로 물병을 주고받으며 격려하는 모습이 보였고 이덕진은 김해월에게 수건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잘하고 있군. 근데 왜 아무도 나는 수건 안 주지?
…저 연대감 속에 자신도 포함된 것이 맞겠지?
그때였다.
찌잉-
팔에서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살펴보니 저승의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부업을 뛰어야 할 시간이다.
한동안 본업에만 집중하고 싶어 선업 알림도 모두 꺼놓고 집중하고 있었는데 다시 뭐가 나타났나 보다.
‘오늘은 좀 힘들긴 한데.’
청우도 강시는 아니었기에 온종일 이리저리 뛰고 연습한 터라 지치긴 했지만 저승 알림은 자비 없이 계속 울리고 있다.
눈치를 살핀 청우가 멤버들이 또다시 널브러지는 틈을 타 구석으로 가서 염라선을 꺼냈다.
[어둑서니 발견, 축시(丑時) 청송공원]어둑서니라.
축시 이전까지 멤버들을 다 재워놓고 나오려면 슬슬 정리해야 할 시간이었다.
“인제 그만 하고 갈까?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니까.”
“엥? 웬일이야?”
오늘 안엔 끝나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정이원이 가서 쉬자는 말을 하는 청우에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멤버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진짜 집에 가요? 아직 손끝도 안 맞았는데?”
“아직 다리 동작도 덜 맞췄는데?”
“청우 형, 어디 아파요?”
“뭐, 하루 만에 어떻게 거기까지 하겠어. 아직 시간 많은 데 뭐.”
맞는 말이지만 이청우가 저렇게 이야기하니 왠지 억울해졌다. 이덕진이 억울함에 가슴을 탁탁 치는데 미카엘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청우를 바라보았다.
“형, 뭐 다른 일 있어요?”
저 감 좋은 자식. 청우가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아니, 진짜 컨디션 조절하자는 건데 내일은 콘셉트 촬영도 있는데 얼굴 잘 나와야지. 푸석푸석하게 나오면 안 되니까. 아니면, 더 할까? 난 밤새도 할 수 있는데.”
“아니요, 얼른 가서 쉬어요. 다들 팩 하나씩 붙이고 자야죠.”
저 연습 귀신은 진짜로 밤새 연습시킬지도 모른다. 미카엘도 얼른 눈을 크게 뜨고 짐을 챙겼다.
“규빈이 형!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래요!”
“엥? 벌써? 오늘은 금방 끝나네. 그래, 너희도 컨디션 조절해야지.”
벌써 매니저에게 집에 간다고 보고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멤버들을 보고 청우가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제는 척 하면 척 하고 움직인다. 가서 정리 쭉 시켜서 얼른 재우면 되겠다.
아하, 오늘은 그걸 들고 갈 수 있겠다.
청우가 새로운 무기를 생각하며 씩 웃었다.
***
돌아와서 씻자마자 청우가 멤버들을 방으로 내몰았다. 보통 스케줄이 끝나고 오면 ‘하루 반성’이라며 멤버들을 거실에 앉혀놓고 연습할 때 누가 동작이 안 맞았다느니 노래가 어쨌다느니 멤버들 기준 잔소리 폭격이 이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것 없이 심지어 추가 운동도 시키지 않고 바로 잠잘 시간을 주다니. 매번 잠은 관짝에서 자도 충분하다고 하던 사람인데.
“자, 쉬어야지 컨디션이 좋아진다. 빨리 자자.”
수상했다. 김해월이 청우를 보며 물었다.
“형 오늘 왜 이렇게 우리한테 잘해주는 거죠? 혹시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없는데. 뭐, 인마? 그럼 넌 더 굴려주랴?”
“윽, 아닙니다, 자겠습니다.”
왠지 청우가 저런 얼굴을 하면 진심으로 지옥을 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김해월은 더 이상 깐죽거릴 의지를 잃은 채 얼른 자러 가겠다며 가장 먼저 방으로 쏙 들어갔다.
“안녕히 주무세요!”
“잘자!”
인사들을 나누고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벌써 며칠이나 고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멤버들은 바로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옆 방은 이미 꿈나라고.’
정이원과 이덕진이 있는 옆 방은 눕자마자 5분도 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여러모로 편리한 녀석들이다. 문제는 자신의 방이었다. 청우는 슬쩍 반대편 침대를 바라보았다.
부스럭.
자나 했더니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지호는 지난 며칠은 금방 자더니 다시 불면증이 도진 듯 이리저리 뒤척거렸다.
“잠이 안 오니, 지호야.”
“어? 어, 왠지 잠이 안 오네.”
유달리 부드러운 목소리의 청우에게 주지호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
“그렇구나. 우리 지호가 푹 자야 할 텐데. 잠깐 앉아서 눈을 감고 열을 세봐.”
“응?”
이미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주지호는 얌전히 청우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왜 누워서가 아니라 앉아서 눈을 감으라는 거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뒷덜미에 무언가 타격감이 느껴졌다.
“십… 구… 얽!”
주지호가 10을 다 세기도 전에 청우는 경쾌하게 목덜미에 당수를 날렸다. 손날을 맞은 주지호가 그대로 푹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후후, 청우가 기절한 듯 잠든 룸메이트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방 2개는 끝났고.”
이제 남은 건 김해월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