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74)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74화(74/101)
제74화
이러니까. 공정하게 이겨서 센터를 따낸 주제에 이런 거에 감동하니까 말이다.
이쪽 녀석들이 모두 물렁한 탓에 내가 약해졌나 보다. 그저 생각한 대로 실력을 인정해 주고 승부에 승복했을 뿐인데 미카엘은 엄청난 대인배라도 본 마냥 자신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상대의 실력을 읽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은 중원의 기본이다. 청우는 제 기분에 따라 남을 깎아내리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미카엘은 그런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감격했다.
센터는 놓쳤지만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두 번째로 원했던 파트를 따낸 청우는 센터 파트만큼이나 관객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연습에 매진했다.
다른 무대 영상들을 수십 개씩 살펴보며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을 만한 평이 좋은 부분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안무에도 의견을 내게 되고 팀 전체의 무대를 위해 의견을 낼 수도 있게 되었다.
‘아직도 내가 배울 부분이 엄청 많구나.’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도 아이돌 데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여기서 그동안 엄청 많은 것들을 새로 배우고 익혔음에도 아직 이 세계의 음악에 대해 청우가 배워야 할 부분이 많았다.
어쩌다 보니 정이원은 자연스레 리더의 자리를 맡게 되었고 의견을 내다보니 자꾸만 정이원과 말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연습생들이나 카메라에 티가 나지 않게 하려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왠지 정이원이 껄끄러웠다.
정이원은 아무 잘못이 없고 일방적으로 그를 밀어낸 청우의 마음 문제였지만, 왠지 피하게 됐다.
정이원은 그가 먼저 손을 내밀길 기다려 주는 것 같았지만, 그랬다간 홀로 살아남기는커녕 다른 곳에 신경을 쓸 듯하여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도 있는 듯했다.
“저는 청우 형 말에 동의합니다!”
미카엘이 또 청우의 의견에 쌍수를 들고 나섰다.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이 녀석은 왜 또 곁으로 스물스물 파고드는지 모르겠다. 미카엘은 센터로서 혼자 돋보일 기회인데도 관객들의 관심을 분산할 수도 있는 청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너는 의외로 인덕이 있나 보다?”
기어이 미카엘까지 길들였냐며 윤시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의외라니, 내가 어때서?”
“은근 소심하고 눈치 보고 인간관계 바운더리는 개좁고. 너 정이원이 하고는 화해 안 하냐?”
실력은 물론 상대를 인정하는 아량까지, 미카엘이 저 따르는 건 아주 납득할 만한 일 아닌가 생각하던 청우는 윤시오가 찌른 정곡에 입을 꾹 다물었다.
“…싸운 적 없는데.”
“싸우진 않았겠지. 정이원은 워낙 티가 잘 안 나서 카메라나 잘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안 띄겠지. 근데 문제는 너야, 너. 둘이 옆에서 보면 너네 엄청 어색해. 넌 여기서 데뷔할 거라며. 그럼 정이원이랑 다시 푸는 게 좋을걸. 걔 이번에 5위까지 올라온 건 알지?”
예전에 팀 미션에서 만났을 때는 날카로운 길고양이 같았던 주제에 데뷔가 확정되고 여유가 생겼는지 남에게 충고까지 하는 모습에 청우는 살짝 배알이 꼴렸다.
“평소랑 완전 똑같거든? 서로 풀 것도 없어.”
청우의 말에 어깨를 으쓱한 윤시오가 맘대로 하라며 딴 곳으로 가버렸다. 전혀 타격받지 않는 모습에 오히려 청우의 맥이 풀렸다.
안 그래도 마음에 걸렸는데 윤시오가 이야기해서 더 심란해졌다. 그러나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번 업적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저뿐만 아니라 이청우의 목숨까지 날아가는데, 주위를 돌아볼 여력 따위 없었다. 물론 속이야기를 터놓고 말할 사람이 없어 좀 답답하긴 하지만…….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히 내 속을 남에게 보이면 안 되는 거지. 나약하다, 나약해. 정신 차리고 마지막 무대나 준비하자.’
[이청우가 한숨을 쉽니다.]이 녀석은 왜 한숨이야. 꼭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다른 생각은 그만하자. 일단 청우는 두 가지 목표가 결합된 이번 업적을 성공시켜야 했다. 서바이벌 1등으로 데뷔, 그리고 테이션의 그림자 해결. 무엇 하나 쉽지 않은데 다른 생각할 시간이 어딨나.
다른 문제는 데뷔 후에 생각해도 충분하겠지. 아직 누가 데뷔할지 확정된 것도 아니고.
