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83)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83화(83/101)
제83화
청우가 고개까지 깊이 숙여 사과하자 팀원들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엉엉 울던 이덕진도 히끅 하고 숨을 삼키며 울음을 멈추었다.
“그, 그렇게까지 실수하진 않았지.”
“그래요, 형. 전혀. 괜찮았는데요?”
윤시오와 미카엘이 태연하게 말했지만 청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혼자 너무 흥분해서 앞서나가고 너희를 배려하지 못했어. 우리는 팀이니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
물론 청우가 했던 느낌이 〈wild〉라는 곡에는 더 잘 맞았을지 모른다. 실제로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고. 하지만 청우는 대가를 받고 무대에 섰던 전문 음악인이었으니 자신의 태도가 옳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혼자 서는 무대였다면 그저 느낌이 가는 대로 관객들과만 호흡을 맞추었겠지만.
“그래. 잘못하긴 했지. 너 따라가다가 나 같은 뱁새는 다리 찢어질 뻔했다니까. 풀파워로 미리 맞춰보든가. 다음에 또 그러면 가만 안 둬. 안 보일 때 그냥 발로 까버릴 거야.”
“알겠어, 알겠어.”
정이원처럼 대놓고 뭐라고 해주는 쪽이 청우도 마음이 편했다. 정이원은 팀원들을 대신하듯 청우를 잔뜩 구박했다. 당황했던 팀원들도 정이원에게 섞여 장난치듯 이야기하다 보니 금방 대기실 앞이었다. 들어가는 팀원들 뒤로 정이원이 청우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근데 네가 원래 하고 싶었던 느낌은 그쪽이었겠지?”
“응? 약간은? 왜?”
“아니야.”
이청우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기량을 모두 넣어 무대를 꾸몄다면 분명 자신들은 다 따라가지 못했을 거다. 태연한 얼굴로 들어가는 이청우의 뒤에서 정이원은 생각했다.
다음엔 이청우의 기량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꾸며주고 싶었다. 이렇게 자신들의 수준을 가늠하며 절제한 무대가 아니라.
이덕진도 자신과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만큼 따라오지도 못했고 수준 차이도 훨씬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더 이번 무대가 아쉽고 서럽고, 그러면서도 이만큼이나 해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겠지.
일이 잘 풀린다면 분명 우리는 같은 팀이 될 것이다. 그때 정이원은 이청우의 들러리로 남지 않을 수 있을까?
남겨진 정이원의 복잡한 속내 따윈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청우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다음엔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먼저 무대를 끝낸 연습생들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야 이번에 이청우 무대 찢었더라.”
“그렇게 추고도 음정이 안 나간다고? 야 나까지 어깨 빠지는 줄 알았어.”
“너네 팀 이렇게 잘했나? 저번에 중간 점검 때 구라 깐 거지 너네.”
왁자지껄 소회를 나누며 떠들고 있으려니 현장 관객들의 투표 집계가 마감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카메라가 세팅되고 준비된 스크린이 크게 비추었다.
“이제 현장 관객 투표의 집계를 공개하겠습니다. 현장 관객들의 투표수는 각 팀원의 개인 득표수에 10배로 더해집니다. 그 전에 마이너스 표를 먼저 공개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을 앞두고 격한 연습생들의 리액션 화면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마이너스 표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굳이 찾아보지도 않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청우와는 달리 마음이 여린 몇몇 연습생들의 얼굴이 금방 새파랗게 변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모두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지. 이미 인생을 한 번 살아오며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을 수없이 많이 겪은 청우는 악플이든 안티팬이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는 칼 들고 진짜 쫓아오거나 골목이나 오솔길에 매복하는 것도 아니니까. 물론 여론이란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별 이유도 없이 남을 싫어하는 이들이 큰 여론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세상 사람들은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법이거든.
게다가 이건 경쟁이니 자신이 응원하는 연습생을 데뷔시키기 위해 다른 연습생에게 악의적으로 마이너스 표를 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분명 청우 본인의 마이너스 표는 상위권에 있을 터.
두두둥-
낮게 울리는 드럼 소리와 함께 마이너스 표 하위 10명의 목록이 공개되었다.
“허억”
누군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질끈 감거나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 모습도 보였다.
“역시.”
청우는 짐작대로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여기 없었다. 뿐만 아니라 상위권에 속하는 연습생들의 이름은 모두 빠져 있었다. 굳이 꼽자면 주지호가 10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다음은 마이너스 표 상위 10명입니다!”
