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88)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88화(88/101)
제88화
이 아저씨는 어디서 튀어나왔지?
순간 청우는 당황스러워 손을 내렸다. 현대인들은 솜털처럼 다루기로 했던 조금 전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춤주춤 청우가 물러서자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 그럼 저는 이만…….
아저씨가 뒤를 도는 순간 청우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휘이이휙~”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가락이었다. 정순한 기운에 성스러운 가사를 담은 만음신공이 퍼지기 시작하자 평범하던 아저씨가 괴로워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점차 아저씨의 이목구비가 지워지며 계란처럼 매끈한 얼굴로 변해갔다.
퍽-, 퍽-
“나가라, 나가!”
사람에게 씐 건지 아니면 사람으로 변신한 건지 모르겠지만 잘 모를 때는 때려보면 안다. 이쪽의 속담 중에 돌다리도 두드려 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청우가 부채로 툭툭 쳤을 뿐인데 맞는 쪽에서는 퍽퍽, 소리가 났다.
[캬아악!]그러나 때리는 쪽도 영력과 내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가뿐해 보여도 힘이 들었다. 그때 청우의 주변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어이쿠, 이미 시작하고 있었네.”
검은 도포에 창백한 얼굴. 저승사자였다.
“그대가 원승 님이 말한 인간이군요. 빙의는 처음인가 본데 도와드리지요.”
저승사자가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며 염라선을 꺼내 부치자 아저씨의 몸에서 계란귀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하늘로 올라온 계란귀가 빠져나가려는 찰나 청우가 순식간에 제압해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오, 과연 대왕님께서 일을 맡길 만합니다.”
저승사자가 호리병을 하나 꺼내 뚜껑을 열고 흔들자 계란귀가 호리병 쏙으로 기이한 소리를 내며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공원 끝자락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술 마신 듯한 아저씨와 청우 그리고 저승사자만이 남게 되었다.
“귀가 인간의 육신을 쓰게 되면 염라선을 이용하는 쪽이 더 좋을 겁니다. 염라대왕님의 기운이 묻어있어 귀나 육신 중 한쪽의 이름을 불러 깨우면 분리시킬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인간이니 사자의 술보다는 그쪽이 편할 겁니다. 아,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저는 원길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만났던 저승사자인 원승보다 능글거리는 성격이 왠지 만만치 않아 보이는 저승사자였다. 청우는 경계하면서도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원길은 손을 몇 번 흔들더니 청우의 오른손을 잡아당겨 저승의 문양을 확인했다.
“저승의 길을 이용하지 않았군요. 다른 세계의 술을 쓰는 것보단 저승의 길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염라선에 영력을 주입한 후 문을 그리면 저승의 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승 차원을 이용하는 길이라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으니 유용할 겁니다. 원승 님이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청우가 생각했다. 이 원숭이 사자가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구나. 어디 골탕 좀 먹어봐라, 이건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모르니 복수를 할 수도 없고. 저승사자 주제에 쪼잔하긴.
“처음 들었는데요.”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원길이 청우의 염라선을 보더니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그대의 염라선은 특이하군요. 대왕님의 기운뿐 아니라 선계의 기운이 들어있습니다. 지상에도 선기를 지닌 귀물이 있는데 그 부채라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나저나 요즘 왜 갑자기 이렇게 원귀와 요괴들이 날뛰는지 모르겠군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허허.”
그 말에 문득 청우는 현지원을 따라다니던 악귀가 떠올랐다. 그래도 저보다 오래 이곳에 산 자라면 뭐라도 알겠지.
“‘도를 아시오’를 아시오?”
순간 원길의 눈이 이건 뭐야, 라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청우는 나이도 있는 놈이 왜 말장난에 이렇게 정색하나 툴툴대며 현지원을 쫓아다니던 악의가 뭉친 악귀, 팬심으로 만들어진 악귀, 그리고 이와 연관이 있어 보이는 사이비 종교 제단에 관해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원래 그렇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었는데… 흥미롭군요. 이건 제가 따로 대왕님께 보고하겠습니다. 그때 당신이 악귀를 물리친 일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왕님이 당신을 강제로 추방하지 않고 이용하기로 마음먹으신 겁니다. 그런데 그 제단이 있다는 사이비 종교 어디에 있습니까?”
