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7)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7화(7/101)
제7화
“저, 저기….”
누군가가 옆에 다가와서 쭈뼛쭈뼛거렸다.
이건… 간절함 쪽이군.
“저요?”
“앗, 저기, 청우 형. 저, 저번에는 제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누군지 모르는 청우가 저요, 라고 말한 것이 화가 나서 자신을 모른 척한다고 생각한 건지 앞에 온 소년이 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번에?”
“저, 저는 진짜로 형 믿었거든요. 형을 의심해서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고 저도 상황을 확인하려고 그랬던 거라. 근데 저 때문에 괜히 더 피해를 입으셨다고…….”
[3년 전쯤 소속사를 옮길 때 곡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는데 그때 유출된 곡의 주인이라고 이청우가 말합니다. 괴로운 기억이라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하네요.]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기억에서 묻어두면 그만일까? ‘이청우’는 괴로워했지만 청우는 생각이 달랐다.
“내가 훔치지 않은 것은 어떻게 알았어?”
“그 일 이후로 형이 소속사를 옮기셨잖아요. 저희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서요. 근데 동훈이 형이 하도 강하게 말씀하시니까, 무섭기도 하고 휩쓸려서….”
“그렇구나. 네 사정은 잘 알겠어. 근데 나한테 할 말은 그게 다야?”
상냥하지만 선을 긋는 태도가 해월의 목소리가 더더욱 작아지기 시작했다.
“제, 제가 미우시죠. 그때 나서서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아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사실은 바로 말하고 싶었는데 연락이 안 돼서…. 그, 그래도 제가 그때 회사에서는 형 아니라고 말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그 사과를 전달하고 싶어서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구나.
“그러면 그쪽 회사에서는 나에 대한 오해가 다 풀렸어?”
“네. 제가 열심히 이야기했어요.”
처음에는 숫기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밀고 나가는 성격이 보였다. 청우는 이런 종류의 인간은 싫어하지 않았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
예전에 소림사에 저런 성격의 앳된 무승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으면서 어째서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느냐며 쫓아다녔었다.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알려주었더니 도를 깨달았다며 당당한 십팔나한의 한 명이 되어서 나타났다.
감사 인사를 하길래 상으로 ‘불가지곡’을 만들어 주었다. 처음엔 당황하다가 가사의 참뜻을 깨달았다며 ‘불가지곡’ 전파자가 되었더랬다. 그리고 소림 장문인이 화가 나서 하오문에 쳐들어 왔었지.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던 청우는 마음이 누그러져 주먹을 쥐고 자신이 누명을 해결했다며 눈을 부릅뜨는 해월의 사과를 받아주기로 했다.
“그래. 사과를 받아들일게. 너도 나에 관해 오해할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이제는 다 잊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고마워요, 형. 앞으로는 함부로 오해 안 할게요. 전 소속사에서 친하진 않았어도 여러모로 배려해 주신 거 알아요. 여기서 다시 잘 지내봐요. 제가 더 노력할게요.”
“그래, 그래. 앞으로는 인사하고 잘 지내보자. 근데 나한테 누명 씌웠던 애들이 누구누구라고?”
용서받을 사람은 용서해 주겠지만 악의는 악의로 갚아줄 테다.
순순히 이름을 말해주는 해월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을 새겨들으며 청우는 해월과 새로이 친분을 쌓았다. 더불어 그 녀석들이 다른 연습생들에게 저질렀다는 악행도 잘 기억해 두었다. 분명 언젠가 써먹을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있자니 해월이 자기 순서가 되었다며 청우에게 파이팅!을 외쳐주고는 경연 무대로 사라졌다.
청우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제 절반 정도의 연습생들이 무대로 나간 듯했다. 남은 인원은 어중이떠중이 반에 유력한 인원 몇 명정도겠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 운기조식이라도 할까 하고 구석진 자리를 찾으려고 움직이는데 누군가 어깨를 퍽 하고 치고 지나갔다.
“야, 조심해라.”
자기가 와서 부딪혀놓고서는 남 탓을? 기척이 느껴질 때 내기로 어깨를 강화시켜 놓아서 다행이다. 센 척하며 자신을 째려보고 지나간 녀석이 뒤에서 남몰래 아파하며 자기 어깨를 짚는 것을 보고 청우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청우가 다른 소속사인데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 연습생이라고 합니다.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그러니까 적이라는 소리군. 한쪽 어깨에 멍들게 하는 것으로 봐주려 했던 청우가 ‘이청우’의 경고에 방금 부딪혔던 녀석의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
악의는 악의로 갚아줘야지.
