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49)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49화(49/101)
제49화
그러고 보니 이쪽엔 현지원이 있다.
이전이라면 절대 이쪽 편을 들어주지 않았을테지만 지금은 모른다. 그런데 아무리 청우가 그를 구해줬다고 한들 본인의 치부도 드러날 일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까?
현지원은 직접적으로 괴롭히진 않았지만 대부분 괴롭힘의 현장에 연관된 적이 많았고 본인도 한동훈을 대신 시켜 마음에 안 드는 연습생들을 괴롭히거나 내보내기도 했다. 그걸 기억하고 있는 많은 연습생이 있으니 전면에 나서기라도 하면 그도 역풍을 걱정해야 할 텐데.
“역시 가서 죽여버리는 편이…….”
그때였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강 실장이 문을 열어 보자 그 앞에 김해월과 현지원이 서 있었다.
“저기,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사건이요. 지원이 형이 같이 힘이 되어 주고 싶다고 해서…….”
김해월의 말에 현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LSL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제가 증인이 되어 줄 수도 있고 다른 녀석들의 증언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꽤 좋은 변호사를 알고 계시거든요.”
“너… 혹시 혜원그룹 차남이니?”
“아, 저 아시는구나.”
현지원이 당연히 날 알아야지, 하는 얼굴로 거들먹거렸다. 현지원을 이용할까 생각은 했지만 제 발로 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청우가 그 꼴을 보고 어이가 없어 벌떡 일어섰다.
“네가 여길 왜 왔어?”
“해월이한테 다 들었어. 솔직히 예전에 너한테 내가 잘못한 거 인정해. 근데도 넌 나를 여러 번 도와줬지. 난 주고받는 게 확실한 사람이야. 당연히 이번엔 내 차례지.”
선물을 잘 안 받아서 안 그래도 찝찝했는데 잘 되었다고 현지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딴 애들은 선물이건 돈이건 넙죽넙죽 받아서 처리가 편한데 청우는 까다로워서 참 손 많이 간다며 타박까지 놓았다.
“이거 증언하면 네가 했던 일까지 같이 나가. 네가 괴롭혔던 애들이 이참에 너까지 폭로할 수도 있고. 근데 그래도 괜찮다고?”
“괜찮아. 이번에 사과한다고 생각하지 뭐. 찝찝했는데 이참에 다 해결하고 가는 게 낫지. 지금 너랑 같이 터지면 나중에도 터질 일이었을 테니. 기자들은 아는 기자들 위주로 불러올 거고. 뭐, 다른 비현실적인 일들이야 네가 해결해 주겠지.”
현지원은 오히려 태평하게 말했다. 청우를 믿는다는 그 말투에 청우가 몸에서 힘이 빠졌다.
“내가 처리 못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드냐…….”
“그땐 절이나 유명한 성당에 기부 많이 하고 좀 숨어 있지 뭐. 돈으로 해결 안 되는 일은 많지 않아.”
이거 진짜 금원장 아들놈이 환생한 거 아닌가? 만일 환생이라면 그것도 큰일이다. 이놈이 부잣집 아들내미로 두 번이나 태어날 수 있었다면 그 전생에는 세계를 구했을 정도의 공덕을 쌓았었다는 소리일 테니까. 청우가 무슨 생각을 하든 강 실장은 현지원의 손을 덥석 잡으며 고마워했다.
“그래, 너도 큰 도움이 되겠다. 나서줘서 고마워. 그럼 같이 진행해보자.”
청우의 기막힌 마음은 별개로 김해월은 자신이 수집한 증거와 친한 연습생들의 증언을 모으겠다며 나갔고 현지원은 아버지의 법무팀과 함께 의논해보자며 강 실장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얼핏 보니 휴대폰으로 김선복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 폰으로 함께 의논 중이었다.
“‘이청우’ 인복 대단하네.”
[이청우가 이건 자신의 인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이걸로 ‘이청우’의 악연이 한 번에 해결이 되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도록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분명 스스로를 죽이는 선택을 했던 ‘이청우’도 짊어져야 하는 몫이 있는 거겠지.
기자회견으로 내보낼 내용은 순식간에 논의되었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바로 다음 날 김선복 사장은 바로 기자회견을 준비해주었고 우호적인 기자들과 메인 뉴스의 기자들을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제작진에게 사건의 전말을 공유하고 기자회견에 내보낼 내용을 전달하자 어그로를 끌 수 있겠다며 한영수 피디와 메인 작가인 윤혜린 작가도 큰 그림에 한 손 보태겠다며 나섰다.
초반 방송분 중 편집됐던 청우가 상념에 차 있거나 다른 연습생들이 묘하게 그를 피하는 모습을 짜깁기해 너튜브로 내보낸 것이다.
청우의 이미지 하나 살리자고 모든 연습생을 내팽개칠 수 없는 노릇이니 초반에 오해가 있었고 지금은 모두가 잘 지내고 있다고 강조해서 보여주었다. 전문가의 손길로 편집하니 딱 모두가 윈윈하는 그림으로 그려졌다.
