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8)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8화(8/101)
제8화
뭐지 이 무대는?
태리나는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기 어려웠다.
엉망진창인 무대들로 지루하던 차, 이제 두 팀만 더 보면 된다고 위안을 삼고 있었다.
한PD가 마지막 팀은 그래도 정예들을 많이 모아놨으니 극적인 효과를 위해 앞 팀의 점수를 최대한 낮게 주라고 했던가?
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다들 실력이 형편없어 다이아몬드 밭을 이룰 참이었다.
그런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93번이 무대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우우~
나를 봐~ 아아아~ 나를 봐~
원곡에서는 이 파트에서 5명이 번갈아 발을 구르며 박자에 따라 자리를 이동하고 부드럽게 손을 올리다가 준비 동작 없이 바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 고난이도의 안무를 선보인다.
93번 이청우는 혼자 이 동작들을 소화하고 있지만 마치 가상의 멤버들이 함께 있는 것처럼 완벽한 거리감과 동선을 유지하고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빠른 회전에 정확한 동작 수행 후 머리를 한 번 넘겨주는 것까지도 원곡의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카피했다.
무용과 출신의 원곡 멤버가 했던 발끝으로 무게를 지탱하며 몸을 곧게 세우고 팔다리를 크게 뻗으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동작은 같은 그룹의 멤버들도 따라 하기 어려워 독무로 들어갔던 부분인데 이청우는 그 부분조차 빼지 않고 그대로 표현했다.
-언제나, 언제나,
우우우~
가사를 부르는 파트 자체는 많지 않아 혼자서 5명분의 노래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안무를 조금도 덜어내지 않고 혼자 끝까지 소화하는 연습생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특히나 여기서 말이다. 태리나는 이청우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마구 그렸다.
가창이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음 이탈도 없고 박자도 정확했다.
포지션이 댄스라고 한다면 지금 보여준 수준만으로도 이청우는 충분히 눈에 띌 만한 인재였다.
옆에서 퍼포먼스 멘토인 유진상도 이청우의 무대가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보고 있었다.
안무 난이도가 어렵긴 한지 중간에 체력이 부족해 벅차 하는 부분이 보였지만 무대 장악력 부분에서 유진상은 높은 점수를 주었다.
어렵기로 손꼽히는 안무인데 그럭저럭 독무 파트도 잘 소화했고, 5명이 퍼포먼스하는 곡을 혼자 채우는 데도 빈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연습생답지 않게 무대를 가득 채운 존재감은 곡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며 보는 이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어려운 동작을 하며 노래의 후렴구를 부를 때에도 음 이탈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 보컬 멘토인 이민성도 합격점을 주었다. 보컬 실력을 낱낱이 볼 수 있는 곡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심사위원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무대를 보고 있는 동안 밑에서 카메라를 통해 총 연출을 지휘하며 보고 있던 한PD도 이청우의 무대에서 전율을 느꼈다.
이건 그가 될 것 같은 원석을 만났을 때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카메라를 통해서 보았는데 무대에 있던 이청우와 눈을 마주친 줄 알았다.
연습생이 이 정도로 무대를 장악하고 시선을 끌어당겼던 적이 있던가?
“지금, 쟤가 몇 번이지?”
“93번입니다, 감독님.”
“하…….”
그리고 이어 찾아온 것은 큰 낭패감이었다.
저 무대를 마지막이나, 중간에 공개했어야 했는데 어중간한 타이밍에 나가게 생겼다.
분명 미리 소속사에 연락을 받았을 때는 최하위급의 실력이라고 들었고 소속사에서 보내준 월말평가 비디오를 통해 눈으로도 확인했다.
