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39)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39화(39/101)
제39화
“흠. 깁스했네?”
할 말이 있다며 찾아온 것은 현지원이었지만 먼저 말을 꺼내기는 어려운 듯 그가 화제를 돌렸다.
“너 무대는 어떻게 하냐?”
“남이사. 어떻게든 하겠지.”
청우는 뚱하게 대답했다. 시비를 걸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감사 인사겠지. 빨리하고 가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빙빙 돌리지.
“고마우면 빨리 고맙다고 해.”
청우가 툭 던지자 현지원의 얼굴이 빨개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걸 네가 말하면 어떻게 해.”
“죽을까 봐 도와준 거니까 내 은공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평생토록 간직하다가 반드시 생명을 구해준 급에 달하는 은혜를 갚도록 해라.”
뻔뻔한 청우의 말에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것은 맞았던 현지원이 빨리 자신의 말만 하고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예전엔 이런 인간인지 몰랐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말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고맙다고 하려고. 뭐 평생에 새길 은혜 정도는 아니니까 얼마면 되겠어? 전에 조금 우리 사이가 안 좋긴 했지만 그것까지 보상해줄게.”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하게 믿는 현지원의 눈을 보니 청우도 할 말이 없어졌다. 어린놈이 어쩌다 벌써부터 저런 눈을 가지게 되었을까. 중원에서 늘그막의 전주(錢主)들이나 가지는 눈을 벌써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에 청우가 자신도 모르게 진심으로 한마디 했다.
“너, 그러다 일찍 죽는다. 세상엔 안 그런 것 같아도 인과응보라는게 있어. 조심해.”
전의 그 검은 그림자가 생각난 현지원이 조금 움찔했다. 그래도 그가 다시 온 것은 청우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고 사이를 예전처럼 되돌리고 싶어서였다. 현지원은 직접 이청우를 괴롭히는 일에 가담한 적이 없어 이전의 일이 사소한 다툼 정도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적당한 대가를 지불해 주고 서로 화해하면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계진성 같은 친구들보다 이청우가 훨씬 도움도 많이 될 거 같고.
“우리 아빠한테 이야기해서 너네 회사에 푸쉬 좀 할까? 말만 해. 이번에 무대 못 올라가도 떨어지지 않도록 내가 힘 좀 써볼게. 투표수 한 몇천 올려줄까? 우리가 전에는 좀 사이가 안 좋긴 했지만 나쁜 건 한동운이었잖아. 네가 말만 하면 그 새끼도 치워줄게. 어때?”
하아. 청우는 급피곤해졌다. 이 녀석은 진심으로 자신이 전에 이청우에게 했던 일에 대해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자기방어가 너무 심해 뭐라고 말을 해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청우에게 보이는 저 눈동자에는 호의가 가득했다. 이번 청우의 행동으로 그동안의 모든 반목이 깨끗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막고 싶었을 뿐인데 무슨 오해를 한 건지 모르겠다.
“일단 이전에 했던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부터 해. 너는 별생각 없었겠지만 이청우는 정말 괴로워했어. 한동운 그 새끼는 나중에 내가 조질 테니까 그냥 둬도 돼.”
“컨셉 바꿨어? 왜 자기 이름을 3인칭으로 말해? 그땐 정말 미안했다. 내가 어려서 철이 없었나 봐. 그때 미안했던 것까지 내가 다 보상해 준다니까? 너 명품 좋아하냐?”
“됐어. 너 진짜 그렇게 살면 큰일 난다니까. 혹시 주변에 원한산 사람 없어?”
이번에 현지원을 덮친 악의는 거의 악귀 수준이었다. 중원에서도 보통 진짜 살수를 보내기에 그 정도로 악의가 밀집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현대에서 그런 것을 볼 수 있을 줄이야.
이번에는 청우가 가까이 있었으니 막아줄 수 있었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야, 이참에 내가 한 벌 쫙 빼줄게. 운동화는 어때? 옛날에 너 운동화 찢어져서 슬리퍼 신고 갔었지? 그것도 이번에 다 보상해준다. 한동훈이랑 최기현은 내가 처리해줄게. 한동훈은 어차피 이제 연습생 그만뒀어. 미래가 안 보였거든. 걔가 너 진짜 많이 괴롭혔잖아.”
“너도 옆에 같이 있었거든? 아, 나 갈 테니까 너도 그냥 가라. 나 또 건들면 가만 안 둔다.”
청우의 의욕이 조금 떨어졌다. 현지원은 생각보다 훨씬 유치한 녀석이었고 자기중심적이었다. 어쩐지 괴롭힐 때 직접적으로는 손 쓰지 않고 뒤에서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하고 말해놓고 진짜 했어? 너무 심하지 않냐. 이러고 이중인격자놀이 하더니.
그냥 한동훈이라는 놈이랑 이번에 쫓겨나간 최기현이랑 혼내주고 계진성이나 좀 밟아줘야겠다. 현지원의 눈을 보니 이제는 자신을 괴롭히거나 적대하진 않을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상대해 주기엔 너무 애새끼 같았다.
