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94)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94화(94/101)
제94화
이후는 정신없이 새 앨범 준비에 나섰다. 데뷔 앨범 콘셉트도 콘셉트지만 가장 중요한 건 대중에게 블레시스를 각인시킬 데뷔 곡이었다.
데뷔 앨범은 미니 앨범으로 타이틀 포함 다섯 곡 정도. 그중에 한 곡은 ‘난 준비됐어’ 멜로디를 변주해서 만든 곡이라던가.
오늘은 회사에서 ‘시작’을 주제로 만들어 둔 콘셉트를 확인하고 타이틀 곡 및 수록곡을 청음한다고 하던데, 강 실장이 대략 설명해 줘도 청우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리둥절한 청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2년간 소속될 기획사를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호기심에 차 둘러보거나 앞으로 있을 콘셉트 회의에 쫄아 있거나 했지만, 기본적으로 설레는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와보니 김선복의 기획사가 얼마나 구멍가게인지도 알 수 있었다.
“형, 여긴 엄청 넓네요. 사람도 엄청 많고.”
강 실장에게 속삭이자 그는 익숙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BNC 방송국의 자회사니까 자본은 많거든. 근데 아이돌 쪽은 경험이 많지 않아서 좀 서툴 수도 있어.”
회의실에 들어가 보니 아직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어리고 경험도 없는 연습생들이니 천천히 들어오겠지.
“어, 일찍 와있었네요. 어휴, 강 실장. 오랜만이야.”
“하하, 안녕하셨어요, 이 실장님.”
강 실장은 이 실장이라는 사람과 인사했는데 그 뒤로 실무진으로 보이는 직원들이 네다섯 명이 들어왔다.
“강 실장이 신인 맡을 짬이 아닌데 말이야.”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청우를 오래 봐서 동생 같기도 하고 신인들 키워나가는 것도 좋아하고요.”
“하긴, 강 실장한테 맡기면 믿음이 가긴 해. 우리로서는 고마운 일이지 뭐. 규빈이는 좀 쓸 만해?”
“네, 싹싹하고 일 잘하던데요.”
가벼운 인사들이 끝나자 바로 새 앨범에 대한 기획 설명이 시작되었다. 이 실장은 ST의 기획실장으로 ‘블레시스’의 전반적인 기획을 맡을 거라 자주 보게 될 거라며 인사했다.
“일단 새 앨범의 콘셉트는 원석으로 정했습니다. 〈Star-T : Gemstone〉이 앨범 이름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를 가져가기보다는 〈블링돌〉에서 활용할 수 있는 건 다 가져간 느낌이었다.
기획 실장의 콘셉트에 의하면 블레시스 멤버들은 먼 옛날 지구에 떨어진 운석에서 조각난 원석으로, 데뷔 앨범은 세공사들에게 발견되어 보석으로 거듭나는 스토리가 중점이었다. 그리고 각기 다른 보석들이었던 멤버가 만나 하나로 완성된다던가.
꽤나 직관적인 스토리긴 해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되 기존 〈블링돌〉 팬들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가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래서 청우 씨는 이제 무협 티 좀 빼고 가능한 새 앨범 콘셉트에 맞게 행동하면 좋겠어요.”
“네.”
그게 뺀다고 빠질지는 모르겠지만 청우도 천마 소리를 계속 듣고 싶은 것은 아니기에 시원하게 대답했다.
“곡은 총 6곡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wild〉 포함입니다. 애초에 데뷔할 그룹에 쓸 곡으로 받아온 거라 방송사와도 협의했어요. 그리고 어쿠스틱 버전으로 ‘햇살 그리고 너’를 편곡해서 넣을 건데 제목이 맞지 않아서 마지막에 보너스 트랙 느낌으로 넣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타이틀 후보가 두 곡 정도 있는데, 거의 확정입니다. 내정된 곡이 콘셉트에도 잘 어울리고 후렴도 입에 잘 붙어서 작곡가가 다른 한 곡 수정을 어떻게 해와도 아마 내정된 곡으로 확정될 거예요. 멜로디 하나만 수정하면 될 것 같다고, 될 것 같다고 하는 게 며칠째인지. 하여간에 나머지 한 곡 마무리되면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는 것이 없어 물을 것도 없으니 그저 고개나 끄덕였다. 작곡가가 후반 작업을 끝내면 음원 녹음하고 안무 숙지 후 바로 뮤직 비디오 촬영에 들어갈 거라고 했다.
뮤비 트레일러, 본편, 콘셉트 포토, 메이킹 과정 공개 등 앞으로 이어질 과정을 안내받으며 청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는 흘려버렸다. 어차피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되겠지. 멤버들이 진지한 얼굴로 듣고 있는 걸 보니 나중에 모르면 물어보면 되겠다며 속으로 좋아했다. 애들이 참 성실해. 아주 좋아.
타이틀 작곡은 유명한 작곡가인 ‘M스타’가 맡았다고 했다.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 곡을 몇 개 히트 쳐 인기와 유명세가 높아졌다지. 첫 시작이니 곡이 잘 나와야 할 텐데 그건 청우도 걱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해월이도 곡 몇 개 가지고 있더라고요, 실장님.”
