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54)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54화(54/101)
제54화
“안녕하세요, 〈100점 만점의 100점〉팀입니다!”
다 같이 올라온 팀원들이 앞으로 보고 씩씩하게 인사했다. 리허설이었기에 심사위원으로는 멘토들과 특별 심사위원으로 초대된 〈루시드 드림〉의 멤버 2명이 와 있었다. 그들은 데뷔 10년 차로 연습생들에게는 하늘같이 높은 대선배이자 여전히 세계를 상대로 K-POP을 알리고 있는 4인조 남자 그룹이었다.
아이돌 선배가 와서 보고 있으려니 더 긴장되는 듯 한희원이 몸을 더 덜덜 떨었고 박호민도 표정이 한껏 경직되어 있었다.
청우는 특별 심사위원보다 눈앞에 보이는 무대 자체에 집중했다. 역시 대기실 화면에서 봤던 대로 무대가 예상보다 컸다. 원래 하던 대로 하면 너무 무대를 좁게 활용하게 될 것 같아 두 걸음씩 멀리 서자고 이야기해 두었는데 적절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음. 배치는 괜찮네. 준비됐으면 시작하세요.”
전주가 흘러나오고 팀원들이 서서 리듬에 맞게 몸을 들썩이며 안무대로 움직였다. 리허설이었지만 격한 안무가 많았기에 모두 인이어 마이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너야, 너만 기다렸단 말이야
1절과 군무 부분은 무난히 잘 넘어갔다. 군무 중 결국 내내 긴장 상태였던 한희원이 버벅거리며 박자를 놓치긴 했지만, 센터에 서 있던 원조 박자 놓치기의 주범 주지호가 놀랍도록 향상된 실력을 보여주자 심사위원의 시선이 다행히 주지호에게로 향했다.
현지원과 케빈이 텀블링을 하며 등장하고 현지원이 그의 파트를 소화하고 백 텀블링 대신 제자리에서 거꾸로 일어서며 프리즈 동작을 했다.
이어 청우가 본래 공중 삼 회전 돌기 동작을 넣었던 파트에 하우스 턴을 한 후 백 텀블링으로 동선을 이동하자 태리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여전히 기술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청우도 이 이상 포기할 수 없없다.
본인은 3층 높이에서도 뛰어서 내려올 수 있는 경공의 실력자이며 허공에서 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열네 바퀴 반을 돌 수도 있다. 그런데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살리지 못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곡이 모두 끝나자 멘토들이 하나둘 마이크를 들었다.
청우가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조마조마하게 태리나의 입을 바라보았다.
“어, 연습할 때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좋네요. 잘 준비한 것 같습니다.”
“잘 보았구요. 후배님들의 실력이 매우 놀랍습니다. 특히나 중간의 공중 동작은 어떻게 몸을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특별 심사위원 〈루시드 드림〉 리더의 심사평이 끝나자 드디어 태리나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전에 보았던 위험한 동작들은 많이 줄어들어서 멘토들의 피드백을 잘 반영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노래가 안무에 묻히지 않도록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게 필요하겠습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심사평이었지만 청우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옆의 팀원들은 아리송한 얼굴이었지만 청우는 그녀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나대고 싶은 마음을 알겠으니 적당히 선만 지켜서 하면 괜찮다는 말이었다.
그럼 조금 더 날아다녀도 되려나.
다른 팀의 리허설이 이어서 진행되고 대기하는 동안 사전에 방청을 신청한 팬들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본 무대만이 남았다.
“라임 잘 살려서 강조하는 거 잊지 마. 발음 항상 정확하게.”
직접 편곡하고 랩 메이킹을 해서 그런지 유독 신경을 많이 쓰는 윤시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부했다.
“그래. 희원이 이번에 박자 놓친 거 알지? 올라가서는 잘하고.”
현지원이 한희원을 보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모니터로 관객석 천 석이 꽉 차는 것을 본 한희원은 더 긴장된 표정이었다.
“너, 너무 떨려요. 본 무대에서도 실수하면 어떡하죠?”
떨려하는 한희원에게 내기를 넣어주며 청우도 관객석을 살펴보았다. 이전에 한 번 보았던 팬들이 여러 명 눈에 띄었다.
모두를 기억하기는 어려웠지만 소주천 후 두뇌의 기능이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청우는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의 얼굴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전에 왔던 팬들이 모두 온 건 아닌 듯했지만 그래도 그가 느끼기에 꽤 많은 팬이 또 그를 보러 와주었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왔으니 더 잘해야지.”
그때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중년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완고한 입매, 그리고 옆에는 이제 막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이 앉아 있었다.
