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53)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53화(53/101)
제53화
“너네 팀은 이제 연습 잘돼 간다며?”
한동안 서로 연습 삼매경이라 숙소에서 잘 때만 마주쳤던 정이원이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왔다. 각자 연습으로 늦은 밤이나 되어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응, 훨씬 나아졌어. 너네는 어때?”
“우리도 뭐, 잘 되고 있지.”
정이원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쉽게 이야기하지만 정이원은 결국 센터를 미카엘에게 양보했다.
실력으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인기에서 차이가 났기에 미카엘이 센터로 서는 게 더 좋은 선택이라고 정이원도 동의했다.
“근데 너랑 하는 게 좀 더 재밌긴 해.”
청우도 거기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장르를 배우고 익혀나가는 것도 재미있긴 하지만 자신이 말할 때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받아주는 정이원이 그리울 때도 있었다.
이번에도 안무를 짜며 무의식중에 정이원을 기준으로 큰 그림을 그렸다가 팀원들의 수준을 보고 다시 조정한 적도 있었다.
현지원도 나름 춤을 잘 추긴 했지만 정이원만큼 손발을 맞추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여기서 같이 데뷔하면 좋겠다. 야, 열심히 해라. 나도 열심히 할게.”
한밤중이라 감성이 올라왔나, 스스로 말해놓고도 쑥스러워져 청우가 먼저 침대로 쏙 파고들었다.
“킄크, 그래.”
정이원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눈을 감자니 데뷔 후의 미래가 영 그려지질 않았다. 과연 여기서 계속 살아가는 자신은 어떤 모습이 될지. 지금은 그저 하루하루 주어지는 업적 달성과 〈블링돌〉의 미션을 달성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인데.
심란한 마음과 별개로 다음날도 연습의 연속이었다. 랩을 정확한 박자와 발음으로 말하면서 격한 안무를 수행해야 하기에 팀원들 모두 연습에 몰두했다.
안무 자체의 체력 소모가 커서인지 몇 번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윤시오와 한희원은 벌써 나가떨어졌다.
케빈이 지친 기색이 없는 청우를 보고는 untiring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 번만 더 해보고 쉬자.”
청우의 말에 윤시오가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일어섰다. 박호민은 앉아서 뭉그적댔고 한희원은 못 들은 척 돌아누웠다.
현지원이 대신 재촉하려는 데 갑자기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안무 멘토인 유진상과 수석 멘토 태리나가 들어왔다.
“리허설 전에 마지막으로 점검하겠습니다.”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하필 이 타이밍일 줄이야. 힘들어서 늘어져 있던 팀원들이 아차 싶었는지 훨씬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주춤주춤 멤버들이 대형을 이루었다. 멘토들이 물끄러미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청우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수많은 연습생을 봐온 그들로서는 이 모습만 봐도 누가 데뷔할 수 있을지 알 것 같겠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끈기와 인내심이 특히나 부족해 보였다. 나 때에는 저렇게 약하지 않았는데 쯧쯧. 멘토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청우가 혀를 차며 중심에 섰다. 첫 소절은 고음으로 시작하기에 청우의 담당 파트였다.
-날 보러 온 너, 너무 예뻐
눈이 반짝거려 숨이 멎어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야
본 적이 없는 그런 뷰티풀-걸!
청우가 뒤로 한 바퀴 돌며 퇴장하자 뒤에서 앞으로 현지원이 뛰어나왔다. 요즘은 악귀가 완전히 사라졌는지 더 이상 나오지 않아 현지원도 원래의 모습을 모두 되찾았다.
이전부터 암암리에 퍼지던 인성 관련 논란이 청우의 개인 PR 영상 이후로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현지원의 순위가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솔직하게 오해했다 고백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좋았다며 다시 빠르게 표를 회복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본인도 이미지 관리를 위해 가식적으로 굴었던 태도를 벗어던지고 약간 거만한 듯한 자신의 성격을 드러냈지만 청우와 함께 다니는 연습생들은 그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기에 허세처럼 보일 뿐이라 오히려 이미지가 좋아졌다.
현지원이 노래를 부르며 다 같이 군무를 맞추다가 윤시오의 차례가 되었다. 랩에 관해서는 확실히 윤시오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박자와 음을 가지고 놀 듯 랩을 내뱉는 윤시오의 실력은 이번 경합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부분이었다.
순서를 바꾸어 한희원이 랩을 하는 동안 케빈과 박호민이 공중제비를 번갈아 가며 돌았다.
그리고 현지원이 다시 나와 한 손으로 텀블링을 한 후 팔로 거꾸로 서서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 프리즈 자세를 취하자 청우가 다리를 받아주었다. 이어 순서를 바꾸어 현지원이 받쳐준 손을 지지대 삼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뛰어오른 정도가 아니라 날아오른 수준으로 뛴 청우가 공중 닫기를 한 번 한 후 공중회전을 하고 바닥에 사뿐히 한쪽 팔로 버티고 브레이킹 동작을 이어나가자 유진상 멘토가 갑자기 노래를 중지시켰다.