적절한 인선이라고 생각하여 실력은 부족하지만 대형기획사 출신인 90번을 띄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성한 조였는데 이제 90번이고 뭐고 앞의 무대가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김선복…! 실실거리며 쓸데없는 소리나 하더니 꿍꿍이가 있었구먼! 계약 종료할지도 모른다느니 그냥 눈에 안 띄게 해서 집에만 보내달라느니 하더니 일부러 하위권에 집어넣어서 눈에 띄게 하려고 했네. 이 음흉한 인간 같으니! 안 되겠다, 편집 방향 바꿔야겠다. 카메라 더 투입해! 풀샷, 사이드샷, 다 찍어! 음량 조절해! 뒤에 조명 더 넣어주고!”
무대효과 팀이 급작스러운 오더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청우는 혼자 펄펄 날아다니며 무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 무대를 위해 이 한 곡만을 골라 2주간 연습했다.
내공을 얻었으니 단전을 만들고 혈도를 전부 새로 뚫으며 어긋난 기경팔맥을 모조리 맞추었다. 지금 이청우의 육체는 거의 새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2주 만에 이렇게 바꾸기 위해 날마다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이청우가 엄청나다며 박수를 칩니다. 자신의 몸으로 어떻게 한 거냐며 감탄합니다.]머릿속에서 ‘이청우’가 쫑알거렸지만, 지금은 대꾸해줄 여유조차 없었다.
아무리 그라도 낯선 곡을 낯선 방식으로 낯선 무대에서 낯선 춤을 추며 사람들을 감탄시키기란 어려운 법이다.
‘이청우’에게는 여유 있는 척했지만, 모두를 감탄시키려면 누구나 인정하는 어려운 곡을 해야 했다. 그래서 청우는 이 곡을 소화하기 위해 잠도 못 자고 내내 안무와 가사를 외우고 제 것으로 만들었다.
아직 ‘이청우’의 육체는 완성되지 않았다. 그는 그에게 가장 맞는 곡을 찾기 위해 ‘이청우’의 기억을 뒤져가며 적절한 곡을 탐색했다.
끌어올리지 못한 가창력은 최대한 감추어야 하며 너무 생소한 동작은 그가 따라 하기 어렵다. 전통무용 요소가 들어가야 하며 모두가 인정할 만큼 어려운 곡이면서도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게 아이돌 가수의 곡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찾아낸 최적의 곡을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 왔던 것이다.
이 순간에도 어디로 날뛸지 모르는 내기와 몸을 조절하여 원래의 무대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기 위해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말해줘.
쿵.
마지막 동작과 함께 청우가 엔딩포즈를 취하자 사방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어느 순간 그들은 등급평가라는 것을 잊은 채 공연을 본 것처럼 청우에게 환호성을 보냈다.
“아, 청우 형!”
“폼 미친 거 아냐?”
청우가 관객들의 반응에 만족하여 뿌듯하게 웃으며 습관적으로 손으로 머리를 뒤로 넘겼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포권지례를 올렸다.
하지만 청우가 보여준 멋진 무대에 연습생들은 아까는 이상했던 무협식 인사마저 멋지고 특색있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무대였습니다. 순간 등급평가가 아니라 연말 무대라고 착각할 뻔했네요. 자, 멘토님들의 평가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MC의 진행에 수석멘토 태리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청우 연습생 무대 정말 잘 봤습니다. 사실 이 곡은 원곡자 외에는 소화할 수 없는 안무로 유명한데요. 이 악명 높은 고난이도의 안무를 이 정도까지 소화하는 연습생은 사실 저도 이번에 처음 보았습니다.
현대무용이 가미된 독무 파트도 부드럽게 소화하고 손끝까지 강약조절하는 바디 컨트롤이 매우 돋보였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발전할 모습이 기대되네요.”
퍼포먼스 멘토인 유진상도 침을 튀기며 칭찬을 이어 나갔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원곡에서는 5명의 멤버가 서로 어우러져 멋진 무대를 만들어내잖아요? 그런데 혼자서도 허전함 없이 무대를 해내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한 것 같습니다. 빼는 부분 없이 중요한 포인트를 잘 살린 부분도 좋았습니다. 다만 체력이 좀 더 받쳐주면 좋을 것 같네요. 그래도 훌륭합니다.”