청우와는 달리 오래 살아오지 않은 연습생들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수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꽤나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어디선가 작게 토할 것 같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위권이든 하위권이든 마이너스 표도 몇천 표는 되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몇천 명이나 되고 저 밖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저런 반응이 이상하지 않았다.
“야, 너 1등인데?”
정이원이 소근대자 청우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감독이 이쪽으로 카메라를 클로즈업하다가 태연한 청우의 표정이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아, 상처받은 연기라도 해야 했나?
하지만 어설픈 연기를 하느니 이젠 그냥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런 나의 모습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은 남겠지. 청우는 자신이 1위라는 것이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원래 어느 계열에서든 제일인은 가장 욕 많이 먹는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은 청우의 표정에 정이원이 질린단 얼굴을 했다. 그런 정이원도 4위에 당당하게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직접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수를 본 정이원의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마이너스 표 2위는 미카엘, 3위는 현지원이었다.
한이설의 표는 제외되었는지 이름이 없었는데 계진성의 등수가 생각보다 낮은 것은 좀 마음에 들지 않긴 했다.
“좋게 생각해.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관심 있는 사람도 많고 견제해야 할 만큼 다른 연습생들보다 앞서나간다는 뜻이니까.”
“그래 님 멘탈 강철이다.”
6위를 차지한 김해월은 기절 직전의 얼굴이었다. 핏기 하나 없어진 하얀 얼굴로 똑같이 하얗게 변한 이덕진과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김해월은 조그맣고 귀엽게 생겼으니 그렇다 치지만 이덕진은 덩치도 있는 애가 왜 저렇게 마음이 약한지 모르겠다.
미카엘은 ‘제가 2등이에요!’ 하고 억지로 우는 얼굴을 만들어 보이며 흑흑, 우는 소리를 냈다. 누가 봐도 장난치고 있는 미카엘의 모습과 평소처럼 태연한 청우의 모습에 다들 저래야 1, 2위를 하는 건가 봐, 독한 놈들, 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하는 반응을 충분히 즐긴 듯한 제작진이 병 주고 약 주기라도 하듯 현장 집계표의 순위를 공개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응원해 주는 표의 수이기에 연습생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먼저 4위와 3위를 공개합니다!”
보통은 시청률을 위해 1위 팀과 4위 팀을 마지막에 남기지만 이번에는 4위 팀이 확연했기에 1, 2위를 남긴 것 같았다.
4위는 예상대로 한이설이 빠져나가고 최율리가 멱살 잡고 끌고 온 〈Forever〉팀이었다. 아무래도 한 명의 공백을 메우기도 어려울뿐더러 눈에 띄는 상위 연습생도 없었으니 예상했던 결과였다. 최율리는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지 해탈한 눈이었다.
3위는 계진성과 현지원이 속한 팀이었다. 저 녀석 질기게도 여기까지 오긴 했다. 계진성은 청우가 보기엔 못생긴 데다 성격도 더러운 녀석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엔 부족한 녀석은 아니었다. 남들을 지적하고 다녀서 그렇지 본인도 실력이 있었고 데뷔조는 못 들어도 그 언저리까지는 충분히 갈 만한 실력이었다.
여기저기 붙어 다니는 것은 자기 몫을 잘 챙기고 상황판단력이 빠르다는 뜻도 되었다. 전생에 자신의 휘하에 있는 녀석이었다면 칭찬하며 데리고 있을 만했지만 자신을 대적한다면 상황이 다르지.
그래도 저놈들이 4위였으면 좋았을 텐데.
별로 간절해 보이지 않는 현지원의 이번 무대에서의 태도를 보았을 때 이미 다른 길로 노선을 튼 듯했다. 저 정도면 어딜 가도 데뷔는 할 수 있겠지. 그러니 간절한 이들이 더 많은 표를 얻었으면 좋았으련만. 청우는 저도 모르게 최율리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남은 팀은 두 팀입니다. 과연 1위는 어느 팀일까요?”
두구두구두구-
드럼 소리가 심장을 울리듯 퍼졌다.
청우는 자신이 없었다.
“…1위는 〈wild〉 팀입니다!”
1위 하지 못할 자신이.
“와아아!”
“해냈다!”
정이원이 벌떡 일어나 청우를 얼싸안았다. 이덕진은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고 미카엘은 윤시오를 들려고 시도하다 머리끄덩이를 잡히고서 내려놓았지만, 모두가 웃는 표정이었다.