“…하여 저를 음해하는 글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꿈을 이루고자 몇 년이나 노력해온 저를 다시 한번 짓밟으려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굴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청우는 우롱차를 마셔 촉촉해진 목소리로 한껏 열변을 토했다. 눈 밑을 한 번 찌르니 눈이 눈물로 반짝거렸다. 적당히 핏발도 선 것이 직접 거울로 봐도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소문의 중심 하오문의 소속이었다. 상대를 더 나쁜 놈으로 만드는 건 그들의 특기지.
“정말 다 포기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버릴까, 날 믿어 주는 사람은 왜 없을까.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단 한 명만 날 믿어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빈 적도 있습니다. 절 살린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저를 믿어 주시는 분들이 있어 용기를 얻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니라 절 믿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한발 더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청우의 말을 받아 해월이 마저 발언했다.
“저도 한때 청우 형을 믿지 못했습니다. 형은 항상 자신감 없던 저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었고 격려만 해주었는데 시야가 좁았던 제가 순간 형을 의심했습니다. 나중에 형이 떠나고 나서야 진실을 알았고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이제야 이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되어 후련합니다. 그리고 이런 소문을 퍼트리고 형을 괴롭혔던 사람들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해월에 이어 현지원까지 한 몫을 거들었다.
“저도 한때의 시기심으로 청우와 다른 연습생들을 힘들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 잘못을 알고 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청우와 다른 연습생들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남을 음해하고 괴롭히는 데만 열중하는 친구들에게 이제 정신을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현지원이 제 입으로 가해 사실을 인정하자 기자들의 손은 더더욱 바빠졌다. A-NINE이 열심히 사고를 쳐준 덕에 아직까지도 아이돌 인성 논란은 사람들을 벌떼처럼 불러들이는 좋은 먹거리였다.
인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등판한 왕따 가해자. 그러나 가해자는 피해자였고 사실 그는 극단적 시도까지 했다……. 그리고 가해자 중 한 명이 직접 나서서 사과하는 기자회견까지. 기자로서는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완벽한 드라마였다.
그가 직전에 마신 선계의 우롱차는 과연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기자들은 청우를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심지어 미리 섭외하지 않은 기자들도 한껏 안쓰러운 눈으로 청우를 바라보고는 기사를 잘 써주겠다며 나갔다.
중간중간 우는 척, 힘든 척하며 수십 년을 갈고닦은 말빨까지 모두 써먹었더니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김해월과 현지원, 소속사 사람들마저 ‘그렇게 힘들었다니, 불쌍한 녀석’이라는 얼굴로 청우를 바라보았다.
“이건 잘 마무리될 것 같아. 회사에서 명예훼손이랑 허위사실 유포랑 걸릴 만한 거 몽땅 찾아서 고소하기로 결정했어. 섣불리 나서지 못할 거야.”
“잘됐어요, 형. 이제 진짜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어요!”
김해월이 와락 청우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거렸다.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인 ‘이청우’가 아니라서 별로 괴롭진 않았던 청우가 어색하게 김해월의 등을 마주 토닥여줬다. 강 실장의 감동 어린 눈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저기, 걔네 주소 좀 알아?”
그래도 싹은 자르는 것이 좋겠지. 청우는 현지원을 통해 최기현과 한동훈의 집 주소를 받아두었다. 이 몸에 경공을 익혀두지는 않았지만 반나절이면 일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는 익힐 수 있겠지. 일단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두기로 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온갖 포털에 청우의 기사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유일하게 마음 둘 곳은 음악뿐이었는데, 전 소속사와 현 소속사에 걸쳐 괴롭힘을 당했다. 덕분에 실력이 뛰어났지만(?) 다른 연습생의 시기와 질투에 빛을 보지 못하고 움츠러들었고 곡을 빼앗았단 오명과 함께 회사에서 쫓겨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옮긴 회사에서도 괴롭힘당해 모든 걸 포기할 뻔했다가 여러 사람의 도움 끝에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나 지금의 블링돌 ‘이청우’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동정표를 얻으려면 더 자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불쌍한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도 좋지 않으니 적당한 선에서 쳐낼 건 쳐내고 강조할 건 강조하니 모두가 응원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헐, 야 너 투표수 미친 듯이 올라간다.”
“그러게. 나도 내 눈이 잘못된 줄.”
청우의 과거가 조명받으며 기존 영상이 끌어 올려지기 시작했고 어린 애가 트로트를 어떻게 그렇게 잘 부르나 했더니 역시 힘들게 살아서 한(恨)이 넘친다느니, 어쩐지 주변을 과하게 챙기는 것 같더라니 마음이 안 좋다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깁스하고 다니는 영상에는 그렇게 괴롭힘당해 놓고 남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니 착한 건지 호구인 건지 모르겠다, 모판을 나르는 영상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해봐서 그런가 일을 잘한다는 둥 응원과 동정 그리고 간간이 비꼬는 댓글이 넘쳐났다.
