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79)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79화(79/101)
제79화
“너 멘토님한테 맞았어?!”
윤시오의 한 마디에 청우가 잘못 들었다는 듯 자신의 귀를 후볐다.
“뭐?”
“어휴, 너 멘토님이랑 싸웠냐고! 아니, 맞았어, 때렸어!”
“뭔 소리야. 내가 왜.”
어리둥절해하는 청우의 표정에 윤시오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윤시오도 설마 청우가 그랬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글은 증거가 너무 명확했다.
“이거 봐봐.”
윤시오가 보여준 글에는 엉망이 된 연습실을 빠져나가는 테이션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는데 살짝 고개를 돌린 테이션의 턱선에 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여기, 이거!”
그리고 누군가 올린 커뮤니티의 글에는 ‘실시간 블링돌 연습실. 태이션이랑 연습생이 일대일. 카메라도 부서짐’이라는 두 문장이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아까 들어왔던 스태프인가?’
카메라의 찍힌 각도를 보니 오른쪽에서 찍은 사진이다. 들키지 않기 위해 숨겨서 찍다 보니 한 장만 찍은 모양이다. 사진을 보니 연습실은 난장판에 거울에 실루엣으로 비친 청우의 뒷모습과 청우를 잡아끄는 테이션의 한쪽 팔이 나와 있었다. 거울에 비친 청우의 목덜미에는 상처가, 테이션의 한쪽 팔에는 멍이 손 모양으로 나 있다.
청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팀원들이 놀랄 만했겠는데? ‘일대일’이라는 단어를 굳이 써 놓은 것 자체가 마치 둘이 일대일로 비무든 뭐든 한 판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헐……. 뭔 소리야. 아까 지진 났잖아.”
“지진?”
태연하게 지진 핑계를 대자 미카엘이 툭 끼어들었다.
“아까 이 건물 좀 흔들렸잖아요, 역시.”
태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청우를 보며 옆에 있던 미카엘이 쾌활하게 말했다.
“형이 그런 짓 하지 않았을 줄 알았어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치? 역시 너는 형을 믿는구나.”
아무 생각 없이 기뻐하는 둘과 달리 정이원이나 윤시오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아까 그 정도 흔들림으로 이 꼴이 났다고? 근데 너 상처는 왜 있어? 여기 멘토님 한쪽 팔 검은 건 손자국 같은데?”
그러고 보니 악귀가 잡아 멍든 테이션의 팔이 살짝 보였다. 멍을 빼주는 무공은 없는데.
“그건… 둘이 브레이크 댄스 하다가 지진이 나서 넘어졌어.”
정이원과 윤시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청우를 노려보았다. 사실을 말하라는 눈초리에 청우가 억울하다는 듯 펄쩍 뛰었다.
“야, 너넨 나를 그렇게 보고도 의심하냐? 내가 설마 멘토님한테 맞았겠어? 너 나 못 믿냐? 그리고 진짜로 한 판 했으면 멘토님 두 발로 걸어서 못 나갔어!”
청우가 길길이 날뛰자 둘은 서로 눈을 맞추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앞에서 때릴 정도로 바보는 아니니까. 그리고 마지막 말은 아무 데서도 하지 마라. 일단 멘토님이랑 연락 좀 해보자. 아무래도 수습 빨리하는 편이 낫겠어.”
“그럼 일단 난 본부 쪽으로 가서 제작진이랑 이야기해 볼게.”
“난 청우 매니저 형 번호 있으니까 멘토님이랑 하고 청우네 회사랑 연락해 볼게.”
휴우, 어떻게든 잘 넘어가는군. 어차피 저가 결백한 건 테이션이 알고 있다. 게다가 청우 덕분에 건강까지 좋아졌으니 이 상황을 나 몰라라 도망가진 않을 위인이었다.
청우는 연습생인 그가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월드 스타인 테이션이 이야기하면 모든 상황이 해결될 거라 여겼다.
