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6)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6화(6/101)
제6화
고등학생 이소민은 온갖 짜증을 꾹꾹 눌러가며 부모님의 뒤를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니, 굳이 내려올 걸 왜 힘들게 올라가고 있냐고. 늦잠이나 더 잔다는데 기어코 가자고 하더니.’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등짝 스매싱이 날라올 테니 속으로만 꿍얼거리며 뒤따라가고 있는데 그런 딸의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하는 아버지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여보, 소민아! 내가 아는 비밀 계곡 보여줄게. 사람들 거의 안 다니는 길이야, 이리로 와봐.”
하. 아버지가 길이라고 안내한 곳은 허리까지 우거진 풀 사이로 난 좁다란 길이었다. 사람들이 왜 안 가는지 알만하다며 소민이 신경질적으로 팔로 풀을 홱홱 꺾으며 걸었다.
“이 지지배가. 풀을 다 꺾어놓으면 어떡하니!”
“아, 뭐.”
결국 등을 한 대 맞고서야 반항을 멈춘 소민이 한참을 걷다 발견한 곳은 정말 숨겨진 비경과도 같은 작은 폭포 앞이었다.
“우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감탄사를 들은 듯 아버지가 ‘그치? 멋지지?’ 하며 자신의 코스 선택이 탁월했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닌데.
이소민이 휘적휘적 둘러보다 보니 작은 폭포 밑 물속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 여보. 저기, 사람……!”
어머니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소민이 좀 더 내려가 자세히 살펴보자 줄줄 떨어지는 물 밑에 다 헤진 듯한 옷을 입은 남자가 영화처럼 좌선한 채 앉아 있었다.
‘헐. 좌선을 할 거면 어디, 속리산이나 뭐 큰 산의 큰 폭포 가서 해야 되는 거 아냐? 이런 데서 뭘 하는 거지? 이상한 사람… 이 아니네?’
소민은 감탄하다 못해 소리를 지를 뻔한 입을 간신히 두 손으로 막았다. 좌선하고 앉은 남자의 상의가 반쯤 벗겨져 탄탄한 복근이 물속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지금 보니 물을 맞고 있는 얼굴도 빛이 나는 듯했다.
“어머, 어머, 남사스러워라.”
어머니도 남자의 얼굴을 발견한 듯 자신과 함께 어머, 소리만 연발하며 입을 가리고 있었다. 아니 남사스러우면 눈을 가려야지, 왜 입을 가리냐고요. 그 입 가린 손 좀 내려봐요, 어머니.
두 모녀가 낯선 청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자 아버지가 다급하게 둘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니, 이런 데서 헐벗고 뭐 하는 거야! 이상한 사람이네. 어서 가자!”
아니 잠깐, 저 콧대 날렵한 것 보소. 턱선 따라서 물 떨어지는 거 미쳤네.
소민이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하는 비명을 속으로 외치며 아버지의 손에 끌려갔다. 완전 내 취향인데. 누구지? 무슨 방송 촬영하는 건가?
그리고 이후 이소민은 자신의 도봉산 첫사랑을 TV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
어느덧 시간이 흘러 ‘블링블링 유어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합류할 시간이 되었다.
“청우야, 항상 카메라가 따라다닌다는 걸 잊지 말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해. 그렇다고 너무 말을 아끼면 방송에 얼굴 한 번 내밀기도 어려울 거야. 내가 한PD님께 인사는 드려놨는데 사장님이 뭐라고 하신 건지 표정이 별로 안 좋더라고. 만약에 떨어져도 너무 낙담하지 마. 아직 젊으니까 뭘 해도 잘 될 거야. 등급평가도 너무 긴장하지 말고…….”
청우는 강 실장의 위로 부분은 대충 흘려들었지만, 초반부의 조언은 진지하게 들었다. 자신은 이 세계의 입문자다. 훨씬 경험이 많은 그의 조언은 들을 필요가 있었다.
긴장된 기색 없이 담담해 보이는 청우였지만 계약서에 대해 알고 있는 강 실장은 애가 탔다.
강 실장은 흘끗 덤덤해 보이는 청우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 청우가 예전과는 달라진 점들이 보였다. 원래의 청우였다면 지금 긴장해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손을 떨고 있었을 텐데. 지금의 청우는 태연하게 하품이나 하고 있었다.
괜찮으려나.
한참 늦은 고민을 하던 강 실장은 이것이 아마도 청우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장과 내기를 건 이후로 청우는 회사로는 걸음을 하지 않았다. 가끔 청우에게 배정해 준 연습실을 둘러보았지만 대부분 청우를 만날 수는 없었다. 가끔 음악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왠지 어색한 마음에 차마 들어가 보진 않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도 어려웠다.
