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12)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12화(12/101)
제12화
“현지원이요.”
그 말이 떨어지자 제작진들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청우 씨, 현지원 연습생이랑 친했어요? 의외네. 한 번도 같이 있는 건 못봤는데.”
“그러게요.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아, 이전에 있던 소속사 연습생 동기랑 지금 소속사 동기랑 다 친구라서요. 겹지인이 많아서 조금 친해졌어요.”
사실 현지원과 실제로 말을 섞어본 적도 거의 없지만 청우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은 업보를 쌓습니다. 말의 힘에 주의하세요.]혼원천이 경고를 보냈지만 청우는 멈추지 않았다. 여기에 있는 동안 현지원은 한번은 해결하고 가야 할 문제였다. 이번 기회에 기를 죽여놓으면 당분간은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아, 지원이는 인기가 많죠? 같이하자고 할 친구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려울 것 같으면 혼자 해도 괜찮아요.”
윤 작가는 청우의 말이 미심쩍긴 했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좋았다. 특히나 이건 본방송의 예고 티저 영상에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현지원과 이청우는 누가 뭐래도 지금 ‘블링돌’의 최고 인기인들이었다. 결은 다르지만.
그런 두 사람이 누가 봐도 신기한 묘기를 같이 찍는 영상이라면 너튜브 조회수가 오르면서 본방으로 시청자 유입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서 현지원 연습생 잠시 와보라고 할래요? 설득은 내가 할 테니까.”
그래도 현지원이 이청우보다는 훨씬 인기가 많기에 이청우의 말마따나 엮이는 게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무슨 어그로든 끌어서 방송 시청률을 올리는 게 중요했다. 윤 작가는 이런 소스를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지금 블링돌은 차력쇼뿐 아니라 마술쇼라도 해야 할 때다.
“어, 안녕하세요.”
잠시 후 현지원이 숙소에서 급하게 불려 나온 얼굴로 촬영장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윤 작가가 그를 위아래로 스캔한 후 생각했다. 기본 원판이 좋으니까 많이 손대지 않아도 되겠어.
“현지원 연습생, 갑자기 불러서 미안해요. 이청우 연습생 PR 영상 찍다 보니까 좋은 생각이 나서 현지원 연습생도 같이하면 어떨까 해서 불렀어요. 자기 영상 아닌데 얼굴 한 번 더 나가면 현지원 연습생한테도 좋잖아요, 그죠? 그리고 둘이 친한 사이라고 들었어요. 친한 사이면 케미도 한 번 어필하는 게 좋잖아요.”
“아, 네.”
현지원은 이청우를 보자 미묘하게 표정이 굳었다가 펴졌다. 촬영장 분위기 탓인지 친한 사이라는 말을 부정하지도 못했다. 청우는 속으로 킬킬 웃었다.
“지원아, 내가 친구랑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하고 의견을 내봤는데 작가님께서 좋다고 하셔서. 그런데 네가 불편하면 정말 안 해도 괜찮아. 나 정말 너한테 피해 주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너네가 이청우 괴롭힐 때도 애가 제대로 어디 말도 못 하고 버텼지. 너도 알고 있었으니 마음 놓고 괴롭혔겠지?’
청우가 조금 쓸쓸한 말투로 말하자 스태프들의 안타까워하는 눈빛이 청우에게 쏟아졌다가 현지원에게로 갔다.
‘자, 거절할 수 없을걸?’
“어, 그렇지. 그런데 저기, 우리가 그렇게 친했나?”
“아, 미안. 내가 너무 친한 척했구나. 그냥 나는 동훈이랑도 같이 봤고, 현성이랑도 같이 봤어서……. 나만 친하다고 생각한 거였나 봐.”
“아니,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자주 봤네. 친구들도 많이 겹치고. 친하다고 생각해줘서 기뻐.”
