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75)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75화(75/101)
제75화
연습은 착착 진행되었다. 다른 팀들도 오다가다 만나면 매일 녹초가 되어서도 함께 다니는 거로 보아 연습이 잘 진행되는 중인 것 같았다.
이제 20명밖에 남지 않아 서로 정이 들었고 프로그램도 막바지에 다다라 싸울 에너지도 없었다. 미션을 거듭해 나름 아마추어 티를 벗어 서로 신경전을 하느니 연습 한 번 더 하는 걸 택한 듯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분위기 좋네.’
여전히 청우를 싫어하는 몇몇은 마주칠 때마다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을 정도로 눈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간만에 여유 시간을 가진 청우는 느긋하게 다른 팀들이 땀에 절어 녹초가 되어 있는 것을 구경했다. 테이션이 개별 멘토링을 봐주겠다고 의욕적으로 나섰기에 청우는 차례가 될 때까지 시간이 남았다.
다른 팀원들은 남은 시간 동안 자체 연습 중인 것 같았지만 청우는 연습실을 빠져나와 휴게실에 자리를 틀었다. 그리고는 가부좌를 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멍하니 흐느적거리며 걸어가는 다른 연습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천마님 여유 넘치네.”
“연습하러 안 가?”
이석진과 최율리가 지나가며 한마디씩 던지고 갔다. 청우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다른 연습생들도 쉬고 있는 청우를 보며 여유가 넘친다며 한마디씩 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비꼬는 사람은 없었다. 그동안 청우가 워낙 열심히 해왔던 것이 보였기 때문에쉬는 걸 신기해하거나 드디어 쉰다고 애정 어린 타박을 할 뿐이었다.
사실 청우가 이곳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영력을 모아야 해.’
테이션과는 몇 번 이야기를 나누며 꽤 친해졌다. 확실히 이 세계에서 저보다 음악을 더 오래 해서 그런지 K-pop에 관한 조예나 가곡에 대한 깊이가 연습생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아이돌로서의 인생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청우에게도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건강이 점점 빠르게 좋지 않아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테이션은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잃고 있었다. 원인도 분명했고.
그런데 그의 주변에 자꾸 악귀로 인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 아니면 혼원천이 일부러 만든 시련?
청우는 그동안 이 세계에 관해 조사해 왔다. 조그마한 스마트폰 키보드로 타자를 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 기현상들도 수도 없이 검색해 찾아보았다.
이곳은 매우 평범했다. 지나칠 정도로.
무공이나 주술, 악귀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만 나오는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이 세계엔 인간이 아닌 존재도 없고 신선도 옛날이야기 속 주인공일 뿐이다. 그로 인한 사건은 당연히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왜 그의 주변에는 자꾸만 악귀가 나타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단지 내가 악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눈에 띄었던 것뿐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스럽지만, 그가 이 세계에 넘어오게 되어 어떤 영향을 주진 않았을지 염려스러운 건 사실이다.
전후 관계는 몰라도 그의 주변에 자꾸만 악귀가 나타나는 건 확실했다. 영력을 사용하면 약해지는 걸 확인했으니 이 힘을 키워놓으면 문제없었다.
‘이 힘을 사용하면 저승사자라고 해도 대적해 볼 만하겠지.’
주먹을 한번 쥐었다가 펴며 내력을 끌어올리면 금방 내공 덩어리가 힘의 형태로 뭉쳐진다. 이걸 몸속으로 퍼트려 무공을 쓰는 것은 그가 숨 쉬듯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영력은 아무리 힘을 써도 쉽게 끌어올려지지 않았다.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청우는 여유가 생긴 김에 쉬는 척을 하며 몸속을 관조해 내공과 영력을 끌어올려 섞으려고 시도했다. 영력은 영혼의 힘이기에 영혼 상태에서만 쓸 수 있었다. 청우는 등선을 목표로 했던 만큼 영혼의 힘이 강해 저승에서 이로 힘든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승으로 올라와 다른 육체에 들어온 이후로는 아무리 해도 영력이 잘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영력도 힘이니 내공에 조금씩 섞어 운용하다 보면 그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론으로는 충분히 가능했기에 우선 틈틈이 노력 중이었다.