청우는 생각난 김에 테이션의 그림자가 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마침 오늘은 테이션이 멘토링을 위해 와 있는 날이었다. 자신의 파트에 따로 넣고 싶은 동작도 있었고 멘토링을 청하면서 조금 탐색해 봐야겠다.
청우는 제작진을 통해 테이션에게 개별 멘토링을 신청했다. 그러자 잠시 후 105호 연습실로 오라고 연락이 왔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105호 안으로 들어가자 테이션이 연습실 안쪽 소파에 앉아서 작게 흥얼거리며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와.”
아직은 아무 문제가 없는 건가? 테이션은 자신의 그림자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가 싶어 일단 가까이 다가간 청우는 그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전에는 조금 피곤해 보였을 뿐이었는데 며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의 눈 주변에 보랏빛이 돌았고 입술에는 핏기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그림자에서는 한기가 일렁거렸다. 어쩐지 현지원 때의 원혼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더 차갑고 서늘한 느낌을 주는 것이 왠지 위험해 보였다. 그리고 보니 현지원의 원혼도 최종 해결해 준 것은 아닌데 걘 괜찮은가?
청우가 고개를 저으며 잡생각을 털어버렸다. 우리 팀도 아닌데 현지원까지 신경 쓸 건 뭐람. 대충 조치는 해놨으니 아직은 괜찮겠지.
“아, 제가 이번 제 파트에서 여쭤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요. 저번에는 집중하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그랬지. 지금은 연습생이겠지만 곧 데뷔할 거잖아? 서바이벌 프로그램 무대라고 우습게 생각하면 안 돼. 가수는 프로잖아. 자기 음악을 할 때는 매 순간 집중해야 해.”
긴 잔소리를 늘어놓는 테이션의 뒤로 늘어진 그림자가 보였다. 청우는 고분고분 듣는 척 하며 우선 내력을 그림자를 향해 쏘아보았다.
팅-
작은 내력 덩어리는 그림자에 닿는 순간 탁 소리와 함께 바닥에 부딪혀 흩어졌다.
이게 아닌가?
그림자에 튕겨 허무하게 흩어지는 내력을 보고 있으려니 테이션은 잔소리를 끝내고 조언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이제 말하고 싶은 부분이 어디라고?”
“아, 제 파트에서요,”
내력에는 반응이 없었다. 청우는 자신의 파트에 추가하고 싶은 포인트와 내용을 설명했다. 일단 자신의 파트에서 제대로 어필할 수 있게 하고 싶었기에 진지하게 임했다. 이대로 센터에서 밀렸다고 미카엘에게 밀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1위를 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기에.
청우의 태도가 저번과는 다르다고 느꼈는지 테이션의 듣는 태도도 달라졌다. 그 또한 아이돌 선배로서 후배 아이돌을 이끌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진지하게 임하는 청우에 그도 자세를 바꾸었다.
확실히 저번에 한 박지 밀린 건 실수였는지, 청우는 ‘wild’를 치밀하게 분석한 듯했고, 그가 수정하고픈 동작도 군무를 해치지 않으면서 충분히 개연성도 있었다.
이야기하다 보니 두 사람은 점차 ‘wild’뿐만이 아니라 K-pop에 관해, 음악 전반과 아이돌, 가수 및 음악인의 자세와 관련해서까지 쉴 새 없이 주제가 이어졌다.
‘어라, 언제 이런 얘기까지 하게 된 거지?’
심지어 테이션도 신이 나서 그가 하는 음악에 관한 생각과 인생사를 말하느라 핏기 하나 없던 얼굴에 생기까지 띄고 있었다. 사연 있는 사람처럼 다 죽어가던 그가 청우가 문을 열고 들어온 이래로 처음 생기가 도는 순간이었다.
아, 왜 생기가 안 돌았더라?
맞다.
청우는 목적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야기가 즐겁긴 했지만 그에겐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 테이션은 한창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테이션 주변에 음악 이야기할 사람이 없나? 젊은 놈이 벌써부터 혼자 틀어박혀선…… 쯧.
신이 나서 곡 작업 이야기를 하는 테이션에게 대충 맞장구를 치다가 화제를 살짝 돌렸다.
“그런데 며칠 사이에 얼굴이 많이 상하셨어요. 무슨 고민이 있으신가요?”
“아, 요즘에 잠을 좀 설쳐서…….”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은 물론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진 이를 오랜만에 보아 신난 테이션은 이미 청우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연 상태였다.
원래라면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지 않았겠지만 그도 속으로 골머리를 앓던 차였다.