“아니, 잠깐! 진짜 이렇게 진행한다고?”
어리둥절해진 청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리나 멘토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청우야, 너 다리 다 나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안무를 이렇게 짜왔어? 전에 이야기할 때는 이 정도로 뛰거나 돌지 않았잖아?”
그때는 트리플악셀과 기계체조의 신을 보기 전인데요, 라고 속으로 청우가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맨땅에서 도움닫기 없이 트리플악셀 동작과 기계체조의 동작을 접합한 최고 난이도 동작을 진행하겠다고 하면 멘토들이 뭐라고 할 것 같아 따로 의논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렇게 뛰다가 손목으로 체중을 받치면 손목이 나가지. 네가 기계체조 선수야? 그 상태에서 백 텀블링은 왜 하는 거야?”
“지원이도 받쳐주는 사람이 조금만 실수하면 뒤로 넘어가서 다리 부러져. 너 청우를 그렇게 믿고 있었니? 이 팀 동작들이 너무 위험하네. 보는 사람이 조마조마할 정도야.”
어쩐지 멘토들이 이렇게 나올 것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였다. 태리나와 유진상은 연습생들이 무리하게 도전해 부상입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들이 보기에 이 팀의 동작은 하지 말아야 할 것투성이였다.
청우도 나름의 계산과 노력으로 자신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인 현지원과 케빈에게만 고난이도 동작을 시키고 나머지는 자신이 소화하고 있었지만 청우의 실제 능력을 모르는 그들이 보기에 청우의 동작은 만용일 뿐이었다.
“이건 안 돼. 다시 짜와. 게다가 여기가 무슨 올림픽 체조 경기장인 줄 알아? 아이돌 안무가 화려하면 눈길을 끌 수 있고 실력을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무슨 진기명기 나가는 것 같아. 곡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지경이야. 편곡이랑 작사 잘해놓고 이렇게 다 날려버릴 필요가 있나 싶네.”
유진상이 태리나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냉혹한 두 멘토의 평가에 팀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청우는 그 정도인가, 현대인은 이 정도도 어려워한단 말인가, 하며 조금 실망했다.
청우까지 침울해지자 너무 혼냈나 싶었는지 유진상이 조금 달래듯 말했다.
“물론 잘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도 이해하지. 하지만 뭐든 정도가 있는 거고 이번 무대가 너희 꿈의 끝은 아니잖아? 혹시나 실수라도 하면 거의 끝까지 왔는데 포기해야만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자기 몸 관리도 프로의 자세인 거야. 곡도 잘 나왔고 실력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조금만 난이도를 낮춰서 안전하게 하자, 알겠지?”
“…네.”
마지못해 청우가 대답하자 멘토들이 안심하며 곡에 대한 피드백을 이어 나갔다. 편곡과 작사는 이미 한번 평가를 받은 터라 긍정적인 피드백만이 오갔다.
“이 뒤에까지 했으면 멘토 선생님들 기절했겠는데?”
“그 정도인가?”
현지원은 청우가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아무 의견을 내지 않았었다. 청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평범한 사람들과는 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겠지.
그래도 그걸 대중에게 납득시키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나왔을 어깨 짚고 이루어지는 공중부양 급의 공중 삼 회전을 보았다면 입이 바닥까지 벌어졌을 것이다.
멘토들이 나가고 나자 약간 낙심한 청우에게 팀원들이 위로를 건네며 한 마디씩 덧붙였다.
“열심히 연습했지만 사실 멘토님 말이 맞다고 생각해, 청우야.”
“되게 멋있긴 했어요, 형. 근데 진짜 다리 부러질 일인 건 맞아요.”
“사실 너는 이야기를 하면 통 듣지를 않아서 누가 말려주나 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해.”
마지막 말에는 청우도 삐죽 핏대가 솟아올랐지만 사실 연습생들의 수준을 낮게 보고 있던 그는 스스로가 맞다고 밀고 나갈 때가 많긴 했다.
“…내가… 그랬지……. 으득…….”
이를 갈며 인정하는 청우를 보며 다들 후환을 두려워했지만 내심 지나친 동작이 사라져서 다행이라고는 느꼈다.
우여곡절 끝에 현지원을 필두로 연습생들이 조금씩 아크로바틱한 안무를 조금 순화시켜 적당히 눈길을 끌 만하면서도 부상의 위험이 적고 서로 즐길 수 있는 안무로 바꾸었다.
청우는 공중 동작이 많이 사라져 아쉬웠지만 이렇게 해야 멘토들도, 대중도 납득하겠지 싶어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데뷔하고 나면 사람들에게 진짜 공중 동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테다. 청우의 낙심과는 반대로 시간이 점점 흘렀다. 드디어 포지션 평가 발표일이 되었다.
“전보다 사람들 훨씬 많이 온대요.”
한희원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손을 달달 떨고 있었다. 이미 순위가 낮아 다음 경합까지 남아있을 확률이 적다고 생각하곤 있지만 그래도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청률이 많이 올랐다던데.”
