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85)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85화(85/101)
제85화
“형.”
잠시 후 청우가 정신을 차리자 주변이 완전히 바뀌어 있는 게 보였다. 이건 이전에도 한번 본 풍경이었다. 아마도 전생에서 저승에 오자마자 보았던 황량한 풍경.
그리고 눈앞에 이청우가 서 있었다.
“이청우.”
이러고 있으니 마치 이전 저승에서 만났을 때 같았다. 이청우는 여전히 그때와 같이 마르고 꾀죄죄한 복장이었다.
하지만 눈빛은 그때와 같지 않았다.
다 죽어가며 아무것에도 미련이 없는, 삶에 지친 눈을 하고 있던 이청우가 지금은 또렷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마른 몸도 전보다 훨씬 생기 있고 듬직해 보였다.
“우리의 목표가 이루어졌어요.”
“너의 목표였지.”
“맞아요. 제 목표.”
목표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이청우의 목소리도 이전보다 단단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 시간 동안 ‘이청우’도 뭔가 달라졌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 청우가 자신의 손을 들어보려고 했는데 ‘이청우’가 다시 말했다.
“이제 저는 계약을 완료하려고 해요. 형이랑 함께한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어요. 너무 감사해요, 형.”
“완료라는 건… 떠난다고? 이렇게 바로?”
이렇게 바로 ‘이청우’가 떠나버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청우가 저도 모르게 ‘이청우’의 옷깃을 붙잡았다.
“나는 혹시 네 마음이 바뀌면…….”
“아니요, 계약은 계약이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형이 이룬 일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제가 결과만 누릴 순 없어요. 형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으니, 형이 이어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형의 뒤에 있으면서 난 왜 그렇게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역시 그 순간 저였다면 형처럼 행동하진 못했을 거예요.”
‘이청우’가 청우의 손을 떼어내고 한 걸음 앞으로 발걸음을 떼자 그들의 앞에 눈부시게 빛나는 커다란 거울이 나타났다.
“혼원천이 바로 여기까지 데려다주었어요. 이게 환생경이래요.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거울을 보니까 이름을 알겠어요.”
‘이청우’가 손끝으로 환생경을 건드리자 빛나는 거울의 면이 물처럼 출렁거렸다.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
이런 질문을 해서 뭘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청우는 저도 모르게 ‘이청우’를 붙잡듯 말했다. ‘이청우’가 후회한다고 다시 내놓으라고 한다면 자신은 이 육신을 벗어버리고 저기로 뛰어들 수 있을까?
“제가 후회한다고 하면 돌려주실 거예요?”
그런 청우의 마음을 아는 듯 ‘이청우’가 가볍게 되물었다.
여태 이 세계에 떨어져서 일어났던 일을 반추해 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별세계. 그리고 만난 마음을 나눈 이들과 저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
역시 등선은 글렀다.
청우의 답은 ‘아니’였다.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는 청우에 이미 답을 안다는 듯 ‘이청우’가 미소 지었다.
“그건 형이 만들어낸 형의 인생이에요. 제가 그 몸에 다시 들어간다고 해도 그렇게 살 수 없어요. 대신 전 형 뒤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다시 태어나면 이번 생보다는 훨씬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솔직히 미련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보세요, 형.”
‘이청우’가 손가락을 뻗어 청우를 가리켰다. 내가 왜? 청우가 자신의 몸을 둘러보다 환생경에 희미하게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이청우’가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눈앞의 ‘이청우’보다는 키가 크고 건강하며 당당하게 서 있는 ‘이청우’.
직전까지 블링돌 숙소에서 세수하며 거울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영혼은 육체를 반영해요. 이미 형은 ‘이청우’ 그 자체에요. 그러니 형에게 맡기고 가는 게 미안하지도, 아깝지도 않아요. 오히려 얼마 전부터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던 것 같아요.”
모든 걸 털어 버린 듯 가벼운 ‘이청우’의 목소리에 이젠 그를 배웅해 주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청우는 부질없이 자꾸만 그를 붙잡고 싶어 하는 발걸음을 꾹 눌렀다.
“조금만 더, 내가 네가 준 기회로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는지. 어디까지 가는지. 더 지켜봐 주면 안 돼?”
“그것도 재밌긴 할 것 같네요.”
하지만 ‘이청우’는 웃으며 덧붙였다.
“일본 초밥은 진짜 맛있대요. 완전 싱싱하다던데. 그리고 미국에서는 스테이크를 먹어줘야 한대요. 뉴욕 3대 스테이크집은 꼭 가봐야 한다던가. 유럽에서는 피자 1인 1판인 거 아시죠?”
‘이청우’는 마지막 부탁이라며 말한 걸 꼭 대신해 달라며 빙긋 웃었다.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내가 스승님한테 기도할게. 이번엔 너라도 좀 좋은 집에서 태어나라. 좋은 부모님과 다정한 형제가 있고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은 제대로 된 집에서.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에서 태어나라고 꼭 기도할게. 내 선업도 있으면 너 다 가져가. 난 다시 쌓으면 되니까.”