역시 카메라가 있으니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인지 싫은 내색 하나 내보이지 못했다. 현지원은 이러다 자신이 급을 가려 사람을 사귀는 사람으로 보일까 염려된 듯 가식적인 미소로 친한 척하기 시작했다. 청우는 그가 ‘이청우’를 얼마나 싫어하고 무시했는지를 알기에 무시하던 상대에게 친근하게 구는 현지원의 모습이 웃기기만 했다.
“난 또, 내가 평가 등수도 별로 높지 않고 막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진 못해서 네가 거절하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네.
연습실에서 심심할 때 종종 하던 거 기억나? 내가 작가님께 말씀드렸더니 안전하기만 하면 괜찮다고 하셨어. 내 영상이지만 네가 나와도 나는 상관없거든.”
“으응, 나도 한 번이라도 더 나가면 좋지. 그런데 우리 연습할 때 하던 게 뭐더라?”
현지원은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렇겠지. 원래 괴롭힌 사람은 기억나지 않는 법이다.
사실 현지원과 ‘이청우’는 한 번도 말을 섞어보지 않은 사이였다. 청우도 처음 현지원을 봤을 때 ‘이청우’가 너무 조용하게 있던 데다가 별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모를 뻔했다.
하지만 현지원이 한동훈과 친구라는 것을 알고 나자 ‘이청우’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현지원이 깔보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한동훈에게 몇 마디 건네면 한동훈과 친했던 애들이 다가와 ‘이청우’에게 시비를 걸거나 괴롭히곤 했다. 왜 괴롭혔는지조차 ‘이청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소속사를 떠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업계는 생각보다 좁았다. 성기현을 비롯한 새로운 소속사에 있던 동기들도 한동훈과 아는 사이였지.
청우는 그대로 갚아줄 생각이었다. 원래 당한 사람은 기억하지만 저지른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는 법 아니겠는가. 그러니 저지른 사람도 당해봐야 기억할 것이다.
“이러면 기억날걸? 자, 이거. 머리 위에 올리면 돼.”
청우가 웃으며 사과를 쥐여주자 현지원이 기억난 듯 얼굴이 조금 하얗게 질렸다.
“연습실에서는 신발도 올려놓고 우유팩도 올리고 했는데. 기억난다, 그치? 처음에는 장난치다 막 우유 터지고 그랬잖아. 하하, 지금은 우유 아니고 사과니까. 너무 걱정 마, 하하!”
청우는 ‘이청우’의 기억을 떠올렸다. 여러 명이 그를 세워두고 똑바로 서지도 못하냐고 몸을 막 밀쳤다. 그러더니 머리 위에 신발을 얹고 모델처럼 걸어보라고 시키고, 나중에는 우유팩도 올려놓았었다. 발차기로 우유팩을 날려보겠다며. 빈 우유팩으로 시작해서 결국은 우유 한 팩을 머리 위에서 터트리고는 흠뻑 젖은 그를 향해 낄낄거리던 웃음소리가 가득한 그 기억을.
‘이청우’가 원한다면 대신 현지원의 머리통을 날려줄 수도 있겠지만 ‘이청우’는 떠올리기도 싫어할뿐더러 청우도 북경에 가면 북경법에 따르듯 현대에 왔으니 현대에 맞게 행동할 생각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예쁘게 영상에 나가는 게 좋겠다며 풀메이크업을 받은 현지원은 정말로 공주 복장이었다. 프릴이 달린 여성용 드레스가 현지원의 어깨를 견디지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복장에 따라 태도도 바뀐 현지원이 공주님처럼 다소곳하게 벽 쪽에 서서 머리 위에 플라스틱 컵을 얹고 그 위에 사과를 올렸다.
청우는 그 모습을 보며 현지원을 향해 검을 들었다. 위험할 수도 있다며 속이 텅 빈 유아용 장난감 검이었다.
뭔가 말을 하려던 현지원도 장난감 검에 머리에 플라스틱 컵까지 얹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곤 미소를 지으며 생글거리기까지 했다.
청우가 지원을 향해 말했다.
