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63)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63화(63/101)
제63화
“이설이 형, 반 박자 빠르게!”
팀원들이 줄을 맞춰 새로 만든 곡의 안무를 연습했다. 〈청량 상큼〉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고난이도의 어려운 안무보다는 소년미를 보여줄 수 있는 따라 하기 쉬운 안무 위주라 어려운 점이 크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청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청우는 이번 안무를 짜기 위해 청량하고 상큼한 콘셉트로 곡을 뽑은 온갖 아이돌의 뮤직비디오와 안무만 30곡 넘게 뜯어보며 동작을 따냈다.
‘이청우’는 전문적으로 안무를 배웠겠지만 여기 있는 이청우는 천년 전쯤 무공에서 나온 안무나 익히면서 비파 소리에 맞추어 덩실덩실한 춤을 추던 옛날 사람이었다.
그러니 요즘 시대에 맞는 안무와 리듬을 찾아내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
이 과정에는 의외로 현지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김해월은 작곡에 바빴기에 현지원에게 참고할 수 있는 최신 트렌드의 아이돌 노래를 찾아오도록 시켰다. 현지원은 심부름을 하더라도 이청우 옆에 있는 걸 선호했기에 서로에게 좋은 거래였다.
‘옛날에 했던 업보 때문에 이 녀석을 부려먹는 건 왠지 마음이 편하단 말이지.’
쉼 없이 몰아치는 어려운 안무보다 쉬운 안무가 여유를 가지고 매력을 최대로 보여주기에도 적절하다는 것을 깨닫고 최신 트렌드에 맞게 안무를 며칠이나 고민해서 열심히 완성했다. 그리고 이렇게 쉬우니 모두 잘할 거고 아마 큰 어려움을 없을 거라 쉽게 생각했는데.
어설프게 팔다리를 움직이며 안무를 하는 한이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주지호처럼 추궁과혈을 하는 정도로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이제는 청우도 그 정도로 남들에게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저런 안무로 끼어 있으면 사람들 시선이 다 저기로 가는 것 아닐까 싶기까지 했다. 나머지가 다 잘하고 박자가 딱딱 맞으면 분명 못하는 한 사람이 시선을 모두 가져가고 말 것이다.
어떻게 감추지?
“…내가 너무 못해?”
연습이 끝나자 청우의 고민을 눈치챘는지 한이설이 주춤주춤 다가와서 물었다. 한이설도 본인이 춤도 노래도 잘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소속사에서는 어차피 이미지메이킹용이니 대충 남들 하는 것 정도만 따라 하라고 했지만 한이설은 나름 노력하고 있었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여유로운 모습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한이설도 ‘이거 아니면 죽겠다’ 싶을 정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반면 눈앞의 이청우는 지난 며칠 동안 밤을 거의 새다시피 최신 아이돌 영상을 돌려보고 안무를 짰다는 걸 그도 알았다.
사실 한이설은 이청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해 왔는데, 청우는 하나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굴었다. 그리고 그걸 시청자도 좋아했다. 그래서 이전 미션을 선택할 때 이청우를 밀어낸 것도 굳이 찍어서 밀어낸 것이었다.
한이설은 아이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배우로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22살이 되어도 그에게는 여전히 십 대인 배역만 들어왔다.
어릴 때 떠서 그런지 사람들은 다 그를 아역 배우로만 인식했고 그가 로맨스의 리을자라도 시도하려고 하면 어린애한테 이상한 걸 시킨다며 감독을 욕하곤 했다.
게다가 어려 보이는 얼굴 탓에 몰입이 안 된다나. 어쩔 수 없이 몇 년간 원하는 배역을 얻지 못하고 전전하던 그에게 소속사는 이번 프로그램 참여를 권유했다.
“이대로 가면 너는 여전히 〈구남매〉의 아역 배우로 남겨질 거야. 이미지 변신도 할 겸 몇 년 아이돌 활동하면서 인지도 유지하고 인기 얻으면 뮤지컬이나 연극무대도 쉽게 올라갈걸? 이 프로그램에서 가능성을 보고 데뷔하면 좋고, 안 돼도 아이돌로서 자질이 있다면 우리 회사 연습생들이랑 팀 짜줄 테니까 한번 해보자.”