청우가 목발을 짚으며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향하자, 뒤에서 줄 수 있는 선물 목록을 부르던 현지원이 카메라가 있는 곳부터는 부담스러운지 슬쩍 사라졌다. 북경에 있던 최고 부자 금원장의 아들 같은 놈이었다. 청우가 땀을 닦았다. 자기 전속 예인이 되면 호화장원을 지어주겠다며 쫓아다니던 끈질긴 녀석이었다. 진짜 짜증 나서 몇 대 쥐어박았더니 무공까지 강하시냐며 그럼 장원에 도관을 추가해 주겠다던가.
설마 그런 끈질긴 놈이 또 있진 않겠지. 아주 인생 망쳐주려다가 말았다, 내가.
‘넌 괜찮냐?’
상대가 너무 어이없이 허물어져 전의가 없어졌지만 직접 당했던 ‘이청우’의 마음은 다를 수 있기에 청우가 물었다. 만일 ‘이청우’가 너무 화가 난다고 한다면 없던 전의조차 끌어올려 줄 생각이었다.
[사과받았으니 진심으로 괜찮다고 이청우가 말합니다. 이제는 지난 일이고 오히려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까 속이 풀렸다고 이청우가 말합니다.]그때였다.
[다섯 번째 업적 – 너튜브 〈블링블링 유어 아이돌〉 2차 팀 미션 영상에서 제일 많이 본 장면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요.]혼원천에서 다섯 번째 업적의 알림이 떴다. 제일 많이 본 장면이라. 너튜브로 영상을 많이 찾아봐 익숙해졌는데도 혼원천이 뭘 말하는진 잘 모르겠어서, 청우는 정이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청우의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나머지 일정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게릴라 콘서트 영상이 올라왔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해 조회 수를 표로 집계하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들었다.
제대로 된 무대는 아니었지만 게릴라 콘서트에 올라가지 못한 정이원이 아쉽지 않을까 청우는 살짝 눈치를 보았지만 정작 정이원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기색이었다.
“천마님, 어떻게 무공으로 빡! 하고 치료할 수는 없어?”
“무, 무슨 무공이야. 그리고 그런 무공이 세상에 어디 있어.”
있었나? 없을걸. 이 녀석이 진짜 뭘 알고 말하는지 가끔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청우는 와서 능청스럽게 구는 정이원을 휙 밀어내었다.
사실 꽤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 이번에는 몸을 좀 사리기로 했다. 지금 당장 무리해서 춤 연습을 한다고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도 없었기에 매 연습 때마다 청우는 의자에 앉아서 입으로만 연습에 참여했다.
“정이솔, ~이야 부분에서 반음 높게, 덕진이는 좀 더 깊게 끌어서.”
“정이원 템포 빠르다.”
“[왕린, 자네는 어찌 발을 그리 경박스럽게 놀리는가. 무게를 담아 묵직하게 움직이게.]”
“[예. 어르신, 이 아니고. 청우 씨… 그 말은 현재는 안 쓰이는 말 같은데 느낌은 알겠습니다.]”
목발 짚고 앉아서 눈짓과 입으로만 까딱까딱 참여하는 청우가 얄밉기도 했지만 사실상 눈과 귀가 팀원들 중 가장 정확하기에 뭐라 할 말은 없었다.
당장 들어올 수 없는 청우를 제외하고 팀원들은 동선을 정리하고 안무와 노래를 연습했다. 김해월은 어느새 봐줄 만한 가창력을 자랑했고 인지도도 높아 연습 영상도 꽤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정이원아, 너튜브에 가장 많이 본 장면 같은 거는 어떤 구조로 되는 거야?”
“음? 아마 사람들이 많이 돌려봤거나 거기서부터 조회 수가 올라간 부분부터 표시될 거야. 반전이 나오거나 하는 부분이면 사람들이 더 찾아서 보잖아? 그런데 그건 왜?”
“아, 우리 팀 영상이 가장 조회 수가 높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어.”
정이원은 청우가 불가피하게 다리를 다쳤음에도 팀을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아닌 척해도 책임감이 있는 녀석이라 자신의 빈 자리를 고민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러니 나가서 사고를 치고 와도 미워할 수가 없다.
“야, 네가 갑자기 무대에서 목발 집어 던지고 춤추지 않는 이상은 실력에 따라 다르겠지. 우리 팀 연습 열심히 했고 해월이랑 덕진이가 요새 실력이 매일매일 일취월장하더라. 믿고 그냥 기다려. 너는 연습 도와주고 노래만 잘해주면 네 할 몫 다한 거야.”
그래? 목발을 집어 던지고 춤을 추란 말이지. 청우가 씩 웃었다. 그런걸 반전이라고 하는 거로군. 선계의 붕대가 가진 치유 효과 덕분인지 다리를 하루가 다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빠듯할 뿐이지 보통 사람들의 몇 배나 되는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청우의 계산에 따르면 무대에 오르는 날까지는 무리 없이 회복될 것 같았다.