“알지? 지원아? 움직이지 말고 똑바로 서 있어. 안 그러면 어디 다칠지도 모르잖아?’”
‘이청우’의 기억 속에 있는 말들. 과연 현지원은 저 말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네 옆에 있던 한동훈이 나한테 하던 말이잖아. 우유팩을 머리에 얹고 있던 나에게.
청우는 마음속에 검을 세웠다. 청우 주변의 공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촬영장 내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청우야 박력 넘친다!’며 좋아했지만 살기를 정면으로 받는 현지원은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에이, 장난감 검인데 너무 겁먹지 마. ‘웃어야지’ 지원아. 내가 ‘괴롭히는’ 것 같잖아.”
현대에 오더라도 그는 그였다. 하오문에서는 받은 대로만 돌려주는 것이 가장 약한 벌이었다.
업보 청산의 첫 시작이니 가장 약하게 갈 셈이다.
청우의 마음속에 완연한 검의 형상이 일자 그가 들고 있던 장난감 칼의 검날이 미약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의 검뿐 아니라 청우는 그에 대한 살의를 일으켰다. 가능한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서서히 악몽에 빠져들도록 말이다.
그리고 순간 검에서 나온 바람이 현지원을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청우가 검을 휘둘렀다.
“흐아악!”
아니, 휘둘러지기도 전이었다.
현지원이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았다.
“어허, 아직 휘두르기도 전인데 벌써 주저앉다니. 남자는 하체가 중요하다고 했거늘. 간이 콩알만 하구나!”
청우의 서당 선생님 같은 말투와 주저앉은 현지원에 다른 제작진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현지원이 어리둥절해 자신의 머리 위를 살펴보았다. 아직 청우의 장난감 칼은 머리 위 사과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아… 하하, 장난장난. 어, 엄살 좀 부려봤어. 다시 하자.”
현지원이 한껏 구겼던 몸을 주섬주섬 다시 일으켰다. 자신이 방금 잘못 느꼈나 싶은 얼굴이었다.
청우는 씩 웃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 정도 검풍에 놀라면 쓰나.
청우가 다시 장난감 검을 들었다. 이번에는 굳은 표정의 현지원에게 조금 더 강한 살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그가 쓰러지기 전 빠르게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으아아악!”
툭- 데굴.
‘죽는다!’
살의를 느낀 현지원이 주저앉기도 전에 그의 머리 위 사과가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나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현지원도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강한 살기에 마음이 진탕된 현지원의 눈동자가 살짝 풀려있었다.
“괜찮아?”
청우가 다가가서 현지원의 어깨를 툭툭 치며 내력을 보내 기혈을 안정시켰다.
“우와, 청우 씨, 대단하다. 장난감 칼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 잘랐지?”
“헤헤, 마음에 검을 세우면 됩니다. 가로로 휘둘렀는데도 지원이가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요. 아무래도 이제 그만해야겠어요.”
현지원이 정신을 차린 듯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청우가 기운을 흩트리자 다시 일반인과 같은 기세가 되었다. 현지원이 눈을 비볐다. 눈앞에 있는 것은 평소 자신이 만만하게 여겼던 그 찌질한 이청우가 맞았다.
그러나 조금 전 느꼈던 섬뜩한 기운에 아직도 몸이 부슬부슬 떨리는 것 같았다. 현지원은 차마 청우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이 녀석 어딘가 변했어.’
평소의 이청우였다면 처지가 서로 반대였을 것이다. 그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해서 자신의 무리가 지나갈 때면 이청우는 바닥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쪽 벽에 붙어있었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현지원이 제작진들 앞인 것을 깨닫고 대단한 겁쟁이가 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넉살맞게 웃었다. 그래도 차마 청우의 몸에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노, 놀란 척해준 거야. 영상 잘 나왔나요? 제 영상이 아니라 청우를 좀 띄워줘 봤어요.”