‘이청우’의 가족이었다.
본인의 가족이 아니었기에 청우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당장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청우’에게 듣기로는 거의 2년 전 연락이 끊기다시피 했다고 들었다.
사실 청우가 이 몸으로 들어온 이후 한 번도 전화나 문자조차 오지 않았기에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막연히 데뷔하게 되면 ‘이청우’에게 마지막으로 가족과 인사라도 하고 가라고 할 참이었는데.
‘인사해야겠지?’
하지만 ‘이청우’는 무슨 생각인지 묵묵부답이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청우는 한희원에게 내기를 넣던 중이라는 걸 까먹고 돌리고 있던 기를 빠르게 흡수했다.
“억!”
“아, 미안.”
청우가 내기를 안정시키고 있었기에 마음이 차분해진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햔희원은 그가 손을 꽉 잡은 탓에 오히려 긴장이 가신 것 같다며 청우에게 고맙다며 인사했다.
“표정 왜 그래?”
청우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현지원이 긴장한 눈으로 관객석을 살폈다. 혹시 또 청우가 이상한 것을 본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얼굴이었다.
그때 저승사자들이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지원을 따라다니던 기운들을 흩어놓은 것은 분명했다. 다만 현지원의 악귀에서 느꼈던 기운을 사이비 단체에서도 똑같이 느껴 긴장의 끈을 놓고 있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 때문에 이런 표정인 건 아니었지만.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좀 아는 사람이 보여서.”
‘이 가족은 내 가족이 아니고, 원가족인 이청우는 답도 없고, 나는 가족이 없어 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청우는 조금 난감했지만 일단 지금은 무대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대를 끝내고 만날 시간이 있는 지도 확실하지 않고. 어쩌면 그저 멀리서 얼굴만 보러 온 것일 수도 있겠지.
차분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자니 곧 진행 스태프들이 청우의 팀을 불렀다.
“100점 팀! 나오세요.”
“파이팅 한번 외치고 가자.”
운동회 이후로 재미를 붙인 것인지 주지호가 손을 내밀었다. 파이팅을 외치며 청우도 다른 일들은 모두 접어 가슴 깊숙이 넣어두었다. 지금은 무대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
이설아는 현재 심통이 난 상태였다.
황금 같은 휴일에 자신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건가.
게다가 오늘은 교수님도 없어서 지금은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유 시간인데.
물론 그녀도 〈블링돌〉을 즐겨 보고 있기는 했다. 그래도 이설아는 한 번도 아이돌에게 진심으로 빠져본 적은 없었기에 가볍게 잘생기고 어린애들이 나와서 재롱떠는 것을 티브이로 보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였지 그녀의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잠깐이나마 응원했던 멤버는 저번에 탈락해 버렸고 요즘 뜨고 있는 이청우나 미카엘에는 조금 시선이 가긴 했지만 모처럼 주중에 낀 공휴일의 저녁을 이렇게 보내고 싶진 않았는데.
그녀의 심통 난 얼굴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마청우’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흔들고 있는 친구는 마냥 들뜨고 즐거운 얼굴이었다.
“좋냐.”
“좋아, 짱 좋아. 대박대박.”
정말 기분이 좋은지 삐딱한 그녀의 물음에도 최고의 텐션으로 대답하는 친구였다.
“야, 우리 청우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렇게 다 와서 응원이라도 해줘야지. 아직 연습생이라 해줄 수 있는 것도 적고 얼굴 볼 수 있는 통로도 너무 적단 말야.”
너네 청우만 불쌍하니. 온종일 교수님에게 붙잡혀 끌려다니다가 휴일엔 너에게 끌려 나온 불쌍한 친구를 보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속으로 꾹꾹 눌러 삼킨 그녀는 친구가 억지로 쥐여준 ‘청우 사랑해’ 부채로 부채질을 했다.
“그거 부채질하는 거 아니야! 청우가 잘 보이게 흔들어야 한다고.”
이렇게, 이렇게. 시범을 보이는 걸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화낼 기운조차 사라졌다.
이제 우리 나이는 계란 한 판을 꽉 채웠는데 이 친구는 왜 아직도 철이 안 들었을까. 집에서 티브이 켜놓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리는 것을.
콘서트조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이설아는 이런 분위기가 낯설었다. 게다가 주변에는 친구와 닮은 느낌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각종 팻말을 흔들며 열기를 내고 있어 자신이 더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꺄악, 시작한다! 빨리 흔들어, 빨리.”
“와. 아. 재. 밌. 겠. 다.”
영혼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말투로 그녀가 부채를 흔들었다. 심지어 첫 공연은 친구가 애정하는 이청우의 팀도 아니었다.
