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73)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73화(73/101)
제73화
“뭐?”
“너만 알고 있어. 왜인지 너한텐 중요한 얘기도 술술 말하게 된단 말이야. 그래도 넌 입이 무거운 것 같으니까 얘기해 주는 거야.”
자신은 이번에 소속사에서 기획하는 새로운 그룹에 들어가 데뷔할 거라고 태연히 말하는 녀석을 보니 여유가 느껴졌다. 누구는 여기서 데뷔 못 하면 죽게 생겼는데. 짜식, 부럽네.
“이왕 출연한 거 여기서 데뷔하는 게 더 낫지 않아?”
“처음보다 인지도가 많이 좋아지긴 해서 사장님이랑 고민해 보긴 했지. 원래 이거 망작 소리 들었잖아. 초반엔 시청률도 바닥이었고. 지금이야 좋다지만 설사 여기서 데뷔한다고 해도 나랑은 안 맞는 것 같아. 난 힙합 쪽이 좋아. 아이돌 활동을 하더라도 그쪽에 우선순위를 두고 싶은데 여기서 데뷔하면 어쩔 수 없이 방송 제작사의 입맛에 맞춰야 하거든.”
아직 이쪽 세계의 계약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윤시오가 말하는 내용을 어렴풋이 알아들은 청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기획사에서 연습생을 모아 데뷔시켜도 내부에서 잡음이 일어날 수 있는데 여러 기획사와 방송사가 얽혀 있으면 잡음은 배로 생기겠지. 윤시오의 소속사는 거기서 발을 빼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처음에 듣기로도 이 프로그램의 메인 PD인 한 PD가 제대로 된 연습생들을 모으기 위해 친분이 있는 기획사 사장들을 쪼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좋겠네.’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흘러나올 뻔한 청우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하긴 어느 정도 여력이 있다면 지금 뒷말이 가득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한 데뷔보다는 소속사에서 연습생 선발을 거친 정식 데뷔를 하는 편이 더 안전한 선택이다.
아직도 대중의 여론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블링돌〉이 소소하게 인기를 끌고 인지도가 높아지며 시청자들도, 팬들도 많이 생기긴 했지만 부정적인 여론을 모두 없애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 여기보다 빨리 데뷔하는 거야?”
이쪽의 데뷔 시스템을 잘 모르는 청우가 여러 궁금증을 안고 속닥거렸다.
“멤버도 다 꾸렸고 준비는 끝났는데 너튜브랑 위택시로 데뷔 과정부터 내보낼 거야. 그리고 그 과정을 팬들한테 보여주는 거지. 어차피 난 지금 순위가 애매해서 자연스럽게 탈락하고 그쪽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겠지. 합류 시기는 확정은 아닌데 데뷔는 여기보단 늦을 거야.”
“그럼 여기서 더 고생할 필요가 있어? 일찍 가서 보여주면 될 텐데.”
윤시오가 뭘 모른다는 표정으로 청우를 보았다.
“지상파 방송 탈 기회가 흔한 줄 알아? 요즘은 너튜브가 잘나가긴 하지만 여기서 내 실력을 충분히 보여줘야 내가 새 그룹에 합류해도 아무도 아무 말 못 하게 되는 거야. 어차피 아이돌은 내 인생에서 거쳐 가는 관문일 뿐이야. 내 최종 목표는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가 되는 거니까.”
와,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래. 중원에서 만났던 남궁세가의 셋째 아들이 이런 눈을 했었다. 꿈이 중원 최고의 검수가 되는 거랬던가. 그걸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때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은 명문가에서 태어나지 못했으니 꿈을 뒷받침해 줄 배경도 없고 든든한 지원 한번 받아본 적 없었다. 그러니 남궁세가에서 하는 것 같은 정석적인 고수는 될 수 없었다. 나중에 만났을 땐 중원 최고의 검수까진 아니었지만 영약과 추궁과혈을 물 마시듯 받은 녀석은 자신보다 강한 고수가 되어 있었지.
청우는 의지에 불타는 윤시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형 기획사 출신이 이 녀석 하나만은 아니니 남은 녀석 중에서도 이쪽에서의 데뷔보다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녀석들이 있을 거다.
