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15)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15화(15/101)
제15화
“저기 봐!”
석진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니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네모나고 높은 것이 앞으로 쭉쭉 걸어오고 있었다.
설마?
“모판이 걸어온다!”
모판을 두 개씩 나르며 분주히 움직이던 루비 등급 연습생들도 황당한지 진주 등급의 논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헉! 이, 이, 이청우다!”
“자, 빨리빨리 심읍시다!”
걸어오던 모판은 청우였다.
혼자서 모판을 일렬로 쌓아 10개를 들고 온 것이다.
“이거, 하나에 5kg은 더 될 텐데?”
“어휴, 깜짝 놀랐다니깐요. 청우 형이 막 이걸 언제 한두 개씩 나르냐고 비키라고 막……!”
같이 온 석진과 현석이 혀를 내두르며 청우의 힘에 감탄을 늘어놓았다.
“빨리 가자. 이번에만 옮기면 다 옮길 수 있겠다. 뭣들하고 있어? 빨리 일 안 하고?”
“어, 어!”
별거 아니라는 듯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청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모판 10개를 일하기 좋도록 나눠놓고는 남은 모판을 가지러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판을 들어보던 남은 연습생들이 두 개를 들어보고는 허리를 휘청했다.
“와, 꽤 무거운데? 이거 10개를 들고 왔다고?”
“야, 5kg이라고만 잡아도 50kg이야. 어떻게 무너트리지도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지? 논밭 길이라 고르지도 않은데.”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힘이 셀 수가 있냐며 의아해하던 연습생들은 정이원의 한마디에 다시 열심히 모를 심으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얘들아, 빨리하자. 청우가 생각보다 마음이 넓지는 않아. 이랬는데도 지면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들걸.”
모판이 한꺼번에 넘어와서 일하기는 훨씬 수월했다. 루비 등급 팀에서 겨우 모판 6개를 가지고 일을 시작했을 때, 이쪽 팀은 벌써 논 한 마지기 분량의 모판이 나눠져 있어 속도가 훨씬 빨랐다.
물론 농촌 숙련자가 없는 만큼 모를 심는 속도는 빠르다고는 할 수 없었다.
“으악, 조심!”
여기저기서 미끄러운 논의 진흙 때문에 넘어지고 구르며 제법 예능다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야, 진흙 튀기잖아!”
“천연 머드팩 해드려요?”
정이원의 넉살에 깔깔거리고 있으려니 어느새 모판을 모두 옮기고 각 장소에 맞게 나눠 두기까지 한 청우 팀이 진주 등급의 논에 돌아왔다.
“어라? 정이원. 아직도 한 줄도 다 못 심고 노닥거리고 있다는 말이지?”
“그, 그럴 리가. 열심히 심고 있었어. 이거 봐.”
겨우 50kg 정도 드는 것은 크게 힘이 들지 않았지만 그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소중한 친구가 놀고 있다면 안 될 말이다. 청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몸빼바지를 한번 보고 결심한 듯 정이원의 옆자리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으악, 청우야, 좀 쉬어. 왜 여기로 와!”
“아니, 빨리 해야 맛있는 새참을 먹지. 도와줄게, 친구야.”
“괜찮은데. 윽, 야!”
정이원이 맡은 줄을 살펴보던 청우는 엉덩이로 정이원을 밀어내 버렸다. 이대로 가다간 해 다 지게 생겼다. 내가 심는 것이 빠르겠군.
청우는 내력을 조금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진흙 속의 다리를 움직여 보법을 사용했다.
슉- 뾱-
슉- 뾱-
청우가 한 번 슉 하고 움직일 때마다 표시해둔 다음 못자리로 움직여 뾱, 뾱 모를 심었다. 청우에게 밀쳐져 진흙에 자빠진 정이원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뒤를 돌아본 순간 청우는 벌써 저 멀리 모를 심으러 움직이고 있었다.
“쟤, 인간 콤바인이네. 어릴 때 농촌에서 살았나?”