“어, 최율리네.”
그래도 티브이에서만 보던 애들이 직접 움직이고 노래하는 걸 보니 좀 재미있기는 하네. 몽실몽실한 니트를 입은 최율리가 〈블링돌〉에서 극찬받은 가창력으로 노래를 시작하자 이설아도 조금씩 흥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 노래는 진짜 잘한다니까. 그래도 우리 청우가 최고지.”
이청우와 친하다는 이유로 이덕진의 노래에 맞게 손도 흔들어주고 박자도 맞추어주던 친구가 중얼거렸다. 실제로 와서 보니 확실히 노래도 잘하고 티브이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실력이 좋게 느껴졌다.
애절하게 부르는 사랑 노래를 듣고 있자니 나쁜 기분이 슬슬 사라지는 것 같다. 학교에서 ‘조교님’, ‘조교님’하고 부르는 시커먼 남학생들과는 달리 말끔하고 보송보송한 꽃미남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새 노래를 즐기게 된 이설아가 노래가 끝나자마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리고 주어진 종이에 표시를 했다.
“되게 아날로그적이네.”
“음, 이번엔 천 명이나 왔으니까.”
아직 〈블링돌〉의 시청률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며 그러니 더 열심히 봐주고 투표해야 한다고 친구가 옆에서 열을 냈다.
“야야야야야, 이제 청우다! 꺄아아악!”
다음 팀이 올라오자 친구가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심지어 미리 자리가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 주변이 다 같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꺄아악! 힘내라 우리 청우! 멋지다!”
“아! 잘생겼다!”
“청우야 사랑해!”
“천마님! 파이팅!”
귀가 다 얼얼하네. 이설아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7명이 순식간에 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전주가 시작되었다.
흠. 얼굴은 역시 잘생기긴 했다. 그런데 이청우가 저렇게 컸었나?
최애까진 아니고 좀 귀엽네, 생각했던 연습생이 탈락한 이후 띄엄띄엄 보다가 다시 집중해서 봐서인지 캐주얼한 재킷을 입고 박력 있는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는 이청우는 크고 늘씬한 데다가 깨끗하고 하얀 얼굴이 특히 눈에 띄었다.
게다가 주변에 같이 춤추는 주지호와 현지원이 더해지니 이 맛에 사람들이 아이돌을 파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헤헤, 확실히 잘생긴 애들이 우르르 나오니까 좋구나.
가벼운 감상으로 무대를 보고 있는데 노래의 첫 소절이 귀를 뚫고 들어왔다.
-그녀 너무 예뻐,
내가 기다려왔던 바로 그 여자야.
본 적이 없는 그런 아름다움이야,
말로 표현해도 알아듣지 못할 거야.
흔한 노래 가사일 뿐인데 왜 이렇게 간지럽게 귀에 와 닿는 건지 이설아가 점점 노래에 빠져들었다. 낮은 중저음으로 울리는 음색은 처음 듣는 울림이 있었다.
티브이로 보거나 너튜브로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왜 자꾸 댓글이 심장을 파고드는 보컬이라고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그녀가 너야, 나는 널 기다려왔던 거야
현지원이 노래를 부르더니 케빈이 옆으로 돌며 무대에 등장했다.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내가 기다려 왔던 너,
뒷모습조차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
그리고 윤시오가 등장했다. 윤시오는 케빈이 뒤로 돌며 퇴장하자 양쪽에서 팔을 잡아 주어 케빈의 위를 뛰어넘어 등장했다.
-나를 바라봐줘, 네 눈동자는 반짝
내게 말 걸어줘, 네 목소리는 활짝
날 알아봐 줘 네 곁에 있는 날
내가 너무나 괴로워, 견딜 수가 없어!
랩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진짜 잘하는구나. 원곡보다 조금 더 경쾌한 리듬으로 편곡한 멜로디에 비트를 가지고 노는 듯이 랩하는 윤시오를 보니 그녀가 한때 귀여워했던 연습생이 왜 금방 퇴장했는지 이해가 갔다.
이런 애들과 경쟁을 했으니 네가 빨리 집에 갔구나. 귀엽긴 했지만 실력은 더 키웠어야겠네.
코러스를 넣는 청우의 깔끔한 고음에 케빈과 현지원의 화려한 안무, 박자를 쪼개서 비트를 넘나드는 윤시오의 랩까지 이제 정말 이들의 데뷔가 코앞인 것이 느껴졌다.
근데 청우 목소리는 왜 이렇게 귓가에서 맴도냐. 돌림노래도 아니고.
아, 이래서 얘가 빠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