“너 여기서 세상 불쌍한 애가 되어 있는데.”
댓글들을 보고 정이원이 질린다는 듯 말했다.
“안쓰러운데 랩하면서 아크로바틱 댄스를 춰도 되는 건가?”
청우가 아리송한 얼굴로 물었다. 불쌍한 사람의 위치는 당분간 이용할 생각이긴 하지만 이거 무대에 영향 주는 거 아닌가?
“상관은 없겠지. 근데 니네 팀 애들은 벌써 기운 빠지겠는데. 이러면 왠지 실력과 상관없이 네가 1등 미리 깔고 가는 것 같잖아.”
정이원의 기우는 사실이었다. 폭풍이 휘몰고 지나간 팀원들의 연습 분위기는 영 엉망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불쌍하게 여겨 주었지만 청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모두 받아가니 〈100점 만점에 100점〉팀은 청우와 아이들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조금씩 의욕을 잃었다. 게다가 윤시오는 어딘가 예민해져 더 화를 많이 내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니까! 더 박자를 당겼다가 놔야지!”
누가 봐도 이 팀의 최고 실력자는 윤시오였기에 청우는 자신을 향해 버럭거리는 윤시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긍했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팀에서,
“시오야, 청우한테 그렇게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아. 한참 힘들었을 텐데. 그리고 그런 거 방송에 나가는 거 너에게도 좋지 않아.”
라고 충고까지 해주자 의욕을 잃은 팀원들에 랩 초보자까지 이끌고 가야 하는 윤시오는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 되었다.
박호민과 케빈은 어차피 연습해봤자 청우가 1등 할 게 뻔하다며 연습에 불성실해졌고 한희원은 이번엔 완전 투명인간이 되겠다며 의기소침해졌다.
주지호는 묵묵히 맡은 파트를 열심히 연습했지만 아직 아크로바틱 댄스를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유일하게 현지원만이 이 사건에 아무런 타격이 없었지만 그는 원래 윤시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번 팀은 완전 망한 거 아닌가.
청우가 터지기 직전의 윤시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루라도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하는 마당에 랩메이킹은 늦고, 팀원들도 의욕을 잃어 제대로 연습에 임하지도 않고 덕분에 윤시오의 부담만 더욱 커졌다.
힙합에 진심인 윤시오에게 적당히 넘어가는 건 없었다. 특히 이번 랩 포지션 평가에서는 그가 최고여야 했다.
아이돌로서 데뷔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애초에 그의 목표는 이번 무대에 레전드를 뽑아내는 것. 그래서 탈아이돌급 래퍼라는 걸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마침내 연습 시간에 청우와 주지호, 그리고 현지원밖에 나오지 않자 윤시오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오늘은 각자 연습하자. 작사는 이번 주까지 써오면 내가 알아서 넣든 빼든 할게. 춤은 너네가 완성해오면 연습하고. 파트는 편곡이랑 작사 끝나면 정하지만 메인 래퍼는 나야. 서브나 보컬은 어차피 분량 별로 없을 테니 너네가 알아서 해.”
차갑게 말한 윤시오가 그대로 돌아서서 연습실을 나갔다. 현지원은 ‘쟤가 갑자기 왜 저래’란 얼굴이었고 주지호는 영 늘지 않는 자신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어린놈들이 근성이 없어. 분위기 개판이네, 아주.”
기자회견을 한 지 일주일이나 지나 사람들의 관심은 소강되었지만 안쓰러운 이미지는 여전했다. 특히나 제작진의 편집 방향 덕에 청우가 추구했던 강인한 카리스마의 음악 천재는 사라지고 상처를 감추기 위해 힘을 내보려고 가슴 깃털을 부풀리는 불쌍한 박새 같은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박새가 하는 랩 따위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을 테니 이번 미션은 망한 것이 확실했다.
어차피 탈락할 순위가 아닌 현지원은 그냥 이번 판은 버리자며 청우를 꼬드겼다. 주지호는 꼬물꼬물 연습을 했지만 가사를 쓰는 건 여전히 매우 어려워했다.
케빈과 한희원, 박호민은 어디서 따로 연습을 하는 건지 뭘 하는 건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어쨌든 이제야 사람들의 관심이 좀 줄었으니 해야 할 일이 있다.
청우는 기왕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오늘 밤 숙소를 조용히 탈출하기로 했다.
중원에서의 법칙은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상대를 지우려면 일가(一家)를 모두 지운다. 살려두었던 어린아이는 자라서 자신을 죽일 칼을 들고 나타나는 법.
틈틈이 이전 생에 무영신투에게서 배웠던 무영신법(無影身法)도 지금 몸으로 모두 익혀두었다. 주머니에 챙겨온 긴 베개로 자신이 자는 척 이불도 잘 꾸며두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청우가 숙소가 있는 스튜디오 건물 옥상에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