내공이 다시 몸으로 퍼지도록 내버려 두며 청우가 생각에 잠겼다. 테이션의 문제를 자세히 들어보니 스스로 쌓은 원한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 그의 극성팬이나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저주 계열은 아니었으니 분명 진짜 원혼이다. 게다가 원혼은 그냥 죽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원혼이 되기에는 아주 많은 조건과 우연과 영혼의 힘이 필요하다.
그저 극성팬의 원한 정도로는 원혼이 되기 어려울 텐데 어떻게 원귀가 되었을까?
온종일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탓에 혼자 시간을 갖기 어려웠는데 이 기회에 영력도 다듬고 생각도 정리할 계획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청우는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형, 청우 형! 멘토님이 부르세요.”
청우는 맨손을 접었다 폈다. 아주 미미한 양이었지만 내공을 운용해 영력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손바닥 위에서 영기와 섞인 내기가 모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일반인인 미카엘의 눈에는 청우가 열심히 손가락을 접었다가 펴는 것처럼 보이겠지. 네가 뭘 알겠냐, 짜식아.
청우는 뿌듯함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테이션의 원귀를 건드려볼 시간이었다.
연습실로 이동하는데 미카엘이 이상하게 졸졸 따라왔다. 이제 보컬 연습을 하거나 자기 볼일을 보러 가도 될 텐데 왜 계속 쫓아오지? 약간 성가셔진 청우가 저리 가라고 손짓했다.
“왜 쫓아와? 너 할 거 하러 가.”
“형, 아까 그거 뭐에요?”
“뭐?”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청우에게 미카엘이 눈을 빛내며 청우의 손을 가리켰다.
“아까 손에서 막 빛이 나오는 것 같았는데?”
“!”
청우가 귀를 파며 듣다가 깜짝 놀라 미카엘을 돌아보았다.
“뭐, 뭐가 빛이야?”
“아까 형이 주먹을 접었다 폈는데 빛 같은 게 보였던 것 같은데요. 특수 효과 같은 거예요? 그 팔찌에서 빛나는 거예요?”
“어, 그, 그렇지. 팬분이 선물해 주셨어.”
“아아, 어쩐지.”
대충 대답한 그의 말에 또 납득한 미카엘을 보고 청우는 마음이 심란해졌다. 미카엘에게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기를 볼 수 있다니. 자신이 곁에만 있어도 영향을 받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다가 진짜 무림인 그룹을 완성하게 되는 거 아닐까.
“이제 너 가.”
“같이 가면 안 돼요? 형 옆에 있으면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뭐라는 거야. 내가 놀러 가냐, 개인 멘토링이잖아. 가.”
뭘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혼자 뜨끔해 찔린 청우가 고개를 홱 돌렸다.
미카엘의 팬들은 저런 의뭉스러운 모습도 좋다고 한다는데 청우는 자신이 의뭉 떠는 건 괜찮지만 남이 하는 건 못 보는 속 좁은 사람이라 먼지를 털어내듯 손을 휘저어 미카엘을 쫓아냈다. 미카엘이 충분히 멀어져 다른 곳으로 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청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이청우입니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며칠 전보다 더 초췌해진 테이션이 보였다. 눈두덩이가 쑥 들어가서 퀭한 얼굴에 다크서클은 쭉 내려오다 못해 줄넘기를 해도 될 정도였다. 그새 살도 빠진 듯 홀쭉해진 몸에 손가락까지 가늘어져 있었다.
이렇게 눈에 띄게 달라졌는데도 주변에서 아무 말 안 한단 말이야?
“…어디 아프세요?”
“그 말 오늘만 5번째네요. 오는 연습생마다 그러더니. 내가 아파 보이나?”