흥미를 보이는 저승 사자에게 위치를 설명하려던 청우는 자신이 이쪽 지리에 약하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어, 그게. 지도를 보면 아는데, 잠시만요.”
스마트폰에 저장된 지도를 이용해 위치를 설명하려고 하자 원길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도포 자락에서 스마트폰이 나오다니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었다.
“저승사자도 스마트폰을 쓰나요?”
“저는 좋은 건 받아들이는 쪽이라. 제 지도에 위치를 찍어주세요.”
주소를 찾아 즐겨찾기까지 마친 청우는 내친 김에 저승사자와 번호까지 교환했다. 심지어 이 저승사자는 까톡도 있었다.
저승의 꽃밭이 올라와 있는 원길의 까톡 프로필 사진을 본 청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염라대왕님이 아끼던 그 꽃밭 아닌가. 인간들에게 보여도 되는 곳인가?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주십시오. 저는 악귀 담당이니 종종 마주칠 일이 있을 겁니다. 앞으로는 사람이 많은 곳에선 저승길을 열어 그쪽 공간에서 싸우면 쉽게 도망치거나 빙의되지는 못할 겁니다. 저는 바빠서 이만.”
빠르게 자신의 할 말을 마친 원길은 다시 훌쩍 사라져 버렸다. 청우가 미처 부를 새도 없이 원길마저 사라지자 청우는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아저씨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흐응, 김 대리, 한 잔만 더…….”
“어휴.”
이 아저씨 버리고 갈까. 그때 혼원천에서 알림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듣는 알림이었다.
띠링-
[선업이 100점 쌓였습니다. 등선까지 남은 점수는 99,999,900점입니다. 목표를 달성하였으므로 앞으로 선업 점수 측정을 위하여 혼원천 기능이 변화합니다.]“이게 겨우 백 점? 등선하다 늙어 죽는 거 아냐?”
불평하던 청우는 자신에게 남은 업보의 점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내 업보는?”
[타인을 위해 선업 점수를 희생한 선업 점수와 합산되어 청산되었습니다.]‘이청우’를 위해 했던 일도 희생으로 치부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희생은 등선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긴 했다.
“앞으로 바쁘겠는걸. 매일 이런 일이 있지는 않겠지? 아이돌이란 것도 꽤 바쁘다고 들었는데 병행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어휴, 이 아저씨는 왜 이런 데서 술 먹고 뻗어있는 거람. 척 보기에도 젊은놈이.”
근처에 자국을 보니 작은 볼일을 해결하곤 술기운에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것 같았다. 영력으로 내리쳤던 자국은 다행히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청우는 매끈한 아저씨의 대머리를 노려보다가 어깨를 부축했다. 아저씨의 발이 살짝 공중에 떴지만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어깨에 둘러멜까 했지만 이만한 아저씨를 너무나 가볍게 들어버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어휴, 신경 쓸 것도 참 많다.
구석에 떨어진 아저씨의 지갑까지 야무지게 넣어주고 옷깃까지 정리한 후 청우가 아저씨를 근처 지구대로 데려다주었다. 마스크를 쓰면 너무 수상쩍은가 싶어 마스크를 내리고 웃으며 들어가자 경찰관들은 착한 일을 했다며 따뜻한 음료수도 한 잔 주었다.
“이곳 사람들도 정이 많네. 좋은 사람들이야.”
안에 있던 여경 두 명이 자신을 알아보고는 발만 동동 구르다 작은 팬심으로 음료수를 주었다는 건 모른 채 청우는 이곳 사람들의 인정을 칭찬했다. 음료수도 자신이 딱 좋아하는 맛이었다.
띠링-
[바깥에서 자다가 입이 돌아갈 뻔한 사람을 구조했습니다. 선업 점수가 30점 추가됩니다. 등선까지 남은 점수는 99,999,870점입니다.]또다시 들린 혼원천의 알람에 청우가 글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선업 점수를 측정해서 혼원천이 알려준다는 뜻이구나.
시험 삼아 청우가 주변을 둘러보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주웠다.