“청우 형이 싸운 게 아니라잖아요. 테이션 멘토님이 한 마디 해주면 되는 게 아니에요?”
청우가 생각하던 걸 미카엘이 고스란히 말했다. 어어, 말 한번 잘했다. 유난 떨 것 없대도.
그러나 미카엘의 말에 정이원이 쯧쯧, 혀를 찼다. 청우도 미카엘과 같은 얼굴인 걸 보니 이 녀석들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이건 누가 악의적으로 사진을 올린 거야. 어느 쪽을 노린 건지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싸운 모양새잖아? 지진 얘기는 하지도 않았고. 일부러 익명에 추측 기사 퍼지라고 만든 글이라고. 기사로 나간 다음에는 너나 테이션 멘토님이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이 믿을 거 같아?”
아니, 당사자가 아니라고 해도 안 믿는단 말이야?
이쪽 세계는 최면도 뭣도 없으면서 왜 사실관계보다 인터넷이 휘갈긴 글 몇 줄을 더 믿는단 말이야?
이쪽 세계의 팬들은 중원에 비하면 무조건적으로 애정을 쏟아주는 건 알았지만, 사람들도 무조건으로 누군가를 비난한다니.
“역시 그새 사람들 붙었네.”
그래도 소속사 규모가 큰 테이션에게 빠르게 해결해 달라고 해볼까 고민하는 사이, 윤시오가 청우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것 봐. 이 사람들한테는 사실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보여준 휴대폰 속 글에는 청우가 테이션을 때린 게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제작진은 인성돌 만들겠다면서 곱게 인성 빻은 애들만 뽑았냐, 아이돌로서 자질은 폭력인 거냐, 비아냥대고 비난하는 내용이 수두룩했다. 개중에는 원래부터 인상이 쎄했다는 둥 역시 왕따 피해자라는 것도 거짓말 아니냐는 둥 이전에 마무리된 논란까지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져 있었다.
생각보다 논란이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온 연락이 없나 싶어 휴대폰을 봤더니, 액정이 나가고 전원이 꺼졌다. 전원 버튼을 계속 눌러봐도 안 켜지는 게 악귀와 싸우며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어쩐지 회사에서 연락 한 통 없더라니.
…역시 테이션에게 수습하고 해야겠다.
“우리 중에서는 네가 그랬다고 믿는 사람 하나도 없긴 한데 널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사실이 뭐든 상관없어. 이미 퍼지고 나면 나중에 되돌리는 건 훨씬 어려워. 빨리 멘토님이랑 말 맞춰서 해명하는 게 좋겠어.”
“누가 했는지 잡히면 확 소송 걸어 버려요. 근데 진짜 연습실은 왜 이렇게 됐어요?”
미국은 툭 하면 소송 건다더니 그 옆에 붙은 캐나다에서 와서 그런가 미카엘이 같이 흥분하며 이야기했다. 와중에 개인적인 궁금증을 참지 못한 듯 질문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지진이 일어나는데 윈드밀을 췄어.”
“네? 잘 못 들었어요?”
“지진이 일어나는데 윈드밀을 했다고.”
미카엘이 자신이 잘못 들었나 귀를 후비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나머지 팀원들도 모두 그게 말이 되냐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실을 말해줄 수도 없는 청우는 억울했지만 일단 테이션과 말을 맞추어야 했기에 테이션이 한 변명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테이션이 했을 때는 다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자신이 하니 아무도 믿는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청우도 테이션이 그렇게 말할 때 어이없었지만 제작진 그 누구도 토를 안 달길래 이 세계에서는 말이 되는 변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 말이 안 되는 거였나. 아니 그럼 근데 제작진들은 그럼 왜?
하여간에 어쩐지 허술한 면이 있더라니, 테이션이 수습하게 두는 게 아니었는데.
인제 와서 머리 싸매고 고민해 봤자 해결될 일은 아니었기에 청우는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그때 구석에서 어딘가로 전화 걸던 정이원이 달려와 청우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받아봐. 너네 실장 형이야.”
