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71)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71화(71/101)
제71화
청우가 기감을 풀어 문 너머를 감지하니 안에 있는 사람은 테이션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정이원은 팀원이 될 것인가, 경쟁자가 될 것인가.
“같은 팀이 되면 좋겠네. 내가 문 연다?”
이전 같았으면 자잘한 TMI도 나누며 살갑게 굴었을 정이원인데 전과 같지 않은 태도에 역시 거리감이 느껴졌다. 어허, 고독한 괴짜 악사이자 하오문의 독야청청이 이 무슨 나약한 태도야. 청우는 애써 잡생각을 떨치며 정이원의 뒤로 따라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들어가며 인사하자 예상대로 앞쪽에 테이션이 앉아 있었다. 미리 와있었던 미카엘과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청우도 한쪽 벽에 섰다. 5명이 정원인데 이제 3명이 찼다. 앞으로 몇 명이나 더 오게 되려나.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던 김해월이 안쪽을 보고는 아는 얼굴들에 눈을 반짝였다. 이어 한이설, 이석진, 그리고 윤시오에 이덕진까지 들어왔다.
총 8명.
이제 모든 연습생의 곡 선택이 끝났는지 더 이상 들어오는 사람이 없자 테이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세계를 상대로 하는 아이돌답게 앞에 서서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를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확실히 어설픈 연습생들과는 다르다. 공간을 장악하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와, 이 곡에 사람이 많이 몰렸네요. 저도 ‘wild’를 듣고 노래 잘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번 미션에서는 한 팀당 정원이 5명이라 남은 3명은 오디션을 통해 탈락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오디션에 도전하실 건가요?”
저건 제작진이 적어준 대본인 것 같다. 여전히 아우라는 느껴졌지만 어딘가 이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고민이나 걸리는 상황이라도 있는지 온통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뭐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만.
“네, 도전하겠습니다!”
“어어, 네!”
모인 연습생들은 오디션을 보겠다며 대답했다. 눈들을 보니 다들 이 곡에서 무언가를 본 모양들이었다. 얼결에 들어온 듯한 한이설은 도로 나갈까 고민하는 얼굴이었지만 옆에 선 미카엘이 박력 있게 대답하자 휘말려 같이 대답을 하고 말았다.
“후, 오디션은 곡 한 번 듣고 후렴 따라 부르는 보컬 테스트. 그리고 영상 보고 안무를 얼마나 맛깔나게 그리고 빠르게 따는지 보는 댄스 테스트와 ‘wild’ 후렴 한번 듣고 따라 부르는 보컬 테스트로 나눠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러면 안무 따는 시간이 더 걸릴 테니 댄스 테스트부터 해봅시다.”
테이션이 다짜고짜 연습실에 놓인 스탠드 모니터를 이용해 영상을 하나 틀었다. 광고를 위해 들어온 녀석인지 대본을 읽는 느낌으로 ‘선 없이 모니터가 연결되니 매우 편하네요’ 같은 말도 잊지 않고 내뱉었다. 어쩐지 로봇같이 구는데 진짜 그 유명한 ‘솔져스’가 맞나?
영상은 예상대로 ‘솔져스’의 무대였다. 다만 몇 년 전의 영상인지 영상 속 얼굴은 지금보다 앳되어 보였고 열정에 넘쳐 있었다.
“우리 그룹 곡 중에 ‘wild’와 가장 분위기가 비슷한 곡을 골랐습니다. 몇 년 전의 노래라 잘 모르실 수도 있어요. 제가 안무 시범 천천히 두 번 보여줄 테니 숙지하시고 도중에 헷갈리면 물어보세요. 이 두 번 끝나자마자 어느 정도로 소화하셨는지 바로 테스트할 겁니다.”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룹이니 연습생 대부분이 한 번 정도는 월말평가로 ‘솔저스’의 곡을 불러보거나 춰봤다. 그러나 지금 틀어진 영상 속 곡은 유명한 건 아닌지 다른 연습생들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게다가 쉬운 테스트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아이돌들의 초창기 곡이 그러하듯 의욕을 가득 담은 고난이도의 안무가 눈에 띄었다.