그러면 당일에 무대 배치를 위해 연습을 다시 시켜야겠다. 청우는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이번에 내가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정이원의 격렬한 반대와 이덕진과 김해월의 만류가 있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팀원들은 무대 배치를 두 가지로 구성하기로 했다.
만일 그때까지 청우가 나을 수만 있다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구성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청우의 이동을 빼고 나머지 6명만 안무를 하는 것으로 생각해두기로 했다. 안 그래도 시간이 없는데 두 가지 버전의 안무를 외우게 생긴 팀원들은 그래도 군말 없이 청우의 의견을 따랐다.
“형, 진짜 무리하진 마세요. 아직 미션은 많이 남아있어요. 7명 뽑는데 아직 70명이나 남았잖아요.”
김해월의 걱정이 담긴 말에 청우가 너무 염려하지 말라며 김해월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걱정 말라니까. 그때까진 이것 좀 이용해야겠다.”
현지원은 몰라도 다른 놈들은 괴롭혀줘야지. 청우가 목발을 보며 짓궂게 웃었다.
다음날 점심시간.
“아! 아야.”
식사를 하러 이동하던 청우가 누군가와 부딪힌 후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우당탕
목발이 넘어지는 소리에 일찍 밥을 먹으러 온 몇 명이 소리 난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야, 괜찮냐? 그러게 왜 이쪽으로 지나갔어.”
넘어진 청우를 떨떠름한 얼굴로 보고 있는 것은 김태양이었다.
그저 밥을 먹으러 갈 뿐이었는데, 분명 사이에 공간이 넓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청우가 김태양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평소라면 꼬숩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 청우는 자신의 팀 현지원을 구하다가 다친 부상자였다.
게다가 목발이 넘어지며 난 큰 소리에 식당의 모든 인원이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지나갔을 뿐인데 왜 내가 괴롭힌 것 같지. 김태양은 자꾸 찌푸려지는 얼굴을 간신히 펴며 청우를 부축해 세워주었다.
“청우야, 괜찮아?”
정이원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정의의 용사마냥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나타났다.
“목발 짚고 다니는 애가 있으면 자리 좀 넓게 비켜주지……. 아니다. 가자, 내가 부축해 줄게.”
자신에게 핀잔을 주는 정이원의 말에 김태양이 어이가 없어 입만 벌릴 뿐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자리 넓은 거 확인하고 걸었다니까? 하지만 대꾸할 새도 없이 이청우와 정이원이 사라져 버렸다. 같은 팀인 현지원까지 자신에게 눈총을 주는 것 같았다.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리고 그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 내 목발!”
화장실에서 나오는 길에 김태양은 이청우와 또 부딪혔다.
또?
김태양이 이청우를 일으키려고 손을 내밀다가 불길한 예감에 손을 다시 회수했다.
“악!”
그러자 손을 잡으려던 이청우가 다시 넘어졌다.
“너!”
“아니, 청우야! 괜찮아? 그러게 나랑 같이 다니자니까. 아무래도 발밑을 잘 안 보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니까.”
“아, 그냥 화장실만 갔다 오려고 했지. 매번 널 부르면 귀찮아할까 봐.”
“에이, 우리가 남이가! 친구끼리 뭐 어때.”
또 촉새같이 정이원이 나타나 그가 이청우를 넘어뜨렸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었고 졸지에 배려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속에서 무언가 끓어 오르는 억울한 느낌에 화를 내려던 김태양은 근처에 보이는 카메라를 보고 마음을 삭혔다.
안 되겠다, 당분간 이청우가 보이면 피해 다녀야겠다.
그리고 다음 날 김태양은 이청우를 세 번이나 넘어뜨렸고 그때마다 정이원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했다.
그뿐 아니라 이상하게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고 가서 앉으면 이청우가 나타나 ‘나 앉으라고 해월이가 가져다 놓은 의자인데.’ 하고 중얼거렸고, 평범하게 미는 문을 열고 나가면 꼭 뒤에 이청우가 따라오다 머리를 부딪쳤다. 자신이 아무렇게나 땀을 닦아 던져놓은 수건에는 이청우가 넘어졌다.
“야, 너 요새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지원이 일도 있는데 좀 자중해. 말 나오겠어.”
심지어 이청우 싫어하기 1인자에 가까운 계진성까지 김태양에게 다가와 주의를 주고 가곤 했다.
이건 다 우연이다, 내가 그런 것이 아니다. 하고 말해보았지만 계진성은 ‘굳이 우리 사이에 뭘 또 거짓말까지. 눈에 안 띄게 하라니깐’ 하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는 지나가 버렸다.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 그마저 자신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와씨, 뭐지? 암살인가? 사회적 암살?”
김태양이 억울함에 가슴을 턱턱 쳤지만 그의 억울함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현지원마저 적당히 하라고 이를 갈고 갔다. 아니, 진짜 내가 한 거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