현지원이 무심하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지난번 무대는 300명 정도만 초대해서 소규모로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시청률도 올랐고 팬들의 관심도도 올라가서 좀 큰 콘서트장으로 이동하여 무대를 한다고 하였다.
오전에 리허설을 마치면 오후에 관객들이 입장하여 무대를 본 후 현장 투표를 마치고방송과 너튜브에 공개한 후 온라인 투표를 주말까지 진행한 후 그다음 주에 집계가 되는 순이었다.
이번 평가가 끝나면 드디어 30명 정도만 남게 되기에 모두에게 중요한 평가라고 할 수 있었다.
분주하게 의상을 입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이번에는 가벼운 티와 캐주얼한 재킷을 입기에 머리를 단정히 올리고 눈매를 길게 그리는 메이크업을 받았다.
“오, 청우 섹시한데.”
“아, 왔냐.”
아직 옷만 입은 정이원이 뒤에서 나타났다. 준비가 빨리 끝난 청우의 팀이 먼저 메이크업을 받는 중이었기에 정이원이 속한 〈Believer〉팀은 대기하고 있었다.
“형!”
이어 보컬 팀도 준비하러 왔는지 이덕진도 그에게 인사하러 왔다. 이덕진은 헤어까지 마친 상태였다. 감미로운 사랑 노래를 부르는 이덕진은 부드러운 니트에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소위 남친룩이라고 부르는 스타일에 걸맞게 머리도 부드럽게 옆으로 넘기고 멋으로 쓴 것인지 알이 없는 뿔테 안경도 쓰고 있었다.
“너네끼리 너무 친한 거 아니야? 툭하면 붙어있더라?”
그 뒤로는 이덕진과 같은 팀인 최율리가 착장을 마친 상태로 다가왔다.
“얘네가 절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청우가 귀찮다는 얼굴로 말하자 최율리가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어딜 가든 지네 애들만 챙겨서 인사하면서. 누구 하나 떨어지면 엉엉 울겠네.”
질투가 나니 데리고 가야겠다며 이덕진을 질질 끌고 최율리가 사라졌다.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정이원도 헤어 팀에서 불러서 사라지고 혼자 준비가 끝난 청우만 대기 시간 동안 어슬렁거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형, 준비 다 끝나셨어요?”
김해월이었다.
“응. 너도 다 끝났네?”
김해월도 사랑 노래에 맞게 부드러운 니트에 맞게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정석의 남친보다는 귀여운 연하의 느낌을 미는 듯 부슬부슬한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잘 어울린다.”
“헤헷.”
김해월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동안 청우에게 빚이라고 생각해 왔던 일을 털어버려서인지 김해월도 이전에 비해 홀가분하게 밝아진 얼굴이었다.
“너는 데뷔하면 뭐 하고 싶어?”
“앗, 저요?”
뜬금없이 던져진 깊은 주제에 김해월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사실 이전부터 생각했던 주제지만 시간이 남은 김에 그의 홀가분한 얼굴을 보니 물어보고 싶었다.
이쪽 세상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분명 위로 올라가면 어두운 면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주변의 연습생들은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기에 데뷔만 하면 꽃길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다른 세계에서 이미 끝을 본 청우는 그 끝이 밝지만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데뷔는 고작 출발선에 서는 것에 불과했다. 앞으로 닥칠 일들에 이 대책 없이 정의감만 넘치는 아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청우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냥,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제 음악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거면 충분한 것 같아요. 솔직히 데뷔한다고 단박에 성공할 것 같지는 않아서요. 근데 지금보다는 행복할 것 같아요.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구요.”
“그래. 그렇겠네.”
이 이야기를 ‘이청우’도 같이 느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실제로 오랜 세월 연습생 기간을 거쳐 희망고문을 당해왔던 건 자신이 아니었다. 때문에 이들의 희망과 미래를 판단할 수 있는 것도 그가 아니었다.
‘이청우’에게도 이 결말이 행복이었으면 좋겠다.
감상에 젖으려는 찰나 어느새 카메라가 바로 옆에 따라붙었다.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 더 이야기해 보라며 눈을 반짝이는 카메라 감독을 보니 오히려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어설프게 서로를 격려하는 말로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청우 팀의 순서가 앞쪽이었기에 팀원들도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하나둘 대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hey, 일찍 왔네.”
케빈이 손을 들며 들어왔다. 현지원과 주지호도 정해진 듯 청우의 양옆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리허설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다른 팀들도 순서대로 와서 자리에 앉았다.
포지션 평가는 개별 평가였기에 팀 내에서도 서로 견제하는 모습들이 살짝씩 보였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만큼 상위권을 노려야 데뷔가 가능했기에 팀이 좋은 무대를 보이는 것도 중요했지만 개별 평가에 신경을 써야 했다.
청우의 팀은 2번째 순서로 앞 팀이 리허설을 하러 나가자 바로 준비해야 했다.
“이제 〈100점 만점의 100점〉팀 나오세요.”
팀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마주쳤다. 이제 무대로 올라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