청우가 그렇게 말하자 그의 진심이 닿은 듯 갑자기 가슴에서 흰 구슬이 하나 튀어나와 ‘이청우’에게 흡수되었다.
[위천무의 선업이 모두 ‘이청우’에게로 옮겨졌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선을 위해 당신이 쌓아야 하는 선업의 점수는 아직도 한참 남은 데다 청산해야 하는 악업의 점수도 있습니다. 악업이 쌓이면 이 삶에서 등선을 위한 점수를 다시 쌓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동의하십니까?]혼원천은 스승님을 닮아서 그런지 꼭 한마디가 더 길다. 청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위천무, 아니 이청우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내가 아니라고.
씁, 악업 점수가 꽤 높네.
“길에서 쓰레기 주우면 몇 점이야?”
[5점입니다.]청우의 얼굴이 구겨지자 ‘이청우’가 하하 웃었다. 웃는 소리를 들으니 청우의 마음이 편해졌다. 이 녀석이 진심으로 웃게 해주고 싶었는데 마지막엔 그래도 해내네.
“이제 갈게요, 형.”
‘이청우’가 돌아섰다. 이제는 정말 가야 했다. ‘이청우’가 빠른 걸음으로 환생경에 손을 뻗었다.
“아, 청우야! 너도 꼭 신…….”
신선이 되어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청우’가 환생경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환생경이 다시 빛을 내뿜더니 이내 스위치를 끈 것처럼 빛이 사라지고 평범한 거울로 변했다.
뒤도 안 돌아보네, 매정한 녀석.
민망함에 코만 만지던 청우가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휘이이익-
착! 착!
하늘에서 검은 물체들이 그의 앞에 뚝 떨어졌다.
“어디 있느냐, 저승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녀석이!”
“이런! 이미 늦었어!”
검은 망토 같은 것을 두른 사람 두 명이었다. 그들은 다급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지만 ‘이청우’는 이미 환생경 안으로 들어갔다. 환생경은 더 이상 빛을 내지 않았으며 남은 것은 청우뿐이었다.
“네 녀석이구나. 이미 뒤바뀐 영혼이 완벽히 자리를 잡았으니 이를 어쩐다.”
저승사자들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에 어리둥절하던 청우는 금세 그들의 정체를 눈치챘다. 자신을 노려보는 눈초리도 이젠 겁나지 않았다. ‘이청우’는 이미 환생경으로 들어갔다. 이놈들아.
“왜요, 뭐 어쩌라고.”
“이 녀석! 같이 대왕님께 가야겠구나!”
저승자자들이 살기를 띤 채 청우를 둘러쌌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게 있다면 청청우는 이미 영력 사용법을 터득했단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영력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저승이고 말이다.
자신을 잡으려는 저승사자의 팔을 가볍게 피한 청우가 영력을 실어 저승자사의 팔을 비틀어 밀어 버렸다.
휙-
“크윽! 이 녀석! 영력(靈力)의 사용법을 익혔구나!”
“오, 이게 진짜 영력이라고 부르는 거구나. 그냥 막 붙인 이름이었는데.”
힘으로는 청우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심지어 자신은 영력과 내력을 혼합해서 사용할 수 있다. 이곳의 저승사자로는 그를 감당하긴 어려울 터이다.
-만음신공, 소소풍(嘯嘯風)!
청우가 휘파람에 다시 공력을 담았다. 공력에 영력이 섞인 휘파람은 점차 매서운 칼날 바람으로 변해 저승사자들에게 몰아쳤다.
청우는 그들이 검은 망토로 바람을 막는 사이 빠르게 뛰어가 저승사자 하나를 공격했다. 영력을 강하게 실은 주먹으로 빈틈을 노려 가격하자 저승사자 한 명이 퍽 소리를 내며 저 끝으로 날아갔다.
“이 녀석이 저승에서 감히!”
다른 저승사자가 화를 냈지만 그들은 현대의 영혼을 담당하는 저승사자들이라 무공을 익힌 무림인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내공에 영력을 섞어 쓰는 무림인도 처음이었다.
‘낭패다. 지원을 더 불러야……!’
저승사자의 난감한 얼굴과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청우가 더 속도를 높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저 얼굴은 필시 다른 누군가를 더 부르려는 얼굴이었다. 하오문에서 숱하게 먹던 눈칫밥의 결과로 청우는 이 싸움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이미 결정했다.
‘빠르게 치고 튄다!’
저승에서 그의 영력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승사자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저승은 그들의 앞마당이니 저승사자의 수가 많아지고 더 강한 저승사자가 오면 자신이 불리할 것이 뻔했다.
이 두 명을 빠르게 때려눕히고 도주한다. 그리고 한적한 곳에 가서 혼원천을 이용해 이승으로 돌아간다. 완벽한 계획 같았다.
“여기서 너희들끼리나 놀아봐라!”