***
“90번부터 94번까지 연습생 나와주세요.”
긴 기다림이었다. 드디어 90번대에 접어들어 청우가 나갈 순서가 되었다.
나가던 중 몇 안 되는 남은 연습생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 인트로 촬영 때 청우의 앞쪽에 앉아있던 연습생이었다.
동양적인 외모인데 눈은 파랗고 머리는 염색한 노란빛이 돈다. 떡 벌어진 어깨와 청우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키도 눈에 띄었다.
처음 보았을 청우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어색함도 없이 윙크로 인사를 한다.
여기에서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숨 막히는 인싸들의 향연에 청우가 몸서리를 쳤다.
무대로 올라오니 등급 표시인지 주먹만 한 보석 목걸이를 맨 연습생들이 한쪽 관객석에 주르륵 앉아있었다.
‘금강석, 홍옥, 녹옥, 청옥, 진주, 호박?’
당당하게 진주를 달고 있는 정이원과 청옥의 해월이 각각 작게 손을 흔들었다.
금강석을 달고 있는 몇몇 연습생들도 눈에 띄었다.
금강석이 제일 비싸고 튼튼하니까 제일 좋은 등급인가?
“90번 연습생부터 자기소개 해주세요.”
“브라보, 멋지다, 도연아! 이번 ‘블링블링 유어 아이돌’을 접수하러 온 90번 이도연입니다.”
미남은 아니지만 지적이고 멀끔하게 생긴 90번 연습생이 자화자찬을 했다.
“안녕하세요, 91번 최승훈입니다. 승훈시쿠나레, 승훈시쿠나레, 모에모에 큥! 모두 최승훈에게 승며드세요!”
91번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운다!
“블링블링, 달링달링, 안녕하세요, 당신의 블링블링한 달링이 될 92번 선가람입니다!”
92번 연습생이 팔을 둥글게 만들더니 턱에 양손을 펼쳐 갖다 댄다.
그리고 청우의 차례가 되었다.
어쩌지?
[뭔가 멋진 걸 떠올려보라고 이청우가 말합니다.]그렇게 잘 알면 네가 하지 그러냐!
청우는 당황하다 가장 최근에 본 가장 멋진 인사를 떠올렸다.
먼저 옷자락을 뒤로 한 번 턴 후 오른발에 내공을 실어 바닥을 내리찍고.
쿵!
스튜디오가 흔들리는 느낌에 모인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왼손은 하늘의 태양의 기운을, 오른손에는 달의 기운을 담아 조화결을 따라 손을 움직이다 포권지례로 눈 높이까지 올리며 고개를 숙인다.
“천세, 천세, 천천세. 93번 이청우, 세공사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마도일세, 천하앙복(天魔仰伏!)”
순간 스튜디오에 정적이 흘렀다.
청우는 마교도가 아닌 하오문도지만 전생 마지막 즈음에 마교 소교주가 위천무의 노래에 빠져 자주 공연을 갔다 보니 자연스레 마교의 인사가 떠올랐을 뿐이다.
절도도 있고 나름 동작이 화려해서 괜찮을 것 같았는데 왜 다들 입만 벌리고 있지?
청우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정신을 차린 듯 눈치를 받은 94번이 어버버하며 인사를 시작했다.
95번까지 자기소개를 마치자 바로 준비해온 등급평가 무대로 순서가 이어졌다.
“우리 ‘블링블링 유어 아이돌’, 가칭 블링돌에서는 연습생들이 앞으로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노력할 것인지에 대해 평가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세공될 보석이라는 뜻에서 등급은 보석의 가치로 나뉩니다.
단, 물질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기에 순서는 우리의 생각과 반대로 낮은 등급부터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진주, 호박 순입니다. 그러면 이번 연습생분들도 준비해 온 무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호박이 가장 높은 등급이고 다이아가 가장 낮은 등급이란 소리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남들이 욕할 요소를 넣어주면 입과 입에 오르내리기 쉽다. 케이블의 아류작이나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PD가 실력은 있어 보였다.
심사위원 겸 선생이 될 사람들은 5명이었다. 가창, 댄스, 랩, 퍼포먼스? 나머지 한 명은 뭘 심사하는 거지? 가운데 한 명만 명패가 물음표가 쓰인 종이로 가려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수석 멘토 태리나입니다. 아이돌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창, 댄스, 랩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재능과 끼가 무대에서 얼마나 발휘되는가도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돌로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수석 멘토로서 모든 파트를 두루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준비한 무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와, 태리나다.