유진상이 말을 마치자마자 보컬 멘토 이민성도 바로 마이크를 쥐고 평가를 이어갔다.
“일단 첫 소절에서는 고음까지 부드럽게 쭉 올라가는 부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사실 가창력을 확인하기에는 좀 부족했지만 지금 정도의 실력도 충분히 아이돌로서의 자질을 지녔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휴우. 부족한 체력을 내공으로 간신히 보충하여 무대를 완성하느라 숨을 고르고 있던 청우가 보컬 멘토의 칭찬을 듣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창력을 감추고자 최대한 가사가 적은 곡을 골랐기에 다시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추가 확인 없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부분이야 뭐 다들 말씀해 주셨구요. 랩은 부족하긴 한데 발성이 정확한 부분은 좋았습니다.”
“이청우 연습생은 연습생 생활이 길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긴 시간 동안 노력하며 힘들지는 않았나요?”
모든 멘토들의 평가가 끝나자 마지막으로 정체가 감추어져 있는 멘토가 청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청우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바라는 대답이 있는 눈이었다. 왠지 이 사람은 다른 멘토들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청우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숨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안 그래도 직전까지 숨 가쁘게 춤을 췄기에 평소보다 어깨가 더 많이 내려갔다.
“물론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그리고는 슬픔을 감추듯 한쪽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사실 전부 극복하지 못해 아직도 힘들긴 해요. 하지만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저는 힘들어도 끝까지 노력할 생각입니다.”
질문을 던진 멘토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심사위원인 멘토들의 만장일치로 그는 상위 등급인 진주 목걸이를 걸고 뒤편에 마련된 연습생들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같은 등급인 정이원이 반갑다는 듯 손을 마구 흔들었다.
청우도 살짝 손을 들어 답해주었다. 같은 방에 같은 등급이라니 인연이 오래 갈 것 같다.
이후에는 남은 한 팀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확실히 조금 전 청우의 조는 버리는 패가 맞았는지 95번부터 무대의 질이 달랐다. 노래 실력도 그렇고 안무나 동작, 그리고 하다못해 연습생들의 얼굴과 키까지 남달랐다.
특히나 마지막 99번은 큰 키에 잘생긴 얼굴에 약간 거만해 보이는 태도까지 그동안 최고로 대접받아온 티가 났다.
그사이 전체 인사를 하며 눈이 마주쳤던 97번이 다시 한번 청우를 향해 아는 척을 했다.
‘왜 이리 친한 척이지.’
왠지 친해지고 싶다고 어필하며 꼬리를 흔드는 대형견의 느낌이 든다. 자세히 97번을 살펴보니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졌는데 자세히 보니 근골이 아주 좋았다. 무림에 있었다면 각 파의 장로들이 서로 제자로 데려가겠다며 칼부림이 났을 만한 무골이었다.
‘아깝다. 무림에 태어났으면 천하제일인도 노려볼 만했겠는데.’
근골이 좋으니 저 녀석의 무대도 지켜볼 만할 것 같다. 청우는 97번의 무대와 이름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캐나다에서 온 미카엘 정입니다. 유서 깊은 연오 정씨 집안의 48대손으로서 세공사 여러분들께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캐나다에서 왔다더니 영어도 안 쓰고 머리는 노란데 항렬과 본을 알고 있다니 기특한 녀석이네.
청우의 마음속에서 미카엘의 평가가 조금 더 올라갔다.
이어 미카엘의 등급평가가 시작되었다. 자신감 있어 보이는 태도처럼 제법 실력이 좋은 편이었다. 좋은 근골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강렬한 춤을 선보였다. 그리고 사람 자체가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어 멘토는 물론 연습생, 제작진까지 그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또 그 시선을 즐기는 끼가 있었다.