밖에 나가면 안 되는 이야기라 테이션은 카메라에 신호를 주곤 청우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그가 찬 마이크와 청우의 마이크를 조작하곤 작게 속삭였다.
“있잖아, 내가 고민이 하나 있는데. 조금 이상할 순 있겠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봐. 내가 요새 밤에 잠만 들면 자꾸 이상한 여자가 머리맡에 앉아서 내 머리카락을 만지는데 손길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 그런데 분명 꿈인 건 맞거든. 그냥 기가 허한가 보다 했는데 벌써 며칠이나 이어져서 좀 무섭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어깨가 무거워. 마사지를 받거나 물리 치료를 받아도 뻐근하더라.”
덕분에 잠을 못 자서 피곤하고 식욕도 점차 떨어져 쉬는 동안 곡 작업은커녕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도 못했다고 테이션은 하소연했다.
듣고 있던 청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진짜 원귀 같은 느낌인데. 무림에서는 도사들이 하는 일이지만 여기는 도사가 거의 없다. 여기서는 누가 이런 일을 한다고 했더라.
“어디 원한 산 일 있어요?”
청우도 같이 소근거렸다. 테이션의 그림자는 이걸 말하는 거였나 보다. 그림자에 붙은 건 원귀가 분명했다. 그것도 현지원에게 붙었던 저주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원귀였다. 그래서 더 차갑고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었구나.
“딱히 짚이는 건 없는데. 역시 귀신일까? 나 이런 거 처음 겪어봐. 매니저나 멤버들한테도 말해봤는데 다들 보약이나 지어 먹으라고 하더라. 근데 너 이런 거 믿는구나?”
테이션이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청우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저도 귀신 출신이라’라는 속마음은 차마 말하지 못한 청우가 하하 웃어넘겼다. 그럼 이 원귀를 떼어버리면 하나는 해결되는 건가?
왠지 저번처럼 영력을 사용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영력을 쓰면 바로 흔적이 남고 저승사자들이 알아챌 것이다. 저번의 긴급 조치가 얼마나 효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저승사자가 나타나는 건 그에게도 낭패인 일이었다.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어쩌다 이런 이야기까지 했는지 모르겠네. 근데 왠지 너랑 이야기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
청우가 이번 생에 모은 것은 아주 정순한 내공이었다. 도사가 아니라도 그에게는 정순한 기운이 항상 감돌고 있었기에 가까이에 있기만 해도 부정한 기운이 흩어진다.
그렇기에 부정한 기운을 가까이했거나 그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청우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현지원도 청우의 곁에 머문 것일 터였다.
조만간 다른 방법을 찾아볼 거라는 테이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청우는 멘토링을 마무리한 후 방을 나왔다. 어느 수준의 원귀인지 잘 알지도 못했고 이쪽 방면으로는 아직 조예가 없기에 청우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은데.
“어, 청우 왔네. 이야기는 잘했어?”
“어? 어.”
본 연습실로 돌아오니 팀원들이 단체 연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정이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지만 오히려 청우가 조심스러워져 말을 더듬었다. 멀리서 보고 있던 윤시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 보였다.
오히려 그의 말 때문에 정이원을 대하는 것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같은 팀이 되었으니 부딪힐 일투성이였다.
“네 파트는 그럼 수정 완료된 거야? 어떻게 하기로 했어?”
“내가 이야기했던 대로 수정하려고. 멘토님도 그렇게 하래. 그리고 다른 부분에도 수정을 좀 하려고 하는데…….”
솔직히 코앞에 닥친 업적을 성공시키려면 정이원과 노닥거릴 시간 따윈 없었다. 그런데도 왜 자꾸 자신의 한쪽 신경이 이쪽에 머무르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제 마음이 뭘까.
테이션과 논의하면서 정리한 무대 구성과 포인트 안무 동작 그리고 연계되어 수정해야 하는 동작까지 팀원들에게 전달하면서 청우는 정이원의 눈치를 살폈다. 정이원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괜히 그만 쩔쩔매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약오르기도 했다.
“…그러면 여기는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그것도 괜찮네.”
이미 팀원들과 한 차례 수정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기에 테이션의 피드백을 전달하고 반영하여 수정하는 건 금세 끝났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수정에 팀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이덕진도 성격 강한 팀원 사이에 눌려있다가 모처럼 입이 트인 듯 간만에 의견을 내었다.
그래, 이 정도면 화기애애하고 나쁘지 않네. 이 정도 단합은 무대를 위해서도 좋다.
정이원과의 사이는 밀어둔 채 청우도 그 화기애애한 상황에 끼어있기로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