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66)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66화(66/101)
제66화
리허설이 끝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관객들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점차 채워지는 관객석을 보며 연습생들이 저마다 설레고 긴장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연습생들은 그사이 메이크업을 마쳐 모두 얼굴이 반짝였다. 김해월은 부슬부슬해진 자신의 머리카락이 어색한지 자꾸만 만지작거리다가 헤어디자이너에게 혼이 났다.
청우도 머리를 살짝 띄우기는 했지만 다른 팀원들처럼 염색을 하거나 머리를 태우지 않았기에 준비 시간이 짧았다. 다른 팀원의 준비가 끝마치길 기다리며 채워지는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면 한구석에 잡힌 두 명은 벌써 본 무대만 세 번째 방청이었다. 이번에도 청우를 응원하는 팻말을 가지고 와서 무대 시작도 전에 흔들고 있었다.
거기서 좀 떨어진 왼쪽은 두 번째 방청이었다. 일을 하다가 온 것인지 항상 단정한 차림이라 인상에 남았다.
그들 말고도 청우는 관객석을 비추는 모니터를 보며 익숙한 얼굴들을 확인했다. 기억력이 워낙 좋아 사실 그를 응원하러 왔던 팬들은 전부 기억했다. 게다가 듣기로는 본 무대를 보러 오는 게 굉장히 힘들다던데, 그 확률을 뚫고 직접 응원하러 와준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중원에서도 그를 쫓아다니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경지에 오른 이에 대한 동경에 가까웠다. 그러나 여기서는 동경보다는 애정이 더 크게 느껴졌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연습생이기에 더 큰 애정을 쏟고 응원을 보내는 것이겠지. 어설프면 목숨 날아가기 딱 좋은 중원과 달리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너그럽고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는 이들을 보니 마음이 간질거렸다.
이전에는 오로지 스승님께만 느껴봤던 애정 어린 눈길과 기대였다.
청우가 손목에 찬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이 팔찌도 저곳에 앉은 누군가가 보내준 것일 수도 있겠다. 혹은 여기에 오진 못했지만 어디선가 그를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보내준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낯선 세상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야, 갔다 올게!”
최율리가 무대 순서를 뽑기 위해 대표자로 나갔다. 모두가 입을 모아 세 번째나 네 번째였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지만 제비뽑기가 뭐 사람 마음대로 되는 건가. 청우는 어느 순서든 상관없었다. 물론 순서를 고를 수 있다면 끝 번인 게 좋겠지.
보컬로만 임팩트를 주기엔 정이원이나 미카엘이 속한 팀이 너무 강했다. 특히 미카엘이 속한 〈보이 더 비스트〉팀은 헤어나 스타일링이 과감했다. 정이원의 〈옴므파탈〉팀보다는 더 과감한 느낌이랄까.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저렇게 헐벗고 몸을 꿀렁대는 것보다는 시각적인 효과가 덜할 수밖에 없을 터.
나도 색기 넘치는 거 잘할 수 있는데.
까놓고 말해 색기는 타고난 게 아닌 이상 풋내기가 내기 힘들었다. 청우는 여기서 인생 경험이 가장 많을 뿐 아니라 소저들 마음을 훔치는 데에도 도가 텄다. 동자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 공연의 대부분을 기루에서 했기에 소저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기루의 소저들이 남자다운 내 모습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청우는 툴툴대며 거울을 봤다.
“아, 얼굴이 다르구나.”
그러나 거기엔 한때 여러 소저를 울렸던 위천무가 아니라 아직은 여자와 손 한 번 잡아보지도 못했을 애송이의 얼굴이 있었다.
잡은 손이라곤 엄마와 여동생이 전부였을 풋내기. 이런 얼굴로는 끼를 떨어봤자 오히려 정나미가 떨어질 뿐이었다.
“하하하!”
청우가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일 때 최율리가 위풍당당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 같은 태도와 호탕한 웃음에 팀원들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거렸다.
“형! 믿고 있었어요!”
김해월이 최율리교라도 만들 것 같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하하, 날 찬양해라.”
최율리가 자신 있게 내민 공에는 4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와 이게 되네? 형 진짜 대단해요!”
김해월이 방방 뛰며 감탄했고 리콰이창이 만세를 불렀다. 한이설과 현지원은 김해월처럼 붕붕 뜨지는 않았지만 만족하는 기색이 보였다.
“형, 잘했어요!”
청우도 최율리를 칭찬했다. 최율리는 이상하게 가끔은 청우가 칭찬할 때마다 윗사람에게 칭찬받는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지만 기쁜 마음에 위화감 따위는 잊고 자랑스럽게 콧대를 높였다.
“이 형만 믿으라고 했잖냐. 내가 매번 순서는 기가 막히게 뽑는다니까. 저번에도 우리 팀은 6번이었거든. 그것도 내가 뽑았었지.”
최율리가 자칭 ‘금손 신화’를 자랑하며 거들먹거리자 김해월이 박수 치고 호들갑 떠는 리액션으로 그를 만족시켜 주었다.