그 사실을 아는 듯 테이션의 눈은 ‘어느 수준인지 한 번 볼까’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쪽을 무시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자존감이 높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성격으로 보였다. 관상을 보니 아무것도 없이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 같진 않다. 그만큼 실력도 있다는 거겠지. 연습생들을 훑는 눈에서 기준 미달이면 가차 없이 내칠 게 보였다.
‘관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최소한 실력으로 인정받지 않으면 말도 못 붙여보겠는걸.’
다들 진지하게 안무를 따기 위해 영상을 시청했다. 하지만 옆에서 하, 하고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이설과 윤시오가 약간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5명의 남자 가수들이 일제히 손을 모아 그림을 만들며 춤을 추는데 지독하게 연습한 듯한 사람처럼 박자가 맞았다. 팔뿐만이 아니라 빠르게 이어지는 스텝조차 동시에 뛰고 동시에 착지하는 수준이었다.
진짜 가수는 최소한 이 정도 실력이란 말이지. 영상에 앳된 얼굴과 구성을 보며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같은데도 지금 연습생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실력이었다. 엄청난 노력의 흔적이 엿보였다. 데뷔 초에는 인기가 없어 어려움을 겪다가 이후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들었다.
아이돌 가수들이 다들 이 수준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이 수준이 되지 않으면 눈에 띄기는 어렵다는 뜻이겠지.
아이돌이 되기만 하면 큰 산을 넘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 세계에서 가수로 성공하는 게 제법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청우는 오히려 투지가 들끓었다. 내 중원에서 이름 떨친 실력을 한번 보여주지.
보통 사람 이상의 감각이 가진 청우가 빠르게 동작을 머릿속으로 습득해나갔다. 이제는 심법도 4성을 달성했기에 이 정도 안무를 따서 단지 따라만 하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자 다들 잘 봤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여주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이 가장 데뷔 가능성이 높은 연습생들이라고 들었습니다. 기대해보겠습니다.”
청우가 주위를 살피니 몇 명은 어느 정도 안무를 딴 듯 손가락을 움찔거리며 동작의 순서를 외우고 있었다. 미카엘이나 정이원은 꽤 많이 안무를 익힌 것 같고. 반면 한이설은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을 보니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노래로 이동할 생각인 것 같았다. 이덕진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안무 익히는 속도가 느린 편이니 좀 어렵겠지. 의외는 윤시오였는데 댄스 실력이 좋지는 않은 편인데 눈빛이 평온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보는 듯한? 기분 탓인가.
청우는 이미 한 번 보았을 때 동작을 모두 외웠지만 너무 튀지 않기 위해 차분하게 영상을 다시 보며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맞게 소화하기 위해 출 안무를 정리했다. 일반인이 한 번 보고 이 많은 동작을 다 따라 하기는 어렵겠지.
“저는 다 외웠습니다!”
…라고 방심하기가 무섭게 미카엘이 옆에서 손을 들었다. 두 번째 안무 영상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두 번 만에 다 외웠다고? 다 보지도 않았는데?”
테이션이 의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되물었다.
사실 요즘 약간 공백기에 슬럼프에 빠져있던 그는 회사에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라고 내보낸 이 일정에 조금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이슈가 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가 나오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은 프로그램이었다. 공중파가 아니었다면 굳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분 전환을 한다고 한들 그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창 인지도가 최고인 지금 새파란 연습생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걸 보며 평가하는 것은 그의 눈에 차지 않는 일이었다.
첫 회 정도만 미리 보고 왔는데 연습생들의 수준도 그리 높아 보이진 않았다.
이 일정을 제대로 소화해준다면 개인 휴가를 길게 준다고 했던 소속사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일부러 콘서트에서만 딱 한 번 췄던, 그들 곡 중 안무 난이도가 극상인 곡을 가져왔다. 그는 아이돌로서 자부심이 있었고 후배들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랐다. 그러니 기왕 나온 김에 철저히 교육시켜 진짜 아이돌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미리 알려줄까 싶었는데.