자신은 세상을 겪을 만큼 겪었으니 이제 그런 일에 기운이 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길이 있듯이 자신에게는 자신만의 길이 있으니까.
명문가에서 태어나지 못했다고 그걸 원망만 하고 있으면 그 자리에 서 있게 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지.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난 다른 길이 없어서 여기서 데뷔해야 하니까 발목 잡으면 가만 안 둔다.”
반쯤은 진심을 담아 선언했는데 윤시오가 의외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같아. 너 열심히 하는 게 눈에 보이거든. 우리 회사 연습생 중에서도 너만큼 노력하고 실력이 빠르게 느는 애들은 본 적이 없어. 솔직히 처음엔 랩 더럽게 못하길래 별로였는데 지금은 아니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넌 잘될 거야. 이번에도 무대 열심히 해보자.”
“그, 그래.”
약간의 질투를 느끼며 윤시오를 보고 있던 청우가 움찔할 만큼 올곧은 시선이었다. 다들 각자 일로 바쁘고 남에게는 관심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윤시오는 청우를 정확히 보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도 이런 마음인 걸까? 어느 순간 남들에게 일부러라도 관심을 주지 않고 자신만 보려고 했던 청우였는데 그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자신이 속 좁게 느껴졌다. 어쩌면 자신은 남들에 대한 열등감이나 부러움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방패 속에 감춰온 걸지도 모른다.
“이제 멤버가 결정되었으니 내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멋진 무대를 만들어봅시다.”
테이션이 본격적인 연습 스케줄을 공지했다. 하루 일과 대부분이 연습, 그리고 연습이었지만 평소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팀원들은 다시 금방 적응했다.
한참 전체적인 안무를 외우고 있는데 테이션이 들어왔다.
“내가 나서서 지도하기보단 전체적으로 서포트하는 방식으로 갈 거야. 어쨌든 이번 평가 목적은 너희가 진짜 아이돌로서 잘 해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거니까 너희가 파트를 어떻게 나눌지, 어떤 느낌으로 할지를 짜봐.”
이제 완전히 프로듀서이자 선배로서 편하게 대하기로 한 테이션의 말에 팀원들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
테이션이 뒤로 빠지자 다들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역시 이런 분위기를 못 참는 정이원이 먼저 나섰다.
“그러면 일단 우리 파트부터 나누자. 그리고 나눈 파트에 따라 하고 싶은 파트를 지원하는 거야. 여기 처음 파트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은 여기, 그리고…….”
정이원이 물꼬를 트자 이제 많은 경연을 거쳐온 만큼 팀원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어 파트를 나누었다. 나누면서 청우도 마음에 드는 파트를 몇 군데 찍어두었다. 마지막 경연이라고 생각하니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배운 부분을 잘 활용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많았다.
파트를 나누며 살펴보니 다들 마음속에 찍어둔 부분이 있는 듯 눈들이 반짝거렸다.
파트 분배가 시작되자 첫 소절은 이덕진이, 그리고 이어지는 파트는 정이원이 맡기로 했다.
“여기 후렴구는…….”
“나!”
“저요!”
청우는 점찍어둔 파트가 나오자마자 잽싸게 손을 들었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속도로 미카엘이 손을 들었다.
“어, 너네 두 명이네.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정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짧게 연습하는 동안 미카엘과 청우가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을 확인했다. 둘 다 춤 솜씨가 좋았고 체력이 좋았으며 경쟁심이 강했다. 굳이 센터라고 정하면 이 부분이 센터 파트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이청우와 미카엘이 손을 들었다.
뒤에서는 테이션이 흥미 어린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 한 명씩 불러보고 파트를 맡아볼까?”
“여기는 안무랑 끼가 중요하니까 춤도 춰보는 게 어떨까요?”
미카엘이 잽싸게 치고 나왔다. 노래로만 승부 하면 당연히 청우보다 밑지는 미카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청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로는 당연히 압승이겠지만 안무에서도 자신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보고 결정할게. 후렴구부터 다음 2절 시작 파트까지 연결해서 동작이랑 노래랑 해보자. 무대에 있다는 생각으로.”
테이션이 신나서 다가오는데 뒤에서 그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조명 때문에 그런가?’