연습생 모두가 피하고자 하는 첫 번째 순서는 〈귀여운 개구쟁이〉팀이었다. 힙합곡답지 않게 통통 튀는 멜로디와 귀여운 가사에 맞춰 준비한 그들은 통이 넓은 옷에 복실복실한 조끼 같은 것을 입고 화려한 캡모자를 썼다.
-따라라다단, 뿅~
귀여운 반주와 함께 정이솔이 모자를 살짝 들고 인사를 하며 등장했다.
밝고 통통 튀는 가락에 정이솔이 빠르게 랩을 시작했다. 이제 청우의 룸메이트가 정이솔, 정이원밖에 남지 않았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랩도 잘하고 트로트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 줄 줄 아는 착한 녀석이다. 어느 순간 순위가 오르지 않고 있지만 아마 여기서가 아니라도 데뷔가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청우는 정이솔의 파트를 집중해 들었다.
역시 힙합은 어려워.
시조를 쓰면서 음을 맞추는 것은 많이 해보았지만 힙합은 단순히 시조와는 다른 감성이 많이 필요해서 아직도 청우는 좀 어렵게 느끼고 있었다.
윤시오가 뛰어나오며 빠른 속도로 랩을 읊었다. 저렇게 빨리 말하면서도 발음이 정확한 것이 불경 같은 걸 외우면 엄청 잘했을 것 같다. 소림사에서 탐냈겠는걸.
무대가 끝나자 관객들이 힘차게 환호했다. 예전에는 팬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거나 서로가 원하는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견제하기도 했다고 하던데 요즘은 그보다는 다 같이 응원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세계의 팬 문화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중원에서는 심한 경우 지지자들 사이에서 칼부림이 일어나기도 했다. 청우도 머리를 잡고 싸우는 소저들을 여럿 말려본 경험도 있었기에 이쪽의 팬 문화는 과연 시간이 흐른 만큼 더 성숙해졌구나, 라고 느꼈다.
다음은 〈보이 더 비스트〉팀의 무대였다. 이제 별일이 없을 거라 믿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우는 무대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감만으로 문제를 모두 잡기는 좀 어려웠다. 중원은 인구수가 이렇게 많지 않아 웬만한 문파전이나 일어나거나 북경이나 가야 사람이 많이 모이곤 했는데 여기는 어딜 가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오늘은 특히나 관객이 저번보다도 많아 기감을 관객석에 집중하기는 좀 어려웠다.
-뜨겁게 고동치는 나의 박동
Break it up!
2절 후렴에서 미카엘이 뛰어나오더니 갑자기 무대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하얀 나시티를 슬금슬금 걷어 올렸다.
“오오, 미카엘 봐!”
다른 연습생들이 그런 미카엘의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야, 저런 복근 보여주는 건 반칙이지!”
“하씨, 부러워!”
관객석에서도 비명 소리가 높아졌다. 여성 관객이 절대 다수인지라 환호가 높았다.
하긴 중원에서도 화산지검이 싸우다가 옷이 찢기면 그렇게 소저들이 좋아하더라고.
확실히 미카엘은 1위에 걸맞은 인물이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것을 잘 알고 실행하는 영리함이 있었다. 이 타이밍에 자신이 있을 만한 몸을 내보이다니.
감질나게 슬쩍 옷을 올렸다 내리며 어필하는 통에 관객석의 여자 팬들이 무대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이 세계 소저들이 동영상을 열심히 돌려볼 게 빤히 보이는군.
정이원도 위협을 느꼈는지 입술을 깨물며 분해했다.
“우리도 보여줄 복근 있는데!”
콘셉트가 조금 겹치는 만큼 이쪽보다 더 위협을 느끼는 듯했다.
“야, 덕진아. 옷 더 내리자. 아주 배꼽까지 보여줘! 할 수 있어, 너도 식스팩 있잖아!”
“으악, 형! 왜 이래요! 저리 가요!”
대기실에서 이덕진과 정이원이 촌극을 벌이는 사이 〈보이 더 비스트〉팀의 무대가 높은 환호를 받으며 마무리를 했다. 이전 팀보다 훨씬 높아진 소리에 승패가 이미 보이는 듯했다.
“다음은 〈사랑꾼〉팀입니다!”
대기하고 있던 〈사랑꾼〉팀이 무대로 올라갔다.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와중에 청우는 왠지 모를 불길함이 느껴졌다.
‘뭐지? 사고인가?’
청우가 공연장을 두리번거리는 데 스태프의 부름이 들렸다.
“〈청량 상큼〉팀 준비해 주세요!”
김해월이 두리번거리는 청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형, 우리 대기할 차례에요.”
“어…? 응.”
무대 뒤 대기 장소에서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청우가 불안하게 주변을 살폈다. 넓고 얕게 기감을 퍼트리며 이 불길한 예감의 근원지를 찾으려고 했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분명 뭔가 있는데.’
“다들 마음의 준비 됐지? 이제 곧 우리 차례야. 그동안 우리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모두 보여주고 오자!”
최율리의 선창에 따라 다들 손을 모으고 파이팅을 외쳤다. 팀원들의 눈에 굳은 의지가 보였다. 작곡부터 작사, 안무, 무대 구성까지 모두 직접 해야 했기에 지금까지의 팀 미션 중 가장 어려웠지만 그만큼 무언가를 해낸다는 성취감은 확실했다.