그럼 그렇지. 다들 보는 눈은 똑같으니 그가 보는 대로 남들도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초췌한 모습과는 달리 목소리는 힘이 넘치고 활기찬 상태였다. 스스로 자기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의식하지 못하는 듯 표정이 너무 밝아 청우의 고개가 절로 기울여졌다.
“…아니, 괜찮으신 것 같네요.”
“그렇지? 얼마 만에 이렇게 힘이 나는지 모르겠다니까. 전에 말했던 건 잊어줘. 요새는 잠도 잘 자고 좋은 꿈만 꾸니까 힘이 나는 것 같아.”
목소리만은 힘이 넘치는 테이션을 보며 청우는 이상하게 여겼지만 일단 멘토링이 먼저였다. 연습한 대로 먼저 시연하고 테이션이 피드백하는 형식이었다.
테이션은 청우의 보컬이 힘 있고 시원하게 고음까지 올라가서 좋은데, 강약 조절이 아쉽다며 힘을 빼야 하는 파트를 짚어주었고, 무대가 어느 모양이니 관객에게 어떻게 어필하며 좋을지, 카메라 앞에서 의식적으로 긴장을 풀려고 노력하라며 청우의 예상보다 세세하게 피드백을 주었다.
청우는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생각하며 한편으로 테이션의 그림자를 살폈다.
“더 물어볼 건 없어?”
“아, 선배님. 사실 동생이 팬인데 사인 한 장만 해주시겠어요?”
“물론이지.”
청우는 테이션에게 종이와 펜을 건네려다 놓치는 척하며 그의 팔목을 잡았다. 테이션의 팬인 동생은 없지만, 일부러 이 순간을 위해 종이와 펜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툭.
종이와 볼펜이 테이션이 팔목을 치고 떨어졌다. 그가 바닥에 미끄러져 멀리 떨어진 종이를 보는 사이 청우가 테이션의 손목을 잡고 걱정하는 척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며 진기를 불어넣었다.
경맥을 잡히는 것은 무림인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 중원이었다면 절대 이렇게 쉽게 내어주지 않겠지만 현대인인 테이션은 뭣도 모른 채 자신의 경맥을 내어주고 그의 진기를 받아들였다.
“…왠지 기분이… 가라앉는데…….”
방금까지는 별일 아닌 것에도 웃고 떠들며 기운이 넘쳐 보이던 테이션이 청우의 정순한 진기가 흘러들어오자 나른하게 쳐지기 시작했다.
“헉, 선배님. 괜찮으세요?”
청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테이션을 부축하는 척 시간을 더 끌었다. 진기는 테이션의 혈도를 따라 이리저리 흘러가다가 심장 쪽에 뭉쳐있는 아주 차가운 기운을 만나 멈추어 섰다. 정순한 진기의 느낌이 싫은지 차가운 기운은 움찔움찔거리더니 더 빠르게 심장 안쪽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이건 뭐 거의 회광반조(回光返照)나 다름없네. 죽기 직전에 잠깐 바짝 기운 난 거잖아. 송장 치우게 생겼네. 벌써 기혈이 끝부터 굳어가고 심장이 느리게 뛰어.’
이곳에 와서는 내공을 내공답게 쓴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청우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자신이 진맥사도 아닌데 맨날 남의 기혈만 어루만지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술이나 깊이 있게 배울걸. 청우는 인공호흡으로 폐에 산소를 주입하듯 내공으로 테이션의 기혈을 소생시키기 시작했다.
“남자끼리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응? 뭐라… 고?”
심장이 굳어갈수록 행동이 느려진 테이션은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공식 멘토링 시간이 아니라 다행인가. 테이션이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온 거였기에 큰 카메라는 없었고 테이션의 앞쪽에 놓인 작은 카메라 두 대가 전부였다. 청우는 종이를 줍는 척 다시 날려서 카메라의 앞을 막았다. 그리고 그의 앞쪽에 있던 카메라는 일어서는 척하며 뒤꿈치로 밀어버렸다. 저 방향이면 안 찍히겠지.
그리고 한 번에 힘을 주어 내기를 테이션의 심장까지 밀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