위화감을 느낀 청우가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뭐지. 잘못 봤나. 아니면 설마 내가 긴장했나? 이 내가? 저런 애송이랑 센터 경쟁을 하는 것 정도에?’
청우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물론 미카엘의 재능은 무서울 정도지만 설마 이 내가 긴장해서 헛것을 보게 할 정도라고? 차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제발 저 그림자가 다시 일렁이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그림자는 멀쩡했다.
역시 착각이었나.
“청우…는 벌써 서 있네? 그럼 청우부터 해보자.”
그리고 졸지에 먼저 평가를 보게 되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수 보여주겠다며 청우가 중앙에 섰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청우가 자신의 파트 노래를 부르며 안무를 시작하려는데 테이션의 그림자가 다시 일렁거렸다. 이번에는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듯 더 선명하게 움직임을 그리며 일렁이는 그림자에 청우가 한 박자를 놓쳤다. 순간적으로 당황해 두 카운트 정도 동작을 밀렸다가 겨우 마음을 다잡고 제 동작을 추기 시작했다.
‘춤도 춤인데 지금 저게.’
그 순간 테이션이 혀를 차며 음악을 중단시켰다.
“그만. 그 정도면 됐어.”
“잠시만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청우가 실수를 깨닫고 테이션을 다시 불렀지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청우가 실력만 믿고 제대로 집중하지 않는 불성실한 연습생이라고 생각하는 게 얼굴에 훤히 드러났다.
그 눈초리가 너무나 억울했지만 일반인 눈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해 청우는 애꿎은 가슴만 탁탁 쳤다.
결국 센터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는 미카엘에게 주어졌다. 노래 실력만으로 보자면 청우가 훨씬 나았지만 미카엘은 특유의 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본능적으로 메꾸었기에 무리 없이 센터로 선택받을 수 있었다.
‘하, 그래도 그림자가 뭔지는 찾았네.’
카메라 앞이라 애써 웃기는 했지만 마음이 영 씁쓸했다. 여기서 센터를 따냈어야 마지막에 1위를 할 수 있을 텐데 이번에도 업적을 달성하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저승사자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저번엔 가진 선계의 물건 덕분에 간신히 피했지만, 이번에는 아마 숨기 어렵겠지. 이번에는 연습생 한 명, 한 명 밀착해서 저승사자들이 확인할 게 분명하다.
최선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치명적인 실수를 하다니. 중요한 기회를 어이없이 날려 버린 게 스스로가 어리석어 견딜 수가 없었다. 무림이었다면 그대로 목이 날아갔을 터.
‘이청우의 성격에 영향을 받기라도 한 건가. 미쳤네, 위천무.’
가만히 있다가 욕을 먹은 ‘이청우’가 펄쩍 뛰었지만 청우는 어느 정도 진심이었다. 이전의 자신은 이렇지 않았다. 아무런 배경 없는 천애 고아가 살아남으려면 철저하게 저만을 위해야 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의 사정을 어떻게 봐주겠는가. 때문에 그에게는 스승님을 제외하고 누구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이쪽 세계에 온 이후로 마음이 자꾸 물렁해진다.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정이원이며, 이덕진이며, 연습생들에게 마음 쓰고 작은 응원과 애정에 기뻐했다. 마음이 영 제 것처럼 차분해지지 않았다.
‘영혼이 육체에도 깃든다더니 이 육체가 날 약하게 만드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고 이청우가 말합니다. 그리고 형은 하나도 약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약해진 게 맞아. 예전이었으면 진즉에 칼 맞고 죽었다.’
“형, 이번 대결은 공정하지 못했어요. 제가 다시 선생님께 말씀드려볼게요.”
겉으로 웃고 있지만 속은 말이 아닌 청우에게 미카엘이 다가왔다. 청우는 분했지만 사실 그가 한눈을 판 건 맞았기에 미카엘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건 딴생각을 했던 내가 잘못한 거야. 그리고 네 실력은 충분히 센터를 맡을 만해. 신경 쓰지 말고 같이 열심히 하자.”
“…형!”
미카엘이 감동한 얼굴로 눈을 반짝거렸다. 부담스러운 눈길에 청우가 고개를 돌렸다.
‘얜 또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