그런데 우리 소속사의 연습생도 아니면서 이 안무를 두 번 만에 다 딸 수 있는 연습생이 있단 말이지?
그는 실력이 좋은 후배는 싫어하지 않았다. 저 서구적인 외모의 잘생긴 예비 후배는 그의 눈을 만족시킬 수 있으려나.
미카엘을 보는 테이션의 눈에 기대가 깃들자 옆에서 나설 타이밍을 놓친 청우는 아쉬워서 발만 동동 굴렀다. 설마 누군가 저보다 먼저 안무를 다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청우는 여유롭게 두 번째 영상이 끝나면 손을 들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얄미워 미카엘을 쳐다보니 자신감이 가득한 눈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1위를 하려면 어차피 저 녀석을 넘어야 한다. 얼마나 하는지 평가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청우도 미카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럼 어디 실력 한 번 봅시다.”
기대 반 의심 반인 테이션이 영상을 끄고 음원을 준비했다.
미카엘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연습실 중앙으로 나갔다. 다들 얼마나 하는지 지켜보자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긴장은 되지 않았다. 조금 틀리면 어떤가. 그는 이 도전도 충분히 즐길 마음이 있었다.
게다가 옆에는 항상 그를 긴장하게 만드는 라이벌들도 있었다. 미카엘은 옆 사람들을 보며 이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올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고무되는 느낌이었다.
K-pop을 처음 접하고 그 세계에 발을 담그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그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연예기획사는 그가 지원하는 족족 두 팔 벌려 환영했고 가장 좋은 조건으로 가장 큰 기획사에 들어간 후 연습생일 때부터 팬이 붙었다.
운동하는 것에 비하면 춤을 연습하거나 노래를 하는 것은 쉬운 편이었다. 몇 년씩 연습했다는 연습생들이 오히려 놀랄 정도로 그의 실력은 빠르게 늘어갔고 서구적인 외모에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 아버지를 닮은 큰 키까지 더해지자 손쉽게 데뷔조에까지 들었다.
모두가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기획사에서는 다른 외부적인 조건만 갖추어지면 그를 센터로 세워 데뷔시킬 거라고 이야기해 왔다.
데뷔란 그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다른 연습생들이 얼마나 간절한지 어떤 마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모든 과정이 어렵지 않았기에 조금 지루하던 차였다. 회사에서는 이 프로그램에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인지도도 쌓을 겸 스스로 도전 의식을 불태울 게 필요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데뷔의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도전 의식을 불태우려고 도전한 프로그램에 약간은 자만감에 차 있던 자기 자신을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기에는 기획사 내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간절함과 열정이 있었다. 실력의 고하에 상관없이 다들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이 느껴져 그도 같이 들뜨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보다 실력이 빠르게 느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정이원도 그렇지만 이청우는 계속 그의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느는 실력, 다방면에서 올라가는 인지도. 그리고 알게 모르게 연습생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눈에 띄었고 결정적으로 그는 누가 봐도 이 중 가장 열심히 하는 연습생 중 하나였다.
그가 1위를 뺏기게 된다면 저 이청우 형한테겠지.
이번 미션에서는 어쩌면 그와 처음으로 같은 팀이 되어 가까이에서 그를 볼 수 있을지도. 오히려 그것이 기꺼웠다.
그도 이만큼 자신을 의식해 주면 좋겠다.
미카엘은 먼저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로 했다.
음악이 시작되었다.
머리로 의식하고 판단하기 전 그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미식축구를 할 때 보았던 날아다니는 공의 궤적보다는 사람의 팔다리의 움직임을 쫓는 게 더 쉬웠다. 대충 이런 느낌으로 움직이면 되겠지.
-뜨거운 너의 숨결
앞서 가는 너의 향기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곳은 느낌으로 처리했다. 그의 긴 팔과 다리가 음악에 맞추어 시원하게 움직였다. 머뭇거림 하나 없이 움직이는 그의 동작은 자신감이 더해져 훨씬 실력이 좋아 보였고 지켜보던 연습생들의 입이 벌어졌다.
미카엘이 흘끗 보자 정이원과 이청우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잘하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청우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하, 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