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87)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87화(87/101)
제87화
“하, 내가 어이가 없어서.”
“안녕하세요, 사장님.”
얼굴을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호쾌한 장사치 같던 이가 화를 펄펄 내는 건 처음이었다. 오늘따라 낯설다, 너. 청우는 화가 난 채로 펄펄 뛸 것 같은 김선복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안 좋은 타이밍에 들어온 것 같은데.
“어? 어. 그래 청우구나. 앉아라. 내가 아주 어이가 없어서 진짜. 하, 참.”
청우가 고분고분 소파에 앉자 김선복이 반대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강 실장도 가까이 와서 옆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사장님?”
두 명의 궁금증 가득한 눈동자를 보니 마음이 풀린 것인지 김선복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아니, 이번에 블레시스 데뷔시키기로 하고 나서 기획사 대표들끼리 만나서 개별 활동이랑 단체 활동이랑 정산 따로 하기로 다 결정했거든? 그래서 그렇게 된 줄 알고 있었는데 방금 ST에서 연락이 왔더라고? 뭐라는 줄 알아? 글쎄 개별 활동에서도 블레시스나 〈블링돌〉 출신이라는 걸 쓰면 단체 활동의 일부라고 생각하겠다는 거야? 어이가 없지 않냐? 그래서 3이나 떼어가겠대?!”
돈 문제구나. 일을 하다 보면 돈 얽히는 일이 가장 무섭다. 청우는 왜 김선복이 날뛰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블링돌〉에 출연하기로 하고 이 소속사와 재계약할 때 계약 기간은 1년이었다. 단기 계약인 데다가 내기의 보상이었기에 김선복은 기분이라며 다른 연습생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 주었다. 그리고 사비로 옷과 생활용품 등을 제공해 주었고 강 실장이 차로 마중 나오는 건 회사 경비 처리로 해주었다. 여기까지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김선복 사장이 제공하는 호의였다.
이제 열심히 청우가 일을 해 수익을 모아서 정산해야 하는데 갑자기 다른 회사에서 수익을 또 떼간다니 김선복으로서는 남는 것 없이 빚만 지는 장사나 다름없었다.
‘이 아저씨 이거, 일부러 나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내고 있는 거 아냐? 도 그렇게 생각하…… 아니지. 하, 습관 됐나 자꾸 말을 거네.’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청우가 김선복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살펴보았지만 증거를 잡을 수는 없었다.
“내가 너한테 〈블링돌〉 참여하면서 생기는 활동비나 이런 거 청구 하나도 안 하고 3 준 거 알지. 근데 걔네가 3을 달라네? 그럼 3 빼고 남은 7을 나누면 우리 4.9 그리고 너 2.1이야. 우리가 땅 파서 장사해?”
역시 일부러 나 기다렸다가 화내고 있는 것 같은데.
대충 김선복의 고민은 알겠다. 그러니 청우가 받기로 했던 정산비율을 바꾸자는 말이겠지. 이제 막 데뷔한 그로서는 대부분 그룹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원소속사인 여기가 정산을 늦게 받게 된다는 것도 알겠다.
“그렇게 할게요. 제 거 조정하세요.”
그래서 청우는 시원하게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 사실 우리 도장 찍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그래서 내가 미안해서…….”
“괜찮아요. 사장님이 생각해서 합리적으로 조정해 주세요.”
금세 표정이 밝아진 채 미리 작성해놓은 서류를 들고 오는 것을 보니 청우의 합리적인 의심은 사실이 되었다. 청우는 초롱초롱해진 김선복 사장의 부담스러운 눈망울을 외면하며 새로 바뀐 계약서에 서명을 남겼다.
“…그런데 들어간 돈이 많아서 당분간 정산은 힘들 텐데.”
“저 돈 한 푼도 없는데 식사나 쓰는 돈은 다 사장님께서 처리해 주실 거죠? 애초에 그런 생활비는 회사에서 보장하고 처리해 준다는 게 계약 조건이었고요.”
“에이, 그 정도는 당연히 주지. 강 실장한테 카드 맡길게.”
만족한 김선복의 표정이 너그럽게 바뀌었다. 당분간도 돈 없는 생활의 연속이지만 청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등 따시고 비 막을 집 있으면 충분하지. 돈이야 벌면 그만이고 수전노처럼 아득바득 모아봤자 저승에 이고 갈 수도 없다.
…진짜로 돈 없으면 현지원한테 가서 좀 달라고 하지 뭐.
생각난 김에 까톡 답장해 주어야겠다. 귀찮아서 미루고 미뤘더니 지금 벌써 까톡방에 ‘+33’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래, 후일을 위해 친하게 지내야지.
“우리 청우는 착하기도 하지. 하긴 숙소 생활 하고, 당분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거라 돈 쓰고 싶어도 못 써. 강 실장이 붙기로 한 건 들었지? 그건 합의됐어. 네가 1등이고 센터니까 한동안 네가 방송에 많이 나갈 거야. 데뷔 타이틀 곡도 네가 센터야. 바로 데뷔 앨범 녹음 들어갈 거고 데뷔하는 과정은 유튜브로 공개되고 중간에 BNC에서 리얼리티 예능 촬영할 거야. 얼마 쉬지도 못하고 바로 일정 소화해야 하니까 컨디션 관리 잘해. 이제 진짜 데뷔다, 청우야.”