혼자만 독보적인 속도로 모를 심고 있자 구경 나온 시골 어르신들이 청우를 보고 한 마디씩 하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아따, 일 잘하네잉.”
“젊은 아가 어째 저래 일을 잘한디야. 저 줄 빤뜻한 거 봐라, 우리 논도 좀 시켰으면 좋겄는디.”
한쪽 귀로 그 칭찬을 전부 듣고 있던 청우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무대 체질인 청우는 모두가 자신을 칭찬해주자 신이 났다. 그래서 시키지도 않은 묘기 대행진을 부리기 시작했다.
청우가 내력을 담아 모를 던지자 원하는 곳에 정확히 가서 꽂혔다. 섬세한 내력 조절 탓에 모 뿌리 하나 상하지 않고 예쁘고 콕 박혔다.
오오!
사람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청우의 곁에 다가온 정이원이 박수를 쳤다. 그는 일은 안 하고 청우를 구경하며 옆에서 감탄하거나 칭찬을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력을 담아 모 두 개를 한 번에 던지자 씨가 뿌려지듯 모 두 개가 정확한 자리에 뾱, 뾱 하고 꽂혔다.
“우와! 청우 저거 어떻게 한 거야? 기술 개돌았네!”
“이번엔 세 개! 세 개!”
어느새 진주 팀은 물론 루비 팀까지 모두가 청우의 묘기 대행진을 보고 응원하고 있었다. 박수와 환호 소리에 신이 난 청우는 신나게 두 개! 세 개! 모를 쭉쭉 던졌다.
뾱- 뾱- 뾱- 뾱-
파바밧!
한번에 4개 던지기에 성공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와! 멋지다, 이청우!”
“짱이다! 인간 모내기 머신!”
“천마님 멋져요!”
“이건 찢었다. 모내기 머신 이청우!”
청우의 활약 끝에 당연히 모내기 미션은 진주 팀이 승리하게 되었다. 이긴다고 뭐 큰 상품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승리했다는 기쁨에 진주 팀은 다 같이 청우의 이름을 부르며 승리의 세레모니를 펼쳤다.
“진주 팀은 벌써 모내기를 다 마쳤습니다. 엄청난 속도인데요, 특히 이청우 연습생의 활약이 엄청나게 돋보였습니다. 제작진 측에서 진주 팀은 루비 팀이 모내기를 끝낼 때까지 쉬어도 된다고 하네요.”
엄청난 속도 차이에 할 게 없어진 진주 팀은 승리를 충분히 만끽한 후 그늘에 가서 하나둘 주저앉았다.
“와, 청우 진짜 신기하게 일 잘하네. 어릴 때 이런 거 많이 해봤어?”
청우는 어릴 적 거지 시절에 주먹밥 몇 개 얻으려고 남의 논에서 모내기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나갔으니 추억이지 그때는 진짜 개고생했는데.
“조금. 새참은 언제 온대?”
“아직 시간 남아서. 루비 팀까지 끝나야 하지 않을까?”
흐음. 청우는 루비 팀 연습생들이 열심히 모내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승부가 너무 빨리 결정 나버려 의욕이 조금 사라진 모습이었다. 이러면 오래 걸리겠는데.
청우가 정이원을 툭툭 쳐 같이 일으켜 세웠다.
“가서 루비 팀 도와주자. 빨리 새참 먹고 싶어.”
“어? 배고파?”
“응.”
단호하게 말한 청우는 루비 팀 연습생들이 모내기하는 쪽으로 다가가서 모판을 깃털처럼 가볍게 들고는 모내기를 돕기 시작했다.
정이원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약한 청우는 아무래도 같은 연습생들끼리 고생하는 모습이 보기 힘든 것 같았다. 역시 착한 녀석이라니까. 정이원은 다른 진주 팀 연습생들에게도 눈치를 주어 같이 모내기를 도우러 나섰다. 대부분이 흔쾌히 모내기를 도우며 루비 팀과 진주 팀이 함께 어우러져 모내기를 마무리하는 훈훈한 풍경이 완성되었다.