“어휴, 놀랬잖아. 지원 씨도 연기 잘하네. 둘이 진짜 친구 맞나봐. 손발이 딱딱 맞네.”
껄껄 웃으며 상황을 정리하는 스텝들 너머로 현지원이 청우의 뒤통수를 쏘아보았다. 한강에서 뛰어내렸다길래 인생이 불쌍해서 잊어줄까 했는데 이렇게 나온다면 그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다.
‘다시 서열을 정리해 줘야겠어.’
하지만 청우와 눈이 마주치는 것은 왠지 두려워 그가 자신을 향해 시선을 돌리기 전 애써 눈을 떼었다.
“그럼 잘 나왔으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현지원이 웃는 얼굴로 공손하게 제작진들에게 인사를 하며 청우에게 다가갔다.
“청우야 이렇게 보니까 새롭네.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자?”
살기가 약했나. 감히 그에게 손을 내미는 현지원을 보며 청우가 순순히 악수를 나눴다.
“그래. 나도 이번에 너랑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잘됐네.”
현지원이 순순하고 나약한 녀석이 아니라 청우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좀 더 해도 되겠다. 평화로운 시대의 일반인이라 어느 정도로 약한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다음에는 네 발로 기어서 나가게 해주지.
***
자기 PR 영상의 전말을 모르는 해월과 헤어진 청우는 진주 등급 연습실로 돌아왔다. 메인 테마곡 연습이 한창인 가운데 정이원은 어느새 반장이라도 된 것처럼 같은 등급의 연습생들을 이끌고 있었다.
“청우 왔어? 우리 연습 중이었어. 너도 같이하자.”
메인 테마곡인 〈난 준비됐어〉는 박자를 잘게 쪼갠 고난이도 안무가 많이 들어가 연습생들 대다수가 어려워했다. 노래는 어차피 여러 명이 나누어서 부르기 때문에 개인 파트가 적은 편이지만 군무는 모두 맞춰야 해서 연습생 대부분이 춤 연습에 긴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래.”
오후에는 계속 메인 테마곡의 연습 시간이었다. 각자 지급받은 패블릿 속 안무 영상을 가지고 안무를 숙지하고 연습하는데 그래도 춤 실력이 좋은 편인 정이원이 가장 안무를 많이 따서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여기서는 발을 이렇게, 따단.”
몇 명은 각자 연습하고 있었고 5명 정도가 정이원과 함께 연습하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각자 연습하는 연습생들의 실력이 더 좋아 보였다.
‘쟤는 왜 저기서 좀 모자란 애들을 데리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걸까?’
청우는 하오문의 일원답게 이득이 생기지 않는 일에 자꾸 앞장서서 나서는 정이원이 의아하게 여겨졌다.
[이청우가 저런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합니다.]썩 내키지는 않지만 청우도 저기에 동참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청우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쟤는 왜 저렇게 성가시게 애들을 끌고 다니는 거야? 지가 무슨 리더도 아니면서.”
작은 목소리라 다른 연습생들은 듣지 못한 듯했지만 청우는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왠지 그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땐 당연한 이야기였는데, 입 밖으로 내뱉는 꼴을 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누구인지 얼굴을 보기 위해 돌아보자 한쪽에서 연습하고 있던 63번 연습생이 보였다. 이름이… 김태양. 주제에 비해 과한 이름을 지닌 녀석이었다.
훅, 입바람에 내기를 실어 날려 보내 춤 연습을 하는 김태양의 발밑을 미끄럽게 만들었다. 순간 발을 헛디딘 녀석은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게 내공을 막 써도 되냐고 이청우가 묻습니다.]‘뭐 어때, 누가 알아챌 것도 아니고. 그냥 장난친 정도인걸.’
“야, 정이원. 나도 같이하자.”
청우가 끼자 그의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정이원이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
첫날 선보였던 평가곡은 청우가 2주 동안 그 곡만 죽어라 팠기 때문에 소화 가능했다.