김선복 사장의 입에서 데뷔 소리가 나오니까 새삼 실감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연습생 지망생이 아니라 그렇게 ‘이청우’가 원하는 아이돌로서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점차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면 마침내 신선으로 등선할 수 있게 될 터. 그 길을 과연 스스로 잘 갈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몇 가지 서류에 줄줄이 서명하고 나니 사장실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앞으로 잘 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김선복 사장의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이돌이 뭐 별거겠어? 결국 아이돌도 예인 아닌가. 예인이 노래 잘하고 무대 잘하면 되는 거지.
청우는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숙소에 입소하기 전 며칠 주어진 쉬는 시간도 온전히 저를 위해 사용하며 마음 편히 보냈다.
물론 머릿속에서 자신과 함께하던 존재가 없어진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아쉬운 대로 혼원천을 만지작거리면서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다음은 〈wild〉팀의 무대입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텅 빈 적막이 왠지 낯설어 켜둔 티브이 화면에서는 얼마 전 자신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편집을 거친 프로그램 속 그의 모습은 어쩐지 낯설었다. 대체로 별생각 없이 한 말인데 포장이 꽤 잘 되어 있었다. 한 PD가 일은 잘한다더니 그림은 잘 만드는군.
테이션과의 일도 하나의 하나의 웃기고 슬픈 해프닝으로 가볍게 편집되어 있었다. 시청률이 아주 만족스럽진 않아도 제법 봐줄 만은 했던 건지 재방송이 꽤 자주 나오는 듯했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려니 한쪽 팔이 찌릿했다.
“뭐지?”
청우가 팔 쪽을 보니 사라졌던 검은 저승의 문양이 다시 나타나 있었다. 청우가 문양을 눌러 염라선을 꺼냈다. 부채가 저절로 펼쳐지고 흰 종이 위에 글귀가 나타났다.
-금일 오시
달걀귀 발견
퇴치 요망
저승에서 날아온 첫 임무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아이돌로서의 삶을 넋 놓고 기다리던 차에 차라리 잘되었다. 청우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달걀귀라면 얼굴 없는 귀신일 터. 대부분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나타나는 요괴인데 이 큰 도시에 인적이 드문 곳이 있나?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다 부채에 영력을 주입하니 부챗살이 휙 오므려졌다. 그리곤 저 홀로 공중으로 떠올라 한 방향을 가리켰다.
“좋아.”
부채가 혼자 허공에 떠 있으면 이 세계에서는 이상하게 볼 테지. 그러니 별수 있나 청우가 붙잡고 최대한 티 안 나게 하는 수밖에.
아이돌의 필수품이라고 강 실장이 쥐여준 캡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러고 고개 숙이면 아무도 못 알아본다고 했지. 나갈 준비를 마친 청우가 부채가 손안에서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며 도는 것을 느끼며 집 밖으로 나섰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길에는 사람들이 꽤 걸어 다니고 있었다. 길을 가리키면 좋을 텐데 부채는 방향만을 알려주어 청우는 인도를 따라 걸었다.
‘경공을 써서 가면 빠를 텐데.’
하지만 이 많은 사람 속에서 눈에 띄지 않고 경공을 쓰기는 더 어려워 청우는 모자를 다시 한번 푹 누르고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엇!”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신호를 기다리는 데 옆에서 한 여학생이 휴대폰만을 보며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휴대폰을 보느라 자동차 신호가 바뀐 것을 횡단보도의 파란불로 착각하고 걸어 나가는 것 같았다.
“이런, 빨간불이에요.”
보도 바로 앞으로 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고 청우가 재빨리 손을 뻗어 여학생을 뒤쪽으로 잡아당겼다. 깜짝 놀라 이쪽을 바라보던 시민들이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엇, 감사합니다.”
부드럽게 잡아당겨진 손에 정신을 차린 여학생이 귀에 꽂고 있던 무선 이어폰을 빼고는 수줍게 인사했다. 골격을 바로 잡은 후 키가 더 커졌기에 조그만 여학생이 위협을 느낄까 싶어 청우가 마스크를 내리고 싱긋 웃으며 화답했다.
“헉!”
여학생은 숨을 컥 들이마시더니 다시 얼굴을 휴대폰 쪽으로 푹 처박고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나름 태극권을 이용해 부드럽게 당겼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위협적이었나? 이곳의 현대인들은 너무 연약하니 좀 더 솜털처럼 대해야겠군.
자신이 너무 무심했다고 자책하며 청우가 바뀐 신호에 서둘러 걸어갔다. 부채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커다란 공원이 나타났다. 도심에 인접한 공원이라 가로등 불이 켜진 산책로에는 드문드문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산책로를 벗어나니 인적이 드물어 조금 스산해 보였다.