그래봤자 2주의 시간이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고서야 이 짧은 기간 동안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금의 청우가 성격이 강한 면도 있다는 것이 그나마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역시 힘든 일을 겪고 나니 사람이 바뀌기는 하는구나.
김선복 사장은 청우에게 별 기대는 없는 것 같지만 청우가 던질지도 모르는 폭탄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청우에게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공존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계약 종료는 피할 수 없을 거다.
“형,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봬요.”
“응? 응, 그래. 행운을 빌어.”
마치 그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마지막 같은 인사를 하는 청우의 말에 심장이 뜨끔했지만, 강 실장은 내색하지 않고 행운만 빌어주었다.
강 실장이 손을 흔들며 멀어지자 청우가 슬렁슬렁 자신의 짐을 가지고 스튜디오를 향해 걸어갔다.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스튜디오에 도착한 청우는 사람들이 이동하는 대로 안내를 따라갔다.
제작진은 참가자들이 촬영 세트에 오자마자 이름이 적힌 조끼를 입히더니 숙소에 짐을 놓고 다시 이곳으로 모이라고 지시했다.
숙소로 우르르 이동하는 무리를 따라서 청우도 자신의 이름이 적힌 방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청우가 첫인사를 위해 인사하며 문을 열 때였다.
띠링-
[이청우의 소원 성취를 위한 두 번째 업적 – 첫 등급평가에서 3등급 이상을 얻어내세요.]“안녕하세요? 와 이 방으로 배정되셨나 봐요. 룸메다, 룸메!”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혼원천의 알림과 같은 방 연습생의 인사를 동시에 받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 예.”
청우도 얼결에 꾸벅 인사했다.
어색하지 않게 꾸벅꾸벅 인사하면서도 머리로는 방금 뜬 업적에 대해 생각했다. 이건 개인적인 내기이나 업적으로 평가된단 말이지? 아마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 정량적으로 확연하게 나타나는 성취를 업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았다.
뭐, 어쨌든 이번 일은 일석이조다. 좋은 등급만 얻어내면 김 사장과의 내기에서도 이기고 두 번째 업적에서도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단전이 없던 때에도 자신만만이었지만 지금은 무려 단전에 내공이 자리 잡은 데다 만음신공을 1성이나 완성한 상태다. 막힌 혈도를 뚫고 육체의 불균형을 조정하느라 내력 소모가 컸지만 그만큼 성과는 있었다.
[이청우가 형편없는 몸이라 죄송하다고 말합니다.]알면 다음에 다시 태어났을 때는 부지런히 운동하고 몸에 좋은 것만 먹어라. 요즘 애들은 영 불량 식품 같은 것만 먹고 운동도 안 하고 손가락으로만 대화한단 말이지.
속으로 ‘이청우’에게 꼰대 같은 잔소리를 하며 주위를 훑던 청우는 아직 앳된 연습생들이 서로 인사를 하며 한편으로는 견제하는 모습을 보곤 한숨을 쉬었다.
하아. 내가 이 나이에 새파란 애들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니 너무 어색해서 닭살이 돋을 것 같았다.
청우는 과거 기행을 벌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했고 나중엔 명성과 무공이 높아져 굳이 함께 무언갈 할 필요가 없었다.
애당초 무인들은 기본적으로 사교성이라는 것이 부족한 사람들이라 자신은 조금도 튀지 않았었는데.
여기는 아이돌이 되기 위한 애들이 모여서인지 모두가 지나치게 밝고 서글서글했다. 너무나 밝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이원입니다. 앞으로 같은 방을 쓰게 되었네요. 나이는 저랑 비슷해 보이는데 몇 살이세요?”
그러고 보니 ‘이청우’가 몇 살인지 모르고 있군.
“…….”
[이청우가 21살이라고 말해줍니다!]“…21살?”
생각보다 많네. 이제 너무 어린애 취급하면 안 되겠다. 중원에서는 21살이면 애가 셋은 되겠다. 청우가 속으로 툴툴거리자 ‘이청우’가 형편없는 몸인데 나이까지 많아 죄송하다며 삐져서 의식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동갑이네, 반가워요! 친군데 말 놔도 될까? 나도 별로 아는 사람이 없거든. 우리 친하게 지내자.”
“으음. 그래.”
자신에 비하면 대단히 사교적인 정이원의 태도에 청우가 어색하게 굴었으나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뒤이어 다른 사람들이 방 안에 들어오자 또 반갑게 인사를 하러 갔다.
과연 아이돌 지망생이라는 거로군.
이어 들어온 연습생들도 일말의 어색함 없이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나이를 정리하고 친근하게 굴었다. 그러면서도 탐색하는 눈빛들도 여전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다들 열심이네, 하고 생각하던 청우는 구석에서 반짝이는 카메라를 발견했다.