주변의 연습생들이 웅성거렸다. 10대의 나이에 이미 솔로 댄스 가수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으며 국내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렸던 그녀이기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전국에 거의 없을 정도였다. 아이돌 가수로서도 목표로 삼을 만큼 대단한 가수였기에 다들 상기된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존경하는 사람의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며 떨려 하는 연습생들을 청우만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청우는 이 세계에 대해 모르기에 멘토들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했지만, 그들에게 일가를 이룬 자에게서만 느껴지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태리나에게서는 날카로운 눈빛과 위엄이 느껴졌다.
“그러면 90번 이도연 연습생부터 무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명씩 준비된 무대를 펼치며 청우도 무대 옆으로 빠졌다. 잠시 정이원과 눈이 마주쳤는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잘했다는 뜻인가?
김선복 사장은 지금까지의 ‘이청우’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좋은 등급을 받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청우도 그렇게는 생각했지만 직접 다른 연습생들의 수준을 보니 생각보다 수준이 높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원래의 ‘이청우’도 끝에서 루비나 잘하면 에메랄드 등급까지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아류작 평가를 듣는 프로그램답게 연습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 많았나 보다.
지금도 춤을 추고 있는 92번은 박자를 놓쳤고 고음은 갈라졌으며 긴장한 탓인지 자신감이 없어 무대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92번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93번의 무대도 ‘이청우’ 정도의 느낌이다.
개중 그래도 90번이 가장 낫군. 아마 이 팀 구성은 90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버리는 패 모음이었을 것이다. 하나같이 ‘이청우’ 수준의 연습생들이 모여 있었다.
자신의 번호가 불리자 청우가 몸의 관절을 풀며 단전을 통해 내력을 전신의 혈도로 퍼트렸다.
현대의 애송이들에게 중원의 맛을 보여줄 때가 왔다.
***
보컬 심사위원이자 멘토로 나온 이민성은 이미 무대에 대한 감흥이 식은 상태였다.
벌써 90명분이나 본 데다 앞쪽은 그래도 실력파가 좀 있었는데 뒤로 오니 연습이 많이 필요한 말 그대로 ‘연습생’들 뿐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몇 명을 모아 묶으면 아이돌 한 팀 정도는 만들 수 있겠네.
이번 팀은 개중 실력이 정말 최하였다. 감흥 없이 다이아, 다이아, 하고 적어 내려가던 그의 손가락이 93번이 부른 첫 소절을 듣고 멈추어 섰다.
-예이예에에!
두둥.
인트로 한 소절이라 제대로 된 가사도 없는 허밍이었는데 정확한 음정으로 힘을 빼고 올리는 고음에 갑자기 귀가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이청우’?
이민성이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드는 순간 옆에서 낙서만 하고 있던 퍼포먼스 멘토 유진상도 고개를 확 하고 들었다.
허밍과 동시에 이루어진 동작에 흠칫 놀란 두 멘토가 서로 눈을 마주치다 이청우의 안무가 시작되어 다시 눈을 돌렸다.
5년 전 퍼포먼스 대상을 받은 5인조 아이돌 보이그룹의 곡이었다. 현대 무용 및 전통 무용을 가미하여 난이도가 높은 안무 동작이 많아 연습생들이 커버하기 어려운 곡으로 유명한데.
지금 신인 연습생이 이걸 혼자?
익숙한 전주가 나오자마자 감히 주제를 모르고 이 곡을 고른 연습생이 있냐고 한 소리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수석 멘토 태리나도 동작이 시작되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첫 소절에서 고음을 기가 막히게 올리긴 했지만 겨우 한 소절일 뿐이다. 어차피 이 곡은 후렴구에서는 가사를 다 덜어내고 멜로디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 곡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악명 높은 고난이도의 춤이었다. 겉보기에 멋있고 화려한 동작이 가득하여 퍼포먼스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무용을 전공한 멤버에 맞춘 고난이도의 동작을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태리나가 가르쳤던 소속사 연습생들도 춤 좀 춘다는 말을 들으면 이 곡을 연습하고 싶다고 설쳐댔다. 막상 연습을 시작하면 자신의 본연의 실력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기가 죽어 다른 곡으로 바꾸긴 했지만.
그런 모습을 매번 보아왔던 태리나는 또 자신의 실력을 모르는 멍청이가 어려운 춤을 외워서 추기만 하면 잘하는 줄 알고 이 곡을 들고 나왔다고 생각했다. 안 봐도 뻔한 무대에 어떻게 한 소리를 해줄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무대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인트로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자 그녀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