보는 사람이 별로 없자 청우가 모자를 벗고 기감을 넓게 펼쳤다. 부채가 이곳을 가리켰는데 느낌이 왠지 이 근처에 달걀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이건 강아지, 이건 사람, 이것도 사람, 이건 너구리? 이런 게 왜 도심에 있지.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 찾았다.’
달걀귀는 과연 공원의 외곽 한쪽 끄트머리에 처박혀 있었다. 가로등이 고장 나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구석 벤치에 사람처럼 앉아 누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산책 나온 사람처럼 어슬렁어슬렁 그쪽으로 걸어갔다. 사람의 기운을 느낀 달걀귀가 흐물흐물한 얼굴을 조금 더 사람처럼 바꾸고 사람처럼 보이는 자세로 바꾸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와서 보니 더더욱 사람 같았다.
공원에서 취객을 많이 관찰했는지 자세 하나는 아주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술 취한 여자가 늘어진 것 같은 자세로 벤치에 기대어 있었는데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고 옷은 질 나쁜 인간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서인지 중원에서 온 청우가 보기엔 아주 남사스러운 차림새였다.
“어이, 다 알고 왔는데.”
청우가 발끝으로 달걀귀의 구두 끝을 툭툭 쳤다. 여전히 연기를 할 셈인지 고개조차 들지 않는 달걀귀를 보며 청우가 한숨을 내쉰 뒤 내키지 않는 손을 들어 어깨를 치려 했다.
[캬아아악!]앗, 깜짝이야라고 할 뻔.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이목구비가 하나도 없는 하얀 얼굴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너무 빤해서 놀랄 수도 없었다.
“너 뭐하냐.”
전혀 놀라지 않는 청우가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하얗고 매끈하던 달걀귀의 팔과 다리가 녹아내리듯 흐물흐물해지더니 몸 전체가 치즈처럼 쭉 늘어뜨려 청우를 감싸듯 덮치기 시작했다.
[캬악, 캬아악!]입도 없는데 어디서 소리를 내는 거야.
청우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았지만 다행히 느껴지는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당장 몇 달 뒤면 데뷔인데 누구에게 목격되는 것은 곤란했기에 기감을 펼쳐두고 싸움을 하려니 한 방감인 달걀귀라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매번 이런 식이면 곤란하겠는데.”
청우가 영력과 내력을 섞어 무공을 끌어올렸다. 뭐로 때려볼까 하다가 염라선에 내력을 올려보았는데 그럭저럭 잘 흡수하는 모양새였다. 이걸로 좀 때려볼까.
쾅!
빠르게 몰아치는 달걀귀의 공격에도 청우가 한 손은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로 경공을 써 요리조리 가뿐하게 공격을 피했다. 이 정도는 중원의 요괴와 비교해도 매우 약한 정도였다. 겨우 이런 요괴들을 저승사자들이 처리하지 못해서 자신한테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걸까?
숨겨진 기술이 있나 싶어 몇 번 빈틈도 노출해 보았지만 달걀귀는 단순한 공격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역시 시시한데.”
청우가 손을 휘둘러 부채로 달걀귀를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달걀귀가 뒤쪽으로 나동그라졌다. 다시 한번 일격을 가하려고 하자 달걀귀는 자신의 불리함을 깨달은 듯 형태를 바꾸었다.
“앗, 잠깐!”
청우가 미처 잡기도 전에 타조알 정도로 작아진 달걀귀가 미친 듯한 속도로 데굴데굴 굴러 골목 안쪽으로 도망쳐버렸다. 방심하다 한 방 먹은 청우가 빠르게 속도를 높여 달걀귀를 쫓았다. 본능인 건지 달걀귀는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맹렬히 달려갔다. 그래봤자 청우의 눈에는 훤히 보였지만 말이다.
“거기 서라 이 달걀새끼야! 깨서 계란탕을 만들어버릴 테다!”
이를 갈며 쫓던 청우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진짜 아무도 없어?”
“후우, 그렇다니까… 헉!”
“어머!”
아. 이건 예상 못 했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애정행각을 하고 있던 남녀와 눈이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청우는 들고 있던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아무것도 못 본 척 딴청을 부리며 얼른 걸어서 지나갔다. 아무래도 이 달걀 놈이 데굴데굴 굴러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도망친 모양이다.
어색하게 걷다가 남녀가 보이지 않는 순간부터 다시 경공을 전개한 청우가 수풀부터 수색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요괴의 기가 느껴졌다.
“하하, 잡았다 이 달걀 녀석!”
확신이 든 청우가 수풀을 헤치며 부채를 들었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고 한 방에 해결할 생각으로 영력도 가득 담았다.
“죽어라!”
살인마같이 부채를 높이 든 청우가 내리치려는 순간, 비명이
튀어나왔다.
“살려주세요!”
거기엔 쪼그리고 있던 자세 그대로 주저앉은 웬 중년의 아저씨가 나뒹굴고 있었다.
“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