아하. 카메라가 이미 찍고 있었군.
그러고 보니 들어간 순간부터 긴장을 절대 놓으면 안 된다고 했었지.
들어오기 전 강 실장의 충고가 떠올랐다. 하지만 인제 와서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아이들과 하하호호 담소를 나누며 섞여들기엔 정신의 나이가 너무 들어버렸다.
아무리 방송이라지만 억지로 밝은 척 행동할 필요는 없지. 거짓된 태도는 언젠가는 반드시 들키게 된다. 어차피 끝까지 맞추지 못한다면 일관된 것이 낫다.
청우는 적당히 눈치를 보며 지정된 침대와 자리에 짐을 풀었다.
그때, 이쪽에 신경 끈 줄 알았던 정이원이 다가왔다.
“청우는 말이 없는 편인가 봐! 짐 푸는 거 도와줄까? 여기 동갑은 우리밖에 없더라고. 짐이 왜 이렇게 없어?”
신나게 재잘거리는 정이원의 모습. 이건 카메라 앞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성격이었다. 싱그럽고 활기찬 젊음에 눈이 부셔 청우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마음속 21살 청춘의 ‘이청우’를 소환했다.
이 노인네는 무리다. 가라, 이청우!
[…….]역시 이 녀석은 생생한 젊음 따위는 가지지 못했군.
청우는 포기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앗, 조명 때문에 눈부셔? 가려줄까? 괜찮으면 우리 같은 침대 쓰자. 내가 2층 써도 되니까. 어때?”
이거 인터넷으로 본 것 같았다. 아마 인싸라고 부르는 인간의 종류였던 것 같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모든 일에 앞장서고.
중원에도 이런 녀석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칼을 맞고 일찍 죽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일찍 죽었네.
필요 이상의 친밀도 공격에 정신이 혼미해진 청우는 머릿속으로 잡다한 생각들을 떠올리며 현실을 도피했다. 그래서 정이원의 모든 대답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도 같은 방에 또래가 있어서 다행이다! 같은 회사 친구 없이 혼자 나왔는데 나이 좀 있어서 걱정했거든. 최소 2주는 같이 지낼 텐데 친하게 지내자! 반갑다, 친구야!”
무슨 소리냐. 진짜 친구가 없이 살았던 이청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요망한 것을 쳐다보듯 보았다. 저 뒤에서 다른 연습생이 ‘이원아, 나 로션 두 개 있으니까 하나 써’라고 외치고 있는데. 그 연습생은 5분 전에 정이원과 처음으로 통성명을 하던 사이였다.
뒷골목 하오문에서 이십 대를 모두 보냈던 청우는 사방의 싱그럽고 밝은 청춘들이 버거워 구석으로 들어갔다. 침대가 구석에 있어 다행이었다.
“연습생 여러분, 짐 다 푸셨으면 중앙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스태프의 안내로 주어진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청우는 역시나 앞장서는 정이원을 따라 강당으로 향했다.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연습생들이 다 모이자 이 많은 연습생이 어디 있었을까 싶게 장관이었다.
이런 프로그램이 한두 개가 아니었을 테고, 이번 프로그램이 특히 좋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라, 진짜 인기가 있거나 데뷔 가능성이 높은 연습생들은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그 와중에도 사람을 거의 백 명 가까이 모으다니. 이쪽 세계에 이렇게 경쟁자가 많으니 ‘이청우’가 데뷔하기 힘들었을 법도 했다.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제작진이 시키는 대로 줄을 맞추고 다 같이 인사하고, 순서를 익히고 있는데 힐끔힐끔 자신을 곁눈질하는 눈초리가 느껴졌다.
몇몇은 악의가 섞인 눈빛, 그리고 몇몇은 호기심, 그리고 간절함 하나?
살기를 띠지 않는다면 악의 정도야 무시할 만하고 호기심은 이해가 가지만 왜 저렇게 간절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거지?
직접 접근하는 것도 아니니 미리 대응할 필요는 없어 보여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필요하다면 스스로 다가와서 말을 걸겠지.
‘이청우’에 얽힌 인연이 분명 매우 많을 텐데 그때마다 자신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나.
‘너는 널 괴롭힌 애들을 다시 만나면 어떻게 해주고 싶어?’
[…….]이청우가 이제 자신의 삶은 자신의 몫이 아니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넌 정말 욕심이 없구나.’
이런 성격이니 힘든 상황에서도 본인이 다 짊어지는 선택을 했던 거겠지. 하지만 그는 달랐다.