청우는 마지못해 전화를 넘겨받았다. 진법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할걸. 잡다하게 이것저것 익혔지만 진법은 익히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며 청우가 ‘네, 형.’ 하고 입술을 떼었다.
분명 안절부절못하며 잔소리를 쏟아내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강 실장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청우야, 소식 들었어. 넌 괜찮니? 난 글 뜨자마자 연락받긴 했는데 아니라고 믿고 있었어. 형은 우리 청우 믿는다?
“네, 그냥 멘토님이 브레이크 댄스를 알려주고 계셨는데 때마침 지진이 일어나서 몸이 꼬이고 물건이 날아가서 좀 부서진 것뿐이에요. 전 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요. 테이션 멘토님이 말씀해 주실 거예요.”
-그, 그럼 다행인데. 근데 오늘 서울에 지진 예보 없었는데 진짜 지진이 있긴 했어? 테이션 쪽도 그렇게 말하긴 하더라만. 보안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냐며 펄펄 뛰고 있어. 알아서 잘 해결해 주겠다고 기다려 달라고 하더라. 우리만 그런 거면 모를까 테이션 끼니까 한 PD도 바쁘게 움직이더라고. 건너 듣기론 한 PD가 뻘뻘 땀 흘리면서 빨리 수습하겠다고 했대. 너무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어.
“네,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형.”
-아냐, 네가 고생한다. 팬들도 뭉쳐서 반박하고 회사한테 입장 발표하라 막 그러네. 애쓰는 팬들 생각해서 심란하겠지만 마지막까지 마무리 잘하자. 쉬어. 또 연락할게.“
이미 소속사들과 제작진 서로 해결할 방법을 의논한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고 청우가 테이션 소속사를 주축으로 잘 해결되고 있다니 모두 안심이 되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이게 무슨 일인가 했어. 곧 마지막인데 괜히 루머 같은 거 퍼지면 나중에도 힘들어지니까. 하긴 진짜 붙었으면 정말 멘토님은 두 발로 걸어나오진 못했겠지. 얘가 모판도 번쩍번쩍 나르는 앤데. 크크.”
긴장이 풀렸는지 정이원이 농담을 던졌다. 청우가 정이원을 바라보았다. 사이가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자신에게 일이 생기니 먼저 달려와서 여기저기 찾아 가보고 해결해 주려고 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자신이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인데. 오지랖만 넓은 것이 아니라 이 녀석은 진짜 좋은 녀석이었다.
“고마워.”
“뭘.”
뭐라고 말해야 그동안의 오해가 풀릴지 모르겠지만 청우는 일단 진심으로 인사를 전했다. 사실은 자신이 일방적으로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겠다고 밀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는데도 가장 앞에서 나서주다니.
정이원도 그런 청우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고 뒤로 돌아섰지만 쑥쓰러웠는지 귓불이 빨개져 있었다. 역시 좋은 녀석이라니까.
“이제 연습이나 하자. 곧 마지막 경연 무대가 코앞인데 이런 일로 시간 뺏기고 신경 쓸 여유는 없잖아?”
청우의 말에 팀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의지를 보였다. 오해를 받은 당사자가 저렇게 태연하게 연습하자는데 뒤로 뺄 순 없었다. 오랜만에〈wild〉팀은 하나가 된 마음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마음이 맞아서인지 오늘 연습은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동작이 마치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맞고 서로 맞추는 호흡이 기가 막혔다.
“무대에서도 지금처럼만 했으면 좋겠다.”
“진짜요.”
윤시오의 말에 이덕진이 연습으로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정이원이 신경이 쓰였는지 다시 휴대폰으로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SNS을 돌아다니며 여론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일이 묘하게 되네?”
“왜?”
청우가 다가오자 정이원이 빠르게 몇 가지 글을 확인한 후 내용을 대충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지진 났던 거 사람들이 인증했고, 테이션 멘토님도 브레이크 댄스 연습하다가 지진 때문에 아끼는 기타 부서졌다고 인증하셨고. 크크, 야 이거 너지? 초코드리즐 뿌린 자바칩 프라푸치노?”