‘나중에 경연 무대 할 때 저 녀석도 데리고 가면 좋겠네.’
청우가 마음속으로 미카엘을 합격시키는 사이 그가 호박 목걸이를 들고 연습생석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미카엘입니다.”
옆자리에 앉은 그가 소곤소곤 청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음속 평가는 올라갔지만 이 녀석도 지나치게 친밀하게 군다. 정이원 하나로 충분한데. 청우가 떨떠름하게 인사를 받았다.
“아, 네.”
“아까 무대 멋졌습니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 이청우 씨에게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아, 네.”
청우는 건성으로 인사하며 대망의 99번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99번 현지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 팀은 이상한 인사를 하지 않았다.
당했군.
첫 타자인 90번이 이상한 뻘소리를 시작하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부족한 실력을 애교로 때우려고 했던 것인지 청우가 속한 조의 연습생들은 이상한 인사로 시작을 하였다. 무대에 나와보니 다들 이상하게 인사하길래 청우도 얼결에 따라 해버렸는데 지금 보니 다들 깔끔하게 자기소개만 하고 있다.
같은 조였던 놈들은 한 놈도 다음 미션 때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청우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대형기획사 소속이라고 했던가? 정이원만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99번이 무대에 올라오자 많은 연습생이 웅성웅성거렸다.
보니 키가 크고 몸도 관리받은 흔적이 있다. 얼굴에 비해 코가 인위적이라 안력을 이용해 살펴보았더니 역시 코 부분에 무언가 다른 물질이 들어가 있다.
현대의 의학 기술은 놀라운걸.
코가 세워지면 인상도 변하지만 관상도 변하게 된다.
원래는 남의 말에 좀 더 순응하는 성격이었겠지만 코가 높이 서면서 성격에 교만함이 들어갔다.
음?
잘 살펴보던 중 얼핏 99번과 청우의 눈이 마주쳤는데 웃는 상의 얼굴에서 순간 차가운 빛이 느껴졌다.
‘이청우’와 이미 아는 사이인가? 이 녀석도 제법 마당발이다. 조용한 성격치고는 견제인지 경계인지 신경 쓰는 녀석들이 꽤 많다. 저 녀석은 신경 쓰는 쪽일까, 악의를 가진 쪽일까?
‘피곤하구먼. 너 인생 좀 잘못 산 듯.’
[이청우가 그런가 보다고 말합니다.]청우의 귀 끝이 침울한 듯 축 처졌다.
99번이 등급평가 무대를 시작했다.
제법 난이도가 있어 보이는 동작으로 무대를 시작했다. 모두의 기대를 받는 이유가 있다는 듯 90번대 중에서도 실력이 가장 좋은 편이었다.
그래도 가창 실력은 좀 떨어졌다. 쭉 음을 올려야 하는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반음 내리는 등의 모습이 보였다. 가창은 아무래도 연습보다는 타고나는 쪽이 많아 그렇겠지. 무대 구성도 전문가가 손을 대준 느낌이 있다.
시청자들이 볼 때는 꽤 눈에 띄는 편이겠군.
실력이 꽤 좋은 편인 99번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데 앞자리에 있던 해월이 뒤돌아 청우에게 작게 눈짓을 했다.
‘왜.’
‘쟤예요’
‘뭐가.’
‘동훈이 형 친구.’
“!”
그러고 보니 청우를 아주 괴롭힌 멤버 중 메인인 동훈이란 놈에게 잘 나가는 친구가 있다고 들었는데 저 녀석이구나.
동훈이 저 녀석과 같이 어울려 다니며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지? 정말 문제가 생기면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암암리에 모두가 동훈 뒤에 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냥 대형 소속사인 문제가 아니라 집안이 좋아 아무도 건들지 못한다고.
악연이로군.
청우가 현지원이라고 소개한 99번의 뒤통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