청우는 그에게 다가오는 악의는 악의로, 호의는 호의로 갚아줄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 스승님의 가르침이었으니 배움을 실천해볼 생각이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라. 하늘이 돌려주는 것보다 빠르게 돌려주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연습생들이 모인 공간을 향해 밝은 조명이 켜지고 인트로 방송 촬영이 시작되었다.
“연습생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연습생 여러분들은 하나의 꿈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무대 위에 올라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은 원석들을 모아 보석으로 바꾸어주는 곳, 블링블링 유어 아이돌 프로젝트!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두 MC의 멘트가 끝나자 미리 지정된 대로 자리에 서 있던 수많은 연습생이 박수를 쳤다. 벌써 리허설을 몇 번이나 끊어서 진행한 탓에 청우는 감흥 없이 기계적으로 손뼉을 쳤다.
다만 ‘이청우’는 본 촬영이 시작되자 이쪽으로 향하는 수많은 카메라와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는지 다시 귀 끝으로 숨어버렸다. 이런 성격이면서 어떻게 아이돌을 하려고 했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우리 원석들을 보석으로 세공해주시고 많은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실 세공사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인사드립니다!”
MC의 마지막 멘트에 맞게 연습한 대로 자리에서 서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문득 앞쪽에 있던 연습생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민망한 기색도 없이 윙크를 한다.
아무리 비교해 봐도 역시 ‘이청우’가 아이돌이 되는 건 성격상 무리긴 했다.
다른 녀석들을 보라.
눈 마주쳤다고 윙크해, 몇 번이나 반복된 MC 멘트에 지루한 기색 없이 꺅꺅거려. 같은 방 녀석들도 처음 보면서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워하며 말을 나누질 않나. 왜 이청우가 도와달라고 했는지 알겠군.
심사위원 겸 멘토들의 소개가 끝나고 미리 찍어두었던 연습생 자기 소개 영상이 끝나며 자리가 옮겨져 5명씩 다른 세트장으로 들어가 첫인사를 하고 대망의 등급평가가 진행된다.
“자, 그럼 대기실에서 대기하다가 번호 순서대로 5명씩 들어갈게요.”
가장 공정한 경쟁, 인성을 위주로 선정하는 멤버, 아이돌들의 모범이 될만한 그룹을 롤모델로 내세우는 ‘블링블링 유어 아이돌’은 공정을 위해 겉으로는 소속사를 밝히지 않기로 했다.
그에 따라 연습생들은 무작위로 선정된 번호를 받지만 거의 마지막에 합류했을 청우는 93번이고 정이원이 ‘어, 쟤 안 나올지도 모른다더니’라고 아는 척한 대형 기획사 소속 연습생은 99번을 받은 걸 보면 암암리에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는 하고 있는 듯했다.
사장이 메인 피디에게 뭐라고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S&P의 소속이고 김 사장이 자신한 대로 나름 연예계에서 인지도가 있다는 회사이니만큼 당분간은 자신의 지붕이 되어 줄 것이다.
“청우는 거의 끝이네. 나는 15번이라 얼마 안 남았는데.”
아마 기억하기 쉬운 5번대와 0번대, 그리고 1~10번대와 95~99번대는 나름 밀어주는 연습생들일 텐데.
너, 이 녀석 역시 성격이 남다르더니 유망주였군.
청우가 새삼 정이원을 다르게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근골도 좋은 편이고, 이마가 탁 트이고 입꼬리가 위로 솟은 게 관상도 나쁘지 않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오래 사귀어도 뒤통수 맞지는 않을 것 같다.
마음속으로 합격 판정을 내린 청우는 조금 더 정이원에게 마음을 열어주기로 하였다.
“그래도 일찍 하는 게 마음이 편하겠지. 기억되기도 쉽고. 평가 무대로는 뭐 준비했어?”
“그치? 난 춤이 더 자신 있어서. 요새 제일 잘 나가는 총알소년단의 ‘bomb bomb’으로 하려고.”
청우가 좀 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자 정이원이 눈을 빛내며 신나게 ‘bomb bomb’의 안무가 얼마나 어려운 곡이며 자신이 어떤 춤 장르까지 소화할 수 있는지 떠들어댔다. 그러더니 그사이 안면을 익힌 듯, 여기는 지석이 형, 저기는 승우 하며 청우를 끌고 다니며 인사까지 시켜댔다.
얘는 개방에 갔어도 한자리 꿰찼겠군. 계속되는 인맥의 향연에 질려버려 청우는 중간 이후부터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난 간다, 이따 보자!”
정이원이 순서에 따라 다른 무대로 나갔다.
그나마 몇 시간 동안 쌓은 친분이 있으니 잘하는지 지켜봐 줘야겠다.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는데 누군가 정이원이 가기를 기다렸다는 듯 청우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