정이원이 보여준 테이션의 별스타에는 부서진 기타의 사진, 그리고 아까 자신이 시켰던 맛있는 음료수와 커피 한 잔이 함께 찍힌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해시태그라고 말하는 짧은 문장.
#요즘MZ어렵다
#사준댔더니자바칩그린티프라푸치노에초코드리즐두번
#블링돌많관부
“분위기 전환하려고 인스스 올리신 것 같네. 여기 태그 붙은 거에 요즘 MZ가 너 아니냐? 댓글이 굳이 이 타이밍에 커피 두 잔이면 하나는 너 같은데 이 후배 제정신이냐고 웃으면서 넘기는 분위기네. 이 정도면 그냥 MZ밈으로 끝날 듯. 다행이네.”
혹시나 나눠 먹어야 할까 봐 올라오기 전에 쭉 들이켜고 올라왔는데.
글렀네. 이 자식들 혼자 먹고 왔냐고 뭐라 하는 건 아니겠지?
다시 보니 또 먹고 싶네.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자 정이원이 선배가 ‘아·아’ 시키는데 자바칩 그린티 크림 프라푸치노 제정신이냐며 킬킬댔다.
어쩐지 테이션이 카운터에서 평소에는 잘 못 시키지만 먹어보고 싶었던 제일 비싼 음료로 시키라고 하더니.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나 보다.
오랜 연예계 생활로 다져진 관록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니었다. 윈드밀 변명에 테이션을 의심하던 청우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테이션은 엉성한 선배가 아니라 믿을 만한 관록이 있는 선배였다. 물론 자신을 눈치 없는 후배로 공개한 대가는 언젠가 치르게 할 거지만 말이다.
“길게 안 가서 다행이다. 이런 거는 이미지가 오래 가거든.”
“그러게. 담엔 억울하지 않게 진짜 칠까 봐.”
“그러다 잡혀간다. 차라리 맞고 와라. 이 형아가 나중에 복수해 줌.”
“자신 있냐? 정이원 남자네.”
“아니? 대한민국 헌법이 널 수호할 것임.”
일이 잘 풀리자 안도감에 농담을 던졌더니 정이원이 이전처럼 받아쳐 주었다. 다들 긴장이 풀렸는지 얼굴이 밝아졌다.
크진 않아도 한 고비를 넘겼다.
다음날이 되자 테이션이 연습실로 와서 오해받게 해서 미안하다고 팀원들 앞에서 청우에게 사과하며 이런저런 지도를 해주고 갔다. 다른 사람들 앞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없던 일로 치고 싶은 건지 그날 있었던 일이 많이 궁금할 텐데도 테이션은 다시 묻지 않았다.
그래도 악귀가 떨어져 나가서 그런가 얼굴이 하루 사이에 많이 좋아졌다.
저녁에는 조연출 하나가 와서 사진 유출한 사람은 이제 다른 곳으로 보냈다고 전달해 주었다.
“청우 네가 이해 좀 해줘.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요즘 프로그램 좀 잘 되니까 정신이 나간 건지. 잘 처리했으니까 마지막 무대에만 집중하자.”
조연출은 아무것도 아닌 양 가볍게 말했다. 저뿐만이 아니라 테이션이 연루된 이상 잘 해결될 거란 믿음이 있었지만, 생색내는 모양이 영 눈꼴시었다.
“왜 그랬는지 이야기했나요?”
“에이, 뭐 그냥 어그로 좀 끌고 싶었나 보지. 신경 쓰지마, 하하. 잘 끝났으니 됐지 뭐.”
심지어 왜 그렇게 되었는지조차 피해자인 청우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여기 세상을 잘 모르는 청우야 테이션과 소속사만 믿고 어찌 저찌 해결되겠거려니 했지만, 다른 팀원들은 아닌 척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앞으로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기에 꾹 참고 있다지만 그래도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은 막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