힘겹게 공격을 막은 저승사자의 빈틈이 보였다. 다시 휘파람을 불어 주의를 분산시킨 청우가 저승사자를 날려버릴 한 방을 준비했다.
“간다!”
마지막 일격을 꽂으려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콰콰과광!
“으아악!”
자신에게 직격으로 떨어지는 벼락에 맞은 청우가 뛰어오르던 자세 그대로 바닥으로 쿵 처박혔다.
“이건… 대왕님?”
저승사자들은 대왕님의 지시 덕분에 살아났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명령에 입이 삐죽 나왔다. 그러나 대왕님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
“이런, 가자. 이 망나니 같은 녀석.”
“크흑, 뭐야.”
널브러진 청우를 일으킨 저승사자는 그의 팔을 단단히 잡더니 가지고 있던 부채를 부쳤다. 두 사람의 몸이 붕 떠오르고 이내 엄청난 속도로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아아아!”
“대왕님께로 간다아아아!”
얼굴로 쏟아지는 바람을 맞으며 묻자 저승사자가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대왕님이라면 염라대왕?
이대로 꼼짝없이 진짜 죽는 건가?
머리가 복잡해져 목에 걸고 있던 혼원천을 꼭 잡은 채 청우는 마음속으로 스승님에게 빌었다.
‘스승님! 저 염라대왕에게 잡혀가요! 어떻게 해요?!’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이 당도한 것은 넓게 펼쳐진 꽃밭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꽃밭은 주로 푸른색 꽃이 피어 있었고 그 가운데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대왕님, 분부하신 대로 이 녀석을 데려왔습니다.”
저승사자는 청우를 툭 쳐서 꽃밭으로 밀어 넣고는 뒤에 부복했다.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꽃잎을 조심조심 닦고 있던 염라대왕이 서서히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무릎이 꺾여 그 자리에 엎드리고 말았다.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도 벼락을 맞은 기분이다. 차마 눈을 올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염라대왕이 입은 긴 도포 자락이 사락사락 꽃들을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청우는 넙죽 엎드린 채 긴장으로 몸을 굳혔다.
“위천무, 아니 이젠 이청우라고 불러야겠군. 네가 명부를 엉망으로 만든 범인이냐?”
평범하게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진탕되었다. 이런 게 신의 위엄인가.
“그, 렇습니다.”
정확히는 스승님이 한 것 같지만 일단 자신이 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스승님은 선계의 존재지만 염라대왕에게는 당해낼 수 없어 보였다.
“정확히는 네 스승인 원천진인의 짓이겠지. 요즘 선계도 시끌시끌하다더니 아주 깜찍한 짓을 했어.”
스승님이 원천진인이시구나. 신선다운 이름을 들으니 정말 스승님이 신선이 되었고 자신에게 혼원천을 내려주셨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그런데 선계가 시끌시끌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아직 하계의 인간일 뿐인 네가 선계의 사정까진 알 필요 없겠지. 네 존재가 저승의 순리를 거슬렀다는 것은 알 터. 너를 내가 어찌하면 좋겠느냐?”
그냥 잘 살게 내버려둬 주시면 좋겠는데. 청우는 생각만 했지만, 그의 생각 따윈 투명하게 읽힌다는 듯 염라대왕이 코웃음을 쳤다.
“하여간 제 스승을 닮아 대범한 녀석이군. 네 스승이 자신의 선기를 이용해 너를 그 육신에 정착시켜 혼의 고리를 걸어버렸다. 조건이 완성된 이상 너는 그 육체에 속해 이쪽 세상에 완전히 속해버렸지. 그러니 사사로운 감정으로 내가 너를 어찌할 수는 없다.”
염라대왕의 말에 엎드려 있던 청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 말은 염라대왕이 그를 함부로 죽이거나 저승에 가둘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이제 자유인가?
“그, 그럼 이만 가도 될까요?”
두려움을 누르고 간신히 말을 꺼냈다. 염라대왕이 이쪽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져 평소엔 꺼내기 쉬웠을 말도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염라대왕은 대답 없이 다시 몸을 돌려 꽃잎을 닦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뭐든 빨리하고 보내주시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청우는 그냥 입을 다물고 납작 엎드려 있는 걸 선택했다. 그나저나 이러고 있는 동안 스튜디오에 있는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또 병원에서 깨어나는 거 아냐? 숨 안 쉰다고 무덤에 파묻으면 안 되는데.
“하나 너도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저승의 순리에 참견하는 것은 엄청난 중죄다. 네 스승이 대신 업보를 받는다고 해도 모두 감당하긴 어려울 터. 그 업보를 모두 감당하려면 네 스승도 선격을 잃게 될 거다.”
“!”
자신 때문에 스승님이 선격을 잃게 된다니. 그건 스승님이 선인이 아니게 된다는 말이다. 깜짝 놀란 청우가 엄청난 위압감에도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고개를 들어도 그가 볼 수 있는 건 대왕의 하관뿐이었다. 대왕은 빙긋 웃고 있었다.
“단. 방법이 있긴 하지. 들어볼 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