아이돌 어려운 거 없다고, 그냥 적당히 춤추고 노래하면서 귀여운 척하면 사람들이 좋아해 줄 거라고, 네 얼굴인데 뭔들 못하겠냐며 자신을 꼬드기던 사장의 원망스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그냥 팔다리 적당히 움직이며 박자만 맞추면 된다더니 이게 뭐야. 춤도 너무 어렵고 노래도 너무 어려웠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지만 갈수록 팀원들과의 격차가 실감됐고 첫 무대 이후로는 본인도 충격을 받아 좀 더 연습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력은 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가 인기 아역 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대충 성의 없이 프로그램에 나온다고 생각하며 욕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잊혀질지언정 안티는 안 생겼을 텐데, 이제는 어설픈 인지도에 안티만 잔뜩 늘었다. 자신과 한 팀이 되면 응원하는 연습생이 떨어진다며 싫어하는 팬들만 계속 늘어났다.
그 와중에 실력으로 밑 등수에서 치고 올라온 청우가 정말 배알이 꼴렸다. 게다가 분명 초반에 버리는 프로그램이라고 적당히만 하던 연습생들도 이청우를 따라 하나둘 각성하면서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와 연습생의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일부러 실력을 감추고 있다가 방송 타려고 저러는 거야.’
사실 이청우가 잘못 한 건 없었지만 그냥 보일 때마다 심술이 났다. 그래서 저번 팀 미션 때 밀어냈더니 안 좋은 여론만 더 늘었다. 팬덤도 저렇게 단단할 줄이야.
이번에는 같은 팀이 되었으니 마음을 풀고 잘해볼까 했는데 최율리한테 노래로 구박 듣고 있을 때는 별생각 없이 보던 눈빛이 안무가 걸리니 자신을 한심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겠지. 자신에 비하면 실력이 한없이 바닥일 텐데 밤새서 연습하지도 않으니까.
아이돌이고 뭐고 그냥 배우로 남고 싶은 마음이 마지막 자존심이 돼서 여기에 몰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포기할까.
“흠, 형. 연기는 잘한다고 했죠? 새콤한 귤을 씹어 먹는다고 생각하고 연기해봐요.”
청우는 기가 약간 죽은 듯한 한이설을 다루는 방향을 바꿔보기로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녀석을 단시간에 노래도 춤도 잘하게 만들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장점을 살려야지. 게다가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은 음악에 재능도 흥미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굳이 열심히 음악을 가르칠 필요가 있나?
한이설이 뜬금없는 주문에 당황했지만 프로 연기자답게 살짝 눈을 찌푸리며 상큼한 과일을 먹는 얼굴을 연기해냈다.
“첫사랑을 몰래 훔쳐보고 눈이 마주쳐서 부끄러워하는 모습.”
한이설이 고개를 살짝 들더니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눈을 마주쳤다. 그사이 얼굴은 어떻게 빨갛게 만들었지? 어느새 옆에 김해월과 최율리도 와서 구경하고 있었다.
“와, 갑자기 어떻게 그런 표정이 바로 나와요?”
“그러게. 연기 잘한다더니 진짜구나.”
“다음은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는 표정.”
한이설이 눈을 감고 턱을 살짝 들었다. 단지 표정과 얼굴 각도만 살짝 바뀌었을 뿐인데 정말 여기가 야외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청우도 작게 감탄했다. 연기는 남 속여먹을 때랑 자신을 쫓아다니는 소저들한테 눈빛 줄 때만 해봤는데 이 세계의 본격적인 연기란 이런 거구나.
“아무래도 형은 표정 연기에 집중하는 게 낫겠어요. 우리도 가르쳐주고.”
“내가?”
“네. 그건 이 중에서 형밖에 못 해요.”
‘나밖에… 못 해?’
처음에 부담을 느낀 한이설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청우의 설득과 내심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합쳐져 제안을 수락했다.
청우는 한이설이 표정 연구를 시작하자마자 동선을 새로 짜기로 마음먹었다. 가능한 한이설이 움직이는 건 보이지 않도록 구석구석 숨겨두었다가 카메라가 가까이 표정을 잡을 때만 꺼내두기로 한 것이다.
각자 잘하는 영역이 있는 듯 한이설의 연기교실은 생각보다 훨씬 호평이었다. 특히 마지막 점검 때 수석 멘토 태리나가 안무 하면서 팀원들의 표정이 살아나자 훨씬 좋다며 칭찬하고 갔다.
그냥 귀여운 표정을 지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어떤 생각을 하며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얼굴 근육, 몸,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한이설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며 예시를 들었다.
그러면서 그도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듯 노래나 안무도 미묘하게 더 잘 어울리는 방향으로 하게 되었다.
“그건 너무 억지 미소인데요. 하나도 안 귀여워요. 좀 더 입꼬리를 이렇게…….”
이쪽이 역시 적성이었던 건지 한이설의 여유도 돌아왔다. 그동안 구박 들었던 것의 복수인지 최율리의 어색한 표정을 고쳐주며 은근히 면박을 주기도 했다.
곡도, 안무도, 게다가 표정 연기까지 곁들여지자 제법 그럴듯한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나갔다.