김태양도 입을 삐죽이긴 했지만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같이 일을 도왔다. 루비 팀도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금세 친해져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같은 소속사더라도 등급별로 나누어진 연습생들이 많아 서로를 돕는 데 크게 거리낌은 없었다.
“벌써 다 끝냈어? 젊은 총각들이라 그런지 엄청 빠르구먼. 자, 다들 새참 좀 먹게.”
논 주인인 마을 이장 할아버지가 새참을 실은 트랙터를 몰고 나타났는데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모내기가 끝난 탓에 얼굴이 싱글벙글했다. 어린 애들이 봉사 활동으로 한다고 하여 엉망으로 끝내진 않았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일도 잘하는 데다 속도도 빠르기까지 했다. 두 번 일할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해 매우 만족스러워졌다.
“그리고 특별 새참으로는 바로! 치킨! 이 주어집니다!”
아마 사전에 계약된 PPL 건이었겠지만 치킨이란 어느 때에 나타나도 환영받는 법이다. 특히나 한동안 숙소에 갇혀 있었던 먹성 좋은 청년들은 외부 배달 음식의 등장에 환호성을 질렀다.
“와! 치킨! 치킨!”
“치느님! 치느님!”
아직 현대 생활이 짧은 탓에 치킨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던 청우 역시 함께 기뻐했다. 뭔지 몰라도 맛있는 건가 보다. 모두가 좋아하고 있어!
치킨 상자가 화려한 비단 방석 위에 올려져서 나왔다.
“새로 나온 스모키갈릭소이블랙 치킨과 화이트트러플구운버섯치킨입니다!”
와! 무슨 치킨인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일단 치킨이다!
신제품 홍보용으로 나온 듯한 치킨을 이장과 제작진들이 여기저기 나눠줬다. 처음에는 승리에서 이긴 진주 팀에만 배당됐지만, 루비 팀을 도와 모두가 모내기를 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나온 탓에 제작진들은 치킨을 전부 나누어 주었다.
그리곤 제작진 측에서 몇몇 연습을 불러내 무어라 지시했다. 청우도 제작진에게 불려가 살짝 귀띔을 받았다.
“청우 씨, 먹을 때 이 대사 넣어주세요. ‘스모키한 불맛이 느껴지는데 짭짤하고 담백한 맛이 어우러져 너무 맛있어요!’ 멘트 치고 표정은 진짜 놀랍고 맛있다는 얼굴로. 부탁해요!”
이런 것이 광고로구나.
청우는 처음으로 대사가 주어진 상황에 의지를 불태웠다. 아이돌로서 성공하면 광고를 찍어 엄청난 액수의 계약금을 받을 수 있다고 들어 광고 몇 편을 유심히 봐두었다. 언젠가 이런 광고를 찍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이청우’가 얘기했었다. 벌써 소원을 들어줄 기회가 생기다니.
엄청난 의욕을 불태우며 살짝 자리로 가자 정이원도 미리 언질을 받은 듯 닭다리 하나를 청우에게 건네주었다.
“우리 일등 공신! 많이 먹어 청우야, 이거 진짜 맛있다. 새로 나왔나 봐!”
호쾌하게 한 입을 뜯자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거지 시절 불에 태워 먹었던 거지닭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대사를 칠 때가 되었다.
“스키한 불 맛이 느껴진다! 짭짤하고 담백한 맛이 너무 맛있어요!”
스키라고 외치자마자 옆에서 픽픽, 웃음 터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스키 아니고 스모키. 스모키.”
정이원이 작은 목소리로 정정해 주었다. 서양놈들 단어는 어렵기도 하지. 청우가 다시 말을 고쳤다.
“스키가 아니고 스모키. 암튼 맛있어요!”
제작진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만 어쨌든 잘 마무리된 것 같았다. 카메라가 확실하게 이쪽 영상을 따고 갔으니까.
생각보다 실험적인 맛이었는지 카메라가 지나가자 연습생들이 하나둘 맡은 몫만 해치우더니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냥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었으면 더 좋았을걸.”
“으음, 나는 별로…….”