하지만 본연의 감각과 내공으로 강화한 육체 덕분에 안무를 딸 때 슬쩍 보고 몇 번 만에 완성도 높은 동작을 보여주어, 정이원은 청우에게 콩깍지가 씐 상태였다.
어느 정도냐면 그냥 몰라서 허둥대는 청우를 보고 안무 숙지를 마치기 전까지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은둔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라면 어느 정도 다 땄을 것 같은데. 당연히 환영이지. 나 한 70퍼센트밖에 못 땄거든. 브릿지부터 마지막 후렴은 네가 도와주라.”
“그래.”
“그럼 얘들아,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각자 아는 만큼만 다시 해보자.”
영상을 받은 것이 어제저녁인데 벌써 대부분의 안무를 숙지하고 있다니 역시 정이원도 입만 산 실력은 아니었다. 같이하는 연습생들의 실력도 볼 겸 청우는 대형에 방해되지 않게 약간 뒤쪽에 서서 기억하는 안무를 따라 추며 거울을 통해 다른 연습생들의 동작을 살펴보았다.
-세상에 반짝이는 수많은 빛들
그 속에 너를 기다리는 내가 있어
나를 바라봐, 나를 찾아줘
너를 위한 준비를
모두 끝낸 나야!
손을 뻗어줘!
난 준비 됐어!
여기 네 눈앞에 있는 나는
반짝이는 보석이 될 거야.
초반에는 느리면서도 진중한 가사에 맞춰 안무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는 쓸쓸한 모습을 표현한다. 동작이 느리지만 몸에 중심을 잡고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야 하는 고난이도 동작들이 숨어있다 보니, 안무는 알고 있으나 중심을 못 잡거나 코어가 부족한 연습생들은 엉망으로 동작을 해내고 있었다.
아까 김태양의 다리를 넘어뜨릴 뻔한 것은 잊고 청우가 다시금 생각했다.
‘이걸 다 뜯어고치느니 개인 연습을 열심히 해서 솔로 파트를 가져가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난 준비됐어! 네가 날 선택해준다면
네가 날 반짝이는 보석으로 만들거야
너는 나에게 빠져들 거야
준비됐어! 너도 준비됐니!
나를 바꿀 수 있는 건
너뿐이야!
후렴구 부분은 턴을 하면서 곧바로 파워풀한 동작이 이어져 정이원도 잠깐 버벅거릴 정도였다. 당연히 다른 연습생들은 안무 숙지는커녕 정이원의 동작을 따라 하는 것도 벅차 보였다. 여기는 진주 등급이라 나름대로 상위권의 연습생들인데도 이 정도이니 하위 등급 연습실은 안 봐도 훤했다.
‘혼자 연습하면 안무를 숙지하고 완전히 익히는데 3일이면 충분한데……. 같이하면 알려주면서 하니까 시간이 배로 걸리겠지. 내가 안 도와주면 정이원은 계속 저 뚝딱이들이랑 저러고 있을 거고.’
손익으로만 따지면 답이 명확한데도 선뜻 움직이기 어려웠다. 왜일까. 그러고 보니 마음을 고쳐먹었던 순간부터 무슨 일이든 결정할 때 꼭 전생에서라면 하지 않았던 선택지로 자꾸만 몸이 움직였다.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정이원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다. 동작을 헤매면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눈을 빛내고 있는 애들 때문도 아닐 게 분명했다.
‘그래. 혼자보단 여럿이 있는 게 카메라에 더 잘 잡히겠지. 어떻게 봐도 이쪽이 이익이라 그런 거야.’
“음, 제가 한 번 시범 보여도 될까요? 다들 음, 헤매고 있으니까 아주 느리게 해볼게요.”
하지만 단어 선택은 예쁘지 않았다. 헤맨다는 말에 모두의 눈이 뾰족해진 것을 모르는 청우는 스승님 덕분에 자신이 아주 착해졌다며 이러다 선계가 아니라 천당으로 가겠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하며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