“축하한다!”
이석진은 2위로 졌지만 다가와서 청우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축하해 주었다. 청우도 오늘만큼은 진심으로 웃었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결과를 기다리는 일뿐이다.
곧바로 순위 발표식이 이어졌다. 멘토들이 〈블링블링 유어 아이돌〉프로그램에 관한 소회를 말하는 동안 연습생들은 빠르게 환복했다.
처음 대중에게 얼굴을 비췄던 〈난 준비됐어〉 무대 의상이었다. 처음 입었던 교복 스타일의 무대 의상을 다시 입으려니 기분이 오묘한 듯 연습생들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나 여기서 떨어져도 연락할 거지? 모르는 척 하면 안 된다?”
정이원이 긴장했는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정말 떨어지면 정이원은 아마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 데뷔하든 다른 일을 하든 떳떳한 상태가 되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연락하겠지. 전혀 내색은 안 하지만 정이원의 자존심이 얼마나 센지 알기에 청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정이원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청우에게도 보는 눈이 생겼다. 다른 사정이나 데뷔 준비를 위해 빠지는 연습생들이 있긴 하겠지만 대충 그의 눈에 누가 뽑힐지가 보였다. 그건 철저하게 실력과 외모순이었다.
이제 대중들에게 어떤 것이 잘 먹히는지 알고 있기에 아마 그의 짐작은 대부분 맞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과연 1위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만.
마이너스 표가 생각보다 많긴 했는데 제작진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그 표를 몽땅 반영해서 표를 대폭 깎지는 않을 것이다. 적당한 긴장감을 반영하는 요소 정도로만 활용하겠지.
그래도 여전히 불안하기는 했다. 자신이 미카엘을 압도할 만한 실력이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단언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팀 경연을 위주로 했다는 점, 이쪽 세계의 문화를 잘 모르는 점, 그리고 미카엘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불안 요소 중 하나였다.
“심장 터질 것 같아.”
“허억,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은데? 야, 나 숨 쉬냐?”
“닥쳐, 내 숨소리 안 들리잖아.”
긴장한 연습생들이 너스레를 떠는 게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저 애송이 녀석들과 같은 수준이 되고 싶지 않아서 태연한 척 했지만 청우도 손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여기서 데뷔가 확정되면 다시 한번 등선을 향해 달릴 수 있는 새로운 삶이 생긴다.
하지만 ‘이청우’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과연 그 여린 녀석이 준비가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어 청우는 차마 ‘이청우’에게 말을 붙일 수조차 없었다.
만약, 이라고 하지만 그가 떠나고 싶지 않아 한다면 우리의 계약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자신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웅성거리며 연습생들이 자리에 앉자 시작을 알리는 조명이 들어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무대의 단상 위쪽에는 단 6자리만이 준비되어 있었다.
저 자리를 위해 100명의 연습생이 이 긴 시간 동안 달려온 것이다. 이제는 한 줌밖에 남지 않은 연습생들을 바라보며 청우도 잠시 회한에 젖었다. 긴장과 두려움, 기대로 가득한 연습생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미숙했던 어린 시절 스승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던 자기 자신이 떠올랐다.
그때의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간절했고 독기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떠올리니 저 의자에 누구보다 먼저 가서 앉고 싶은 욕망이 불쑥 튀어 올랐다.
“모두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최종 순위 발표식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모두가 기다려온 바로 그 순간이죠. 발표에 앞서 그동안 세공사 여러분께 자신의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연습생 여러분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연습생들이 앉아있던 자리의 양쪽에 막을 열리자 이전에 탈락했던 연습생들이 관객석에 앉아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청우도 익숙한 얼굴 몇몇에게 눈빛을 보내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형,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혹시 이따 말할 시간이 없을까 봐요.”
앞에 앉아 있던 김해월이 고개를 뒤로 돌려 청우에게 인사했다. 청우도 짧게 고생 많았다고 격려해 주었다. 김해월도 재능도 가능성도 충분하니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이제 최종 순위 발표를 하겠습니다. 단 6위에 든 연습생만이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영광의 데뷔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떨어졌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보여준 만큼 분명 더 많은 기회가 여러분들을 찾아올 것입니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6위이라는 글자가 뱅글뱅글 돌았다. 6위 안에 들어가면 꿈에도 그리던 데뷔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