해월이가 깜짝 놀라 파닥거렸다.
하지만 어떻게 노래 부르는 놈들이 자기 곡 하나 없이 나서서야. 게다가 실장의 저 밀어붙이는 꼴을 보아하니 여기서 발악이라도 안 하면 그대로 잡아먹을 셈이다. 욕심이 가득해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관상은 아니지만, 제 손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조종하려 들 게 분명했다.
지금이야 전문가의 손에 다 맡긴다고 해도, 나중에는 분명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할 때가 올 텐데. 그 순간의 발언권을 위해서라도 손쉽게 주도권을 줘서는 안 되지.
“해월이가 원래 작곡에 관심도 많고 실력도 어느 정도 있거든요. 저희 서바이벌 출신이니까 실력을 강조해도 좋을 것 같아서요. 뭐 큰 건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참여하면 팬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을까요? 인트로 정도는 조금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이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회사에서는 1위로 데뷔한 이청우와 2위이자 회사의 결에 맞는 미카엘, 그리고 대단한 뒷배를 둔 주지호 정도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다른 멤버들에 대한 정보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아이돌이 이제는 종합 아티스트로 불리는 만큼 작곡에 재능을 보이고 실력이 있다면 지금부터 키워두어도 나쁘지 않다.
이 실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김해월의 이름에 별 표시를 했다.
“좋네요. 그럼 나중에 편곡 팀에 이야기해둘 테니 같이 작업하는 모습 보여줘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 내가 얼른 여기의 곡 제작 방식에 익숙해지면 작곡에도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텐데 이곳은 기계를 너무 많이 써서 사용법을 배우기조차 까다로웠다.
일단은 김해월을 밀어 넣었다.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하고, 이곳 역시 다르지 않을 터. 앞으로 이 그룹의 활동이 순탄하게 풀리려면 처음부터 기반을 잘 다져놔야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곡이겠지.
이 실장은 김해월에게 인트로 곡의 구성이나 가사 정도는 생각해와도 좋겠다며 첫 번째 앨범 콘셉트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어휴, 긴장돼서 죽을 뻔했네.”
답지 않게 정이원이 한숨을 쉬었다. 하긴 연습생 신분으로는 저런 회의에 낄 일이 없었으니 정이원의 마음도 이해는 갔다.
“일단 곡 작업이 되어야 다른 게 진행된다는 말이니까 빨리빨리 진행되면 좋겠네. 언제까지나 우리끼리 히히덕거리는 콘텐츠 찍을 수도 없으니까. 오늘부터 해월이는 인트로 곡 작업하고 다른 사람들도 좋은 멜로디나 원하는 분위기 있음 아이디어 주자. ‘인트로’라고 했지만 좋으면 정식 트랙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오히려 청우가 이런 자리는 많이 겪었기에 더 익숙했다. 긴장되고 딱딱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던 멤버들은 청우의 담담한 말투에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숙소에 돌아가자 청우는 멤버들을 거실로 집합시켰다.
아직 타이틀은 안 나왔다고 해도 가안으로 들려준 곡들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청우도 멤버들도 대충 ST가 어떤 걸 원하는지 알 듯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라 숙소 가는 차 안에서 김해월은 내내 울상이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여섯이서 머리를 맞대서 돕기로 하고 거실에 옹기종기 모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 작곡·작사는 초보에 가까운 이청우.
케이팝 안무는 훤하지만, 작곡은 팝송이 더 쉬운 미카엘.
그리고 힘차고 파워풀한 멜로디는 짤 수 있지만 인트로 곡에 쓸 만한 몽환적이고 ‘시작’하는 느낌은 낼 수 없는 정이원.
반대로 잔잔하고 발라드에 가까운 멜로디만 뽑아내고 호소하는 듯한 가사만 적는 이덕진.
이렇게 네 명이 모이니 백지장을 맞들기는커녕 김해월이 머리만 부여잡았다.
의외로, 그리고 오로지 주지호만이 콘셉트를 이해하여 김해월에게 여러 소스를 주었다.
“인트로 콘셉트를 땅속에 묻혀 있다가 구출되는 느낌으로 가면 어때? 우리도 각자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블링돌〉에서 세공사분들에 의해 밝은 세계로 나온 거나 마찬가지니까. 화자인 우리가 땅에 묻힌 원석이고 청자한테 발견해 줘서 고맙고 우리가 찾아가겠다는 거지. 그럼 굴이나 지하 이런 데서 울리는 습한 분위기로 인트로 가져가면 좋을 것 같은데.”
“이열. 주지호, 이런 재능이 있었다니.”
“그러게.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너도 책 좀 읽어라, 정이원.”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않냐.”
주지호의 말을 듣자마자 김해월이 머릿속에 무언가가 그려지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에서 노트북을 가져온 그는 너튜브에 ‘동굴 소리’, ‘지하 소리’ 등 이것저것 검색하며 한참을 듣고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기하게 쳐다보던 청우도 김해월이 정신없이 관련 영상을 검색하고 찾아보자 방해가 되지 않게 멤버들과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지런히 무언가를 쓰고 작성하던 김해월이 뭘 만드는지 거실에서 멜로디가 조금씩 들려왔다.