[바닥의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선업 점수 3점이 추가됩니다. 등선까지 남은 점수는 99,999,867점입니다.]“오오, 제법 쏠쏠한데?”
청우는 돌아다니며 본격적으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쓰레기의 크기나 영향에 따라 선업 점수에도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띠링-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띠링-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띠링-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띠링-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띠링-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계속되는 알람에 귀가 좀 따가웠지만 이 정도는 참을 만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1억 점을… 언젠가는 채우겠지. 등선, 참 어렵다.
띠링-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띠링-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더 주울 수 없을 정도로 쥔 쓰레기가 많아진 청우가 쓰레기통을 찾았다.
띠링-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선업 점수 5점이 추가됩니다. 등선까지 남은 점수는 99,999,836점입니다.]“저기.”
신나서 눈에 불을 켜고 쓰레기를 찾고 있던 그때 누군가 청우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네?”
청우가 이제야 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자각하고 표정을 관리했다. 나는 선량한 시민이다, 절대 달걀귀를 때려잡은 무림인이 아니다, 속으로 세뇌했다. 마스크와 모자로 가려져 잘 보이진 않겠지만 말이다.
“저쪽에 쓰레기 많아요.”
한 여성이 청우를 안쓰럽게 보며 길 건너 구석을 가리켰다. 말 그대로 쓰레기통 안처럼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도 모른 채 청우는 신나서 쓰레기를 모아다가 쓰레기통에 버렸다. 큰 봉지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선업 점수 쌓이는 소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청우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집에 가 길이 썰렁해지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혼원천, 알림 소리 좀 줄일 수 없어?”
띠링띠링 소리에 주변에 사람들이 모두 집에 간 것도 몰랐다.
[알림의 세부 설정이 가능합니다.1. 모두 알림
2. 점수별 알림(선업 점수 1,000점 이상 건)
3. 기간별 알림(한 달에 한 번)]
“진작 알려주지 귀 아파 죽을 뻔했네.”
혼원천의 소리는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소리지만 청우가 툴툴거렸다. 알림 설정을 바꾸려다 생각해 보니 어떤 일이 어떤 점수를 주는지 아직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그대로 유지하자. 어떤 행동이 점수를 얼마나 주는지 좀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내일은 본격적인 아이돌로서의 일정이 시작되는 하루다. 이제 숙소로 들어가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다니지 못할 테니 지금처럼 알림이 금방 울리지는 않을 것이다.
“빨리 가야겠는걸.”
집으로 가는 길을 찾던 청우는 방금 알게 된 저승길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한번 써볼까?”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래도 혹시 몰라 구석으로 이동했다. 염라선으로 문을 그리고 한 발 디디자 미묘하게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저 네모를 그리고 발을 디뎠을 뿐인데도 여긴 사람의 길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이런 구조구나.”
주변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내려와 구구- 거리며 돌아다녔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날아가지 않는 걸 보며 청우가 슬쩍 발로 비둘기를 건드려 보았지만 신기하게도 비둘기에게 청우의 발이 닿지 않는 것이 보였다. 마치 유령이 된 것처럼 겹쳐질 뿐 비둘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구구거리며 돌아다녔다. 다만 눈앞의 건물이나 벽은 통과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다른 차원의 길과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도 못 보고 생명과는 겹치지도 않는단 말이지? 그럼 경공으로 가야겠다.”
저승의 길 자체도 빠른데 경공까지 쓰니 눈 깜짝할 사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앗, 개꿀.”
자기도 모르게 신조어를 내뱉고 눈치를 살핀 청우가 약간 실망했다. ‘이청우’가 있었다면 그런 건 어디서 배웠냐고 하여간 나쁜 말만 빨리 배운다고 한마디 해주었을 텐데 역시 쓸쓸했다.
본디 혼자 있어도 전혀 쓸쓸하지 않았는데 그 어린 녀석이 남기고 간 자리가 자꾸만 크게 느껴졌다.
알차게 살아서 꼭 성공도 해야지. ‘이청우’가 이쪽 세계에 다시 태어난다면 자신을 꼭 보게 해주고 싶다. 그가 자신을 보며 아이돌이란 꿈을 다시 키워나가고 그 애도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금세 날이 밝았다. 숙소로 짐을 옮기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