“야, 어제 옆 건물 1층 연습실에서 불났대.”
“그래? 별로 연기 안 나던데.”
“이청우가 밤새 연습하다가 발견해서 불 껐대.”
“요새 걔 되게 여기저기 잘 나서더라.”
멀리서 자신을 안줏거리 삼아 수다 떨며 밥을 먹는 다른 연습생들을 흘끗 본 청우가 한숨을 후 내쉬며 평소보다 깨작거리는 손놀림으로 밥을 입에 넣었다.
“요새 잘 못 먹네?”
오랜만에 같이 밥을 먹게 된 정이원이 청우가 밥 먹는 것을 보더니 말했다.
“식판 거의 비었는데?”
현지원이 청우의 식판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야, 얘가 평소에 얼마나 먹는지 알아? 아직 겨우 식판 한 번밖에 안 먹었잖아. 무슨 일이 있냐?”
정이원이 현지원을 오히려 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요즘 한참 청우랑 붙어 다니는 것 같더니 이런 사소한 것도 모르냐는 눈빛이었다. 묘하게 우월해 보이는 눈빛에 현지원이 조금 발끈했지만 더 대꾸하진 않았다.
“피곤한가 보지. 어제도 밤샜다며?”
제 안에 다져진 음악의 방식을 새롭게 바꾸고 정립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음악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방식이나 이전의 습관을 바꾸려 청우는 공을 들이고 있었다.
가장 현대적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청량한 곡을 하게 된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기회였다. 언제까지 천년 전 노래를 붙들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 말고도 청우가 할 일이 많기에 자꾸 밤을 새는 거긴 했다.
이미 내공 수위가 어느 수준을 이룬 만큼 잠은 뭐 일, 이주 자지 않아도 상관없었기에 이번 무대가 끝나고 새로운 업적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가능한 마음을 놓지 않기로 했다.
어제도 역시나 연습실에서 아무 이유 없이 불이 났다. 청우가 빠르게 눈치채고 불을 꺼버려서 아무 일도 없었지만 거의 하루에 한 번씩은 이런 자잘한 사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다 사고 하나가 커지면 바로 저승사자 소환이겠지.
“어제 불 끈 건 진짜야?”
정이원의 물음에 청우가 깨작거리면서도 먹는 것은 멈추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자꾸 뭔가 일어나네. 엊그제는 콘센트 있는 쪽에 물 쏟아져서 큰일 날 뻔했다며?”
엊그제는 그랬지. 한 발만 늦었으면 연습생 하나가 전기가 흐르는 물을 밟을 뻔했다.
갑자기 정수기가 넘어지며 정수기 코드가 끊어지고 그 위로 물이 쏟아졌었다. 물이 많이 들어있던 건 아니라 크게 퍼지진 않았지만 주변을 아무 생각 없이 걷던 연습생이 물을 밟을 뻔했다.
쿵 소리를 듣고 빠르게 달려온 청우가 옷자락을 당기며 발을 피하게 해주어서 정작 그 연습생은 자신이 위험했던 것도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했다.
“이거 불행의 징조 아니냐고, 프로그램에 갑자기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냐고 애들이 좀 불안해하더라고.”
정이원이 소식통답게 연습생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소문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네가 자꾸 사고 나는 곳마다 나타난다고 그것도 좀 수상해하는 애들도 있고. 해결해 주는 건 맞긴 한데 너한테 뭐 재수 없는 거 붙은 게 아니냐고 막 그러던데. 내가 뭐라고 해주긴 했어.”
어때, 내가 좀 이런 사람이지. 정이원이 으스댔다. 정이원의 한결같은 면이 웃기면서도 왠지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래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지.
“그렇지. 너도 조심해.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내가 매번 쫓아갈 수가 없어서.”
청우가 정이원을 향해 주의를 주었다. 이제 무대가 코앞이라 대부분이 각자 팀 연습실에 콕 박혀있는 탓에 팀이 다르면 평소에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요새 숙소도 거의 안 들어간 탓에 바로 침대 옆 칸인 정이원도 거의 일주일 만에 보는 거였다.
게다가 사고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둥에 금이 간다거나 물건이 떨어지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감전, 화재 등 다수가 다칠 수 있는 사고로 번지고 있다. 제작진도 이번 프로그램에 유독 사고가 잦다며 각별히 안전 점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대비한다고 대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청우가 신경을 안 쓸래도 안 쓸 수가 없어 한밤중에 순찰을 돌 때 연습생들이 쓰는 연습실, 그것도 정이원이나 이덕진, 주지호가 있는 쪽은 더 자세히 보곤 했지만 그래도 그가 신도 아니니 모든 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