청우도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면서 이쪽 세상의 음악에 대해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게다가 데뷔를 하고 나면 이런 식으로 음악 활동을 하겠구나 하는 것도 미리 체험할 수 있어서 꽤 좋은 경험이었다.
‘근데 마지막 무대가 왜 이렇게 불길하지.’
앞 팀의 반주가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청량 상큼〉팀이 무대로 올라갈 차례였다.
청우는 불길함을 뒤로하고 무대 위로 올라가 관객석을 향해 환히 웃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청량하고!”
“상큼한!”
“청량 상큼 팀입니다!”
꺄아아악-
한이설의 주도하에 연습한 표정 연기가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현지원과 최율리가 질겁했지만 혹독하게 훈련받고 질릴 만큼 익힌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하기 싫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지만 이내 다른 팀원들처럼 양 주먹을 볼 옆에 올려 상큼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한이설은 평소에 무뚝뚝하고 말도 잘 하지 않고 춤을 추는 것도 노래를 하는 것도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연기라고 하면 귀여운 애교든 상큼한 표정이든 엄청난 프로의 자세로 해내곤 했다.
팀원들이 평소에 귀여운 표정을 굳이 짓지 않는 이들이었기에 방청 온 팬들의 기뻐하는 비명이 더욱 커졌다.
괜한 걱정이었나.
사람들의 밝고 즐거운 모습을 보니 청우의 마음도 덩달아 들떴다. 청우는 계속 거슬리던 불길함은 잊고 순식간에 무대에 몰입했다.
무대 조명이 꺼지고 팀원들이 대열을 잡자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따라라라라-
대열에서 한 명씩 튀어 나가 관객을 향해 상큼한 표정을 짓고는 첫 번째 소절에 맞춰 안무 대형으로 복귀했다.
수없이 안무를 맞춰본 덕분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매끄럽게 안무와 노래가 이어졌다.
김해월의 맑은 미성이 무대에 울려 퍼졌다. 부드러우면서도 깨끗한 목소리가 곡의 분위기에 잘 어울렸기에 당당하게 첫 파트를 차지했다. 이어지는 한이설과 현지원의 파트에서는 둘 다 리허설보다 합이 잘 맞아 한이설이 노래를 ‘잘해 보이는’ 효과까지 나타났다.
시작이 좋은데? 만족한 청우가 자신의 파트에서 신나게 앞으로 나갔다.
기분이 좋아지니 노래도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팬들이 청우의 강점으로 뽑는 일명 기깔나게 음을 살리는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곡의 분위기에 맞게 음에 미묘한 변화를 주며 들을수록 곡에 몰입하게 되고 청우의 감정이 잘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동화하게 된다는 청우의 목소리에 무대도 금세 흥겨웠다.
앞에서 부른 청우가 노래를 살리니 보컬을 최대 무기로 밀고 있는 최율리도 뒤처질 수 없다는 듯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기 시작했다. 서로 강점이 다르긴 하지만 이청우보다 최율리가 노래 못하던데, 라는 말이 나오면 그는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고 말 것이다.
‘난 쟤보다 3년을 더 노래했다고!’
‘어딜 태어난 지 삼십 년도 안 된 애송이가!’
연습생 중에서도 손꼽히는 두 보컬이 경쟁이라도 하듯 힘주며 노래하자 효과는 엄청났다. 경쟁으로 인해 한계까지 높아진 두 사람의 실력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그들의 노래가 더 깊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무대에 내리꽂히는 뜨거운 조명, 심장까지 둥둥 울리는 음악 소리, 사람들의 환호성, 이쪽으로 쏟아지는 여러 감정이 섞인 눈빛들, 즐거움이 넘치는 분위기.
청우는 자신에게 쏟아져 내리는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전생에서도 음악을 꽤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와는 달랐다. 어쩌면 이쪽이 적성이었는지도. 홀로 음악에 정진하고 가르침을 받고 주는 게 아니라 이 무대가 더 즐겁다 못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청우’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만일 이 세계에 태어났거나 살았더라면 어쩐지 같은 길을 걷게 되었을지도.
지금까지의 무대도 다 좋았다. 그러나 이 세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팬들의 애정이란 걸 받게 되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무대와 하나가 된 듯 동화되어 무대를 즐기고 있던 그를 싸늘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여기서 느껴지는데.”
한이설에게 배운 표정을 한껏 활용하며 무대를 누비던 청우의 눈에 관객석 한가운데의 계단을 타고 쭉 내려오는 검은 옷의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
빛 한점 반사되지 않아 마치 그곳에만 구멍이 뚫린 듯이 검은 옷은 마치 이 세상의 옷감이 아닌 것 같았고 복식도 어느 시대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한 스타일이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장포 같은 것을 휘날리며 두 남자는 관객석을 둘러보고 있었다. 계단 아래로 뚜벅뚜벅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무대의 열기로 가득 차 따뜻하기만 하던 공기가 차갑게 식어 내리는 느낌이었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