카메라가 돌아다니니 웃는 얼굴을 하긴 했지만 배고프니 먹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연습생들은 배를 채우곤 곧바로 손이 느려졌다.
왜 그러지, 맛있는데.
다소 훈연향이 강하고 생각보다 짠맛이 셌지만, 불에 태운 후 탄 껍질과 같이 간도 없이 먹던 거지닭에 비하면 5층 정도 되는 주루에서도 먹을 만한 맛의 고급 닭요리였다.
치킨에 눈을 뜬 청우는 이것보다 더 맛있는 치킨에 세상에 많다는 ‘이청우’의 이야기에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숙소에서 나가면 이 세상 음식탐방부터 다녀야겠다. 여기는 맛있는 음식들이 정말 많구나.’
연습생들이 다들 먹고 조금 쉬러 간 사이에도 청우는 혼자 열심히 치킨을 뜯었다. 그때 누군가 옆에서 치킨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치킨 좋아하시나 봐요. 이거 화이트 치킨인데 애들이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드셔보실래요?”
그러고 보니 다른 맛의 치킨도 있었지. 차량에서 인사만 나누었던 주지호가 화이트 치킨을 가지고 나타났다. 확실히 눈에 띄는 얼굴이라 연습생들 사이에서 작은 파문이 일었다. 화이트 치킨 쪽은 주지호가 맡았었나보다.
“오, 감사합니다.”
먹을 것은 절대 거절하지 않는 청우가 새로온 화이트 치킨 상자를 열었다. 마침 이쪽에 남은 치킨은 다 먹어 갈쯤이라 반가웠다.
“몇 살이랬죠? 저는 21살이니까 말 편하게 해도 돼요.”
먹을 것을 가지고 오자 화산지검이고 뭐고 마음이 활짝 열렸다. 청우의 말에 자신도 21살이라며 주지호가 반가워했다.
“그러면 말 편하게 해도 될까? 안 그래도 좀 궁금했어. 춤 엄청 잘 추고 잘 가르친다고 하던데. 나도 배우고 싶었거든.”
역시 그의 주변을 맴도는 것 같더라니 엄청난 강도로 몰아치는 청우의 연습 모임에 대해 들은 듯했다. 사실 진주 등급 연습생들끼리 연습을 시작했지만 다들 친한 연습생들을 한둘 데리고 들어오기 시작해 밤에 이루어지는 청우의 메인 테마곡 안무 연습 모임의 인원수가 꽤 늘어난 상황이었다.
“그러면 너도 연습하러 와. 마침 이제 혼자 해도 되겠다고 나간 애들이 있어서 자리 좀 빌 거야.”
“정말? 내가 사실 춤은 좀 약해서 다음 등급평가가 걱정이었거든.”
얼굴은 화산지검인데 신체는 화산지검이 아닌가? 근골은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안 그래도 잘생긴 얼굴로 환하게 웃음을 짓자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지나갔던 카메라가 다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래, 이런 웃음이라면 찍고 싶겠지. 청우는 치킨을 열심히 뜯어 먹었다. 먹어본 현대 음식 중에서 느끼한 편이긴 한데 중원의 느끼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크림 기반의 맛이 느끼해서 다들 한 조각 정도 먹고 내려놓던데 열심히 먹는 청우의 모습에 주지호가 약간 질린 얼굴을 했다.
“엄청 잘 먹는구나. 우리 집이 치킨 하는데 나중에 주말 외출할 때 놀러 올래?”
“!”
청우가 기름이 묻은 손을 주지호에게 내밀었다.
“나이가 같으니까 우린 친구지. 꼭 놀러 갈게 친구야.”
“으응.”
친해지고 싶었던 것은 맞지만 왠지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서 친해지는 기분인걸. 지호가 청우의 손을 마주 잡고 악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의 기분에 상관없이 치킨집 아들이라는 주지호와 친해지기로 한 청우는 마음속 친구 모임에 주지호를 집어넣었다. 잘생긴 치킨집 아들이라니 같이 데뷔하면 좋겠다. 꼭 친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